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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01화


801화. 고인물이 유사(流)를 이용하는 법 (2)

콰아앙!

콰득!

콰콰콰콰콰… 투콰아앙!

마력을 보충한 절대자의 전력.

진조 엘리스 폰 아타락시아가 보여주는 권능은 그야말로 자연재해였다.

“크아아!”

“키에에!”

“가, 강하다. 먹잇감이… 강해!”

유적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던 자신들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그저 배를 채우는 먹잇감에 지나지 않아야 정상일 진데.

그 당연한 상식이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박살나고 있었다.

진혁 역시 전투장면을 보며 다른 의미로 고심에 빠져 있었다.

‘으음. 앞으로 엘리스에게 좀 더 잘해줘야겠네.’

먹을 것도 좀 넉넉하게 챙겨주고. 가고 싶은 곳도 순순히 데려다 줘야겠다. 더불어 민트초코를 포함해 이색적인 음식을 먹이는 것도 좀 자제할 생각이다. 저 무시무시한 공격이 이쪽에게 향하는 걸 막으려면.

그나저나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이 정도로 격하게 날뛰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놈들이 아니다.

페로몬을 자욱하게 뿌려줬으니 반응이 올 수밖에 없을….

콰아앙!

먹이 저장고의 한쪽 벽이 사라졌다.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인 건가.

“……그냥 먹잇감이 아니었군.”

“그러게. 진조다. 그것도 굉장히 강한.”

떨어지는 파편 사이로 일반 꿀벌들보다 족히 5배는 더 거대한 놈들이 나타났다.

한 마리는 중장보병에 가까울 정도로 무거운 갑옷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대조적으로 얄쌍한 외형에 기다란 창을 쥐고 있었다.

흔하게 널려 있는 일반 전투병이나 급사들이 아닌….

‘장군급’에 해당하는 놈들이다.

‘질적으로 아예 레벨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치명적인 변수를 만들 수 있는 강자들이었으니까.

물론.

‘저 녀석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평생을 이 유적에 갇혀 살아온 갑옷 꿀벌들이었으나, 엘리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심상치 않은 마력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주춤거리며 경계한다.

“호오. 그래도 제법 보는 눈이 있는 벌레들이로구나. 그래서 덤비지 않을 생각이냐? 그렇다면 짐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느니라.”

따악. 

엘리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엄청난 수의 꼬챙이들이 아공간을 가르며 나타났다.

“온다.”

“상처없이 제압해야 해. 먹잇감이 상하는 걸 어머니가 제일 싫어하시니까.”

“쉽진 않겠군.”

두 마리의 장군 꿀벌들이 자세를 잡았다.

부우우웅!

고속으로 움직이는 날개를 따라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콰콰콰콰콰콰콰!

마력과 마력이 격돌했다.

꼬챙이들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꿰뚫었다.

두 마리의 장군 꿀벌들이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엘리스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20m. 10m. 5m.

유효타를 가할 수 있는 간격이다.

날이 있는 곳 대신, 손잡이 부분이 복부로 향했다.

최소한의 타격으로 제압하려는 생각이다.

피식.

진혁이 작게 웃음을 내뱉었다.

이거 아무래도….

‘너무 우습게 보는 모양이네.’

엘리스가 원거리형 딜러라고 단정짓고 빌드업을 하는 게 너무나 뻔히 보인다. 붙을 수만 있으면 거기서 게임이 끝날 거라고.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 거였나?

콰아아앙!

원형의 고리가 낙하한 건 바로 그때였다.

“……!?”

“크윽!”

엄청난 충격에 두 마리의 장군 꿀벌들이 그대로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역중력 혈계 마법.

단순히 찍어 누르는 게 아닌, 시간이 갈수록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욱 거세게 짓누르는 효과가 있었다.

우드득!

콰드득!

지면으로 파고든 갑옷에 작은 실금이 생겨났다.

“흥!”

엘리스가 코웃음을 쳤다.

오만하게 멸시하면서 내리깔아본다.

그 모습에, 장군 꿀벌들의 눈빛이 180도 달라졌다.

[완전무장 ‘블레이드 아머’가 발현됩니다!]

눈동자에서 뿜어지는 붉은 이채.

갑옷 역시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예리하게 변했다.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칼날을 입은 것처럼. 본신에 갇혀 있던 마력을 그대로 구현했다.

쿠웅!

한쪽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지막지한 역중력에 저항하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온전히 갖다 바친다는 건 무리다.’

“다 필요 없고. 당장 잘게 찢은 다음에 진상하는 걸로 하지. 저 재수없는 면상이 일그러지는 걸 반드시 봐야만 하겠어.”

“동감이다.”

지독한 살기.

감히, 자신들을 멸시하던 엘리스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엘리스 역시 마력을 끌어모았다. 

“호오. 네놈들 따위의 이빨이 감히 짐에게 닿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아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니라.”

전투의 양상이 한 층 더 격렬해지려 했다.

으음.

슬슬 말리긴 해야겠네.

자칫하다가는 목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었으니까.

“여기까지만 하지.”

진혁이 끼어들었다.

“네놈은 또 뭐냐?”

“주제넘게 나서면 너부터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먹이면 먹이답게 얌전히 거기 있으라고.”

순간, 저 머리통을 뽑아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긴 했지만.

참자.

나는 어른이니까.

이성과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

똑똑히 상대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겨둔 진혁이 재차 입을 열었다.

“무슨 뜻이지?” “너희가 이렇게 난리 치는 건 양질의 먹잇감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그렇다면 우리를 해치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텐데?”

