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4부 – 9화 : 특별한 어둠, 에레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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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서생 4부 – 9화 : 특별한 어둠, 에레보스


9 특별한 어둠, 에레보스

난 대교와 함께 집으로 향하며 자룡대주를 호출했다.

“자룡대주. 우리 가족들 호위 더 보강해. 현재의 병력 수는 유지하면서도… 가능한가?”

“예. 가능합니다, 천주. 그 동안 보다 많은 인재들의 선별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좋아. 곧 이번 적으로 유력한 자들은 검은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의 암살단 에레보스! 곧 놈들에 대한 데이터를 보내 줄게. 대비 부탁해.” “복명!”

“그럼・・・ 아차차, 실수! 아! 이건 자룡대주한테 한 말이 아냐!”

나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는 걸 대교에게 알리며 함께 신형을 멈춰야 했다. 우리가 착지한 곳은 낯선 건물 위의 옥상이었다.

“라프! 그 녀석을 까먹고 놓고 왔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한강 쪽을 돌아보았지만, 대교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내 등 뒤를 가리켰다.

“어? 이 녀석이 언제 여기 붙었지?”

우리 생각만 하다가 불시에 경공을 발동했었는데도 라프 녀석은 어느 틈에 내 등 뒤의 칼집에 매달려 따라왔었던 것이다. 난 메롱하듯이 살짝 혀 를 빼물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라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 이거, 이거…………..”

내가 등에 매달린 녀석을 전혀 몰랐을 정도로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공공보법의 스피드에도 떨어졌기는커녕 눈곱만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잡아서 들어보니 이젠 무게가 느껴진다……………?

「마력봉인 후 특별한 징후는 보이지 않았으나,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세계정화재단의 봉인은 마력의 외부 방출을 억제 혹은 위장.. 즉, 감추어 주 는 것일 뿐 마력자체의 봉인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렇다면 이 녀석이 맘만 먹으면 마력으로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건가? 게다가·

“가능성이 높다? 그럼 낮은 가능성은?”

「코드명 라프의 마력이 봉인 도구의 봉인력을 능가할 가능성 입니다.」

천하의 몽몽 선생이 하루 정도의 시간이나 붙어 있던 녀석에게 일어나는 현상을 딱 규정하지 못하여 가능성 퍼센트 수치도 내놓지 못한다 이거지?

“역시 아직은 너도 그… 마력이라던가 하는 소위 ‘비공인 에너지’ 측정에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주인님. 최대한 빠른 시간에 해당 비공인 체계에 대한 분석 시스템의 완성도를 90%이상 높이겠습니다.」

“음. 서두른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좀 수고해줘. 요 녀석 라프도 금동이처럼 우리 가족이나 대교 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혹시라도 이 녀석의 마력이 돌발사태를 일으키면 곤란하지.”

「그렇습니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제 분석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 조직 세계정화재단에 정식 의뢰하여 보다 적절한 봉인 도구를 갖출 것을 권고합니다.」

“훗! 됐다. 네가 계속 체크해 줘.”

우리 몽몽이 처음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언급했는데, 그걸 무시할 수는 없지. 암.

난 라프의 뒷덜미(?)를 잡아 내 어깨에 올려 앉혔다. 금동이가 주로 오른쪽을 선호하는 편이니 이 녀석은 왼쪽으로 했다. 그리고는 다시 출발!

집에 도착한 나는 당연히 어머니께 먼저 귀가 신고를 한 다음, 3층으로 올라갔다.

“야! 원판! 자냐?”

음… 분명히 불이 켜져 있는데 안 나오네?

“몽몽.”

「…현재 실내에서 코드명 란, 해당 여성이 의복을 착용 중입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나는 가운만을 걸친. 살짝 달아오른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의 란으로부터 원한에(?) 불타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원판 녀석은 이 형님이 납시었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에서 팔로 머리를 받힌 자세로 누워 있을 뿐이었다. 언제인가처럼 헐벗은(?) 몸에 이불로 하체 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몰골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걸 뭐라 하긴 어려웠고 오히려 ……….

“험. 큼. 음… 거, 공사가 다망했던 모양인데… 다소 미안하군.”

쳇. 요즘엔 주인집이 세입자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라니까?

“다소뿐인가요?”

“크홈. 인마, 너도 그렇지, 방 꼴이 이게 뭐냐? 이게 원룸이야, 호텔이야?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방을 싹 갈아엎어도 되는 거야? 너, 네 가 아무리 부자라도 너무 눈에 뜨이는 행동은 자제하라고 했잖아.”

