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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19화 : 머나먼 나라


9. 머나먼 나라

길고 깊은 밤이 지나고. 희미하게 여명의 기운이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무렵. 나와 대교. 그리고 흑주는 캔들 리의 저택 지붕 위에 앉아 있 었다.

수수께끼의 불사 남녀 루드와 카라는 이미 작별을 고하고 떠났지만 나와 대교는 흑주를 혼자 남겨두기가 싫어서 이렇게 계속 함께 있게 된 것이 다.

“…흑. 안 춥니?”

흑주는 지금 본래의 상하의 연결형 킬러 유니폼 위로 두터운 점퍼까지 입고 있지만 그래도 그냥 물어봤다.

“안 추워? 난무지 추운데………….”

으음. 계속 생까는군…하긴. 본래도 말이 없는 녀석인데 에스의 일을 겪고 난 후이니, 더 누구하고든 대화 할 기분이 아니 긴하겠지만…………… “야. 이제 테네신가 하는 놈도 죽었고, 지금 캔들 리 경호하는 사람은 바로 대교의 아버지야. 믿어도 될 사람이니까. 그니까 이제 우리랑 가서 좀 쉬자. 응?”

또 생… 음. 이제야 겨우 고개라도 저어 주시는군. 여하간 조금 더 쎄게 (?) 나가볼까?

“싫기는 인마. 니 아빠 캔들 리나 에스 아저씨도 네가 고생 하는 걸 좋아할 것 같아?”

흑주의 시선이 비로소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당신, 이상해. 흑주, 걱정해. 왜?”

“어? 그건・・・ 너도 이제 알잖아, 과거 얘기.”

“이상해. 그런 얘기.”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결국 지난밤에 환생 얘기를 들려주었었지만, 아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제 좀 돌아가서 쉬자. 우린 피곤해 죽겠다, 인마.”

“그래요, 흑주님. 아버님 경호를 위해서라도 흑주님의 건강부터 챙겨야죠.”

…응? 흑주 녀석, 왜 새삼 빤히 나와 대교를 바라보는 거지?

“안돼. 죽으면.”

…음. 나의 ‘피곤해 죽겠다’는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군.

흑주는 나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대교도 당연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게는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해 두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지봉에서 뛰어내리며 몽몽을 불렀다.

「몽몽. 페트라 좀 연결해줘.」

예. 주인님.

어제부터 자룡대주의 업무를 분담하기 시작한 페트라는 미안하게도 내가 지시한 일을 진행하느라 야근(?) 중이었다.

“페트라. 일은 잘 진행되고 있어?”

“예, 천주.”

기본적인 대답은 즉각 나왔지만 구체적인 보고에 조금 뜸을 들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명하신 대로 적당한 장소를 몇 군데 체크해 놓았으며, 모든 장소를 오늘 내로 확보하여 기본적인 개조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고, 그, …관’도 이미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음. 좋아. 고마워.”

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오르려던 동작을 문득 멈추고 동쪽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막 먼동이 터 오기 시작하는 하늘의 장엄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이 다른 어떤 때보다 특별한 기분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에스. 그 못 말리는 남자…………! 결국에는 저 태양빛을… 영원히 등지는 길을 선택했어. 게다가 그것도 자기 자신을 위한 생명연장이 아니라… 소 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시간과…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나는 이제 인간으로서의 그를 위한 일은 해줄 것이 없게 된 셈 이었다. 하지만 뱀파이어로서의 그에게는 최대한 편의를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으으음. 근데… 내가 관 뚜껑에 새겨 넣으라고 한 글이 에스의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난 문득 에스가 앞으로 자신의 안식처가 될 최고급 관과 ‘러브 하우스’라 새겨진 명패(?)를 발견했을 때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이제 에스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영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 태양의 빛이 무심하게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오후의 한 꼭지.

나는 리버티 호텔의 한 객실 침대에 혼자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가 모토인 나는 오전에 충분히 잘 잤지만, 옆방의 흑주와 대교는 그렇지 못하고 조금 전에야 겨우 잠이 든 상황이었다.

흑주 녀석. 아무리 어쩌니 해도… 막상 실제로 지 의삼촌(?) 겸 거진 아빠인 에스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잠을 이루기 어려웠겠지. 대 교는 그런 흑주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달래느라 함께 잠을 설친 모양이고… 에효. 어째 나만 엄청 무신경 한 놈이 된 것 같네.

