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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337화


337화. 해방 (2)

서걱!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하이신스의 몸이 서서히 무너졌다.

“아…….”

고통은 없었다.

그런 걸 느낄 정도로 지금의 일격은 무디지 않았으니까.

쿠웅!

몸이 땅에 닿는 것으로 싸움이 끝을 고했다.

“…….”

엘리스가 무미건조한 눈으로 하이신스를 바라봤다.

이걸로 셋.

복수를 위한 세 번째 가주가 사라졌다.

그렇게 하이신스가 죽자, 전장에 또 다른 바람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토르의 주먹 한 번에 달려오던 마수 셋의 몸이 폭죽처럼 폭발했다.

“크아아아!”

“케에엑!”

일격.

무식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파괴력이다.

전신을 피로 흠뻑 뒤집어쓴 토르가 모처럼 흥분된다는 듯 관절을 꺾었다.

“마계 쪽 놈들이라 그런가 나쁘지 않군.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싸우면 싸울수록 지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몸이 풀린다는 듯, 더더욱 기세가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살벌함에…….

……두려움을 모르는 마수들마저 꼬리를 만 채 낑낑댔다.

“잔챙이들 죽이면서 그만 으스대고 빨리 끝내자. 저쪽은 벌써 끝났어.”

로키가 토르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흐음. 생각보다 빠르게 결판이 났군. 가주들 간에도 급이라는 게 있는 건가.”

“맞아. 강진혁을 회유할 수 있다면 저 진조도 함께 데리고 올 수 있을 테니. 완전히 남는 장사겠지.”

두 신격은 더더욱 진혁을 영입해야겠다고 확신했다.

이곳에 와서 마계와 뱀파이어들을 비롯한 거대 세력들과 척을 지게 됐지만, 그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진혁이 보여 주는 매력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스 놈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어.’

두 신격의 눈동자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

부우웅…….

……카카카카캉!

수많은 검격이 교차했다.

니체 아니, 헤시모디움이 미친 듯이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1분 1초가 지날 때마다 전세는 눈에 띄게 기울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애초에 동일한 조건 하에 싸우더라도 서열에서 밀리는 상황.

하물며, 인간의 몸을 빌린 반쪽짜리 현신으로는 아예 상대가 될 수조차 없었다.

“베리엘! 멍청한 놈이. 이깟 일에 영지까지 날려먹어? 분명, 후회할 거다!”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현신을 위해 마인들을 이용해 봉인을 풀 방법을 찾아왔었다.

때문에, 베리엘이 이렇게 막대한 희생을 치르는 것이. 헤시모디움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성을 팔아먹든 보물을 갖다 바치든 그건 내 마음이다. 정 억울하면 너도 가지고 있는 걸 다 태우든가.”

“크윽!”

헤시모디움이 어금니를 부러져라 깨물었다.

이대로 간다면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영혼이 스며든 상태였기 때문에, 육신이 붕괴된다면 제아무리 마왕이라 하더라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게 틀림없었다.

결국.

[헤시모디움이 ‘부분 현신’을 해제합니다!]

[마계의 권속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후퇴합니다!]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

헤시모디움과 그를 따라온 상위 귀족들이 마계로 사라졌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하는 놈이군.”

베리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고마워. 덕분에 일이 쉽게 잘 풀렸어.”

“됐고. 약속이나 지켜라 이번에는 정말로 출혈이 컸단 말이다.”

“뭐, 노력은 해볼게. 노력은 말이야.”

이제 남은 거라곤 헤시모디움이 떠난 곳에 덩그러니 버려진 니체 하나뿐이었다.

아직까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신으로 떠받들어 모시는 존재가 패배했으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바로 그때.

띠링!

[고유 능력 ‘니힐리즘’을 복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니힐리즘 – 초록색 등급]

입수 난이도: SS

내용: 시전자 주위에 있는 적의 고유 능력과 스킬을 봉인할 수 있습니다. 단, 니힐리즘을 사용하기 위해선 매우 높은 이해도와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되며, 다른 스킬과 중복해서 사용할 경우 신체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초록색 등급!

좋아.

진혁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것도 손에 넣었네.’

고유 능력과 스킬이 봉인된 상태에서 니체를 쓰러뜨렸고. 마왕이 스스로 자신의 사도를 버리게 만들었다.

2개의 조건을 달성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목표한 바는 달성한 셈이다.

‘니체처럼 자유롭게 스킬들과 연계해 사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어.’

과거에도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주력으로 삼진 않았다.

반대급부 역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급할 이유는 없다.

스킬이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숙달해 가면 됐으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냥개에게서 마지막 단물을 쥐어짜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혁이 니체 앞에 다가갔다.

“으으…….”

시선이 마주친 니체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더 이상 저항할 의지가 남아 있지 않았는지. 자신감 있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순순히 말해준다면 내가 목숨을 빼앗는 일은 없을 거야.”

“무,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이런 아직도 혀에 힘이 빳빳하게 들어가 있네. 먼저 그 말투부터 좀 고치자.”

“으아아아악!”

태초의 불꽃이 발현되자, 니체의 어깨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직까지 마인들의 수장이니 뭐니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야. 알지?”

“어, 어떤 게 궁금한지 마…… 말씀해주신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태도가 한결 고분고분해졌다.

이래야 대화가 편해지지.

“순혈의 왕관.”