어째 내가 세입자에게 생트집을 잡는 못된 주인집 아들이 되는 기분이………… 이미.

“여긴 실내. 이 안의 일은 사생활입니다만?”

“그야 뭐.. 음. 하지만!”

난 본래는 없었던 한 쪽 벽의 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주인집 허락도 없이 벽을 뚫어 옆방하고 연결해 버리기까지 하고 말야. 이거 이래도 되는 겨?”

“얘야 네가 지내기 편하도록 뭐든 하거라’는 말을 어떤 분이 했을까요?”

제기, 역시 어머니의 빽을 업고 있으니 내가 너무 불리해.

“쳇. 알긋다. 뭐, 어차피 이런 얘기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응? 저 녀석, 왜 갑자기 살짝 쪼개고 그래?

“유준 형님. 당신은 아직도 너무 순진해.”

“뭐?”

“이미 천하제일 미녀를 차지했으며, 마음만 먹으면 천하의 그 어떤 여자라도 품에 넣을 수 있을 마군황께서, 더구나 그 나이에… 다른 남녀의 잠자 리를 방해한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 순진함……!”

말하면서 점점 더 심하게 쪼갠다.

“난 그런 당신이 너무나………….”

“야, 야!”

나는 놈이 뭔 말을 할지 살짝 무서워져서(?) 반사적으로 막았다.

“됐고! 이제 뭐 하나 묻자.”

“…그러시죠.”

“지난번에 물어 보려다가 깜박했었는데 말야. 너… 뭔가 신무기랄지, 새로운 장비를 가지고 있는 거지?”

학교에서 라프를 만나게 되었던 날 밤. 원판은 현관의 유리 문 뒤의 어둠 속에 서 있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출몰(?)을 눈치챈 건 금동이와 나의 (혹은 대교도) 감작이었고, 몽몽으로부터의 경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과연, 그냥 지나친 게 아니었군. 신형 ‘대(對) 몽몽 스텔스 장비를.”

몽몽을 대상으로 한 신형 스텔스 장비… …? 몽몽의 스캔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스캔이 아예 되지 않도록 하는 그딴 게 나온 건가?

“본래 오래 전부터 연구되고 있었던 물건이지만・・・ 당신이 과거로부터 돌아와 프리메이슨과 싸움을 시작한 이후, 몽몽의 기능을 실제로 접하면서 연구도 급속히 진전되었지.”

으음. 그 동안의 전쟁을 통해 동동도 상당히 진화했는데… 프리메이슨의 기술진 역시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라 이거군.

“계속 깨닫지 못했으면 조금 실망할 뻔했는데….”

“됐고, 인마. 그딴 게 나와서 지급 받았으면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너 우리 편 맞아?”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도 당연히 유준 형님의 편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프리메이슨의 모든 상황을 일일이 알려줘서는 ‘이중 첩자’의 역할을 오래 할 수가 없겠지요.”

“그 ‘일일이’에 기준이 뭐야? 네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게 뭔 데?”

“일단은, 이렇게 이미 알고 있을 때 확인해 주는 정도?”

“엠병. 꽤나 큰 도움을 주시는구먼.”

말은 그래도 솔직히 도움이 되긴 되는 건데…

“그 신형 장비는 그럼 지금………….”

“저것이 최종 베타판.”

원판이 턱짓하는 방향을 돌아보니 란이 자신의 가운을 살짝 들춰 보인다.

역시나 엄청 매끄러운 피부에 군살 하나 없는 복부와 섹시한 배꼽・・・ 같은 건! 안보여! 안 보인다! 안 보이는거다 진유준!

“몽몽.”

「해당 여성이 조금 전 허리에 착용하여 작동을 시작했을 때부터 해당 여성의 신체 정보. 기본적인 물리적 공간 침범, 호흡, 맥박, 체온 등의 모든

정보가 차단되었습니다. 차단 형태가 흡수, 굴절이므로 저에게 있어서는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저 구형 삐삐 비슷한 크기와 디자인의 장비가 천하의 몽몽 선생을 약올릴(?)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니……

「…지속적으로 다양한 스캔 방식을 테스트 중이나 단시간의 시스템 해체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라프의 경우도 있고, 오늘은 몽몽 굴육의 날인가?