불사의 루드와 카라 커풀이 일단 에스를 데리고 떠난 건, 카라가 에스를 뱀파이어로 만드는 과정을 흑주에게 보이기 싫다는 에스의 요청 때문이었 다. 당연히 그는 곧 새로운 에스로서 돌아올 예정이다.

보통 인간이 뱀파이어에게 소위 ‘어둠의 세례’를 받는다 해도. 그가 뱀파이어로 재탄생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그게 일반 적으로 하루 정도가 걸린다고 했지………?

체질에 따라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일단 오늘밤이나 내일 새벽쯤에는 다시 에스를 만날 수 있겠군. 시그마 같은 뱀파이어와 싸우게 되 었던 일도 썰렁했었지만… 앞으로는 친하게 지내야 할 뱀파이어까지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거 왠지 더 기분 묘하네.

내 기분이야 어떻든, 에스로서는 상당히 만족할 만한 상황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뱀파이어가 되면 당연히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겠지만 에스의 경우에는 더욱 특별해질 전망이기 때문이었다.

에스의 마스터가 되는 뱀파이어 카라…………! 그녀는 최근까지는 내가 어젯밤에 겪어 본 ‘영역’ 같은 걸 만들 수도 없고, 안개화 능력도 쓸 수 없었다 고 한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건을 계기로 소위 각성을 해서 단숨에 진조(眞祖)에 가까운 존재로 진화해 버렸다나..?

그래서 그런 그녀의 서브가 되는 에스도 그녀처럼 ‘낮에도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상당히 대책 없는 뱀파이어가 될 거라고 하니, 반칙왕의 제 자 반칙왕자(?)가 탄생하는 셈이었다.

물론 인간이었을 때처럼 태양을 즐길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고 어디까지나 ‘겨우 견딜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힘은 쓰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하지 만……….

ᅳ주인님.

“어, 왜?”

-천우신님이 오십니다.

에구. 그러고 보니 그 친구에게 해줘야 할 말이 너무나 많구나.

대략 40분정도 후.

천우신은 소파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고, 나는 창가에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천우신은 얼마간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으로 머 리를 쥐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굳이 고개를 돌려보지 않아도 뻔하군. 발자국 소리로 보아 반대쪽 탁자로 가는 거고… 주전자를 들어서 컵에 물 따르는 소리… 그리고………….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키는 소리 끝에 커어~ 소리가 이어졌다.

비로소 내가 돌아보니 천우신은 일단 하아아- 길게 한숨도 토해 낸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피시식(?) 웃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오래 전에 죽은 줄 알았던 캔들 리 의 따님과 의동생이 특급 킬러와 그, 뱀파이어로서 캔들 리 경호에 합류한다는 그 런 얘기로군.”

“오~.”

심플하고도 효율적인 요점정리에 나는 작게나마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나 천우신은 고개와 손을 저으며 다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발생한 일의 정리는 쉬울지 몰라도 앞으로의 대책은 그렇지가 못해. 사망처리 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실종 상태였었다가 돌아온 딸…………! 여기까 지는 오히려 좋았는데, 그녀가 하필 전설적인 에메랄드 킬러라니.. 이건 치명적인 스캔들이 될 수도 있어. 게다가 의동생은 뱀파이어…………..? 이건 어 쩌면 너무 믿을 수 없는 얘기라 정보전에서 역이용할 수 있을지도… 으~ 이렇게 황당하고 골치 아픈 그레이 홀은 나도 처음이야!”

천우신은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천우신이라도 ‘뱀파이어’ 얘기 같은 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 각했는데, 저 친구는 이렇게 곧바로 내 말을 믿어줘 버린 것이다.

“이보게, 유준. 본래 정치판이란 없는 일도 만들어내기 마련인 곳일세. 그러니 이렇게 좋은 소스가 있는데도 놓칠 자들이 아니라네. 뭐. 물론 나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훗. 확실히 정보전은 우리 우신 씨의 특기지.

“어쨌든, 유준. 그 에스라는 사람이 돌아오면 반드시 나를 먼저 만나도록 해주게.”

