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나 혼자 만렙 뉴비 509화


509화. 관리자들의 연회 (1)

쉽게 대답해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어쩌면 관짝송 역시 놈의 정체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태고의 존재보다 더 위에 있는, 모든 것이 베일에 감싸여 있는 존재가 ‘그 남자’였으니까.

“궁금한 건 알겠는데, 미안하지만 그것까지 말해줄 순 없어. 솔직히 말해 내부 사정까지 말해주는 게 더 재밌을 것 같긴 한데… 시스템의 금제가 걸려 있거든.”

관짝송이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수리부엉이 때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편린만이 전달될 뿐이었다.

“어차피 네가 싫어도 조만간 만나게 될 거야.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남아 있는 존재는 한 줌에 불과해질 테니까.”

“조금만 더 쓰지. 그래도 내기에서 이겼는데, 이 정도 정보면 너무 허무한데.”

“흐음. 그것도 그렇긴 하지. 그래도 명색이 내기에서 이겼는데, 조금 더 주도록 할까.”

턱을 쓰다듬던 관짝송이 재차 말을 이었다.

“릭 헤네시.”

“……!”

나온 정보는 단순한 이름 하나.

하지만,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녀석, 보기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야. 또 그만큼 조심해야 할 위험인물이기도 하고. 나도 놈의 속내를 잘 모르겠거든.”

“릭… 씨라….”

“흐음. 보기보다 별로 놀라진 않네?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

“언제나 필요할 때마다 찾아오는 타이밍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우연이라고 하기엔 확률이 너무 기가 막혔지.”

“큭큭. 그래그래. 우리 진혁이라면 그 정도는 돼 줘야지. 안심이야.”

관짝송이 더욱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정말 끝이다.

아, 그 전에….

진혁이 옆에서 읍읍거리고 있는 베네티를 바라봤다.

아직까지 관짝송의 빙계 마법에 당한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모양이다.

나름대로 얼음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마법 저항이 낮아서 그런지 쉽지 않아 보였다.

“저 녀석은 필요 없지?”

보아하니 아까부터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하던데.

그렇다면 이쪽에서 접수해도 문제될 건 없으리라.

“마음대로 해라. 원죄들 따위야 내 알 바 아니니까.”

관짝송이 완전히 남의 일이라는 듯 몸을 돌렸다.

“읍!… 으으읍!”

혼자 남은 베네티가 다급히 관짝송의 뒤를 따라 게이트로 들어가려 했다.

물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였지만.

“어딜 가려고.”

진혁이 베네티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살기.

대체 이 녀석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엘리스와 천유성 그리고 테레사까지.

평소에 착했던 애들이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몽환의 환상향이 해제된 지금이야 다들 제정신으로 돌아왔겠지만, 베네티를 돌려보냈다간 지금의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절대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살기를 느낀 베네티가 온 몸을 파르르 떨었다.

환술과 결계 분야에서 강점을 지녀서 그렇지. 개인 전투력만으로는 7개의 원죄 중에서 가장 약한 게 베네티였다.

밑 준비 없이는 감히 진혁과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할 터.

“자,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혁이 관절을 우두둑 꺾었다.

“읍… 으으읍….”

“뭐? 살려만 준다면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겠다고?”

“읍읍읍!”

베네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살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런 격렬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훌륭한 멤버가 될 수 있겠지.

“축하합니다. 이번 하반기 공채에 올 일곱 대죄의 두 번째 멤버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어떻게, 관심이 좀 있습니까?”

화르륵!

‘염혼의 낙인’이 발동되며 붉은 화염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제약이 걸려 있는 스킬에, 베네티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낙인이 찍히면 평생 노예가 된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이번엔 베네티가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읍읍!!!”

“아, 모처럼 주신 기회 최선을 다해서 하겠다고요?”

“읍읍?? 으으읍읍읍…!!!!”

“알겠습니다. 계약서부터 찍고 이야기하자고 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죠. 자세한 복리후생과 급여 등에 관해서는 한 10년 정도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입이 봉인되어 있는 이상 의사 표현이 확실하지 않은 의사 무능력자다.

하지만.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계약에 있어 계약의 합리성 따윈 중요하지 않다.

타의에 의한 강제든. 본인 스스로에 의한 자의든.

일단 도장을 찍는 순간 게임이 끝난다는 소리지.

“끄으으읍…!”

치이익!

살에 새겨진 낙인을 보며 진혁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태’에 이어 ‘질투’까지.

조만간 이 둘을 이용해 나머지 대죄들도 역으로 뒤통수를 치는 계획을 시행해봐야겠다.

바로 그때.

주루룩….

얼음이 녹으며 안에 갇혀 있던 안드리아가 나왔다.

“어…라?”

안드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시간이 멈춰져 있던 것만 같은 반응이다.

몇 시간이나 얼음 속에 갇혀 있었음에도 저리 멀쩡하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던 건가.’

진혁이 관짝송이 사라진 방향을 다시 바라봤다.

“진혁 님! 역시, 도와주러 오셨던 거네요! 저, 저는 믿고 있었어요!”

안드리아가 감격에 겨운 눈으로 진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게 당장이라도 대성통곡을 할 기세다.

“이 거점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니라, 당연히 소중한 동료가 위험에 처했는데 도와줘야지. 우리가 올 때까지 잘 버텨줘서 오히려 내가 고마워.”

“진혁… 님….”

안드리아가 할 말을 잃은 듯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헤헤. 그럼 보답으로 제가 근사하게 대접해 드릴게요. 정신없긴 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방이 몇 군데 남아 있거든요.”

관리자들과 만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시간 정도.