“란이 본사에 ‘테스트 결과, 완벽 작동’ 이라는 메시지를 보냈으니, 곧 정품이 양산화 되겠지요. 아, 12인의 사도 직속의 에레보스, 그 친구들에게는 우선 지급 되었겠군.

“…장난해?”

“이중첩자 역할은 섬세하고 미묘하여 적절한 조율이 나름 힘들지요. 이해해 주시기를.”

과연 이 원판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역시나 짜증나는 놈이다.

내가 원판의 방을 나온 것은 그노무 스텔스 장비인지 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후에도 10여 분 정도가 더 지난 후였다. 아무리 짜증스러워도 더 캐물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에- 역시 쩐다 쩔어.」

“… 너 지금 뭐랬냐, 요몽.”

「무지무지하게, 엄청난… 뭐 대충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거예요. 우히~? 오랜만에 봤는데 역시 원판 씨의 라인은… 하악하악이네요.」

‘하악하악’도 첨 듣는 표현이지만, 왠지 뭔 뜻인지 알 것 같다.

「뜻하지 않게 대박 은꼴사를 본 기분………..! 물론 또 이상한 자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니까 흠좀무!」

「은꼴사 야한 사진. 흠좀무흠… 사실이라면 좀 무섭군요.」

이젠 몽몽이 해석 화면을 띄워줘야 할 정도라니……

「하지만, 아무리 내공을 잃은 주인님이라도 웬만한 ‘듣보잡’에게 당하실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대교님이 계시니 적들이야말로 ‘안습’이 지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안습안구에 습기, 즉 눈물이 나는 상황을 의미.」

이거 아무래도 안되겠군.

“몽…….”

우우웅~ 철컥!

어? 아직 몽몽을 채 부르지도 않았는데 요동에게 뭔가 족쇄 같은 것이 채워지네? 게다가 두 팔까지 함께 묶이는 완전 포박형태!

「와앗- 이게 뭐야! 몽몽 오빠 왜 그래에~!」

「부적절한 언어사용 과다, 그 원인을 일부 유해 사이트 수시 접속으로 판단, 자아형성 및 인격 미숙 단계의 인공지능으로서 부적합 데이터 유입 혐의로 요몽을 체포, 일정기간 구금하겠습니다.

‘구금할까요?’ 라고 묻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니가 한다고? 허어~ 몽몽 녀석, 오늘 굴욕의 연속으로 은근히 스팀 받았나보다.

「히잉~ 억울해요! 주인님도 말 줄이고 만들고, 막 그러시면서!」

“야 인마. 난 그걸 그냥 니들이나 주변사람들한테만 쓰는 거잖아. 사방팔방 유행시켜서 한글을 오염시키지는 않는다구.”

「그, 그런 거라면, 인터넷의 한글 오염에 어쩌면 주인님도 책임이 아얏! 몽몽 오빠아~!」

요몽은 뭔가 고발(?)이라도 하려는 듯했던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몽몽에게 꿀밤을 맞아가며 질질 끌려가 버렸다.

나한테도 뭔가 책임이 있다고……..? 저 녀석 설마, 내가 즐겨 쓰는 표현들을 인터넷에서 퍼트리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설사 그랬다고 해도… 내가 쓰는 말들은 주로 옛날부터 있던 고전 명작이나… 하여간 ‘일상적 표현’에 가까운 말들이 대부분이니까. 음, 그래. 난 무죄야, 암!

요몽 첫 구금 후, 난 내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유준 오라버니…………?

조심스런 대교의 전음이었다. 대교는 애초 작은형 방이었으나 전에 하은이가 잠시 썼던 방에서 지내고 있다.

“음. 아직 안 잤니?”

ᅳ예. 크라우드 씨와의 대화에선 성과가 있으셨나요?

하여간 대교 얜… 맘만 먹으면 이 집안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듣을 수 있을 텐데도 호기심을 꾹 참고 이렇게 예의를 지키는 거 보면, 참.

“그게, 역시 프리메이슨에서는 몽몽의 스캔을 완전히 회피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나 봐.

-아… 몽몽이 조금 의기소침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역시 세심한 대교.

“의기소침은 잘 모르겠는데… 좀 열 받기는 한 거 같아. 그리고… 에레보스라는 놈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원판 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 라면 그놈들은…..”

지금까지도 모자라서 또 새로운 패턴의 적이 등장했다는 말에 대교는 무슨 생각을 할까…………?

