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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295화


295화. 잃어버린 언어 (1)

이름을 말해선 안 되는 자의 아내.

검은 풍요의 여신.

광기를 낳은 검은 염소.

수많은 수식어구가 치장하는 건 크툴루 신화의 최강 신 중 하나.

‘슈브 니구라스’다.

“…….”

수많은 이빨이 달린 가지가 탑의 너머로 향했다.

억겁의 넘는 세월.

그녀는 탑의 50층을 부유하며, 각 층계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왔다.

수많은 세력들이 탑을 올랐고. 멸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수백, 수천 명의 강자들과 그걸 넘어선 절대자들.

그리고 ‘왕관’을 소유한 자들까지.

모두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따분했다.

부족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가볍게 탑 아래로 내려가 뼛속까지 찌들어 있는 무료함을 달랠 생각이었다.

그렇다. 다시 말하면 이건 유흥이다.

초월적인 존재가 아래에 있는 미물들을 짓밟아 버리는.

그런데.

“…….”

게이트의 부분 해방 직후 보낸 사념체들이 하나둘 그 신호가 끊겼다.

설마, 검은 염소를 대적할 만한 자가 아래에 있을 줄이야.

그것도 탑 밖에 있는 놈들 중에 그러한 실력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케테르 드 카스바야.”

언어가 아닌 언어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크윽…… 그, 그게…….”

옆에 있던 하스팅이 고통에 찬 얼굴을 한 채 머리를 조아렸다.

약간의 불편함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세계가 뒤틀리려 하고 있다.

“둠! 아르바야 크 키마샤.”

“강……진혁. 마, 맞습니다. 그 녀석이…… 그 인간 놈이 위대하신 분의 계획을 방해하고 탑의 정상에 오르려고 하는 놈입니다.”

강진혁.

하스팅으로부터 이번 일을 벌인 배후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까드득!

까득!

이빨들이 벌어졌다 다물어지기를 반복하며 소름 돋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날 막겠다고?’

그건 참…….

재밌겠다.

너무나 오랜만에 흥미롭다라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조금 더 재미나게 놀아주지.

이번 일을 위해 뱀파이어 가문들과 천마신교의 좌호법 사마자에게도 선을 대어 두었다.

자신이 해방될 때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카이드로 페 메이바흐.”

“지, 지금 말입니까?”

“페이락 트 소드락투스.”

“예, 알……겠습니다. 모두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슈브 니구라스가 짧게 명령했다.

중층부의 전쟁을 시작하라고.

***

태양의 성역이 발동된 결계 안.

모래 속에 숨어서 도망치던 여왕은 지금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렇게나 깊숙이 숨어 있는데 대체 어떻게 내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는 거지?’

무려 10m 아래의 모래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는 중이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상대는 기가 막힐 정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퍼퍽!

모래에 바람구멍이 생겼다.

총격의 정교함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도망쳐야 한다.

더 멀리.

더 깊숙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상대의 발을 묶어 놔야 놈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Lv14 ‘빙하조형(氷河造形)’이 발동됩니다!]

쩌저적!

급속도의 얼어붙는 모래.

모래 속을 종횡무진 누비던 여왕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딱 걸렸어.”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여왕은 전투보다는 도주를 선택했다.

‘천라지망을 통해 위치를 파악하는 거야 일도 아니지.’

모래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진동으로 다음에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춰진다면, 빙하조형을 통해 움직임을 봉쇄시키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차갑게 얼어붙은 모래 속에선 제아무리 여왕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움직이진 못할 테니까.

[고유 능력 ‘군단의 핵’]

[입수 난이도: S]

[복사 조건: 군집체를 통솔하는 여왕은 언제나 수많은 아이들의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 여왕에게 ‘고독’을 안겨준 채 숨통을 끊을 수 있다면,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고유 능력과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군단의 핵’은 군집체 보스 몬스터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수 능력이다.

계약이 되어 있는 소환수들의 능력치를 10% 올려주는 건 물론, 평소 절반의 마력으로도 계약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사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후 언데드 제조는 물론 정령수나 기타 소환수들까지 부릴 걸 생각한다면, 마력 최적화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였다.

‘여기서도 얻는 게 많네.’

태양의 성역을 통해 사막을 재현하고 여왕을 도망치게 방치하며 점점 더 막다른 구석으로 몰리게 만든 것도.

모두 복사 조건을 통해 고유 능력을 획득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군.’

진혁이 남아 있는 마력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종막에 도달한 이상 더 이상 마력을 아낄 이유가 없다.

우우웅!

두 개의 총구에 각기 다른 빛이 맺혔다.

‘데이라이트’를 통해 강화된 탄환이 먼저 길을 열었다.

곧이어 ‘혈마기’로 강화된 탄환이 여왕의 등을 강타했다.

콰앙!

“크아아아!”

크리티컬이 터졌지만, 한 방에 죽지 않는다.

외피에 금이 갔을 뿐 사납게 반항하는 건 여전했다.

그래도 한 계층의 지배자라고 쉽게 당해 주지는 않는다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날뛰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고통만 길어질 뿐이지.

콰앙! 퍼퍼퍽! 콰아앙!

형형색색의 빛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크으……으으…….”

공격이 거세질수록, 비명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눈부신 섬광과 함께 다수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고유 능력 ‘군단의 핵’을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복사된 능력은 ‘세계의 기억’에 저장됩니다.]

[‘묵빛 칼날(노란색 등급 – 재료형)’을 얻으셨습니다!]

