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만렙 뉴비 870화
870화. 폭풍을 부르는 야유회 (1)
무림.
시련의 탑 중층부의 핵심 세력 중 하나인 의와 협의 세계.
이곳엔 현재 새롭게 등장한 문파로 인해 한창 떠들썩하는 중이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단 두 명이서 세운 문파인데 이미 천하제일문이라고 평가받는?”
“엄청나군. 그 이름이 뭐였더라? 추… 어쩌고였는데.”
도시 곳곳의 크고 작은 주루나 저잣거리는 물론.
“당장 전 지부에 알려라.”
“오결개 이상은 전부 불러 모아라. 방주께서 소집을 명하셨다.”
정보를 수집하는 하오문과 개방.
“껄껄껄. 이제 더 이상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아니게 되겠군요.”
“마침 매화가 많이 흐드러졌는데, 백매화를 피워내었다던 문주의 솜씨나 구경하러 가시죠.”
“아미타불.”
화산과 무당 그리고 소림.
“크하하! 신교에서도 사절을 보내야겠군. 음영대주 월영을 불러오거라.”
심지어 천마신교까지.
모든 이들이 새로운 문파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관심이다.
제국과 전쟁을 치렀을 당시에도 이토록 무림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정작 그 당사자들은 현재 한창 꽃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천공자. 이쪽이랍니다. 어서요.”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스승님. 너무 서두르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다 다치십니다.”
“후후. 하지만 햇살이 너무나 따스하지 않아요?”
추혼사영이 기지개를 켜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화려한 중국식 옷.
쏟아지는 햇살에 비치는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
그 모든 것은 오롯이 이 여인을 위한 장신구처럼 느껴졌다.
“아직 문파도 안정화되지 않았는데, 야유회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는 일단은 달콤한 천공자와의 신혼생활을 더욱 즐기고 싶은걸요? 게다가 아이를 잔뜩 낳아야 문파를 존속할 수 있지 않겠어요?”
추혼문(追魂門).
추혼사영과 천유성이 세운 문파다.
말이 문파지 당장은 세를 넓힌다거나 하는 대의보다는, 그저 둘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작은 텃밭이라고 봐야 옳으리라.
실제로 장원도 20평이 갓 넘는 수준에 불과했으니까.
싱그러운 풀밭과 작은 폭포가 있는 산골.
거기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였다.
바로 그때.
우우웅! 바로 근처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고유 능력 ‘기계 군주’가 발동됩니다!]
우우웅!
수십 개의 드론들이 도시락을 날랐다.
“누나. 과일이랑 디저트 따로 빼둔 건 챙겼어?”
“아하하. 미안. 깜빡했네.”
“에휴. 내가 두 번 체크하라고 했잖아. 바쁘게 나오느라고 머리에 뭐도 붙이고. 가만 있어 봐. 떼줄 테니까.”
이태민과 유연화도 서로 만나기 시작했다.
시련의 탑이 가상현실이었을 때부터 동고동락해오던 사이.
현실이 되어 인류의 멸망을 함께 막으며 쌓인 정은 결국 서로를 이성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 대세라는 연상연하 커플이 탄생한 것이다.
곧이어 두 사람이 천유성과 추혼사영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에 도달했다.
“여기예요!”
추혼사영이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늦었죠?”
“그거야 연화 누나가 늦잠 자느라… 어억. 며, 명치! 명치 맞았어.”
이태민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른 사람들은요?”
“진혁이 형도 안 보이고 엘리스 누님・・・ 아니, 형수님도 안 보이시네.”
“후후. 두 분이 가장 먼저 왔어요. 일단 차라도 한잔하세요.”
추혼사영이 향이 그윽한 용정차를 권했다.
호로록.
뜨거운 액체가 심신을 부드럽게 달랜다.
청산유수에 다과까지 곁들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이 지나자 고인물 코퍼레이션에 소속된 멤버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결혼식 이후 다들 바쁘게 사느라 다 함께 모이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다.