-…ESP?

“그래 ESP. 엑스트라 센쇼리 퍼셉션(Extra Sensory Perception)………! 음, 발음은 용서해라.”

ᅳ…주가혜였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감각적 지각능력……! 신통력(神通力) 같은 거로군요.

음? 듣고 보니…….

“그래. 뭐… 일단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것 같네. 어쨌든 그런 능력을 가진 자들을 에스퍼 (ESPER)라고 하는데, 자세한 사항은 몽몽에게 보내라고 할 게. 그리고… 검은 예수회라는 자들의 움직임도 좀 문제야. 그 광신도들은 프리메이슨과 별개로 활동하기 때문에 원판도 잘 모른다.”

-아무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 …그래야겠지.”

‘에레보스 같은 경우는 나도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놈들이라 더 느낌이 좋지 않다’ 라는 말은 생략했다.

“뭐, 어찌 되겠지.”

ᅳ후후.

“잘자, 대교. 굳 나잇~!”

-부디 밤새 평안하시길…………

적들의 기습이 우려되기 시작한 상황임에도, 나는 대교의 인사대로 매우 평안한 마음으로 깊은 숙면을 취하고 눈을 뜰 수 있었다.

으으음… 쩝! 맛있는 냄새가 난다. 어머니 특유의 찌개 냄새에 뭔가 다른 향이 섞인 것도 같으니… 부엌의 지배자 어머니께서 대교를 딱가리에서 조수 정도로 승격시키기 시작한 건지도……………

먹거리만큼은 예민한지라, 그렇게 나름 분석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몽몽. 좋은 아침. …근데 요몽은?”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요몽의 구금일자 및 징계 수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주인님의 판단과 명령이 우선시 될 것 입니다. 하지만 전 가 급적 긴 기간, 또한 저에게 모든 과정을 일임해 주실 것을 권고. 아니, 부탁드립니다.」

이거, 이거… 몽몽이 아주 날 잡았구나.

“그려. 전부 너한테 맡길게 살살해.”

나는 결국 그렇게만 당부하고 방을 나섰다. 아직은… 지난 십 여 일 동안처럼 평화로운 아침일 뿐이었다.

음음. 과연 어머니와 대교의 합작품…………! 최고의 맛이다. 후룩-.쩝, 쩌.. 음? 윽! 비, 빌어먹을! 이거 뭐야?

갑작스런 두통? 아니, 통증이라기보다는 왠지 멍해지는 느낌…? 마치, 마치 뭔가가 머리 속에 비집고 들어오려는 듯한…

「주인님! 텔레파시(Telepathy) 계열의 에너지, 사념과(思念波) 입니다!」

제, 젠장! 벌써 온 거냐?

“왜? 국물이 좀 짜니?”

별 생각 없이 물어보시는 어머니께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뇨. 그냥 너무 맛있어서요.”

“사내자식이 호들갑은!”

아버지께 야단까지 맞게 되었을 때, 대교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길가 쪽의 창문으로 달려갔다.

이 사념파인지 뭔지는 나에게만 오는 거 같은 에이 씨파! 썅!

나는 내 머리 속을 더듬고 있는 것 같은 뭔가에 한 가지 생각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밥 먹을 때 건드리면 죽어!

나의 이런 간단명료하고 비장한 의식이 전달된 걸까…………?

현기증처럼 불쾌한 느낌이 거짓말처럼 사라져갔다.

대교는 아직도 심상치 않은 기색으로 창가에 서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얘. 대교야-! 밥 먹다 말고 뭐하니?”

어머니께서 의아한 음성으로 부르시자 대교는 천천히 창으로부터 물러나 이쪽으로 돌아섰다. 분명 장난이 아니었을 표정을 말끔히 지운 대교는 잔 잔한 미소와 함께 식탁으로 돌아왔다.

-누군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어요. 괜찮으세요?

자리에 앉으며 전하는 대교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으으음~ 신형 스텔스 장비 때문에 몽몽은 그렇다 쳐도, 대교의 이목까지 피할 수 있을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신체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건 74……?

아니면 아예 원거리에서 날린 사념파? 혹은 텔레파시와 순간이동의 복합능력자………? 제기,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밥 먹는데 짜증나게스리…..

결국 약간 입맛이 떨어져버린 내 옆으로 대교가 앉았다.

“식사하시는데 죄송해요, 아버님, 어머님.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 저 소리 말이니?”

