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34화
834화. 무모한 내기 (1)
띠링!
진혁의 앞에 선명한 글자가 점멸했다.
[두 번째 연계 퀘스트]
이름: 위험한 줄다리기.
내용: 승리가 확정된 상태에서 또 다른 리스크를 만드는 건 어리석은 짓. 하지만, 탑의 정상을 노리는 자라면 하이리턴의 기회가 주어질 경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글을 읽던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살짝 아쉽긴 했다.
슈브니구라스라는 괴물을 봉인하긴 했지만, 숨통을 끊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마땅한 보상이랄 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뭘 제안하는 건데?
진혁이 이어지는 상태창에 집중했다.
띠링!
[슈브니구라스의 몸에서 ‘사안봉인검’을 일부 뽑으십시오. 뽑는 정도에 따라서 주어지는 보상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보상: ‘고유무장의 귀속권’, ‘잃어버린 언어 파편’. ‘슈브니구라스의 거점에 있는 재료 아이템 중 1개에 대한 선택권’.
“…!!??”
미친.
조건을 보자마자 욕이 터져나오는 걸 애써 삼켰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더라도 사안봉인검은 아주 조금씩 뽑히는 중이었다. 운이 좋으면 1달. 재수가 없으면 3주 이내에 완전히 사라져버릴 거란 뜻이다. 그런데 그걸 더 뽑으라고?
까딱 잘못했다간 즉시 슈브니구라스가 봉인을 풀고 자유가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아무리 미친 짓을 즐기는 고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선을 넘었다.
지금 상태에서 저 녀석이랑 1:1로 싸우게 되면 승산 자체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보상도 선을 넘긴 마찬가지네.’
슈브니구라스의 고유무장을 영구히 소유할 수 있는 ‘영구 귀속권’ 거기에 놈의 거점에 있는 수많은 재료 아이템들 중 한 개를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거의 모든 재료들을 다 모으긴 했는데 아직 핵심 재료 중 한두 개가 부족해.’
허나, 슈브니구라스의 거점에 있는 재료라면 충분히 그 부족한 빈칸을 메꿔줄 수 있으리라.
게다가.
‘잃어버린 언어 파편’ 역시 포기할 수 없는 미끼였다.
저게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는 몇 번의 전투만으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보상을 통해 얻는다면 미궁이나 유적을 탐험하고 조사해야 할 기간을 대폭 감소시켜줄 수 있어.’
진혁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주어진 조건들을 통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마른침.
두근거리며 빠르게 뛰는 심장.
간질거리는 피부에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스릴까지.
・…가능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슈브니구라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나’라면,
고민은 길지 않았다.
***
파아앙!
파앙!
“크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포효하는 슈브니구라스가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소닉붐이 만들어지며 지면이 쩍쩍 갈라졌다.
저벅.
“많이 억울한가 봐? 나 같은 인간에게 당해서?”
능글맞게 웃으며 다가오는 진혁을 슈브니구라스가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놈. 어째서 아직도 여기서 안 나가고 꾸물거리고 있는 게지? 잔재주로 그 알량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으면 천운으로 여기고 도망갈 것을.”
“운이 좋았던 건 부정하지 않을게. 그래도 약간은 섭섭하네. 완전히 운에만 기댄 건 아니었거든.”
여러 준비를 하느라고 얼마나 개고생했는데.
그걸 그냥 던진 돌에 새를 사냥한 걸로 치부하다니.
하여간 태고의 존재라는 것들은 곧 죽어도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니까.
“고작 이걸로 날 가둬둘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크오오오!”
“캬아아아!”
콱! 슈브니구라스의 등 쪽에서 튀어나온 뱀들이 이빨을 드러낸 채 사안봉인검을 뽑으려 했다.
따닥!
하지만, 바로 앞에서 이빨만 부딪칠 뿐.
뱀들의 송곳니는 결코 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정 억울하면 어떻게 한 번 기회를 더 줄까?”
“기회라고?”
