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147화
147화. 전면전(全面戰) (5)
치이이익!
일직선으로 열린 길.
눈이 증발해 버린 자리가 붉게 달아올랐다.
Lv7에 도달한 ‘데이라이트’는 발동 시간이 극도로 단축되었기에, 미하엘은 두 개의 스킬을 정통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해치웠……나가 아니라, 맞다. 복사 조건은 다 채웠지.”
진혁이 짧게 혀를 찼다.
하도 플래그를 외쳐 댔더니 그만 입에 습관이 붙어 버렸다.
이래서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후욱!
수증기 사이로 검은 손톱이 튀어나왔다.
“죽여 버리겠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미하엘이었다.
살짝 그을리기는 했지만, 멀쩡한 모습이다.
이건 뭐, 무적 스킬을 탑재해 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걸 맞고도 멀쩡하냐.
허나, 저 무지막지한 방어력에 감탄하고 있을 새는 없다.
지금 이 와중에도 손톱이 머리를 통째로 뜯어내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Lv10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콰콰콰쾅!
진혁의 앞에 나타난 얼음벽이 손톱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얼음벽은 순식간에 박살나 버렸다.
또 다른 얼음벽들이 연이어 나타났으나, 발을 묶어 두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다.
얼음 덩어리들이 유리처럼 무너져 내렸다.
“이깟 걸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미하엘이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더욱 빠르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화르륵!
파츠츠…….
진혁의 어깨 너머로 5개의 불덩이와 12개의 얼음 화살이 나타났다.
아직까지 정수의 효력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수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해도 크게 부담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미하엘의 몸에 부딪친 불덩이와 얼음들은 놈에게 타격 자체를 입히지 못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게 아니라 계란프라이를 만들어 바위에 바르는 수준이다.
“……젠장. 괴물이냐.”
공격력만 센 줄 알았더니, 마법 저항력은 더더욱 터무니없다.
10층의 바위 거인과 달리 이 녀석에겐 ‘별의 가호’를 통한 기습도 통하지 않을 터.
진혁은 어금니에 마력을 주입했다.
장궁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적색마탄’이 연사로 뿜어졌다.
퍼퍽!
퍼퍼퍼퍽!
붉은 섬광이 또 다시 미하엘의 몸을 두드렸다.
[마력이 0.6…….]
[정기가 0.5…….]
[마력이…….]
[정기…….]
‘이걸로는 녀석에게 치명타를 줄 순 없어.’
그건 누구보다도 진혁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영혼 흡혈’의 효과로 인해 마력과 정기를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지만, 이래서야 천년이 걸려도 녀석의 마력을 바닥 낼 순 없을 거다.
때문에 연사를 하는 와중에도 조금씩 송곳니가 있는 곳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중이었다.
이제 한 걸음.
앞으로 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송곳니가 있는 곳까지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진혁이 시위를 가볍게 꼬았다.
마력으로 이어진 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했다.
회전력을 최대한 가미한 공격.
조금 전 엘리스가 보여 줬던 꼬챙이를 응용한 것이다.
부우우웅!
시위를 떠난 적색 마탄이 바닥에 닿을 듯 낮게 날아갔다.
그리고 미하엘의 다리에 닿을 찰나.
갑자기 마탄이 급격히 방향을 꺾었다.
기형적이라 해도 좋을 각도였기에, 미하엘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콰아아앙!
“큭!”
미하엘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철벽같던 녀석의 피부에 한 줄기 핏방울이 흘러 내렸다.
지금이다……!
진혁이 단숨에 몸을 날려 송곳니를 움켜잡았다.
“감히, 내 얼굴에 상처를 입히다니.”
“살짝 까진 것 가지고 오버하지 말고. 그것보다 대체 뭘 먹으면 너처럼 단단해지냐? 오우거 밀크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고. 드래곤한테 우유 동냥이라도 해야 되나?”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저런 내구도를 가질 수 있다면, 간만에 드래곤 레어에 다시 한번 가 볼 만하다.
그래. 그 정도 리스크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
막말로.
‘천유성 검을 맨몸으로 받으면서 낮잠을 잘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진지하다 못해 로봇 같은 검성의 얼굴이 썩어 가는 걸 상상하니 벌써부터 묘한 쾌감이 일어났다.
물론, 그 외에도 상대방의 속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이 다양하게 떠올랐고.
진혁이 허공을 향해 연신 히죽이자, 미하엘의 눈에 짙은 살기가 맺혔다.
“……네놈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것이냐?”
“응?”
“누가 봐도 이 싸움의 승부는 정해져 있다. 나는 단 한 번의 공격만 성공시키면 되고. 너는 단 한 번의 실수도 범해선 안 되지.”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네. 그래서?”
“그러면…… 빌어먹을 긴장이라는 걸 좀 하란 말이다! 제발!”
콰아아앙!
미하엘의 손에서 순간, 거대한 흑염이 솟구쳤다.
[Lv?? ‘지옥겁화(地獄劫火)’가 발현됩니다!]
드래곤이 사용하는 ‘헬 파이어’와 동급의 스킬이 튀어 나왔다.
미하엘이 에이션트급 드래곤은 아니었기에 위력은 떨어질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레벨도 안 되는 플레이어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스치기라도 하면 뼈조차 남기지 못할 게 틀림없다.
쿠쿠쿠쿠쿠쿠!
흑염이 점점 더 덩치를 불려갔다.
이제는 거의 직경이 2m에 이를 정도다.
“이걸 맞고도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미하엘의 팔 근육이 기형적으로 팽창했다.
그리고 그 팽창이 한계점에 이른 순간.
콰콰콰콰콰콰!
마침내 미하엘이 보유한 최고의 스킬이 시전되었다.