달-고 맛있는! 규ᅳ울 왔어요! 한- 상자에 오천원! 한- 상자에! 단돈 오천원! 달고 맛있는! 규ᅳ울 왔어요!

때마침 ・・・ 이라기보다, 본래 이 시간쯤에 자주 들리는 과일 파는 트럭에서 틀어 놓은 스피커 소리다.

“귤? 너 귤 먹고 싶니? 신 거?”

“예? 아, 예.”

무심결에 나온 대교의 대답을 들은 어머니가 천천히 내게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의혹의 눈빛 어택을 가해오기 시작했고, 그건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다.

오늘은 근래 들어 잔고장(아버지 표현)이 많아지신 아버지가 또 병원에 가시는 날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두 분을 모시고 갈 수가 없었다. 소미령 이들은 한국에 처음 온 거나 마찬가지인 소교와 함께 서울 관광을 나갔고, 원판 놈은 컨디션이 안 좋다고 아침 먹으러 오지도 않았었다. 가게를 볼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이다.

-불안해요. 적이 이미 나타난 것 같은데, 아무리 잠시라도 당신 곁을 떠나야 하다니……………

“어머니가 널 데려가고 싶어하시니 어쩌겠어. 암튼 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 아무리 상태가 별로라도 누구에게든 쉽게 당할 거 같아?”

큰 소리는 치지만, 솔직히 몽몽을 포함한 나의 수하들과 지 맘대로 보디가드 조담놈을 믿고 있다.

“야.”

대교가 현관으로 나가자마자 일부로 거실에서 딴청을 피우고 계셨던 아버지가 재빨리 내 팔을 잡는다. 아버지는 식탁의 쟁반 위에 쌓여 있는 귤껍 질을(아버지가 손수 나가 사오시고 대교가 엄청 많이 해치워 버렸음.) 새삼 힐끔 한번 보신 다음 말을 이었다.

“유준아, 너. 전에 말은 그랬어도 역시 대교랑……”

“아버지! 전 억울해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2세의 영혼까지 확정된 상황이지만, 그 육체를 만드는 작업은(?) 아직 시도조차 못해 본 우리다.

“그러지 말고, 남자끼리니까 솔직하게 얘기해라.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냐.”

“아버지! 저 정말, 정말 억울해요. 뭐라도 해보고 이런 의심을 받으면 몰라도………….”

“못난 놈.”

으흑~!

자식의 가슴에 대못을 꽝꽝 박고 나서야 아버지는 집을 나서셨고, 나는 언능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은 채 벽 잡고 울어야 (?) 했다.

쳇! 아침부터 웬놈이 사념파 같은 거나 날리고 지랄이더니…….

나는 공연히 속으로 툴툴대며 카운터에 앉았다. 간만에 가게를 보려니까 꽤 낯선 느낌이었지만, 항상 오전의 이맘때는 손님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났다.

대교는 진짜 순수하게 그냥 귤을 좋아하는 것뿐인데 다들 그렇게 이상한 방향의 의심을 하시고 말야. 에효. 진짜 그냥 확 저 질러 버릴까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밤중에 몰래 대교의 방에 침투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다가… 쿡, 웃고 말았다.

나란 놈도 참…………! 상당한 강적으로 추정되는 놈들이 등장했는데도 이렇게 헤벨레~ 방심상태라니… 이러다가 갑자기 적이 등장해서 기습이라도 해오면 x되는 수가 있는데 말야. 물론 나름대로 이런저런 대비를 해놨다고는 하지만………………

“나빠요!”

응? 이게 뭔 소리?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어린 아이’의 목소리에 놀라서 순간 적으로 들려온 방향을 가늠하지도 못했다.

“정말 나쁜 아저씨네요.”

어랏? 카운터 바로 앞?

나는 의자세서 일어나 상체를 조금 기울이고서야 카운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꼬마 하나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대교 자매들이 어렸을 때 딱 이렇지 않았을까 싶게 작고 사랑스런 여자아이였다. 목과 팔다리의 소매마다 풍성하고 흰털이 달린 코트를 입고 있어 서 더 인형처럼 보였다.

“꼬마야. 나 아저씨 아니거든? 오빠야, 오빠.”

반사적으로 이런 전형적 대사를 하다니…………! 으음, 근데 앤 왜 이렇게 날 노려보고 있는 거야?

“어디 유치원 다니는… 아니, 그보다 뭐 사러 왔니? 혼자 온 거야?”

