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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만렙 뉴비 856화


856화. 외(外)우주의 군주 ‘아자토스’ (1)

명령이 떨어지자 대대적인 총공세가 이어졌다.

이미 2시간이 넘게 이어진 전투로 인해 제대로 된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악신의 성역’이나 ‘대결’들 역시 80% 이상 기능이 멈춰버렸다.

“키에에에!”

“케에에에!”

오염된 쇼거스 군단들이 무림이 지키고 있는 측면을 파고들었다.

콰직!

우드득!

쓸려나가는 육편.

내공이 전부 소진되어버린 육체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으아아악!”

“아아악!”

무림이 무너지면서 길이 뚫렸다.

프레이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티본! 언데드로 지원해줘!”

부유성의 일부를 옮겨 만든 임시 거점.

뇌우를 사정없이 몰아칠 수 있게 만드는 이 방어벽이 사실상 차원의 틈새를 지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악신의 성역이나 대결계도 바로 이 부유성이 건재했을 때에만 기능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소리다.

“달그락! 알겠다!”

‘절망의 왕관을 쓴 티본이 유령 군마를 타고 거칠게 질주했다.

투두두두두!

데스나이트들이 빠르게 무림의 뚫린 공백을 메웠다.

“후훗. 진짜 위기로군요. 저 괴물들이라면 라이프 포스 베슬 따위는 있으나 마나겠어요. 아아. 드디어 이 몸도 진정한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요?”

베이로둠과 리치들이 이를 보좌하며 언데드로 이루어진 장벽을 구축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이겠지.

아무리 티본이 규격 외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저 초월급 괴물들을 넘어설 순 없었다.

‘소규모 지휘는 가능해도 이런 대규모 전투를 지휘하는 건 무리야 응. 부유성이 30분 안에 함락당할 확률은… 98.9%’

부유성 안에 있는 거라곤 펜다리엘과 무혼 등 탑의 저층부를 담당하던 보스급들.

이들 역시 최후의 순간을 위한 마지막 시간 벌이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바로 그때.

저벅.

고블린이 홍차 잔을 든 채 걸어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수확’을 통해서 부유성의 효율을 극대화하시죠.”

상급 관리자 하스팅이었다.

“무리. 그런 식으로 아군을 갈아 넣는 건 회사의 이념과 맞지 않아 응.”

“다 죽는다면 지킬 이념마저도 없어질 겁니다. 더군다나 상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들. 괴이에 맞서려면 그보다 더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도움이 안 되는 약자를 희생해 강자에게마저 한 방 먹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이것이 하스팅이 제안한 비책이었다.

“아직은…괜찮아. 버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건 정면에서의 힘 싸움을 담당하는 ‘제천대성’과 ‘우마왕’의 존재였다.

단신으로 각각 태고의 신격을 상대할 수 있는 히든카드들.

수백이 넘는 분신들이 여의봉을 휘두르며 태고의 몬스터들 사이를 누볐다.

퍼퍼퍼퍼퍽!

피보라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죽인 적의 숫자만 무려 7,000.

혼자서 한 일이라곤 믿기 힘든 전과였다.

“쳇! 언 놈이 왕관만 바꿔가지 않았어도 훨씬 더 쉬웠을 것을.”

제천대성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괜찮느냐?”

“숭원 장로가 방금 죽었습니다.”

“천강 장로도… 틀린 것 같습니다.”

일반 전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장로들도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다.

“왕들이란 것들도 죄다 나가떨어졌다. 인왕이나 저 무진룡 정도가 아니면 일각을 버티는 것도 힘들어.”

푸각!

우마왕 역시 한 손으로 쇼거스의 머리를 터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자신들도 이럴진대, 나머지 세력들이야 얼마나 처참하게 당하고 있겠는가?

쩌저적.

하늘이 무너진다.

조각조각 난 공간 너머로 형언할 수 없는 눈알들과 스산한 그림자들이 범람해 오고 있었다.

고작해야 필멸자들이 위대한 별의 저편에 도전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처럼.

“여기…까진가.”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니. 정말이지 지독한 존재들이로구나.”

모든 이들이 절망에 가득 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더 네임리스 미스트를 필두로 수많은 태고의 신격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

“포기하지 마라!”