분노로 인해 미친 듯이 날뛰던 슈브니구라스의 몸부림이 멈췄다.
“사안봉인검을 뽑아줄게. 아주 약간이긴 하지만, 너라면 그것만으로도 탈출할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지 않겠어?”
달콤한 꿀이 담긴 제안.
“재밌구나. 아무 대가 없이 그런 호의를 베풀진 않을 것 같고, 말해보거라. 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그런 탐욕을 부리면서까지 무얼 갖고 싶은지를?”
“네 몸에 꽂혀 있는 검을 만드느라고 내 무기를 소모해버렸거든. 그러니 네가 가진 고유무장 중 하나를 넘겨받았으면 싶은데.”
“…과연, 욕심이 머리끝까지 찬 인간이로다.”
슈브니구라스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평범한 걸 원하지 않을 거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고유무장을 달라고 하다니.
그 어떤 태고의 존재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 성가신 검은 아무리 빨라도 몇 주는 빠지지 않을 거다. 평소라면 몰라도 니알라토텝이 릭 헤네시를 잡는 데 실패한 마당에 이 곳에서 처박혀 있을 수는 없어.’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서 사태를 파악해야만 한다.
게다가.
만에 하나 이 내기에 지더라도 손해 볼 건 없다.
고유무장은 어디까지나 한 생명에게 영구히 종속되는 ‘영혼 종속’의 개념.
단순히 얻기만 한다고 해서 다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니, 어디 그뿐이랴?
보아하니 카알루트로부터 뺏은 ‘긍휼의 검’을 다루면서 되도 않는 자신감이 차오른 모양인데,
자신의 고유무장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간의 그릇 따위로는 무장 안에 담겨 있는 태고의 마력에 중독되어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전신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리라.
다시 말해 무조건 이득이기만 한 내기.
“좋다. 받아들이지. 내가 진다면 고유무장 중 하나를 넘기마.”
슈브니구라스가 꿀이 가득 담긴 음료를 단숨에 들이마셨다.
“미안하지만, 내가 의심병이 좀 심해서 말이야. 네 말만 넙죽 믿지는 못하겠네? 시스템에 의한 제약 정도는 좀 달아둬야겠어.”
진혁이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관리자나 이에 준하는 자들을 부를 수 있는 ‘중재 지명권’,
이번 전쟁을 치르기 전에 릭에게서 받은 아이템 중 하나였다.
“너희 인간들처럼 약속을 어기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그게 마음이 편하다면 마음대로 하거라.”
[‘중재 지명권’이 발동됩니다!]
우우우웅!
이제는 제법 벌어진 허상 세계의 틈으로 두 줄기 빛이 쏟아졌다.
***
[대상들이 부름에 응답합니다!]
쏟아지는 빛이 사라지자 그곳엔 진혁과 슈브니구라스 모두에게 익숙한 관리자가 서 있었다. 전(前) 상급 관리자 하스팅. 그리고 그 옆에는 ‘무한의 수레바퀴’를 이끄는 ‘샤일록’도 보였다.
“하스팅…?”
슈브니구라스가 그 얼굴을 기억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강진혁에게 패배한 뒤 제거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죽지 않고 살아 있던 거였나.
뭐가 됐든 충실한 수족이었던 자가 소환된 건 나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샤일록 역시 탐욕과 권력욕으로 가득 차 있는 놈이었으니 마찬가지로 손해 볼 건 없는 중재자였고
“…쉿.
진혁이 하스팅이 반응하기 전에 재빨리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지금 하스팅이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몸담고 있다는 걸 티 내지 말라는 의미였다.
“・・・・・・・ 이거 굉장한 분들이 한 자리에 계셨군요 강진혁 플레이어님 그리고 슈브니구라스 님. 위대한 존재를 뵈옵니다.”
“흐음. 너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다행히 니알라토텝 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조용히 처신하라 하셔서 움직이지 못했던 점 너그러이 용서 부탁드립니다.”
