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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41화


841화,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1)

콰콰콰콰콰콰콰!

파츠츠츠 투콰아앙!

폭발과 굉음이 이어졌다.

“크오오오!”

“우와아아!”

부딪치는 병장기와 마력.

분명 얼마 전까지는 등을 맞대었던 동료가 어느새 서로의 목을 향해 칼을 들이밀고 있다.

“이건… 이건 아니에요!”

테레사가 방패로 공격을 막으면서도 고통에 몸부림쳤다.

“정신 차려라! 여긴 전장이다! 못 버티겠으면 다른 인격이라도 꺼내란 말이다!”

엘리스가 피로 만든 구체를 난사하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엘리스의 표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와인을 나눈 사이었기에.

바로 그때.

투웅!

보랏빛 파장이 계곡 전체를 휩쓸었다.

[성유물 ‘멈추지 않는 갈증의 굴레에 부여된 금기가 해금됩니다!]

[오염된 쇼거스들이 ‘갈망의 광증’에 걸립니다!]

[1단계씩 ‘강제 변질’이 이루어집니다!]

[1시간 뒤, 모든 쇼거스들이 사망합니다!]

뿌드득!

우두둑!

쇼거스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훨씬 더 거대하고 흉측하게.

사념을 줄기줄기 흘리는 상위 버전으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가지가지 하는군.”

베리엘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혀를 차며 마력을 해방했다.

“좋아. 아주 끝장을 보자꾸나. 이 빌어먹을 쓰레기들아.”

[베리엘이 흑창 ‘키샨’을 소환합니다!]

[마왕의 권능 ‘암흑 성전’이 개전(開戰)을 알립니다!]

끼이이익….

고대의 악마들을 불러오는 문.

검은색 쇠사슬에 옭아매져 있던 각종 악마들이 제약에서 풀려났다.

“케에에에!”

“크아아아!”

곧바로 두 종족 간에 격돌이 일어났다.

마계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성물들을 죄다 사용한 베리엘이 사력을 다해 쇼거스 군단을 막아섰다.

“가세하겠다.”

“여기서 쓸 것들이 아니었건만. 뭐, 상황상 오히려 최적일 수도 있겠군.”

아누비스와 호루스도 어쩔 수 없이 숨겨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성유물 ‘사막의 보석’에 숨겨진 효과 ‘문명의 발생지’가 발동됩니다!]

보석에 있는 작은 틈으로,

대량의 강물이 범람했다.

글라가의 성유물로 인해 곧바로 증발이 시작되었지만, 워낙에 초대량의 강물이 들이닥친 터라 한꺼번에 전부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벌컥벌컥!”

“키에에…꾸르르륵!”

목마름에 미쳐버린 쇼거스들이 강물을 향해 돌진했다.

적들의 피를 탐해야 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쿵! 쿵! 쿵! 쿵!

지평선을 따라 상아색의 기둥들이 떨어졌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각인된 기둥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마력이 연결되었다.

소환진이다.

[왕가를 수호하는 ‘9마리의 스핑크스’가 고대의 맹약을 이행합니다!]

“아침에는 네 개.”

“점심에는 두 개.”

“그리고 저녁에는 세 개인 건 무엇이지?”

스핑크스의 고유능력인 ‘수수께끼’.

정답을 맞추지 못하면 대상에게 절대판정의 ‘상태이상’을 부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만약 대상이 현대인이었다면 십중팔구 정답을 맞혔을 테지만,

지성 대신 본능만이 전부인 쇼거스들에겐 무리였다.

머리 위에 뜬 물음표가 지속되는 사이, 스핑크스가 내 건 제한시간이 지나버렸다.

“……!?”

“크륵?”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페널티’가 가해집니다!]

쇼거스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동시에.

콰아앙!

20m가 넘는 스핑크스가 앞발을 휘둘렀다.

쇼거스들의 몸이 훨훨 날아 반대편 계곡에 처박혔다.

“하하하! 어떠냐? 아주 매콤한 맛일 테지?”