누군가 외쳤다.

고대의 등반자들 중 하나이자, 결계사의 정점을 찍은 ‘벨토르’였다.

‘악신의 성역’과 ‘대결계’를 억지로 유지시키느라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수식을 맺기 위해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는 중이었다.

“우리가 포기한다면 우리만 죽고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소속된 곳에 있는 문화가… 역사가・・・ 나라가! 소중한 사람들이! 전부 다 사라지는 거란 말이다!”

그러니 죽더라도 1초라도 더 버텨라.

설령 이곳에서 전원이 뼈를 묻는다고 하더라도.

이 차원의 틈새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럴 만한 가치는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부상자들을 부유성 안쪽으로 보내. 응. 힘이 남는 자들 위주로 후방에 두 번째 거점을 만들 거야.”

어느새 프레이까지 부유성에서 나왔다.

무혼과 펜다리엘, 카라칼과 엘프들을 비롯해 비전투원으로 분류된 이들 역시 전부 밖으로 나와 있었다. 

“너희들은…”

“우리도 상대가 안 됐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격은 떨어지더라도 쉴 틈 정도는 벌어주겠다.”

“강하지 않다고 해서 등에 업혀서 갈 수 있겠나? 마지막 정도는 함께 하겠다.”

다 꺼져가던 불꽃에 새로운 열기가 깃든다.

그렇게 잔불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하나가 죽으면 둘이.

둘이 죽으면 열이 달라붙는다.

생존 따위는 계산 자체에 넣지 않는 육탄 공격이 이어졌다.

고기 분쇄기.

이 무식하고 처절한 전투에는 그러한 명칭이 가장 잘 어울렸다.

“아직 멀었어?”

프레이가 고함을 질렀다.

“거의, 거의 다 됐다!”

벨토르가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대답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주 조금이면 이제 완성된다.

[고대 결계가 성유물의 구조를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벨토르가 ‘인연의 장- 신념을 잇는 끈’을 발동합니다!]

허공을 향해 황금색 실이 이어졌다.

[대상이 부름에 응답합니다!]

우우우웅!

부름과 수락에 의해서만 발동되는 소환식.

[발세테르가 거점 ‘모멸의 사원’의 차원 이동을 시전합니다!]

쿠쿠쿠쿠쿠!

차원의 틈새에서 나온 거대한 마력이 슈브니구라스의 사원을 불러들였다.

진혁이 사전에 만들어둔 대결계.

그리고 모멸의 사원의 주인과 양들의 요람의 주인이 같다는 동질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몸들 낮추십쇼 폭탄 들어갑니다!”

[이태민이 고유성창 ‘라스트 마이스터’를 발동합니다!]

콰콰콰콰콰콰쾅!

수많은 드론들을 필두로,

모멸의 사원을 빼곡하게 뒤덮은 타워들에서 마력탄이 발사되었다.

수천 개의 탄환들이 화염으로 이어지는 붉은 길을 만들었다.

“다들 고생했어요!”

“하아. 괴물들한테 간신히 살아남았더니 더 많은 괴물들이 바글바글한 곳으로 와버렸네.”

“흐음. 이것들만 잘 버티면 자유를 준다고 했지?”

“아무래도 나중에 피를 흠뻑 마셔야겠어. 시간을 들여서 아주 천천히.”

안드리아와 오필리아. 그리고 본능 덩어리로 구성된 엘리스와 테레사가 전장에 합류했다.

두근! 두근! 두근!

목덜미에 독사가 지나가면 이런 기분일까?

진혁이 눈앞에 나타난 존재를 보며 전신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아자토스.

정확히 말해 본체는 아니지만, 그 의념이 깃든 아홉 개의 분신 중 하나였다.

아주 새하얀 인간형의 모습에 이목구비라고 할 게 없다. 백지 위에 사람의 형태만을 그려둔 것만 같이 애매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수십억의 인구를 집어삼킨 것 같이 무겁고 복잡한 무언가가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그릴 수 있는 백지.

무와 무한을 한꺼번에 내포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외신들의 군주다.

‘바르어비스가 말한 대로군.’

49층에서 죽기 직전 키득이며 귓속에 속삭였던 정보.