“이야. 보기 좋네. 유성이. 그리고 추혼사영 님. 잘 지내셨어요?”
진혁이 엘리스와 함께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모기이이!”
“미요오!”
“달그락.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칼슘 우유를 가져왔습니다. 후후.”
고구마와 후라이드 그리고 티본을 비롯해.
“헤헤. 우리도 왔어!”
“정령특전대 총 집합이야!”
“다들 조용히 해. 머리 아파.”
정령수들까지도 합류했다.
“쳇. 모처럼 여유를 즐기려 했는데, 엄청나게 시끄러워졌군.”
“시끌벅적하면 좋은 거지. 뭘 또 그래? 그나저나. 넌 밖에서 의사 안 하고 여기에 남기로 한 거 정말 괜찮겠어?”
진혁의 말에 천유성이 멈칫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더 이상 그 공부를 이어 나갈 수 없게 됐다.
“괜찮다.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될 테니까. 무엇보다….”
천유성의 시선이 추혼사영에게 향했다.
“더 소중한 걸 찾았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평소에 보기 힘든 따스한 표정.
그래. 그걸로 만족했으면 된 거겠지.
그 이후에도 프레이와 안드리아 발세테르와 베리엘 등을 포함해 수많은 이들이 모였다.
“크하하! 다들 건강해 보이는군. 지나칠 정도로 말이지. 허면, 이제부터 둘이 먹다가 둘 다 뒈질 때까지 마셔보자꾸나!”
암황이 술잔을 높게 들었다.
“오오오!”
“우리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가져왔다!”
“흣! 마계의 용암 돼지구이 맛을 보면 다른 음식은 쳐다도 보지 않게 될 거다.”
“저희도 포도주와 빵을 좀 준비해 봤어요.”
각 층계에서 온 화려한 특산물과 맛 좋은 술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기나긴 전쟁 끝에 온 평화.
폐허가 된 층계 복구작업을 하며 쌓인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릴 만큼. 지금의 휴식은 달콤하고 값졌다.
진혁 역시 풀 위에 몸을 뉘었다.
‘좋네.’
바람이 부드럽다.
공기가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게 눈을 감으면 1초 안에 잠들 것만 같았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서로가 쌓인 이야기를 나눈다.
추억을 회고하고.
무용담을 나누며.
과거의 영광과 긍지를 재현한다.
해피엔딩이었기에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지금의 시간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진혁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흐음. 이왕 이렇게 다 모였으니 뭔가를 걸고 게임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커피를 홀짝이던 릭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게임?”
“승부를 펼치자는 말인가?”
“호오. 그거 재밌겠군.”
곧바로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적당히 오른 취기와.
계속된 평화로 인해 억눌러온 혈기.
각 세력의 전사들이 마력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보상은 뭐지?”
“보상 따윈 필요 없다. 내가 최강이라는 걸 증명하면 그걸로 족하니까.”
“후후, 재밌는 말이로군요. 아누비스 당신 따위가 말입니까?”
파츠츠,
스파크가 일어나며 시작 전부터 신경전이 펼쳐졌다.
“음. 하지만, 어지간한 보물이라면 다들 이미 넘치게 가지고 있을 테니. 우승 상품으로 ‘왕관’을 추가하는 건 어때요?”
“왕관?”
“설마, 그 성유물을 말인가…?”
테레사의 제안에 모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 아니, 그 왕관 말고요. 제가 말하는 건 팀을 나눠서 우승한 쪽에게 이 야유회 한정으로 왕의 권력을 부여하는 왕관을 주자는 뜻이에요.”
절대 명령권.
24시간 왕이 하는 명령은 무조건 들어야 한다.
‘그 무엇이든 간에.
테레사와 가브리엘이 서로를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으음 어째 좀 불안한데.