“그야 물론이지. 에스 역시 그걸 원할 거야. 자네와의 긴밀한 유대가 없으면 캔들 리의 수호신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야. 게다가……….” 난 공연히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분명 자네 맘에 들걸? 적어도 살인에 관한한 천재가 분명한 것 같았거든.”

“살인의 천재가 뱀파이어까지 된… 하아아아~.”

후후. 새삼 한숨을 몰아쉬면서도 결국 ‘흥미를 느끼는 표정’ 이 되는 걸 보면 역시 ‘천재 애호가’답군.

“만난 지 불과 이틀이 되기도 전에 이렇듯 많은 일들이 몰아치다니. 유준. 난 자네가 나의 귀인(貴人)인지, 아니면 흉성(凶星)인지 모르겠네.”

쯧. 내가 아무리 일찌감치 ‘재앙’이라 불린 사람이라고는 해도 아직까지는(?) 흉성 얘기까지 듣는 건 좀 억울한 걸………? 사실 흑주와 에스는 내가 아니었어도 캔들 리와……………

“DP, 디라잇 프레전트(Delight Present)사와는 또 어떤 관계인 건가?”

에?

“뭐?”

“오늘 아침, 그 기업 회장의 비서라는 여자로부터 연락이 왔었다네. 자세한 얘기는 직접 만나서 상의해야겠지만 DP의 회장이 캔들 리 주시자 후보의 후원자가 될 용의가 있다고 말이야.”

으음. 원판 녀석, 어째 따라오지도 않고 조용하다 했다.

“아는 사람이 적지만, 숨겨진 자산가치가 세계 기업 순위 1위인 GE (General Electric)사를 능가한다는… 그 DP의 회장이 말이지.”

그걸 우리 부모님들께선 ‘조금 큰 회사’ 정도로 알고 계시는데………….

“그리고・・・ ‘진유준 씨는 여전히 바쁜 척, 쏘다니고 계신가요?’ 라고 묻더군.”

쯧. 그 여자, 란. 말투가 삐딱한 걸 보면 며칠 전 원판과의 밀애를 방해했다고 아직까지 삐쳐 있나 보네.

“그냥 좀 아는 사이랄지… 그, 뭐… 공식적으로는 본의 아니게 그 회장 녀석이 내・・・ 사촌동생이기는 한데………….”

천우신은 이제 놀라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천우신이 자기 자취방(?) 겸 사무실로 돌아가고 나서, 딱 10분 후.

원판은 평소의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표정으로… 우리의 전통 민요를 흥얼거리며 등장했다.

“나ᅳ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오 모옷 가서 발병난…….”

“야, 야!”

“아, 박자가 틀렸나?”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제기, 원판 녀석의 처녀귀신 같은 얼굴에서 아리랑이 처량 맞게 나오니까 왠지 전설의 고향 납량특집 보는 것 같다.

“버리긴 누가 누굴 버리냐? 우리가 출발할 때 잠만 퍼질러 자던 게 누군데?”

“……난 그냥 마음에 드는 노래를 불렀을 뿐, 딱히 가사에 의미를 둔 것이 아니었거늘… 흠. ‘버리고 간다’ 는 인식은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군.”

어이구, 웬수. 잘도 아무 의미도 없이 납량특집 찍었겠다.

“됐다, 인마. 말장난하지 말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나 해. 나를 감시하던 놈들은 전부 철수했다며? 근데 어떻게 이곳의 일을 알고 참견하러 온 거 냐?”

원판은 내 말을 살짝 생까며 천천히 내가 앉아 있는 침대 맞은편의 의자로 향했고, 뒤에 따라온 비서 란이 대신 입을 열었다.

“확실히, 진유준님에 대한 실시간 정보 수집 팀은 이미 철수한 상태입니다. 이번 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오히려 캔들 리쪽을 담당한 부서로부 터 전해진 것입니다.”

란은 약간 득의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가능성이 보이는 인물들은 일찌감치 체크해 두고 있었다는 거죠.”

쳇. 누가 암중에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 아니라고 할까 봐 꼼꼼하기도 하군 그래.

“그렇다면… 지금 굳이 노골적으로 캔들 리의 후원자가 되겠다는 건 무슨 의미?”

“그야, 공식적으로는 진유준님께 잘 보이기 위함이지요.”