그 전까진 쌓인 피로를 충분히 풀 수 있으리라.

“알겠어. 피로 회복에 좋은 음식들로 준비해줘.”

“맡겨만 주세요!”

[안드리아가 보스 몬스터의 권한을 발동합니다!]

[‘피해망상 병동’에 조촐한 파티가 준비되었습니다.]

어쨌든 이걸로….

다사다난했던 일정들이 마무리되었다.

⁕ ⁕ ⁕

달콤했던 3시간이 지나고.

초대장을 받은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흐음. 이건 언제 입어도 어색하네. 난 조금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좋은데.”

“평소에 격식 따위는 차릴 일이 없으니 그런 거겠지. 방구석에서 게임만 하던 놈이었으니.”

“뭐, 인마?”

“발끈하지 마라. 더 찔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근사하게 턱시도를 빼 입은 진혁과 천유성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툴툴댔다.

“후후. 제 눈에는 두 분 다 잘 어울려 보여요.”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테레사가 다가왔다.

이번 연회를 꽤나 신경 쓰고 있는지, 예전에 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준 모습이었다.

“엣헴! 그런 의미에서 짐이 가장 빼어나 보이는구나. 뭐, 고귀한 밤의 귀족에게 드레스 코드 맞추는 것쯤이야…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엘리스가 당당하게 나섰다.

바닥을 끄는 긴 드레스와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레이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최대로 살려주는 화려한 보석들까지.

저 정도면 자신감이 넘칠 만하긴 하다.

바로 그때.

파츠츠츠!

모두의 앞에 녹색으로 만들어진 원이 나타났다.

[시련의 탑 – ‘무명(無名)의 방’이 개방됩니다.]

시련의 탑에 숨겨져 있는 히든 플레이스 중 하나.

이곳이 바로 이번 연회의 무대가 될 장소였다.

“가자.”

진혁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우우웅!

게이트를 넘어가자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고. 동시에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호오….”

“와아…!”

“이런 광경은… 처음이네요.”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돌들과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

7개의 달이 떠 있는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강진혁 플레이어님 그리고 나머지 분들도 모두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도록 하죠.”

입구에서 기다리던 릭 헤네시가 모두를 반겼다.

붉은 나비넥타이에 흑목으로 만든 지팡이.

릭도 이렇게 보니 꽤나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릭을 …주시하라고 했지.’

진혁은 조금 전 관짝송이 했던 말을 되새김질 했다.

분명, 그 남자의 힌트를 달라고 했을 때 관짝송은 릭 헤네시에 대해 언급했었다.

조심하라고.

믿지 말라고 하면서.

그리고 때마침 릭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참가자들은 많이 모였나요?”

진혁이 모른 척 물었다.

“흐음. 다양한 층계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아무래도 모처럼 만에 이 정도 인원이 모이다 보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겠죠. 아, 강진혁 플레이어님이 관심 가지실 만한 분이라면 올림포스와 천세 쪽에서 오신 랭커들이 있겠군요.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한 번쯤 만나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신격들이 주축이 된 올림포스.

인도의 거대신화인 천세.

두 세력의 랭커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흥미로웠다.

이제 곧 있으면 같은 층계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달달한 능력들도 많겠지. 이번엔 융합에 쓸 좋은 재료들도 좀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차선책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최선의 재료들로 가장 효율 좋은 능력들을 융합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러 상위 세력들이 결집하는 지금.

진혁의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뷔페가 차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저벅.

릭의 안내를 따라 더욱 안으로 들어가자 점점 더 화려한 건축물들이 보였다.

동시에 과거 시련의 탑에서 몇 번인가 만났던 인물들과도 마주치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석상들이 가득한 분수.

그곳에서 누군가 릭에게 아는 체를 했다.

“이거 오랜만이네. 그 유명한 중간관리자 릭 헤네시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가? 상단이니 뭐니 할 일이 많은 분 아니었어?”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손바닥을 들었다.

흰 천으로 만든 옷과 녹색 월계수가 잘 어울리는 미남자다.

굳이 ‘탐식의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올림포스의 후원을 받고 있는 랭커 중 하나라는 걸.

그리고 그 옆에는 남자를 데리고 온 듯한 관리자도 하나 있었다.

“히히. 아래층에서 좋은 말 하나 주웠다고 기고만장해서 그런 거겠죠. 능력이 뛰어난 건 알겠지만, 그래봤자 경험이 얼마 없는 인간. 헬리오스의 사도이신 가펠리우스 님과 비교하면 우스울 뿐입니다.”

키득키득.

솜뭉치 같이 생긴 관리자가 양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나비넥타이를 멘 토끼 주제에 입에는 우유 닦은 걸레라도 문 것 같았다.

“언제나 짓궂으시군요. 가펠리우스 님은. 그리고 고디락. 자네가 내가 데리고 오신 분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건 참기 힘드네.”

“그냥 농담을 했을 뿐인데 뭘 그런 거 가지고 과민반응인지 모르겠네요.”

“농담이 아니라 내 면을 깎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던가?”

“히히. 제가 뭐 하러 말이죠? 어차피 릭 씨는 사업이니 맛대가리 없는 커피니 하는 쓸데없는 곳에만 신경 쓰는 분이고 권력에는 관심조차 없을 텐데요? 아, 만약 관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능성 자체가 없을 테지만요.”

“그거야 두고 보면 알 테지.”

두 관리자 간에 신경전이 이어졌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더욱 실감이 난다.

상급 관리자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를.

게다가.

‘이건 대박인데….’

가펠리우스의 상태창을 확인한 진혁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랜덤 이미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