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39화
839화, 최악의 배신 (1)
[태고의 신격 ‘글라가’가 쇼거스 군락지에 개입합니다!]
하위 아우터 갓 중 하나인 글라가.
저 녀석 자체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문제는….
[성유물 ‘멈추지 않는 갈증의 굴레’가 발동됩니다!]
놈이 들고온 성유물이었다.
화르륵!
주변의 공기가 급속도로 말라붙는가 싶더니.
이내 대기 중에 수분이 모조리 증발해버리기 시작했다.
“큽!”
“이 건조함은 대체….”
평생을 사막에서 살아온 이집트의 신격들마저 피부가 타들어 가는 통증을 느꼈다.
당연히 다른 이들이야 호흡을 하는 것마저 여의치 않을 수밖에.
“키에에에!”
“케에에!”
쇼거스들이 괴성을 지른 건 바로 그때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많은 놈들이 물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벌컥! 벌컥!
타들어 가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말라비틀어진 목구멍에 수분을 들이 붓는다.
엄청난 양의 물줄기가 그대로 사라져갔다.
“네, 네 놈들이… 가, 감히 그분의 집을 차⋯찾는다고 들었다. 안 될 일이지. 아니, 아니, 아니 될 일이야, 히히히.”
공중에 떠 있는 글라가가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멈춰라! 천박한 것아!”
엘리스의 꼬챙이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런데.
파스슥!
파스
날아가던 꼬챙이가 서서히 갈라지더니 글라가에게 닿기 직전 완전히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미, 미안하지만, 이, 이 성유물이 발동되는 동안 그런 능력은 쓸모가 없을 거야.”
원통형의 몸에 40개가 넘는 팔이 달린 외형.
글라가가 계곡 전체의 판도를 쥐고 뒤흔들었다.
[‘갈증의 권역’이 만들어집니다!]
파스슥.
파사삭!
확실히 놈의 말대로라면 머지않아 물줄기가 완전히 말라붙어 버릴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태고의 존재들이 벌써부터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여기서 시간이 끌리면 요람에 우리가 더 늦게 도착할 수도 있겠는데.’
그건 막아야 한다.
요람에서 본격적인 농성에 들어간다면 함락시키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몰랐으니까.
그나마 희망적인 건 글라가가 계곡의 아래로 따라 흐르는 물에 대해서는 눈치채지 못 했다는 점이다. 진혁의 시선이 오른쪽 끝에 있는 작은 동굴로 향했다.
졸졸졸,
희미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
‘지하’로 가는 루트는 일종의 양날의 검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 위는 글라가의 성유물로 인해 완전히 개판이 나버렸으니까.
‘물을 다 마신 다음엔 그 갈증을 피로 해소하려 하겠지.’
‘죽음을 불러 모으는 등불’ 역시 저런 광증 상태의 쇼거스들 상대로는 제대로 효과가 발동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손실은 꽤 날 테지만, 일단 병력을 나눠서 일부는 여기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결정을 하려던 바로 그때.
투콰아앙!
엄청난 폭풍이 쇼거스들이 밀집해 있는 한복판에 떨어졌다.
후두둑!
후둑!
먼지 속에서 몸을 일으킨 건 근육질의 거한.
헤라클레스였다.
“가라. 이곳은 내가 맡도록 하겠다.”
초췌한 얼굴과 핏발이 선 눈.
며칠이나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반신의 신성성마저 혼탁한 기운에 잠식되어 있었다.
게다가 몇몇 특이하고 이질적인 마력도 뒤섞여 있는데.. 저건 설마?
‘탐식의 눈’이 헤라클레스를 꿰뚫었다.
띠링!
[페르세포네의 ‘독사의 반지’를 착용한 상태입니다.]
[뱃사공 카론의 나룻배’를 발동한 상태입니다.]
[‘반신을 태운 마지막 장작더미’, 그리고 그 잿가루가 사용된 상태입니다!]
죽은 이들의 원혼을 몸에 빙의시킬 수 있는 성유물들이다.
‘저것…까지 쓸 정도란 말인가.’
진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념의 격을 재현시켜주는 대신, 대상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갉아먹게 만드는 저주덩어리.
하나씩만 쓰면 그나마 제어가 가능하지만 세 가지를 동시에 쓸 경우 반신이 아니라 주신이라 하더라도 폭주하게 된다. 그 정도로 아프고 괴로운 것이다.
당장 1초를 더 살아가는 게 못 견딜 만큼.
“하, 하지만…!”
말리려던 테레사의 어깨에 엘리스가 손을 얹었다.
“이미 각오를 굳혔다. 오히려 폭주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저 원념으로 인해 아군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수가….”
엘리스의 말에, 테레사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혹독했기에.
