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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17화


817화. 폭풍전야(暴風前夜) (2)

그것은 악몽이자 절망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경고! 50층의 특수 권한: ‘응징자의 신벌(神罰)’이 발동됩니다!]

[태고의 신격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넘보려는 존재에 대해 선제공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됩니다!]

[대상은 거대 세력 ‘고인물 코퍼레이션’.]

[그리고 그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모든 세력이 포함됩니다!]

[앞으로 OH: 59M : 595 뒤에 ‘태고의 전사’들의 침공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현현하는 태고의 전사들은 50층에서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전력’ 상태입니다.]

[성공 시: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견딜 수 있는 혼돈의 정신력 스탯이 +50만큼씩 증가합니다.]

[패배 시: 해당 소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소멸합니다.]

무수히 쏟아지는 붉은 상태창.

두근! 두근! 두근!

모두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쳤다.

지금 나타난 상태창이 지닌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았기에.

이 상태창에 적힌 대로라면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 단 1시간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응징자의 신벌은 지금 놈들의 상태로는 절대 발동하지 못할 텐데.’

진혁의 표정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49층이 공략되고, 치명상을 입은 태고의 존재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경우의 수에 대해서 예상하고 대비해뒀었지.

하지만, 놈들의 대대적인 침공에 대한 건 배제해줬다.

왜냐하면…

‘응징자의 신벌’이 발동되려면 이쪽에 ‘배신자’가 있어야 했으니까.

다른 까다로운 조건들도 넘쳐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게 바로 ‘배신자’의 존재다. 단순히 항거하는 세력에 소속된 게 아닌, 이쪽의 핵심 정보들을 제공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위치.

최소한 핵심이거나 핵심에 가까운 주요 인물이 놈들의 편에 붙었다는 뜻이었으니.

‘누구지.’

과거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거다.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그마저도 지금처럼 깊은 유대관계를 맺지 않은 채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움직인 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세력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었다.

‘세력’이라는 장점의 뒤편에 있는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면서.

“어떻게 할 셈이냐? 가만히 있다간 놈들의 공격에 수많은 층계가 개박살이 난다.”

베리엘이 어느새 곁에 다가와 서 있었다.

가브리엘 역시 한 마디 덧붙였다. “만약 저희가 자리를 비운다면 하루는커녕 1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에덴이 사라져버릴 거예요. 마계나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요.

아무리 진혁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한들, 그들은 어디까지나 무수히 많은 생명을 책임지는 절대자들.

자신들의 거점이 쑥대밭으로 변하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50층으로 공격하려는 계획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순간이다.

무엇보다 보급과 후방지원을 해줘야 하는 거점들이 증발해버린다면, 장기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터.

‘이건 좀 치명적이네.’

배신자의 존재로 인해 극소수의 수뇌부에게만 정보를 제한해야 한다는 점도 뼈아팠다.

성유물과 아이템들을 모으느라 0.01%의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게 패착이다.

・・・・・・ 시간이 없다.

동시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고 우선순위를 정해 대응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

1시간이란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우우우웅! 완벽한 기습이라고 하기엔 약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비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찰나였다.

[게이트가 이어집니다!]

[목표는 ‘서리호수’와 ‘정신병동’.]

[고인물 코퍼레이션에게 협력하고 있는 거점입니다.]

보랏빛이 도는 게이트가 열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이 퍼져나갔다.

쿠쿠쿠쿠쿠쿠!

호수가 썩어들어가고, 정신병동의 벽이 온갖 종류의 저주들로 물들었다.

50층의 존재들이 탑의 저층부에 현현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흔들린다.

“미천한 세계로군.”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군단장 ‘이알다골스’.

전신이 질척질척한 용암으로 뒤덮인 형체를 한 아우터 갓으로 비교적 전력이 약한 탑의 하층부 공격을 담당했다.

그 뒤로는 마찬가지로 저주 덩어리로 뭉친 태고의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이 넘는 숫자도 숫자지만, 진짜 문제는 50층의 전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격이었다.

하나하나가 하위 신격들에 버금가는 수준.

병사들을 지휘하는 자들은 최상위 신격들마저 넘어서는 마력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그것만 해도 100이 넘는다.

하물며, 이알다골스를 비롯한 지휘관급들은 홀로 정신병동 자체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아, 안드리아님.”

“저희가 만든 술식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광신도와 광전사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

안드리아가 주먹을 꼭 쥐었다.

지금까지 정신병동이 공격받은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번은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구미호 혼령 정수’를 모두 흡수한 지금이야 5층이라는 범주를 훨씬 넘어선 존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해서 과연, 혼자서 저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까?

글쎄. 그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지휘관급들이면 몰라도 이알다골스한테는 어림도 없었다.

“모든 신도들을 물리세요.”

싸우는 것에 활로는 없다.

어떻게든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버티고 또 버텨야만 한다.

진혁이 지시를 내릴 때까지는.

안드리아가 최선의 대응책을 펼치는 사이, 서리칼날 부족의 트롤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카라칼 족장.”

“전사들이 겁을 먹고 있다.”

부족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불사를 수 있는 전사들.

그런 용맹함으로 똘똘 뭉친 트롤들마저도 다가오는 공포에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전사가 아닌 자들을 먼저 호수 안쪽 동굴로 피신시켜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 적과 맞선다.” 미로처럼 복잡한 정신병동과 달리, 얼음 호수 쪽은 시간을 끌 만한 장소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몸을 갈아 넣어서 시간을 버는 것뿐.

카라칼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일족의 1분을 벌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층부뿐 아니라, 탑 전체를 아우르는 재앙의 시작이기도 했다.