모르긴 몰라도 뭔가 굉장히 안 좋은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소원….”
“소원이라 이 말이죠.”
왠지 프레이랑 안드리아도 묘하게 불타오르는 것 같은데.
착각일 거다.
・・・아마도.
“그건 제가 너무 불리할 것 같은데요. 사장으로서 이미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왕관까지는 필요하지 않거든요.”
진혁이 당연한 논리를 펼쳤다.
사원=노예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회사의 방침상 이미 절대 명령권은 가지고 있다.
“으음. 그렇다면 진혁 님에게는 제 상단에 있는 아이템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그토록 궁금해하시던 탑 49층에 있는 유적의 비밀 통로를 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뭣하면 제가 길잡이 역할까지 해드리도록 하죠.”
수리부엉이 역시 한 가지를 추가로 걸었다.
젠장. 이러면 더욱더 거절하기 힘들어지잖아.
진혁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괜찮다.
어차피 팀 게임 아닌가?
‘엘리스야 당연히 내편일 테고.’
고구마와 후라이드 그리고 정령수들 역시 감히 배신하지 못할 거다.
마지막으로 저 멍청한 검성과 추혼사영만 끌어들일 수 있으면 패배할 요소 따윈 없겠지.
이미 승리를 위한 공식은 만들어져 있었다.
“좋아요. 한번 해보죠.”
그렇게 고인물 코퍼레이션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
내전 규칙.
1. 팀은 4인에서 최대 20인까지 구성된다.
2. 각 팀의 리더가 가지고 있는 작은 왕관을 빼앗는 게 포인트.
3. 범위는 태행산맥 전체다.
4. 수단과 방법은 자유이며 3시간 후 가장 많은 왕관을 확보한 최종 한 팀이 우승한다.
경기 시작은 1시간 뒤,
그전까지 팀을 만들고 작전을 짤 시간이 주어졌다.
“엘리스. 우선 최대한 우리 쪽에 붙을 수 있는 애들을 모아보자.”
진혁이 엘리스와 머리를 맞댔다.
아니.
맞대려고 했다.
“미안하구나 계약자. 하지만, 이번에는 그대와 따로 팀을 이뤄야 할 것 같다.”
“응? 다른 팀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그치만, 왕관만 얻으면… 계약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엘리스의 눈빛이 천천히 광기로 물들었다.
어두운 욕망이 꿈틀거린다.
대체 뭘 하려고 저러는 건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엘…리스?”
“전력을 다하거라. 짐 또한 그리 할 것이니.”
그런 말만 남긴 엘리스가 그대로 사라졌다.
젠장.
뭔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단단히.
뒤늦게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진혁이 빠르게 동료들을 모으기 위해 자리를 박찼다.
“글쎄. 예전부터 느낀 거였지만, ‘무’라는 건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말이지. 이참에 확실하게 1승을 따낼 생각이다.”
“후후. 저는 천공자와 함께 할 거랍니다.”
천유성과 추혼사영이 등을 돌렸고,
“모기이이!”
“미요오오!”
“헤헤. 주인 이번엔 전쟁이야!”
“왕관만 얻으면 진짜로 우리가 받은 거에 딱 0.1%만 되돌려줄게.”
믿었던 고구마와 소환수들이 배신을 했다.
“함께 해서 원하는 걸 얻을 확률은 0%. 대신 경쟁을 할 경우에 왕관을 얻을 확률은 22.85%야. 응.”
“헤헤! 저도 힘내볼 거예요!”
프레이와 안드리아 역시 적으로 가길 선택했다.
“이번에야말로 마신으로!”
“태양의 사도로 만들어 주겠다!”
멍청한 세력의 우두머리들에겐 기대도 하지 말았어야 했거늘.
젠장. 이 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편이 한 명도 없다니.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게 뭔지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0H: 58M: 44S]
남은 시간은 고작 1분.
이제는 정말로 혼자 게임에 임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