소위 ‘진유준과 친해지기 프로젝트’의 일환일 뿐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음. 이번에는 란이 바로 대답하지 않고 원판 쪽을 보는군.

“난 개인적으로 캔들 리와 같은 타입의 인간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런 나약한 타입의 인간이 어디까지 제왕의 자리에 근접해질 수 있을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더군요.”

“캔들 리가 나약한 타입…………? …흠. 그러고 보니 원판, 너와 캔들 리는 거의 정반대 스타일의 보스 모델이로군.”

그래서 오히려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은 일단 이해가 되긴 하는데……………

“정말 그게 다야?”

“…..최악의 경우, 케네디의 일까지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미국의 전 대통령 케네디 암살 사건의 배후로 프리메이슨을 지목하는 음모론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케네디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의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건 물론이고 그들을 미국에서 축출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제거 당한 거라는…………….

“아무래도 미래는 장담을 못하겠군요. 지금은 내가 마음대로 정한 일이고. 아직까지는 위의 늙은이들로부터 군소리가 없기는 합니다만…………….” 일단 원판, 이 녀석은 별다른 음모 없이 온 거라고 믿어줘야 하려나?

“여하간, 12인의 사도에게 확실히 전해둬. 날 어쩌기 전에는 캔들 리도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야.”

“후후 그러도록 하죠.”

원판, 이 녀석. 난 나름 심각하게 경고하는데, 왜 실실 쪼개는 거야?

“……뭐가 어찌되었든, 나는 이쪽에게도 프리메이슨에 관한 경고를 해주는 선까지만 할 생각이야. 그러니 구체적인 얘기는 캔들 리측과 직접 해.”

“호오. 캔들 리와 더블엠 천, 두 인물을 그 정도로 신뢰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다는 건… 역시 그 두 사람도 당신과 천년 전부터의 인연이란 의미?”

“맘대로 생각해. 그보다… KKK단도 너희들 패거리라는 말이 있던데, 실제 그런 거야?”

“진유준님! KKK단, 그 같잖은 자들을 우리와 같이 보지 말아 주십시오.”

란이 자못 불쾌하다는 듯 뾰족한 목소리로 나섰다. 그러나 막상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조금 주춤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물론 그자들도 연합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DP와는 엄연히 별개의 무리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프리메이슨의 수뇌부를 비화곡이라 칠 경우, DP는 비화곡 속의 강호지부 KKK단은 비화곡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마외도의 하오문(下午門)…쯤 된다 이거로군.

“그럼 걔네들이 요즘 뭐하는지도 잘 모르겠네?”

란은 대답을 조금 망설이며 원판을 돌아보았고, 원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에레보스에서 그들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알려드릴 수 있겠군요.”

이런 제기. 에레보스처럼 까칠한 놈들은 KKK단을 어찌 한 다음에 따로 상대하고 싶었는데, 결국 협조를 안 해주는 구만.

“솔직히 에레보스의 움직임은 우리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에레보스의 멤버 중 넘버 세븐, ‘헬 게이트’ ………! 그는 KKK단과 같은 코드, 즉 인종차별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므로 진유준님께서 KKK단과 마찰이 생겼다면 그가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헬 게이트……? 지옥문? 나 참, 그런 거 여는 초능력자도 있어?”

“훗. 설마 그런 능력자가 있겠습니까. 그럴듯하게 붙인 별명이겠지요.”

쯧. 란은 별 생각 없이 웃음을 앞세우고 있지만… 난 어째 별로 웃음이 나오지 않네 그려. 뱀파이어 마스터씩이나 되는 놈이 멤버일 정도니 더 해괴 한 능력자가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으니 말야.

“참고로 에레보스 구성원들의 서열은 넘버원만이 캡틴으로서 압도적인 존재이고, 다른 멤버들의 지위와 힘의 우열은 숫자와 관계없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기분 잡쳐 주시는군. 이거 아무래도… 병력 배치부터 다시 점검해 봐야겠는데?

-주인님.

“어, 왜.”

-10분 가량 후, 캔들 리가 호텔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야 DP의 마스터라는 거물이 후원자를 자처하며 납시었으니 당연한……….

-또한, 조금 전 흑주님이 취침 상태로부터 깨어나셨습니다.