진혁 또한 쇳물을 삼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다른 층계도 아니고 50층에서라면 이런 희생도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생환시킨다는 건 허황된 이야기였으니까.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고, 그런 희생이 바탕이 되어야 간신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시작일 뿐.
각오는 해둬야겠지,
“저희는 속행…하겠습니다.”
진혁이 결정을 내렸다.
입술에서는 한 줄기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남아서 저 불쌍한 반신을 조금 더 돕겠다. 적어도 마지막을 지켜봐 주는 이가 하나 정돈 남아 있어야지.”
아누비스가 사막의 권능을 끌어올렸다.
거센 모래 폭풍이 바람을 등지고 아누비스의 몸을 지켰다.
“멍청한 사냥개 한 마리에게 모든 걸 맡기자니 그건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군. 나 역시 남도록 하겠다.”
베리엘이 질세라 나섰다.
어느샌가 묘한 라이벌 의식이 생겼는지, 둘 중 하나가 튀려고 하면 즉시 다른 쪽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형식이었다.
“아니, 여기는 나 혼자 남는 게 맞다. 저 건조함에 조금이라도 저항할 수 있는 건 같은 사막의 거주자들뿐. 무엇보다 너는 다음 위기 때 내 사도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쳇. 너답지 않게 모처럼 맞는 말을 하니 반박하기 힘들군, ‘네놈의 사도’가 아니라 ‘내 사도’라는 것만 정정하면 말이야.”
“그 논쟁은 다시 만났을 때 마저 하지. 뿔 달린 애송이.”
“하! 그 전에 죽지나 말라고 사막의 댕댕이 녀석아.”
역할 분담은 끝났다.
콰앙!
툭.
모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전부・・・ 죽어라! 한 놈도 남김없이!”
폭주하는 헤라클레스를 필두로 아누비스와 사막의 군대가 뒤따랐다.
‘검은 산양’들로 이뤄진 1개 중대급 병력들도 이를 뒷받침했다.
콰콰콰콰쾅!
콰아아앙!
“키에에에!”
“케에에에!”
쇼거스 군단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피부마저 갈라지며 그 속에서 피가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복수하려는 자와 갈증에 미쳐버린 놈들과의 격돌.
그 톰을 타고 진혁과 나머지 멤버들은 샘물이 흐르는 지하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히히. 지, 지하 쪽을 내, 내가 모를 거라고 생, 생각했어? 모, 모른 척하고 있던 건 굳이 거기까지 신,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없기 때문이야.”
글라가가 준비한 건 단순히 성유물만이 아니었다.
의미심장한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앙!
동시다발적으로 이변이 일어났다.
“후방에서 마력 반응…. 젠장. 태고 놈들 것이 아니다!”
“아군・・・이에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띠링!
[・・・・・・ 공격받고 있습니다!]
[긴급 지원 메시지가 쇄도합니다!]
진혁의 앞에 붉은 상태창이 점멸했다.
***
거점 ‘모멸의 사원’.
아래층에서 오는 막대한 물자를 보관하는 것과 동시에 50층의 다양한 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전진 기지다.
50층 공략을 생각한다면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 연합의 허리.
하지만, 주력이 양들의 요람으로 향한 사이 이곳엔 태고의 군대가 도착해 있었다.
“저, 적습입니다!”
“말도 안 돼, 놈들이 코앞에 올 때까지 몰랐다고? 다들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경보는 없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들이 울려퍼졌다.
모멸의 사원 일대에 있는 1개의 유적과 3개의 미궁을 거점화해 두었고, 최강의 방패라 할 수 있는 십이지 ‘왕’들을 배치해 두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 주위는 아트리사와 갑옷꿀벌들이 하이브를 만든 뒤, 자신들의 영토로 삼은 상태였다. 최소한 적들이 기습을 할 수는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많은 숫자가 들이닥치도록 그 어떤 경고도 없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쿵! 쿵! 쿵! 쿵!
지축이 뒤흔들리는 굉음.
엄청난 숫자다.
전원이 13성급 이상으로 이루어진 수만의 군대를 이끄는 건 태고의 신격 ‘쥬른’과 ‘이알다골스’였다.
“하찮은 놈들이 슈브니구라스 님의 사원을 점거하다니. 참을 수가 없군.”
“다시없는 수치이긴 하다. 그러니 그 상처까지 전부 사라지도록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려야겠지. 조금 전 죽여버린 그 짐승들의 왕처럼.”
무시무시한 살기.
쿠쿠쿠쿠쿠!
태고의 격이 유형화되자, 사원 전체가 공포에 짓눌렸다.
평범한 병사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의 분노가 전달되었다.
‘자왕’ ‘사왕’ ‘미왕’.
세 명의 왕들을 몰살시킨 태고의 군대는 당장이라도 사원 전체를 집어삼키려 했다.