“되었다. 책망이나 하자고 부른 것이 아니니까.”
“허면, 무엇을 부탁하시려고 부른 것인지요?”
“저 인간 놈과 내기를 하게 되었다. 너희는 그 중재자로서 부른 것이니 일에 어긋남이 있어선 안 되느니라.”
“지엄하신 분부, 실수 없이 이행하겠나이다.”
하스팅이 고개를 조아렸다.
“저, 저 역시 거래를 주관하는 상단의 주인으로서 위대한 분께 폐가 되지 않겠나이다.”
샤일록 역시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바로 그때.
슈브니구라스의 언령이 하스팅과 샤일록에게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알아서 계약에 허점을 만들어라.
-예. 알겠습니다.
-또한, 바깥에서 우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가 강진혁과 협력하고 있다. 놈이 나선 뒤로 전투가 꽤나 어려워졌는데, 대체 어떤 자인지 그 얼굴을 보고 싶구나.
-흐음. 감히 태고의 존재들에게 반기를 들다니. 겁이 없는 녀석이로군요. 그 역시 이 하스팅이 잘 처리하겠습니다.
-저 역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 강진혁이란 인간은 예전에 제 연구물을 비웃고 사기를 쳐서 제 물건을 강탈해갔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복수를 할 겁니다.
-좋아. 만약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된다면 하스팅 너를 탑의 유일한 상급 관리자로 임명하겠다. 샤일록 너는 탑의 유일한 대상단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지.
세 명의 대화가 오고갔다.
물론.
하스팅은 그 모든 대화를 진혁에게 전부 공유하게 주고 있었지만.
‘나중에 하스팅이 범인이라는 걸 알면 열 좀 받겠네.’
진혁이 피식 웃었다.
슈브니구라스 입장에서는 항상 자신들의 발바닥이나 핥던 고블린이 배신할 거라곤 꿈에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하스팅 옆에 서 있는 샤일록은.
‘저놈은 정정당당한 내기에 져놓고 앙심을 품는다.라. 아무래도 제대로 쓴맛을 좀 보여줘야겠어.’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못 하게끔 만들어 줄 생각이다.
그렇게 슈브니구라스와 하스팅, 샤일록의 작당질이 얼마간 이어졌고,
진혁이 그 작당질에 참여한 하스팅에게 적당히 조언하며 판 자체를 설계해나갔다.
아주 먹음직스럽고 교묘하게 말이지.
10분에 걸친 회의가 끝났다.
“시작하기 전에 잠깐 한 가지 조건을 더 추가하겠습니다. 현재 슈브니구라스 님께서는 봉인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태. 때문에 각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한 개씩 사용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나온 결론엔 내기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조항이 달려 있었다.
“나쁘지 않은 이야기로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
상반된 반응이 터져나왔다.
주렁주렁 고유무장을 가지고 온 슈브니구라스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아이템들을 보유한 진혁.
활용도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지명권을 써서 저희를 불렀으니 이견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샤일록이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반면, 하스팅은 턱을 쓰다듬으며 자비를 베풀어준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흐음. 대신 강진혁 플레이어님의 불리함을 고려해 딱 한 가지. 가지고 있는 중 능력 중에 하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능력이라면?”
진혁이 되물었다.
“스킬 한 가지입니다. 고유성창이나 고유능력은 엄격하게 금지되오니 착각하지 않길 당부드리겠습니다.”
“크하하! 상급관리자 님께서는 참으로 관대하시다니까요. 스킬이라니! 이 샤일록도 자비로움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그 정도는 허용해드리도록 하죠.”
후우, 연기하기도 참 힘드네.
그래도 굉장히 불리한 척은 해둬야겠지.
‘하스팅이야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맞춰줄 테지만, 샤일록 저건 눈치가 꽤나 빠르니까.’
이제 거의 다 왔다.
진혁이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조건을 받아들였다.
다음으로,
이 내기의 하이라이트이자 꽃이 될 아이템과 스킬을 선택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