응? 그 녀석, 좀 더 푹 잘 것이지. 지 아빠 왔다고 일어난 건가? 아니면 그냥 우연・・・ 어, 가, 가만?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나는 흑주가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인물이 또 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야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 문제의 원판은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로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아직… 흑주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겠구나.”

“…흑…주?”

원판의 가면 같은 얼굴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그래. 그 녀석이 지금 옆방에 있어.”

흠칫 놀라며 내 고개 짓을 따라가는 원판의 눈동자가 커지며 드물게 동요하는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흑…주.”

원판의 입에서 다시 흑주의 이름이 흘러나왔고,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도 분명 ‘자신도 모르게’ 인 것 같았다.

“마스터?”

원판은 란이 당황하여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 듯 그대로 방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원판과 흑주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는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저 녀석이 설마 이렇게까지… 음…………? 왜…………?

지체없이 이어지던 원판의 행동은 정작 흑주가 있는 옆방의 문 앞에서 멈추고 있었다. 원판은 이미 손을 내밀어 문고리를 잡고 있었지만 어쩐지 곧 바로 문을 열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래 전에 자신의 잘못으로 헤어져야 했던 연인의 방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내를 보는 듯한 그런 분위기………? 누가? 쟤가? 원판이? 천 하의 비화곡주 진하운이?

나도 그랬지만 란이 더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원판은 얼마간을 계속 주저하고 있더니… 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 어느 사이 평소의 시니컬한 표정이 돌아온… 아니,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인 듯…………? 아, 저 녀석 얼굴을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마, 마스터.”

란이 다시 겨우 입을 열었지만, 원판은 그대로 말없이 문 앞을 떠나 나와 반대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차 멀어지는 원판의 씁쓸한 뒷모습과 란이 다소 허둥거리는 걸음으로 그 뒤를 쫓아가는 광경을 보며 나도 잠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 녀석 원판은 흑주가 자신의 수족이며 그림자였던 1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한마디의 따뜻한 말은 고사하고 ‘시선조차 제대로 준 적이 없었다’ 는… 그런 놈인데 오늘 어째서 저런 모습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사실은 굉장히 아끼고 사랑했다거나, 그런 상황은 어찌 보면 흔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나로서는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그야 원판이니까…………! 저 녀석이 동생 하연이 외의 누군가에게 진심이 되는 건・・・ 어쩐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할까….? 끄으음. 모르겠 다, 모르겠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옆방의 문고리를 잡았고, 별 생각 없이(?) 열었다.

화장대 거울 앞에서 흑주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던 대교가 먼저 반갑게 웃어 주었고, 대교에게 얌전히 머리를 맡기고 앉아 있다가 날 돌아보는 흑주 에게서도 일견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흑주, 너. 조금 전… 방문 앞에 누가 왔었는지 봤니?”

흑주는 예의 신비로운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 알겠어?”

으음. 주저 없이 고개를 젓는군. 원판 녀석이 들어오지 못한 건 어쩌면…………

“…슬픈, 남자.”

“뭐?”

“슬퍼. 외로워. 울고, 싶어 해.”

흑주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아주 조금은 녀석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판이 흑주와의 재회를 포기하고(?) 어딘가로 가버렸을 때, 나는 녀석이 아예 호텔을 떠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 녀석 답다고 해야 할까…………? 아까의 답지 않은 모습은 내가 잘못 본 거다 싶을 만큼 완전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공식적인 일을 진행해 버리는군.

나는 호텔 객실에서 원판과 캔들 리, 천우신 측의 만남과 협상을 잠시 참관하다가 도중에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에레보스와 KKK단의 움직임이 더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캔들 리 주변은 어떻습니까?”

내가 묻자 사영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뭐, 아직 별일은 없네. 어제의 저격 사건 이후로는 특별히 수상한 기운이 감지되지 않고 있어.”

“다행이네요. 음. 어쨌든, 수고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사실 앞으로는 더 위험한 놈들이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곧 캔들 리의 강력한 경호원도 돌아 올 테니 그때까지는 좀 부탁합니다.”

“뭐, 너무 신경 쓰지 말게. 나야 심심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 다만………….”

응? 이 양반, 왜 멀찍이 떨어져 서 있는 은사마군을 힐끔거리기 시작하는 거지?