[중층부 ‘무림’과 ‘제국’에 태고의 존재 ‘쥬른’와 ‘보석 군주’들이 현현합니다!]

[상층부 ‘블랙 캐슬’에 ‘아뭄 타 드라스라’의 불꽃 벌레들이 몰려듭니다!]

[상층부 ‘올림포스’에….]

[……………게이트가 개방됩니다!]

동시다발적.

탑의 각 층계에 현현하기 시작한 태고의 존재들로 인해 수많은 거점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제 막 전화의 겁화로부터 회복하기 시작한 세력들에 짙은 불길이 다시 한 번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유일하게 다행인 점은 우리 쪽 히든 카드들이 늦지 않게 대응해줬다는 점이다.

“층계의 거리 자체를 늘려버리고. 놈들이 가장 싫어하고 성가셔하는 방벽들을 쳐뒀네.”

“왜곡장도 펼쳐뒀으니 지금 당장 희생자가 나오진 않을 겁니다.”

릭 헤네시 그리고 수리부엉이.

탑의 규칙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설계자와 운영자가 가장 먼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아주 찰나의 시간을 번 것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애초에 단 둘이서 그 많은 거점들을 전부 보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살았어.’

연합 병력의 절반 이상이 시작도 하기 전에 증발해버릴 뻔한 일.

그걸 막은 것만으로도 두 명의 카드는 제 역할을 다 해준 셈이었다.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애써 벌어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리더의 자격이 없을 터.

‘아무리 놈들이 보유한 재화가 많더라도 이런 게이트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는 없어.’

부담을 완화 시켜주는 중계지가 있다.

50층의 마력을 탑 전체에 골고루 전달해주고 이어주는 특수 거점이.

거길 찾아서 박살낼 수만 있다면 이 끔찍한 이벤트도 멈추게 만들 수 있으리라.

자살 특공대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건 극소수.

어차피 주력 자체는 각 층계를 방어하는데 동원될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고향을 버리고 50층으로 가라 종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진혁이 같이 갈 인원을 결정했다.

곧바로 다급한 필체가 담긴 쪽지가 작성되었다.

띠링!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부디, 서둘러야 한다.

[‘틈새 유적’을 통한 50층의 히든 루트가 개방됩니다!]

우우웅!

보라색 상태창을 시작으로 고인물 코퍼레이션이 50층에 첫걸음을 내딛었다.

“휘유.”

가장 먼저 들린 건 페시스의 휘파람 소리였다.

아직 초입임에도 전해지는 묵직한 압박감.

모든 것이 탑의 다른 층계와는 달랐다. 알 수 없는 짐승과 식물들이 내뱉는 기괴한 소리도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불쾌한 향도. 피부에 전해지는 끈적끈적한 습도마저도.

탑의 구석구석을 탐험해본 탐험가 페시스조차 긴장감에 식은 땀을 흘릴 정도였으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갔던 곳들은 전부 휴양지에 불과했구나.”

“예상보다 더 끔찍하긴 하네요.”

함께 온 동료는 페시스 외에 엘리스, 그리고 테레사였다.

하지만. 배신자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들을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와준 건 확실히 고마운데.

“괜찮은 거야?”

진혁이 엘리스에게 물었다.

그녀는 몇 시간 전 막 진조의 여왕으로서 즉위식을 끝낸 상태. 당연히 아타락시아의 거점 ‘블랙 캐슬’이 공격받고 있는 지금 자리를 비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엘리스가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짐은 그 모든 것보다 계약자가 더욱 소중하… 가 아니라! 흥! 고작 짐 하나 없다고 무너질 정도로 우리 밤의 귀족들은 그리 나약해 빠지지 않았느니라.”

말은 저리 해도 분명 많은 압박과 부담이 있었겠지.

반대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다.

그래서 더 고맙다.

어제나 함께 해준다는 선택을 해줘서.

진혁이 자신도 모르게 ‘브라함의 반지’를 꼭 쥐었다.

사실….

엘리스가 완전히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지금 이 반지는 더 이상 족쇄로서의 의미가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장식품에 불과할 뿐,

‘계약’을 풀고 싶다면 언제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때.

“헌데, 그대 말대로 이곳에 데려오긴 했다만, 이 넓은 곳에서 대체 무슨 수로 그 중계지인지 뭔지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냐?”

아트리사.

갑옷 꿀벌들의 여왕이자, 유일하게 태고의 존재들로부터 공격받지 않는 세력의 우두머리기도 했다.

사실상 이번 레이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군대인 셈이다.

“솔직히 말해 제 힘으로 알아내는 건 힘듭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후보들은 여럿 있었다.

당장 지금만 보더라도 마력의 기류가 이상한 지점이 5군데 이상 보였으니까.

하지만.

‘가짜겠지.’

먹음직스러운 미끼들로 혼란만 주면서 진짜는 꽁꽁 감춰뒀을 게 틀림없다.

“설마, 일일이 날아다니면서 찾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정찰과 비행 능력이 자신이 없다는 게 아니라, 이곳은 우리도 오래전에 떠나버린 세계.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뇨. 그런 무리한 부탁을 드릴 생각은 당연히 없습니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어느 세월에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면서 찾고 있단 말인가?

결국.

목적지를 특정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

“실패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최소한 수만이 넘는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고 50층 공략 확률은 0%에 가까워지겠죠.”

그리고.

그 한 발뿐인 총알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정해져 있었다.

“이야.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역할을 맡을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엄청 불쌍하네요.”

페시스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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