“흥! 아까는 잘도 필드를 쳐서 내 사념파를 막더니, 방심해서 열어 놓은 생각은⋯ 순 저~질!”

응? 이・・・ 꼬마인형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주인님!」

우웃!

몽몽의 경고 직후, 아침식사 시간에 날 덮쳐왔었던 그 기분 나쁜 사념파가 다시 엄습했다.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난 눈앞의 이 작은 꼬마 여자아이가 원판이 말한 ‘아주 특별한 어둠, 에레보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비, 빌어, 먹, 을!

상대가 어린아이였기에 적개심이나 투지, 다른 어떤 것도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난 그만큼 힘들게 간신히 버티기에 급급해야 했다.

물리적인 어떤 타격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이 엄청난 압박은 이 미칠 듯한 중압감과 허탈………? 제기! 그냥 기운이 밑도 끝도 없이 빠져나가는 것 같잖아…………! 뭐냐, 이 열 받는 공격은!

나는 어느 사이 내가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더 추욱 늘어져 버린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 꼬마가… 진짜!”

으극! 끄흑!

나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힘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몸처럼 완전히 나의 지배권을 떠나버렸던 것 같은 내 몸의 신경이며 근육들이 하나 둘 나의 호출에 응하기 시작했다.

조금. 조금만더… 더……………!

“으익! 끄으으으으!”

기어이 괴이한 소리를 입 밖으로 내며, 나는 뒤로 늘어졌던 고개를 들었다. 이미 거의 다 재 호출된 육체 또한 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 다.

“와아~ 대단해! 저질 아저씨지만 정신력은 정말 끝내 주네요? 나의 ‘탈진(脫盡)’에 걸리면… 웬만한 생체강화전사들까지도 숨쉬는 것조차 힘들어 서 죽어 버리는데.”

난 나의 육체에 내릴 추가 명령을 결정했다.

저 깜찍하다 못해 끔찍한 꼬마 녀석을 혼내 줄 것!

“어? 뭐 하는… 꺄아아~.”

꼬마녀석이 제법 소녀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을 잡고 거꾸로 들어올려 한쪽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 맴매를 시작했다.

“꺄앗! 아얏! 앗! 앗! 꺅! 아약!”

다채로운 소리 끝에 아약은 또 첨 들어보는… 암튼!

“너 이 녀석! 쬐끄만 게 그런 위험한 짓을 하다니! 또 그럴래? 엉?”

“익! 당장 내려줘욧! 숙녀에게 무슨 짓이야! 이 야만인! 변태!”

“아직 정신 덜 차렸군!”

다시 몇 대의 맴매가 더 추가되자, 갑자기 녀석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얼굴 쪽이 내 등 뒤로 돌려진 상태라 얼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흑흑대며 흐느끼는 기색? 흐응- 요녀석 봐라?

나는 맴매를 멈추기는 했지만, 녀석을 내려 놓지는 않고 그대로 휘릭 돌려 두 손으로 잡았다.

내게 들린 채 정면으로 마주보게 된 녀석은.. 진짜 울고 있었다.

어랏? 내가 이 녀석을 너무… 지나치게 사악한 꼬마로 봤나?

난 언젠가 우리 진씨 가문의 어린 조카들 중 한 녀석의 ‘서럽게 우는 척’에 속았던 경험 때문에 이 초특급 암살단 요원씩이나 되는 꼬마 녀석도 같 은 술수를 쓰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건지, 녀석은 귀여운 얼굴을 있는대로 구기고 닭 응가 같은 눈물을 뚝뚝, 아니 주룩 주룩 흘리고 있었다.

“그・・・ 그러게 인마.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이 오빠… 아니 아찌가 놀랐잖아.”

으음. 난 역시 애들에 너무 약해. 그리고 이제 오빠는 포기하자.

“우이씨ᅳ 닥터 제이조차 날 때리지 않았는데! 이 저질 아저씨가 날 때렸어!”

그래도 앞에 저질이 붙는 건 좀………….

“야, 야! 내가 아까 그런 생각한 건… 어. 그게, 원래 우린 결혼할 사이고.. 그게 뭐냐면,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되는………….”

에구구ᅳ 내가 왜 이런 꼬맹이한테 낯간지러운 변명씩이나 하고 있는 거지?

“저질 아저씨! 이거 놔!”