“저 친구를 좀 어떻게 해야겠어. 처음엔 장난삼아 곁에 두려고 했던 건데, 아무래도 그리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던 것 같아.”

으흑! 설마 이 어르신네가 진짜 이렇게 나올 줄은!

“장인어른! 제발 연세를 좀 생각하세요. 대교 또래의 아가씨를 상대로 이 무슨………….”

응……? 어째 바로 칼이 안 날아오네……………?

나는 뭐라고 하면서도 잔뜩 긴장하여 사영의 다짜고짜 칼질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정작 사영은 피식거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방향이 틀렸어. 자네가 우리 대교만을 바라보는 건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명색이 조직의 수장이니, 수하들의 심리 역시 잘 살펴야 하네.” 에…………? 이건 또 웬 역 설교…?

“장인어른이 은사마군을 찝적거리는 게 아니라고요?”

“…표현이 상당히 거슬리네만, 이번만은 참아주지. 여하간 난 그저 가까이서 구경을 좀 하고 싶었을 뿐이야. 저 보기 드물게 잘 단련된 살수 아가씨 가 넋을 잃고 누군가를 바라보는 모습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으, 은사마군이 대체 누굴 그렇게……….”

나는 다소 황망해 하면서도 새삼 은사마군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지금 평소처럼 경호 포지션에 잘 자리 잡고 있으면서 사방 경계에 철저한 모습일 뿐, 별다른 기색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영에게 들은 말 때문인지, 어째 은근히 적이 아닌 다른 존재를 탐색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으음. 이거 내 가 혹시 사영, 이 양반에게 낚인 거 아냐? ・・・ 어? 어라랏?

때마침 어떤 모종의 인물이 호텔 복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은사마군의 안색이 사악- 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감정을 조절하는데 익숙한 살수답게 표정을 관리하는 것 같았지만 문제의 인물이 점차 자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정말이지 맥 없이 무너져 버리고 있었다.

맙소사, 아예 정신줄 놓은 듯… 눈을 떼지도 못하고 있네. 은사마군의 저런 모습은 생각도 못해봤는데…………

은사마군의 무지하게 노골적인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그녀의 앞을 스쳐 지나버린 문제의 인물은 곧 내 앞까지 왔다. 나는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녀 석을 맞았지만 녀석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와 사영을 번갈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와, 왔냐, 흑주.”

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지…………? 은사마군이 설마 그 뭐시냐, 금단의 거시기한 취향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 아, 아니 잠깐! 전에 은사마군은 분명 천음마군(天飮魔君)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럼 은사마군은 수륙양용…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건 그게, 그러니까……………

“흐음.”

내가 공연히 버걱대고 있으니까 사영이 먼저 나선다.

“자네가 캔들 리의… 음. 그건 아직 비밀이라고 했지? 하여간 반갑네.”

나이 차이는 물론이고 같은 계통의 까마득히 대 선배이기도 한 사영이 먼저 인사를 건넸음에도 흑주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을 뿐 대꾸도 없었다. 결 국 사영은 피식 웃으며 날 돌아보았다.

“이 친구, 외모는 전혀 다른데도 왠지 우리 소령이와 비슷한 느낌이 오는 걸?”

으음. 과연 사영. 단번에 흑주가 쓴 ‘무표정 킬러’ 가면 너머의 본질을 감 잡아버리는군.

“아, 예 뭐… 성장 환경상의 문제 때문이기는 해도… 대충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죠.”

“훗. 유준 자네,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군 그래.”

“예?”

“아닐세. 그보다 캔들 리 앞에서 실수할 우려가 있으니, 이 친구를 부르는 암호명부터 정해야 할 것 같아.”

아, 그렇구나. 하여간 무지 꼼꼼한 양반이라니까?

“어. 그냥 알기 쉽게, ‘오드… 어떨까요?”

오드 아이(Odd Eye)라고 다 부르면 혹시라도 캔들 리에게 의심받을 수가 있으니까………….

“뭐. 나쁘지 않은 것 같군.”

“흑주. 넌 어떠냐?”

흑주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곧바로 돌아서서 가버리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함께 캔들 리를 경호할 사람 (사영)을 보러 온 것 뿐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도중에 다시 은사마군과 가까워지자 문득 발길을 멈춘다.