‘예상대로 도발을 하니 바로 걸려드네.’
하여간 함정으로 끌어들이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상황’을 연출하기까지 이제 조금만 더 끌어들이면 된다.
진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겠군.’
저 스킬은 그저 던지는 것이 아닌,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종류였으니까.
대상에 적중하기 전까진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면…….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두 번째 성유물을 꺼냈다.
회색 신전에서 사무라이 길드로부터 얻은 방어구.
‘페르세우스의 방패’다.
우우우웅!
진혁이 방패에 마력을 집중하자, 방패에서 형언할 수 없는 빛이 일렁였다.
[성유물 ‘페르세우스의 방패’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이 300%만큼 상승합니다!]
[특수 능력 ‘아테네의 가호’가 발동됩니다!]
[아테네의 가호]
내용: 1회에 한정하여 대상의 공격력을 50%만큼 감소시킬 수 있으며, 방패를 소유하고 있는 자의 신성계열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100만큼 상승시킵니다.
흑염의 최강의 창이라면, 아테네의 가호가 발동된 성유물은 최강의 방패인 셈.
진혁이 원형 방패로 전신을 완전히 감쌌다.
콰아아아앙!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이 전해진 건 바로 그때였다.
진혁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기에 정신을 잃을 뻔했으나, 어떻게든 의식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Lv5 ‘진태청화랑심법(眞太淸花郞心法)’이 마력의 흐름을 돕습니다.]
[Lv4 ‘정신방벽’이 대상의 통증을 완화시킵니다.]
[고유 능력 ‘별의 가호’가 플레이어의 몸을 수호합니다.]
지금껏 모아 뒀던 고유 능력과 스킬들이 모조리 발동되었다.
형형색색의 빛이 중첩되었다.
‘거의 다 왔어…….’
진혁이 지옥불 속에서 두 눈을 번뜩였다.
처음 느꼈을 땐 전신에 있는 신경이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던 열기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위력이 약해진 건진 모르겠다.
다만, 이제 곧 있으면 상대의 시간이 끝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흑염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매캐한 연기가 사라지자, 그 뒤에서 크게 당황하는 미하엘의 얼굴이 보였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층에 서식하는 대형 종들도 견디지 못 하는 걸 어떻게 인간 따위가 견뎌냈단 말이냐!”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스킬이 통하지 않았다.
방심을 한 것도 아니고.
마력을 아낀 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공격.
그런데, 그것으로도 저 가증스러운 인간을 죽이는 데 실패한 것이다.
***
“이렇……게나 강했다고?”
모든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엘리스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인간이, 가주의 친위대와의 싸움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으니까.
진혁과는 계속해서 함께해 온 엘리스였으나, 진혁의 실력이 이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까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단 하나.
‘여태껏 본 실력을 발휘한 적이 없던 거였나.’
그렇게 가정해야지만 앞뒤가 맞았다.
층계를 오르며……. 수많은 네임드 몬스터들과 대형 길드의 랭커들 그리고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해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한 적이 없다. 그게 진실이었다.
바로 그때.
미하엘의 손에서 불길하기 짝이 없는 흑염이 타올랐다.
엘리스 역시 알고 있는 종류다.
‘지옥겁화’.
혈족들 사이에서도 가장 강력한 화염계열 능력 중 하나라고 손꼽히는 스킬 아닌가.
저건 막을 수도.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다.
“위험……해.”
경고해야 한다.
도망가야 한다고.
아니면, 차라리 대신 저 화염을 대신 맞아 주기라도 해야 한다.
엘리스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마력이 소진된 육신으로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데.
흑염이 진혁의 몸을 집어삼킨 순간.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우우우웅!
눈부신 광휘와 함께 진혁이 흑염을 상대로 방어기제를 발동하기 시작했다.
믿기 힘들었지만, 사실이다.
미하엘이 전력을 다한 공격을, 진혁이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빠르게 고동치는 심장 소리.
기대감과 흥분으로 인해 엘리스의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플레이어라 명명된. 어찌 보면 미물에 불과한 나약한 생명체가.
탑의 법칙과 규율을 넘어.
먹이사슬의 정점을 탐하는 일이.
그리고 흑염이 잦아든 바로 그때가 찾아오자.
“지금이야!”
엘리스가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
“이번엔 내 차례다.”
방패를 집어던진 진혁이 빙계열의 마력을 긁어모았다.
방금 공격으로 인해 데미지를 크게 있었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서로 간에 남아 있는 마력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조건이 둘 다 열악하다면…….
마지막에 웃는 건 언제나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자가 될 것이리라.
[빙하조형(氷河造形) ‘하늘의 검’이 발동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얼음 줄기와.
[빙하조형(氷河造形) ‘땅의 검’이 발동합니다!]
땅에서 솟구치는 얼음 줄기가 하나로 맞닿았다.
파츠츠츠츠!
“크아아악!”
얼음 기둥에 갇힌 미하엘이 비명을 질렀다.
뭐랄까.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게 이런 걸까 싶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그리 오랫동안 미하엘을 가둬 둘 순 없다.
기껏해야 몇십 초.
그 이후엔 이 괴물이 또 다시 날뛰기 시작할 거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50 대 50짜리 승부가 아닌, 완벽한 승리를 위해선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저벅.
진혁이 얼음기둥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공격을 한다면, 그 즉시 서로의 목숨을 노릴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너무도 무방비한 모습.
그렇기에, 미하엘은 이 기회를 덥석 물 수밖에 없었다.
“멍청하긴! 스스로 사지로 걸어 들어오다니!”
삽시간에 녹아내린 얼음과 함께.
미하엘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감히 내 사정거리까지 다가온 게 오늘 네놈이 죽는 이유다!”
미하엘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