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05화
805화. 숨겨진 노림수 (1)
“크으…어어어어?”
과타노차의 거대한 몸뚱이가 크게 휘청였다.
아직까지 자신이 무엇에 당했는지 조차 깨닫지 못한 얼굴이다.
그 정도로 삼장법사와 제천대성이 만들어낸 일격은 허를 찌르는 종류였다.
“스승님!”
과타노차의 최후를 확인하기도 전에, 제천대성이 삼장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아하아….”
점점 더 가늘어지는 호흡.
몸에 있는 모든 생기까지 전부 끌어다 써버린 삼장법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한눈에 보더라도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 보인다.
그렇기에, 제천대성의 손길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신 겁니까. 스승님께서 돌아가신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못난 제자를… 지키는 게… 내 역할 아니겠느냐?”
삼장법사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우리에게 이빨을 꽂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라고 하더니. 제법 흥미로운 싸움이었다.”
어느새 노스이디크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
제천대성이 반사적으로 삼장법사를 끌어안았다.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크아아아!”
제천대성이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토했다.
살거죽이 모조리 뜯겨져 나가는 듯한 격통이다.
한참이나 구르면서 수십 그루의 나무들까지 박살냈지만, 품에 안은 손에서 힘을 빼진 않았다.
“다 죽어가는 시체를 지키려고 자신을 버린다라・・・ 가진 힘에 비해 약점이 너무 크구나. 하기야 딱 거기까지인 거겠지.”
노스이디크가 흥미가 사라졌다는 듯 손을 높게 치켜들었다.
우우웅!
[‘틴달로스의 송곳니’가 소환됩니다!]
손에 쥔 기괴한 형태의 무기.
여러 개의 날을 가진 흉기는 검과 철퇴 도끼와 갈고리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무겁고 투박하며 거대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송곳니라는 이명에 걸맞게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듯한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크윽.”
제천대성이 핏발이 선 눈으로 노스이디크를 노려봤다.
방금 전 과타노차를 쓰러뜨리면서 한계까지 자신을 몰아넣은 탓에, 더 이상 싸울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최소한 긴고아의 제약만 없었더라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 정도는 시도해봤을 테지만.
그것마저도 희망 사항에 불과한 일이리라.
끝까지 스승님에게 도움만 받고 백성들을 지키지 못한 게 유일한 한이라면 한이었다.
“잘 가거라. 화과산의 왕이여.”
틴달로스의 송곳니가 제천대성의 목으로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카아아앙!
날카로운 쇳소리가 끼어들었다.
“……!?”
노스이디크가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
서리가루가 잔뜩 묻은 붉은 꼬챙이가 지면에 꽂혀 파르르 떨렸다.
‘천년 결빙’과 ‘블러드 스피어즈’가 합쳐진 공격이었다.
“아깝구나. 손목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었는데.”
“조심하세요. 저희가 만나온 그 어떤 적보다 강력한 자이니까.”
“그래봤자 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니라.”
엘리스와 서리혼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기점으로,
[‘유사의 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꿀렁이는 모래와 함께.
[거대 세력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합류합니다!]
다수의 마력이 화과산에 도달했다.
“어벤져스… 가 아니라. 고인물 코퍼레션 어셈블이라고 해야 하려나?” 진혁이 노스이디크를 보며 평소 해보고 싶었던 영화 속 대사를 읊었다. 크으. 막상 하고 보니 낯간지러우면서 뽕도 차고 그러네.
중2병 걸린 말이긴 했으나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
“강진혁….”
노스이디크가 그 이름 석자를 곱씹었다.
50층이 위태롭게 된 이유이자, 태고의 존재들의 심기를 거스른 유일한 인간.
성가심을 넘어 반드시 처리해야 할 숙적을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게다가.
“어딜 갔나 했더니. 신격들을 구출하러 갔던 거였나.”