“너희가 가장 좋아하는 이 향. 이걸 원없이 제공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뭐?”

“뭐라고?”

진혁의 말에, 으르렁거리던 두 놈이 멈칫했다.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 향을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거냐?”

“맞아. 아니면, 왜 진조나 인간인 내 몸에서 이런 향이 똑같이 나겠어? 당연히 조합법이 있고, 재료 또한 충분하게 구할 수 있지. 그걸 아무 먹이에나 발라 먹으면 너희가 걱정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걸?”

이쯤에서 한 템포 쉬고,

뜸을 살짝 들인 다음에.

“무너지고 있잖아. 소중한 왕국이 이대로 가면 몇 세대도 버티기 힘들 텐데?”

결정타를 날려주면 된다.

“너….”

“대체 그걸 어떻게….”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

어느새 붉게 빛나던 살기 등등한 안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여왕에게 안내해. 그리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판을 한 번 뒤흔들어 볼 시간이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

저벅.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이 나는 공간이 펼쳐졌다.

1km가 넘는 거대한 하이브는 과연 생명체가 만들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예술 작품 그 자체였다.

“이래서 시련의 탑은 질릴 틈이 없다니까.”

비싼 돈 주고 비행기 타고 멀리 관광하러 다닐 필요가 없다.

이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으니.

감옥도 있는데, 아마 계약자도 거기 가면 무서워서 짐의 뒤에 꼭 붙어 있을 거다!” “짐의 성에 비하면 별거 아니니라. 거기 달빛이 비치는 야경이 이런 곳보다는 10배 더 낫다. 게다가 혈옥이라고. 온갖 위험한 것들을 모아두는

엘리스 역시 궁시렁거리면서 자신의 성채와 비교를 늘어놨다.

하여간, 조금이라도 자신이 지는 건 죽어도 못 참는 성격은 달라지질 않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장군 꿀벌들의 안내가 멈춘 곳에 알현실이 나타났다.

“명심해라. 만약, 이 모든 게 헛소리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갈기갈기 찢어주겠다 기타 등등의 협박은 고이 접어서 넣어둬. 나도 헛소리나 늘어놓을 정도로 그리 한가한 상황이 아니거든.

테레사가 있는 곳 뿐 아니라, 화과산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을 거다.

뒤를 추격해오고 있는 페르무트나 태고의 존재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1분 1초라도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지만, 이 어려운 상황을 넘어설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철컹!

두꺼운 문이 열리자 마침내 알현실 내부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좌우로 도열해 있는 장군급 갑옷 꿀벌들이다.

“…..”

“…..”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즉시 달려들 기세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왕과 그 주위에 있는 친위대 역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 강하다.

15성급에 해당하는 태고의 생명체.

그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놈들답다.

특히나 친위대급은 ‘제천대성’이나 ‘우마왕’이라고 하더라도 만만하게 보기 힘든 수준이었으니까.

잘만 구슬려 삶는다면,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서 오거라. 내 왕국에 듣자하니. 꽤나 흥미로운 제안을 가지고 왔다고?”

여왕이 진혁과 엘리스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러면서 혀로 입술을 핥으며 입맛을 다셨다.

다른 갑옷 꿀벌들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특히나 여왕은 음식에 관해 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야만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고, 왕국을 이끌어나갈 전사들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띠링!

‘탐식의 눈’에 여왕에 관한 정보들이 나열되었다.

[복사조건: 갑옷 꿀벌들의 여왕 ‘아트리사’는 이 유적의 절대자로 오랫동안 군림해 왔습니다. 허나, 모종의 이유로 인해 왕국은 멸망의 위기에 처한 상태. 그 근원적인 이유를 해소하고 여왕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다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창이나 고유능력 혹은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단, 놈들은 당신을 먹으려 했던 엄연한 적. 이번 일은 얼마나 많은 갑옷 꿀벌들의 원성을 쌓으면서 성공시키느냐에 따라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49층 틈새 유적의 여왕 ‘아트리사’의 능력을 복사할 수 있는 기회다.

이건 못 참지.

‘원성 포인트를 쌓는 게 조금 걸리긴 하네.’

보통이라면 강한 적을 상대로 은혜를 쌓아두고 싶지. 원한을 쌓아두고 싶어하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씨익.

진혁은 오히려 이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은혜는 2배로 갚고 원한은 100배로 갚는다고.

감히 이쪽을 먹잇감 취급하면서 얕잡아 본 대가는 치르게 해야지.

“먹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오면서 보니까 아픈 아이들도 많더군요.”

건재한 친위대나 장군급들과 달리, 일반 병사들 중에서는 몸에 검은 반점이 올라오고 비틀거려대는 놈들이 여럿 있었다.

중독된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불순한 기운에.

“그래. 내 아이들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쇠약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악화만 되고 있지.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이 유적에서 우리 일족을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꼭꼭 감춰왔던 비밀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좌우에 도열해 있던 장군 꿀벌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대부분은 이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걸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는 건.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살인멸구 하겠다는 소리겠지.’

하여간 생각하는 게 너무 뻔히 보인다.

너무 대놓고 말하다보니 역겹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은 거려나.

크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진혁이 노련한 사짜처럼 말을 이었다.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팔고 사막에서 핫팩을 파는 것처럼.

이미 모든 셋팅이 완료된 상태였다.

지금부터 이 갑옷 꿀벌들에게 자본주의의 어둡고도 달콤한 면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려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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