은사마군. 저 아가씨, 진짜 왜 저래……………? 만화적인 표현으로… 눈동자가 하트 모양으로 바뀌고 머리에선 수증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 는… 그런 비주얼이 떠오를 정도로 정신 을 못 차리고 있잖아…………?

그런 은사마군을 흑주는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알아? 흑주?”

“아, 아닙, 아닙니다.”

흑주는 은사마군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이번엔 반대편으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관심을 거두더니 다시 가던 걸음을 계속 하기 시작했다. 무심 한 흑주가 곧 모습을 감춰버렸음에도 은사마군은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아가씨, 대체 흑주를 언제 봤다고 저렇게… 어, 가만……? 아아~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야 은사마군의 본명 또한 ‘흑주’라는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리고 은사마군이 처음 그 사실을 밝힌 후에 이어서 했던 말도 떠올랐다. …저도 압니다. 제 이름이 전설의 ‘귀거평(歸居平) 결전’ 때 천주를 도와 비화곡에 대항했던 위대한 여살수… 천인군도(賤人群島)의 도주와 같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 사부가 그분을 닮으라고 같은 이름을………….

그래. 분명 그랬었어. 이런, 이런 은사마군의 저 과도한 감정표현의 원인은 그런 것・・・이었나……?

“은사마군!”

내가 다가가며 부르자 은사마군은 흠칫 놀라며 날 돌아보았다.

“예… 옛! 천주!”

“…어때, 천인군도 출신으로서, 위대한 전설의 선조를 직접 만나본 기분은?”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진정된 얼굴로 행복하게 지어 보이는 미소가 먼저 은사마군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제가 늘 상상해왔던 그대로입니다. 죽음보다 아름다운 어둠의 꽃…………! 천인군도 살수들의 여신…..”

확실히 과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해도, 여하튼 커밍아웃(?)을 한 거시기 부류의 표정은 절대 아닌 것 같지…………? 하아아아~ 천만다 행(?)일세.

“…어둠의 여제(女帝)………….”

“은사마군. 진정해.”

“예?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저기, 근데 말야. 현재의 흑주는 은사마군의 동생뻘이거든?”

“아…………! 그건………….”

“공연히 흑주 햇갈리게 하지 말고, 그냥 지금의 흑주로 편하게 대해줘.”

“예, 천주. 앞으로 흑주님을 대할 때…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쉽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후후~

흑주 녀석. 생각보다 인기 좋네 그려.

얼마 후.

은사마군과 흑주의 스캔들(?)은 터지기 직전에 다행히 오해로 판명되었기에, 나는 다시 안심하고 내 방으로 돌아와 본래의 일에 머리를 굴리고 있 었다.

원판과 캔들 리 측의 만남은 화기애애하게 잘 끝났고… 이제 늦어도 내일새벽까지는 뱀파이어 버전(?) 에스도 복귀할 테고. 아무래도 에스와 흑 주는 자신들이 캔들 리 경호를 전담하겠다고 나서겠지……………?

그럼 그쪽 지원 중인 사영과 은사마군을 복귀시켜서 KKK단 놈들 토벌에 합류시킬 수 있는 건데… 쯧. 그런데 KKK단, 그 짜증나는 놈들의 가장 큰 문제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란 말야…………?

테네시는 캔들 리와의 개인적 원한으로 움직였기에 비교적 쉽게 포착할 수 있었던 거지만, 다른 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제 만났던 CIA요원도 말이 KKK단 전문이지, 거의 형식적인 선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았고, 우리 측의 엄청난 정보망에도 아직 주목 할만한 거물은 걸려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작KKK단의 핵심 멤버들은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고 보통의 선량한 백인인 척을 하고 있다는데. 아직도 백인사회에는 어설픈 인종차별주의자들이 꽤 많아서 진짜 위험한 놈들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라니… 흐으으음~ 그 놈들을 어떻게 색출해 낼 묘안이 없으…려 나?

ᅳ주인님. 옆방의 코드명 캔들 리가 곧 귀가할 예정입니다.

흐음. 원판이 ‘조건 없는 협조’ 를 약속해 주고 간 다음에도 천우신과 뭔가 계속 상의를 하고 있는 것 같더니, 이제야 퇴근(?) 하실 모양이군. 에스 도 어차피 캔들 리 집으로 올 테니까 역시 지금 따라가야겠……………

-주인님!