진혁의 뒤로 감옥에 가둬놨던 벌레들이 전부 탈출해버렸다.
뭐, 그래봤자 대세에 지장을 줄 수 없는 하찮은 것들이긴 하지만.
일일이 다 처리하려면 여러 가지로 손이 많이 가겠지.
“잡다한 것들을 처리해 줄 놈들이 필요하겠군.”
이런 일을 대비해 십이지라는 세력을 휘하에 집어넣었다.
따악!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노스이디크의 뒤편으로 아공간이 벌어졌다.
쿵! 쿵! 쿵!
대기하고 있던 다수의 병력이 나타났다.
사왕 ‘백희’를 포함해 여러 부족의 장로급들이 대거 포함된 정예들이었다.
“부르셨나이까, 위대하신 존재시여.”
백희가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노스이디크의 명령에 백희의 몸이 움찔했다.
“그래. 보다시피 일을 마무리하는데 있어 날파리들이 꽤나 꼬였구나. 이 버러지들이 내 시야에서 없어졌으면 한다만.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그야 그럴 수밖에.
반면, 이쪽은 인왕과 무진룡 그리고 우마왕까지 없는 껍데기 뿐인 군대. 눈앞에는 십이지 최강으로 손꼽히는 제천대성을 비롯해, 상층부의 신격들을 포함한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정예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싸우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 보듯 뻔했다.
다시 말해.
지금 노스이디크는 자신들에게 죽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왜 머뭇거리고 있지? 내 명령을 따를 생각이 없는 것이냐?”
“그게… 아니오라.”
“허면?”
“송구스럽지만, 저희만으로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습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힘을 빌려주신다면 반드시 성공시켜 보이겠습니다.”
노스이디크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실망스럽군. 고작 몇 명이 빠졌다고 앓는 소리라니. 더 이상 나와 맺은 계약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느냐?”
저릿하고.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공간을 잠식해 나갔다.
무시무시한 기세다.
과타노차도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였으나, 노스이디크는 그 와는 또 다른 차원의 괴물이었다.
바로 그때.
“힘을 빌미로 가스라이팅 하는 것은 좀 그만두지? 애초에 십이지들에게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잖아, 너?”
진혁이 끼어들었다.
가벼운 어투와 달리 내뱉은 말에 담은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모두를 경악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계약을 지킬 생각이 없다고?”
“그게 무슨 헛소리냐 인간!”
백희를 비롯한 십이지의 장로들이 고함질렀다.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유독 고함소리가 절규에 가깝게 들렸다.
무슨 소리긴.
“처음부터 저 녀석은 40층 후반부의 영역을 너희들에게 줄 생각이 없었다는 거야. 너희들로는 절대 등반자들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을 테니까.” “그럼 저분께서 우리를 어째서 받아들인 거지?”
글쎄.
아무래도 반발할 게 뻔 한 몇몇 왕들을 손쉽게 제거하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이 층계에 장난질을 치는데 있어 십이지라는 희생양이 필요한 거겠지.”
예측 가능한 경우의 수는 극히 몇 가지로 좁혀진다.
그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건.
아무래도 층계를 ‘봉인’시키는 것이리라.
안 그래? 이 빌어먹을 능구렁이 놈아?
진혁이 노스이디크의 눈동자를 정면에서 바라봤다.
진혁의 말대로, 노스이디크의 숨은 계획은 따로 있었다.
“호오. 역시 다른 덜떨어진 놈들과는 조금 다르긴 하군. 재밌을 거라는 녀석의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구나.”
개성이 강한 십이지들에게 이 중요한 49층을 맡기는 건 너무도 안일한 일.
때문에 층계 자체에 대한 소각과정을 거쳐 백지화 시킨 뒤, 특별한 술식을 발동시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십이지는….
그 술식을 위한 제물이 될 재료들이었지.
“평소에 쌓여 있는 열등감을 자극해 자기들끼리 하나씩 죽고 죽이게 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에 와서 일에 차질이 생겼구나.”