윽! 이 멍청한 진유준아! 아무리 어린 꼬마라고 해도 그렇지! 좀 전에 당해 놓고 또 방심을 하다니……

조금 전처럼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어이없이 한 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에 들려 있던 꼬마도 당연히 땅에 내려졌고, 녀석 은 비로소 눈물을 멈추고 입가에 살며시 귀여운 미소까지 짓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 요상한 능력자 꼬마를 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꼬마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몇 번 몸을 빼려 애를 쓰 다가 결국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히이잉~! 이 사람 뭐야! 벌써 내 탈진에 익숙해져 버린 거야? 아앙~ 나빠! 이런 게 어딨어!”

확실히 빠르게 적응을 해버린 건지 처음만큼 힘겹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현재의 상황⋯ 한 쪽 무릎을 꿇고 두 팔을 앞으로 내밀어 울고 있는 꼬 마만을 간신히 잡고 있는 이 자세를 바꿀 수 있는 힘까지 낼 수는 없었다.

으으ᅳ 누가 보면 여러 가지 오해를 할 법도 한………….

“하하핫~!”

윽! 낯선 웃음소리! 손님? 아니 아닌 것 같다.

“아, 자니?”

꼬마가 반색을 하는 순간, 녀석의 탈진인지 뭔지도 사라져 버렸다. 슬쩍 손을 놓아주고 일어서자 꼬마는 후다닥- 자니라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 이는 갈색 머리 백인에게 달려가버렸다.

자니라는 놈은 가게 입구에서 한 발짝 정도만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게 초롱아. 넌 ‘통역’으로 온 건데 왜 겁도 없이 나서고 그래? 저런 거물을 없애는 건 이자니님의 일이라구.”

영어…………? 그런데 저 꼬마 이름은 초롱이? 한국 아이였나? 으음.. 그나저나, 어쩐지 저 녀석에게서도 ‘특별한 어둠’이라는 별칭과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이 느껴지는군. 그래도 꼬마 초롱이 이상의 특수 능력이 있을 테니 방심은 더 이상… 어? 가만……? 이 열기는?

「주인님! 주의하십시오! 지금 저 남자로부터 굉장한 열량의 에너지가 방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그거 알아? 이 몸이 맘먹고 힘을 내면 이런 작은 건물 뿐 아니라, 동네 전체를 태워 버릴 수 있다는 거.”

문득. 언젠가 몽몽에게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 현재 주인님과 제가 있는 시간대로 추정되는 서기에 해당 단체의 고위 능력자 한 명이 발화능력 (發火能力)으로 자신의 반경 1KM 정도의 지 역을 불태워버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때 몽몽이 말한 ‘해당 단체’는 세계정화재단이었다. 그런데 에레보스에도 그런 녀석이 있었다는 건가? 제기…………! 정말 그 정도라면 자칫 우리 동 네와 사람들까지 위험해지는데……………

“어? 자니가 언제 그렇게 능력이 강해졌어?”

에?

자니라는 놈이 발산하는 열기가 어쩐지 주춤하는 것 같았다. 무심결에 동료 자니의 공갈을 밝혀버린 꼬마 초롱이는 나와 자니의 시선을 동시에 받 고서야 아차 하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지 입을 가린다.

“음. 초롱이는 아직 내 모든 힘을 본적이 없지. 그래서………….”

“됐거든? 니네 정말 12인의 사도 직속의 암살단 맞냐?”

내가 통명스럽게 묻자 자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 했다.

“물론이지. 초롱이는 아직 견습생 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엄연히 정예 멤버야.”

…이런 놈이 다시 열기를 내기 시작하네. 우리 동네 전체는 뻥이라도 분명 이 가게를 포함한 우리 집 정도는 우습게 태워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데… 어쩐다?

“잠깐!”

조담놈이었다. 놈이 자니와 반대편의 통로, 집과 가게를 연결하는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까부터 거기 있었던 놈이 왜 이제야 나오는 거냐?”

“흐흐흐ᅳ 오리지널, 네가 저런 꼬맹이를 상대로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구경 좀 하고 있었지.”

쯧. 어제의 몽몽에 이어 오늘은 나의 굴욕인가?

“그런데… 명색이 암살자인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요란하게 나오다니. 언제부터 엘리트 에레보스의 단원들이 이렇게 철이 없어 졌지?”

자니에게 말을 하는 동안 분위기가 일변한 조담놈은 조금의 주저 없이 자니라는 발화능력자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그 ‘크레이지 파이어 (Crazy fire. 미친 불꽃?)’ 자니인가?”