음?

-캔들 리의 예상 귀가 루트 중 한 지점에서 수상한 현상이 탐지되었습니다.

쳇. 정말이지 단 하루도 쉬게 해주지를 않는구만. 연이어 사고가 터질수록 더 언론의 주목을 받을 거라는 걸 모를 놈들이 아닐 텐데, 그래도 계속 들이 댄다는 건・・・ 어, 가만?

“몽몽. 너 지금 수상한… ‘현상’이라고 했냐?”

-그렇습니다, 주인님. 패티의 위성 2호로 광범위의 이상 생명체 출현이 확인되었으나, 그 과정이 불분명하여 ‘현상’ 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뭐시여?”

마치 아무것도 없던 허공이 열리고 거기서 무언가가 튀어나온 듯한 현상이란 얘기?

애꿎은 몽몽에게 더 따질 것도 없이, 내 머리 속에는 아까 란에게 들었던 놈의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헬 게이트(Hell Gate)…………!

나와 대교는 결국 오늘 캔들 리의 저택에 초대받으려던(?)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일단. 경호대상은 예정대로 출발하고, 경호도 같은 팀이 계속 맡는 걸로 하지. 자룡대주가 어사조 A, B조를 지휘해서 서포트해주면 나와 대교 가………….”

바쁘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어쩐지 뒤통수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경호대상인 캔들 리가 굳이 내 방으로 찾아와서 지켜보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질문 없으면 이대로 진행한다. 실시!”

“복명!”

ᅳ자룡대주를 비롯한 수하들

“그러지.”

-사영

[응.]

– 흑주(캔들 리를 피해 침대 밑에 숨어 있음).

각자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캔들 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평소처럼 귀가하시면 됩니다. 뭐, 약간의 말썽이 있을 수도 있기는 합니다만 우리가 알아서..”

음? 저 양반, 왜 저렇게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거지?

“내가 바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이고 세상이거늘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소.”

“홋.”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지만, 결코 비웃음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저 나이에도 ‘상식적인 세상’을 꿈꾸는 그것도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뭐, 지금 세상이 좀 거시기한 건 사실이지만, KKK단처럼 심하게 미친놈들이 설마 그렇게 많겠습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좀 나아지겠죠.”

사실 그냥 하는 말이고, 현실은 KKK단 따위보다 더 확실하게 위험한 놈들이 무지하게 많다.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는 어린 왕자, 아니 어른 왕자 캔들 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쩌면 아직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할지라도 결국에는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날, 나의 동생 신이 불행한 과 거를 딛고 밝은 미래를 걷기 시작했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해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잠시 후.

나는 차를 몰고 능력 불명의 위험한 적과 싸우러 출진 하면서도 공연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캔들 리가 꿈꾸는 머나먼 나라가 계속 생각났기 때 문이었다.

“대교. 아무래도 난 내 친구의 안목을 너무 얕봤었나봐.”

옆자리의 대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지 곱게 웃고 있었다.

“천우신, 그 친구가 이번에 선택한 천재는… 정말 장난이 아닌 것 같아.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해가며 이루는 상식적인 세상이라고.. .? 이런 젠장! 적당히 돕다가 발을 빼기가 어려워졌잖아. 이거!”

한탄(?)하는 내 옆으로 흑주가 다가왔다. 녀석은 오토바이를 차에 바짝 붙여 오면서 전음을 보내왔다.

「왜, 욕해. 흑주, 아빠.」

“하하~ 욕하는 게 아니라 칭찬이야, 칭찬! 니 아빤 평범한 척하면서 엄청난 스케일의 일을 벌이기 시작한 음흉꾸러기란 말씀!”

「또, 욕해? 나빠.」

“하핫!” ᅳ주인님.

아, 이런, 이런・・・ 벌써 도착한 것 같군.

몽몽이 경고했던 위험지역에 접어들었기에 나는 차를 길가로 세우고 대교와 함께 내렸다. 흑주 역시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앞서 가던 캔들 리의 차 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정글도를 꺼내 들며 대교와 흑주에게 말했다.

“자아ᅳ 우리의 음흉한 어른 왕자님을 방해하겠다는 방자한 무리들을 처단하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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