“그, 그렇다면 저 인간의 말이 사실이라는 겁니까?”
“우리를 다 죽이려고 했다고?”
분노에 가득 찬 원망들.
뭐, 배신당하게 안타깝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걸 보니 이게 알려지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거네.”
위협이 될 수 있는 우마왕이나 무진룡도 이 자리에 없겠다. 백희 같은 어중간한 왕에게는 들켜도 그뿐이라는 거겠지.
이래서 철저하게 우마왕과 적호 그리고 무진룡을 흩어놨던 거구나.
“그래. 이미 준비는 모두 끝났다.’
노스이디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기점으로,
쿠쿠쿠쿠쿠쿠!
[태고의 술식 ‘타들어가는 땅거미’가 발동됩니다!]
층계 전체를 집어삼키는 영역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그림자로 이루어진 광역 술식.
층계 전체를 봉인시키고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오염시켜버리는 재앙이 일어났다.
“젠장.”
진혁이 혀를 찼다.
노스이디크가 현현한 시점부터 이런 류의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하긴 했으나, 문제는 그 타이밍.
상정해둔 것보다 놈이 준비를 끝낸 타이밍이 훨씬 더 빨랐다.
“우리 전부를 죽이려고 한 거였다니.”
아트리사가 또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했다.
노스이디크의 말은 틈새 유적에서 살아가던 이들마저도 모두 처리하겠다는 뜻.
당연히 갑옷 꿀벌들 역시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자, 그럼, 진실을 알았으니 그 원망을 가득 실어 덤벼 보거라. 과연, 미물들의 분노라는 게 어느 정도 통할지 이 몸이 친히 시험해줄 테니까.”
아니. 저 도발에 넘어가선 안 된다.
그거야말로 저 녀석이 노리는 바이다.
술식이 완성되기만 한다면, ‘땅거미의 시간’이 찾아올 테니까.
그 전에 근간이 되는 곳을 찾아 파훼하는 게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문제는.
‘절대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건데.’
바보도 아니고,
자신의 약점으로 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을 놈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팔랑팔랑.
청록색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나비가 다가왔다.
진혁의 어깨에 사뿐히 앉은 나비가 날개짓을 통해 무언가 속삭였다.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진혁이 미소를 지었다.
“흐음. 분명 이 상황은 네놈에게 있어 완전히 외통수일진데, 어째서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거지?”
술식의 근원이 되는 곳엔 이미 바르어비스와 우마왕 그리고 무진룡을 포함한 진족들까지 모두 포진시켜뒀다.
그 외에도 각종 함정과 방어진 또한 겹겹이 쳐줬지.
설령, 지금 당장 출발하더라도 제 시간 안에 뚫기란 극도로 어려울 터.
“아니, 나도 한 방 먹은 건 맞긴 한데….. “
때문에, 노스이디크는 진혁이 지금 보이는 여유가 근거가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자포자기 했기 때문인지 궁금했다.
운이 따라준다면 따라준달까.
이쪽이 준비한 카드도 예상보다 빠르게 준비되었다.
[공간이 이어집니다.]
무지개빛으로 물든 상태창과 함께.
투콰아앙!
날카로운 섬광이 내리 꽂혔다.
“크윽?”
노스이디크가 반사적으로 그림자들을 끌어모았다.
땅거미의 권능이 발현되며, 보라색 폭풍우가 쇄도하는 섬광에 정면으로 맞섰다.
콰콰콰콰콰콰콰콰!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의 파도가 범람했다.
무겁다.
예상치 못한 기습이라는 걸 고려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웬・・・ 놈이냐!”
노스이디크가 연기 속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탑에 들어왔을 때부터 든든하게 뒤를 봐준 이와.
“버티느라 고생했습니다.”
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 모든 여정을 지켜봐준 이.
바로.
릭 헤네시와 수리부엉이가 전장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