그렇게 묻는 조담놈의 머리카락과 가짜 수염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가, 곧 멈추어진다. 조담놈이 호신강 기(護身强氣)를 운용하여 자니의 열기를 막기 시작한 것이다.

“아하- 당신은 저 진유준이란 남자의 대용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아직은 13호다.”

“후후 좋아, 13호. 그거 알아? 배신자인 당신의 처분도 우리 에레보스에게 맡겨졌다는 사실을 말야.”

“계집애처럼 지껄이지만 말고 따라 나와.”

조담놈은 먼저 가게문을 나섰고, 자니도 피식 가볍게 한 번 웃으며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우리 가게를 나가 어딘가로 향하는 조담놈과 자니, 또 그들의 뒤를 따르는 초롱이를 보며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젠장. 그래도 자니란 놈이 서 있던 부근은 이미 조금씩 녹거나 그을려 있네.

“은사마군!”

조담놈이 나왔던 통로 옆의 음료수 박스 더미 뒤에서 은사마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하지만 가게 좀 봐줘.”

나는 조담놈이 사라진 쪽으로 걸으며 몽몽을 호출했다.

“몽몽. 확보되었다던 위성은?”

「현재 패티가 직접 제어하여 이 지역 전체를 체크 중입니다. 그러나 아직 다른 적, 검은 예수회나 에레보스의 일원으로 의심되는 인물들은 탐지되 지 않고 있습니다.」

“조담놈은?”

「코드명 자니, 초롱을 이끌어 주인님 댁으로부터 약 1km 거리의 가칭, XX고등학교 예정지의 체육관으로 이동 중입니다.」

아무리 지난달에야 완공되어 아직 학생을 받지도 않은 곳이라고 해도, 자룡대주가 아니었다면 체육관을 통째로 빌려 싸움장소를 확보해 놓을 수는 없었겠지. 조담놈 그 녀석. 은근히 자룡대주에게 자주 의지한단 말야?

물론 미리 자룡대주와 모든 어사조, 보천구롱대에게 조담놈과의 긴밀한 협조를 명령해 놓았던 건 나였다. 오늘처럼 대교가 제외될 경우, 현재 내가 가진 최강의 전력은 조담놈이기 때문이다.

「주인님. 곧 전투가 개시될 것 같습니다.」

나는 서둘러 체육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안쪽으로부터 폭사되기 시작한 엄청난 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망설여야 했 다.

“이런, 아깐 무시했더니만… ‘초롱이는 아직 내 모든 힘을 본 적이 없지.’ 라는 말이 사실이었던 거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꼬마 초롱이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날 올려다보는 초롱이가 살며시 미소 짓는 모습이 왠지 불길했 다.

“그뿐 아니에요. 아무래도 저질 아저씨는 우리 에레보스를 너무 얕보고 있는 거 같아요.”

“뭐?”

「주인님!」

몽몽의 경고 직후, 머리 위쪽에서 뭔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체육관 지붕 위에 두 개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태양을 등지고 서 있 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중세의 수도승처럼 머리에 뒤집어쓰는 모자까지 포함된 망토 같은 걸 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봐라? 바로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뜬금없이 나타나?

기척을 완전히 숨길 수 있는 초고수들이거나, 아니면………

“공간의 마녀 ‘산드라’ 언니. 공간의 지배자 ‘시그마’오빠예요.”

둘 다 공간 전문? 텔레포테이션(Teleportation. 공간이동, 순간이동)인가 하는 능력자들이란 얘긴가? 그래서 위성의 감시와 내 감각에도 걸리지 않 고 여기까지 단숨에 나타날 수 있었다는 어, 그런데 또 뭐냐, 이 이상한 기분은? 어?

나는 말 그대로 어- 하는 사이에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돌아보아도 그저 막연하고 허무한 공간만이 보일 뿐이었다. 이 어이없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나와 꼬마 초롱이, 그리고 문 안쪽에서 점점 더 격렬한 불꽃이 일렁이는 체육관뿐이었다.

“여기, 이 공간・・・ 저질 아저씨에게 보이는 공간만 본래의 공간으로부터 차단된 거예요. 이제 여긴 에레보스의 넘버 투, 시그마 오빠의 ‘영역’이 되 었어요.”

공간차단…..? 영역? 이거 참. 돌아가시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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