[발세테르가 ‘거점 강화’를 발동합니다!]
사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중심으로, 각종 식물들과 함정들이 배치되었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이런 지옥 같은 곳까지 끌려와서는…. 과연 내 위대한 함정들이 50층에서도 통하나 시험해 봐야겠구나!”
반쯤 자포자기한 발세테르가 광소를 터뜨렸다.
도망간다면 어차피 진혁에게 죽을 운명.
그렇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이 0.01%라도 높은 쪽에 배팅하는 수밖에 없었다.
“쉽게 뚫리진 않을 겁니다. 이쪽도 나름대로 실전 경험을 쌓을 만큼 쌓았거든. 안 그래 누나?”
[이태민이 고유성창 ‘라스트 마이스터’를 발동합니다!]
사원의 벽을 따라 각종 타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컹! 쿠웅!
‘양자포’와 ‘플라즈마 마력포’,
거기에 ‘대군용 핵융합 지뢰’까지.
수많은 기계군단을 다룰 수 있게 된 기계 군주 이태민이 정면을 지켰다.
이태민 역시 ‘소울브링어’라 불리는 기체에 탑승한 상태였다.
파츠츠츠!
순백의 얄쌍한 갑주.
2쌍의 날개가 달린 3m 크기의 로봇은 메카물에서나 볼 법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이지.”
투콰앙!
유연화가 하얗게 물든 건틀릿을 맞부딪쳤다.
황금빛 스파크가 부서지며, 거신을 압축해둔 것만 같은 위압감이 발현되었다.
“사원으로 올라올 수 있는 건 중앙 계단뿐, 위쪽을 점령하고 있는 저희가 훨씬 유리해요!”
‘여우 불놀이’를 발동시킨 안드리아 역시 이번 수성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나름의 위용을 갖춘 방어진.
그러나.
“가소롭군.”
“천마나 제천대성도 아니고, 고작 저 정도로 우리를 막을 수 있다 생각한 건가?”
쥬른과 이알다골스가 움직였다.
태고의 군대가 2m가 넘는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퍼어어엉!
“키에에에!”
“크라라라!”
화려한 폭발을 기점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중형급 몬스터들 사이로 비교적 가볍고 작은 몬스터들이 계단을 몇 개씩 도약했다.
[이태민이 스킬 ‘일제사격’을 발동합니다!]
화력을 집중시킨다.
지리적 이점을 살린 포격이 폭풍처럼 이어지자, 계단을 타고 올라오던 태고의 병사들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크에에에!”
“크아아아!”
두꺼운 외피마저 파고드는 겁화.
작열하는 불꽃이 내부의 장기를 태웠다.
“열여섯… 열일곱 마리!”
콰득!
거기에 유연화가 태산처럼 버티며 포격을 뚫고 올라온 놈들의 머리를 분쇄시켰다.
[안드리아가 스킬 ‘구미호의 환몽’을 발동합니다!]
‘매혹’과 ‘환술’이 화려하게 어우러졌다.
잘 짜여진 한 폭의 자수 같은 합격진,
몇십 분이나 이어진 맹공에도 계단의 초입부는 굳건하게 버텼다.
“그럭저럭 구색은 갖췄구나. 일반 병사들로는 안 되겠어.”
“알겠다. 나부터 시작하지.”
짜증 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진 건 바로 그때였다.
[특수 스킬 ‘보석의 방벽’이 발동됩니다!]
촤르르륵!
오색의 빛을 띤 얇은 장막이 펼쳐졌다.
콰아아앙!
퍼어엉!
이태민의 포격이 그 장막에 모조리 가로막혔다.
“올라간다.”
쥬른과 이알다 골스.
거기에, 상위 개체인 ‘올드원들이 본격적으로 계단을 오름에 따라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분명, 모멸의 사원에 있는 이들이 강한 건 사실이었으나 상위 태고의 신격들을 개별적으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놀라운 기연과 사기적인 성유물들을 얻었다고 해도 근본적인 격차 자체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썩 나쁘진 않았다. 인간 따위나 하층부의 거주자들치고는 말이야.”
“이 정도면 내부까지 몇 시간이면 충분하겠군.”
계단을 절반 이상 오른 두 신격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쥬른과 이알다골스도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꽤나 따분했는데, 즐거운 놀거리가 생겼구나. 짐의 영토에 발을 들이밀다니 멍청한 짐승들이로다.”
“여기서 활약하면 우리 사랑스러운 진혁 씨가 저를 다시 봐주겠지요?”
이 거점엔 단순히 기존 전력 외에 또 다른 괴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
[고유성창 ‘개벽의 계시록’이 발동됩니다!]
[고유성창 ‘세라핌이 발동됩니다!]
투영화된 엘리스와 테레사가 마력을 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