그것은 아자토스의 분신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깨어났다는 거였으며, 그로 인해 50층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영역 붕괴, 신격의 소멸, 개념의 뒤틀림.]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백지화현상(白紙化現像)].

아홉 개의 분신 중 오직 ‘공허의 사도’가 깨어났을 때만 일어나는 색(色)과 혼(魂) 그리고 기억(記憶)을 없애버리는 재액이 일어났다. 분신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싫은 놈이 깨어난 것이다.

다행히 바르어비스가 말했던 게 거짓말은 아니긴 한데,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분명, 궁전 안에 온 이상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척 자체를 감지하지 못할 줄이야. 기껏 겹겹이 펼쳐둔 결계들이 전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내 보물창고에 있는 걸 털어간 걸로도 모자라 자기 입맛대로 변형까지 시켜버리다니. 장난치고는 조금 과하긴 하구나.”

아자토스가 진혁의 손에 있는 검과 총을 바라봤다.

표출된 건 약간의 짜증.

그 감정이 구현화되자 기록 보관소 전체가 보이지 않는 살기에 짓눌렸다.

쿠구구구구구!

분신은 본신의 힘을 1,000분의 1도 담지 못한다.

그런데도.

쿠쿠쿠쿠쿠쿠!

‘미쳤네.’

솔직히 말해 이 분신마저 1:1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진혁 씨!”

“계약자 이게 무슨….”

이변을 감지한 테레사와 엘리스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러다가 아자토스의 분신을 마주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거리라.

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격을 발산할 수 있는 건 시련의 탑 전체를 통틀어서 봐도 단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재수 없게 파밍 중에 보스몹한테 걸렸네요. 그나저나 찾으라고 부탁한 건 찾았습니까?”

“차, 찾긴 했는데요. 그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싸우는 건 둘째치고 도망칠 수는 있는 것이냐?”

“아마도…?”

만약 바르어비스로부터 어떤 분신체가 깨어났는지 사전에 듣지 못했다면 글쎄.

적어도 세 명이 전부 탈출하는 건 꿈도 못 꿨을 것이다.

하지만,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이상 확률은 더 이상 0에 수렴되어 있지 않다.

“달려요!”

진혁의 외침과 함께 엘리스와 테레사가 즉시 기존에 정해둔 도주로로 몸을 날렸다. “이곳에서 날 상대로 술래잡기라….”

아자토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셋을 보다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만용을 칭찬하는 의미에서 1분을 허락하도록 하지. 어디, 마음껏 도망쳐 보거라.”

[궁전의 주인이 움직이기까지 남은 시간: 0h: 0m : 59s]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분.

그나마도 아자토스의 흥미를 자극했기에 이 금쪽 같은 여유가 생겼다.

‘잔류월광’과 ‘백귀야행’을 사용한 진혁이 최대한 많은 표적을 만들어냈다.

“젠장. 이거야 완전히 파리 목숨이로군.”

“최대한 멀리 도망은 가볼게. 본체야.”

“그래도 알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분신들이 한 마디씩 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킥. 킥. 킥.”

“위대한 영혼들의 왕이시여.”

수많은 귀신들 역시 꾸역꾸역 쏟아졌다.

공포를 느낄 수 없는 귀신들이었기에 태고의 존재들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고 있겠지만. 아자토스의 분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야기는 또 다시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 틈에 이 기록보관소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최초의 혼돈이 있는 곳은 복도를 따라서 10km 정도를 더 가야 있어요.”

최종 목표가 있는 곳은 알아뒀다.

이제 거기까지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 저희는 이곳에서 승부를 볼 겁니다.”

진혁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

처음부터 아자토스의 분신체를 마주했을 경우 반드시 ‘기록 보관소’나 ‘보물창고’에서 싸울 계획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2개의 장소는 아자토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아둔 곳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힘을 쓰기에는 여러 가지로 꺼려질 수밖에.

게다가 저 녀석을 상대로 10km나 되는 거리를 따돌린다는 건 기적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였다.

놈도 그걸 알고 있으니 일부러 애매한 여유를 주면서 우리를 밖으로 내몰려고 한 거리라.

다시 말해.

놈의 분신을 상대하려면 여기가 최적의 장소라는 걸 아자토스 스스로가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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