진혁의 입에서 무거운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건…….”

“왜? 대답해 주기 싫어? 진작에 좀 말해주지 그랬어? 아직도 불마사지가 부족하다고.”

화르르륵!

더욱 거센 불꽃이 솟구쳤다.

“잠깐! 잠깐만! 대답해 드리기 싫은 게 아닙니다. 왕관을 찾는 법은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걸 입수하는 건 제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것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던 거였습니다.”

“입수야 내가 알아서 고민하면 되는 문제고. 알고 있는 거나 말해 봐.”

진혁이 재촉하자 니체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가주 중 하나인 엑센시온이 가지고 있는 문장. 그게 왕관을 찾기 위한 열쇠입니다.”

역시, 엑센시온이 실마리를 쥐고 있었던 건가…….

그러고 보니.

“놈은 어디 있길래 전투에 합류하지 않고 있는 거지?”

엑센시온이 보이질 않는다.

반전을 위한 꿍꿍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전투는 이미 끝났으니까.

“저, 저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능구렁이 같은 놈이 뭔가 눈치를 채버린 건가.

진혁이 쓰게 입맛을 다셨다.

모든 걸 완벽하게 풀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엘리스의 복수를 위한 가장 중요한 놈이 빠져나갔다.

그것도 순혈의 왕관에 대한 핵심 열쇠를 가진 채.

“알고 싶으신 걸 전부 아셨으면 저는…… 그럼 이만 가 봐도 되는 겁니까?”

“물론, 자유롭게 가도 돼. 적어도 나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다만.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하는 것까지 막겠다고 하진 않았다.

진혁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스윽.

멜레나와 트리스탄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긴 채찍과 날카로운 검이 각각 예기를 발했다.

“너, 너희들. 지금 뭐 하자는 짓이냐?”

“뒤처리는 항상 깔끔하게.”

“후환을 남기면 안 된다는 게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원칙이었죠.”

이대로 살려두었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마왕이랑 접점이 남아 있는 이상,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게 바로 이 남자였다.

“안 돼…… 안 돼…….”

니체가 손을 뻗었지만, 이미 두 사람은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푹!

촤촤촥!

검과 채찍이 동시에 움직이며, 마인 협회를 이끌었던 수장이 마침내 숨을 거뒀다.

이제 정말로 큰일들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바로 그때.

우두둑!

천지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게이트가 해방됩니다!]

[슈브 니구라스가 탑 밖에 현현합니다.]

모든 게 핏빛으로 물들었다.

***

태고의 존재.

그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는 시련의 탑 최강의 거주자들이다.

그리고 그 정상급 중 하나인 ‘슈브 니구라스’가 마침내 현현을 시작했다.

“키이이이…….”

욱씬! 욱씬 욱씬!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단순히 게이트가 개방되는 것만으로도 따가운 마력이 피부를 찔러댔으니까.

대체 얼마나 무식한 마력을 지닌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이건 좀 많이 위험하군.”

베리엘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아무리 마왕이라고 하더라도 50층의 존재들에게 만큼은 안 된다.

애초에 그들에게 패배해 탑의 아래층으로 밀려난 자들이 거주자의 정의였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던 것 아니었나? 협회에선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이곳을 공략하면 된다고 했는데…… 대체 어째서!”

천유성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엑센시온이 뭔가 수작을 부린 건가.

아니면 상급 관리자인 하스팅이?

그것도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개입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원인을 찾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대비가 아닌 대응의 영역.

지금부터라도 최선의 수를 생각해 내야만 한다.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지금쯤이면 유연화와 이태민에게 부탁했던 것들이 완성되었을 거다.

타이밍을 가다듬고 운만 따라준다면…… 아마도…….

젠장. 과연 가능할까?

아직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는데.

진혁이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강진혁.”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로키가 진혁을 불렀다.

“아. 그쪽한테도 여러 가지로 신세를 많이 졌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타이밍이 영 좋지가 않네.”

“그래. 서로의 전공을 치하하기엔 최악의 상황이지. 그래서 말인데…….”

로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이 세계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놈이 튀어나온 이상 가망은 없어.”

신격들도 어찌할 수 없는 재앙.

그런 절대적인 존재를 상대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재지변을 받아들이듯 그저 순응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우리와 함께 가자. 이곳이 아니더라도 탑 내부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줄 수 있어. 발할라와 우리 신화의 모든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해 줄 테니. 이곳은 이만 포기하도록 해.”

이건…… 일종의 배려다.

어차피 하나뿐인 선택지에서 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이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그래 어쩌면 그게 맞는 걸지도 모르지. 어차피 슈브 니구라스도 호기심만 풀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다.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고 인류를 지키겠다는 거창한 목적 때문은 아니다.

단지.

“겨우 이 정도의 난관을 무서워한다면, 앞으로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못 잘 것 같거든.”

“겨우라고? 상대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지금 넘어오는 놈은 말이야. 탑의…….”

“알고 있어.”

태고의 존재에 관해서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과 싸워 왔고.

패배했으며.

마침내 탑의 정상을 봤었다.

“아직 해볼 수 있는 건 있어. 확률은 희박하지만, 나라면…… 가능해.”

이미 모든 능력은 돌아왔다.

[‘세계의 기억’을 읽습니다.]

무수히 나타나는 책장 너머.

진혁이 마지막 싸움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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