아누비스가 화끈한 전투신에 쾌재를 부르짖었다.

자신들이 준비한 능력들이 제대로 시너지를 내니 속이 다 시원할 수밖에.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발키리들은 나를 엄호하라!”

토르가 천둥의 부름을 전신에 두른 채 돌진했다.

무시무시한 마력의 폭풍이 몰아쳤다.

파츠츠츠….

・・・・・・콰콰콰콰콰콰!

푸른 전격이 가로지르자, 스핑크스 하나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왕가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콰아앙!

유언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묠니르가 스핑크스의 머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트가르드 로키여, 서리거인들을 진격시켜라.”

“그래. 이번에는 오딘 네놈과 함께 하도록 하지.”

요툰 중 ‘흐름투르스’라 불리는 잔혹한 종족.

거대한 몽둥이와 도끼로 무장한 거인들 역시 사막의 군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쿠웅! 쿠웅! 쿠웅!

수백 마리가 넘는 거인들이 닥치는 대로 적들을 짓밟고 한입에 집어삼켰다.

“전사들은 어떻게든 놈들이 이 계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아쳐! 사격을 허가한다!”

프레이야와 울르 역시 각각의 직속 병단을 이끌며 응전했다.

“크하하하!”

“발할라로 함께 데리고 가주마.”

도끼와 방패로 무장한 바이킹 전사들이 함선을 소환했다.

[진군하라!]

[항해하라!]

[바다의 끝이 보일 때까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낭떠러지로 우리를 인도해다오!]

결사의 의지를 담은 전사들의 노래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렇다.

북유럽의 전사들이 바라는 건 공멸(滅).

여기서 모두가 함께 죽더라도 위그드라실과 그곳에 남아 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지킬 심산이었다.

“히. 히히힉! 재, 재밌구나. 멍청한 필, 필멸자들이란 참으로 재, 재밌어!”

수십 개의 손바닥으로 열렬하게 박수 치는 글라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시시덕대는 꼴을 보는 순간, 진혁의 표정이 너무도 차갑게 식어버렸다.

저 찢어 죽일 놈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미끼를 던져놓고 서로가 물어뜯는 걸 즐겨?

참고 넘길 수 있는 선을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다.

“계약자…!”

“진혁 씨. 저희는 이만 가야 해요.”

엘리스와 테레사가 진혁을 말렸다.

그 말대로 여기서 계속 발이 묶일 수는 없었다.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태고의 놈들이 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세상에는 이성보다 더 맘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진혁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랑흑아 – ‘격살의 울타리’가 발동됩니다!]

콰직!

“???… 크아아악!”

글라가가 있던 공간에 수십 개의 이빨이 맞물렸다.

난데없는 공격에 글라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제대로 된 수식이나 마력 반응도 없이 원거리 능력을 사용할 거라곤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공간 자체를 뛰어넘는 암살기.

뜯겨나간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촤라라락!

진혁의 다른 손엔 어느새 금단의 책인 ‘네크로노미콘’이 펼쳐져 있었다,

[네크로노미콘의 135페이지. ‘감정의 뒤편에 선 자, 글라가에 관한 상세 내용이 떠오릅니다.]

놈의 13번째 팔꿈치에서 13cm 떨어진 지점.

나머지는 전부 두꺼운 방벽이 버티고 있었기에, 어떠한 상처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었지만. 딱 하나.

그 부분에만 바늘 하나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다.

상위 신격들로부터 추가적인 마력을 공급받기 위한 숨구멍이겠지.

그렇다면.

[잃어버린 언어 ‘감각 극대화’, ‘반영구 고정’이 발동됩니다!]

“끄아아아, 뭐, 뭐야? 히이익! 이 고통, 이거, 왜, 왜, 왜, 왜 안 없어져!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뭔가 자잘 못 됐어. 잘못됐다고!” 

글라가가 마구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늑대에 물어뜯긴 자국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지저분한 고름을 만들어내며 더욱더 지독하게 상처를 악화시킬 뿐이리라.

좋아.