므르시엘리오를 잡고 오른 것까지 합치면 7레벨이 상승했다.

거기에 도검류 무기를 강화시켜 주는 데 사용되는 재료형 아이템까지 드랍됐다.

무려 노란색 등급 판정을 가지고 있는.

‘이건…… 완전히 대박인데?’

진혁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므르시엘리오를 잡고 보상이 시원치 않아서 솔직히 이번 계층에서 보상은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대신 여왕에게서 나올 수 있는 아이템 중 가장 좋은 게 떨어졌다.

외피에서 가장 날카롭고 단단한 부분.

그것도 무기화된 게 아니라 재료로서 다른 필요한 아이템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나왔다.

‘송곳니나 쌍룡검에 써도 좋고…… 야차한테서 얻은 태산검에 써도 쏠쏠하겠어.’

활용할 곳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좋아.

다음은…….

진혁이 이번엔 개인 상태창을 활성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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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진혁

성별: 남

나이: 28세

레벨: 115

힘 109 민첩 47 체력 57 마력 273 간극 100 행운 10 적응형 78 정기 78.25

보유한 스탯 포인트: 21

보유한 코인: 9,253,137

직업: 룬의 해석사

고유 능력: ‘융합(融合)’, ‘검의 무덤’, ‘별의 가호’, ‘아누비스의 심판’, ‘혈마기(血魔氣)’, ‘만다라(曼茶羅)’, ‘1초 무적’, ‘천독(千毒)’, ‘하얀 맹수’, ‘만상공유(萬祥共有)’, ‘태양의 성역’, ‘흑천마황공(黑天魔皇功)’, ‘트리플 매직’, ‘거신의 일격’, ‘화룡의 숨결’, ‘고속검(高速劍)’, ‘툼그레이브의 오른팔’, ‘버서커’, ‘바람의 영역’, ‘음영극살(陰影亟殺)’, ‘혈폭(血爆)’, ‘검은 눈물’, ‘툼그레이브의 다리’, ‘괴력난신(怪力亂神)’

스킬: 스킬의 양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결계: 배운 결계의 숫자가 너무 많아 ‘접어 두기’ 상태로 전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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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레벨이 115에 이르렀다.

상황이 급박하지만 않았어도 감회에 빠져 있을 텐데…….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혁이 이내 머리를 털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사치다.

‘군단의 핵을 얻었으니 마력 스탯은 잠시 보류해 둬도 되겠어.’

[민첩이 47 → 58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57 → 67로 상승합니다.]

민첩과 체력에 골고루 투자했다.

이제는 밸런스 역시 신경 써 줘야 했으니까.

바로 그때.

[’24시간 안에 16계층을 정복하라’ 시험에 통과하셨습니다!]

[상급 관리자 ‘벤디비아’로부터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갈망의 영혼석]

[고유 능력이나 스킬 혹은 그와 유사한 능력을 사용할 시. 그 대상의 잠재력을 뛰어넘는 효과를 발휘하게 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얻어야 할 마지막 카드인 ‘갈망의 영혼석’까지 확보했다.

‘자잘한 뒤처리야 타이탄 길드에게 맡겨두면 되겠지.’

여왕이 죽음으로서 나머지 벌레들이 통제에서 벗어날 테지만.

그 정도쯤이야 에이단이나 메이링 같은 랭커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S급 세 명이서 양산형 벌레들도 해결 못 하면 혀 깨물고 죽어야지.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진혁이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진조 중 하나인 아뮬람을 처리하고 얻은 보상을 꺼냈다.

액자 속에 있는 그림 ‘침묵이 스며든 곳’

12개의 검은색 기둥이 우뚝 서 있는 장소.

잃어버린 언어를 습득해…….

……고대의 결계를 재현한다.

이것이 슈브 니구라스로부터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경계를 허무는 거울’을 사용했습니다.]

우우우웅!

진혁의 눈앞에 초록색 게이트가 나타났다.

층계를 자유자재로 이동하게 만들어주는 문.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30층. 별자리 언덕으로 갈게.”

***

밤하늘에 박혀 있는 수많은 별들.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곳은 피비린내가 가득한 30층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장소였다.

유성우가 내린다.

그걸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시큰거렸다.

저벅.

진혁이 익숙한 길을 따라 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드넓은 초원 위로 우뚝 솟아 있는 12개의 검은 기둥.

과거에도 와 본 적 있는 장소였지만, 이곳이 잃어버린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곳인지는 몰랐었다.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가지고 있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아뮬람으로부터 얻은 그림 덕에 이 장소에 숨겨져 있는 진짜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진혁이 액자 속 그림을 꼼꼼히 훑었다.

분명, 그림 속 기둥에는 각각의 중앙에 서로 다른 형태의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둥에는 룬어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희미하게 그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상당 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이걸 복원하라는 의미였어.’

굉장히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기둥 자체에 새겨져 있는 룬어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12개의 룬어들을 모두 아우르는 연성식을 완성해야 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실수 따위를 해선 안 된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정교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손가락 끝에 맺힌 마력이 허공을 따라 움직였다.

하늘 위로 첫 번째 룬어와 함께 결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3성급 결계 ‘마력 동기화’를 발동합니다!]

[4성급 결계 ‘기억 복원’을 발동합니다!]

[6성급 결계 ‘소수 치환’을 발동합니다!]

파츠츳!

기둥의 표면을 따라 푸른색 룬어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결계를 통해 마력을 재배열하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이건 설마…….

“호오.”

진혁이 복잡한 의미가 담긴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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