완벽하게는 아니었다만 그래도 적당히 끓는 속을 진정시킬 정도의 분풀이는 했다.

이제 뒤는 베리엘과 이집트 신격들에게 맡기고 원래 목적지로 향하면….

그리 생각하던 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형! 갑자기 사원을 공격하던 놈들이 죄다 물러가기 시작했어요! 이해가 안 되는 게… 쥬른이나 이알다골스 쪽이 시간만 있으면 다 이긴 싸움을 갑자기 포기했는데 대체 왜인지는…….

-접니다. 하스팅.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씀드리자면, 태고의 신격들이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육식계 씨앗’을 소환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진혁 플레이어님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시겠죠?

-그쪽도 정신없을 텐데, 미안하구나, 제자야. 월영과 음영대 쪽에서 보고하길. 북쪽에서 직경 1리에 달하는 안개 폭풍이 솟구쳐 올랐다고 한다. 서쪽에서도 이와 비슷한 크기의 마물이 양들의 요람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더구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바로, ‘양들의 요람’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겠다는 것.

하스팅이 말한 ‘육식계 씨앗’은 대거점 방어용으로 아자토스의 궁전이 공격받을 때나 사용하는 것이었고,

월영이 본 것은 ‘더 네임리스 미스트’와 고대 태고의 신격이 움직이는 걸 본 것이었다.

쥬른과 이알다골스 역시 아군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모멸의 사원’을 즉시 포기하고 회군을 택했다. 단순히 ‘양들의 요람’이라는 곳을 방어하기 위해 저 정도 수를 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

‘읽・・・혔다.’

진혁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저 반응과 대응.

최대거점 달성이라는 카드를 읽어냈다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내부에 있는 배신자의 존재 때문에 일부러 주공을 파악하지 못하게끔 병력을 분산시켰는데,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수면 아래 감춰진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해버렸다.

이 정도로 완벽한 외통수가 가능하려면 단 하나의 대전제가 뒷받침 되어야만 한다.

‘내 예전 행보를 알고 있었다는 건데…..’

과거 탑의 50층을 정복했던 방법.

그것은 슈브니구라스의 거점을 대거점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뒤, 몰려오는 태고의 병력들을 상대로 3시간을 버티는 것이었다.

뒤늦게 반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아자토스가 이를 막으려 했지만, 핵심 고유무장들을 봉인시켜뒀기에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지만, 이것 외엔 가능성이 없었어.’

모조리 데드 엔딩.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변수에 대비한들 전부 다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그 유일한 방법이 막히려고 하는 것이다.

***

울부짖는 회색 군도.

잃어버린 폭풍의 성채.

고대신들의 무덤.

3개의 위성 거점을 공략 중인 연합 측에서도 이변이 일어났다.

“모기이이이!”

고구마의 호령과 함께 날아든 드래곤 군단이 거대한 섬을 향해 불을 토했다.

“로드를 따르라!”

“아예 섬을 통째로 튀겨주지!”

화르륵!

콰콰콰콰콰!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뿜어내는 브레스가 작렬했다.

지름만 해도 700km에 이르는 거대한 군도였지만, 고대룡들의 화력은 그 넓은 영역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막강했다. 물론.

군도 역시 단순히 크기만 큰 곳이 아니다.

본격적인 대응이 이어졌다.

“므르릇.”

“아크라크….”

10m에 이르는 긴 날개를 가진 익룡들이 반응했다.

그 외에도 군도 전체에 걸쳐 서식하는 수많은 태고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침입자들에게 적의를 드러냈다.

[울부짖는 회색 군도에 거점의 가호 ‘그레이트 윙’이 부여됩니다!]

[거점에 거주하는 모든 비행 생물에 ‘이동속도 +20%’가 상승되며 ‘곡예비행’과 ‘위기감지’의 특수 효과가 추가됩니다!]

“그분의 영역이라 꽤나 오랫동안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거점의 보스 몬스터 ‘카이나문’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모처럼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구나.”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하층계의 용족.

감히 이 영역에 함부로 들어온 죄는 피로서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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