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1권 – 26화 : 전복위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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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1권 – 26화 : 전복위화(3)


전복위화(3)

“그나저나, 아버지를 어떻게 구하지? 숨어 버 린 풍야패나 산적들을 찾아내서 끌고 가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리는데.”

뇌옥을 빠져나온 뒤, 설우진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아버지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눈으로 확인한 탓이다. 그런데 조바심이 커질수록 좋은 방도가 떠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하게 뒤엉켰다.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게 앞에 서 있는 헐벗은 허수아비가 눈에 들어왔다. 포쾌들이 중요 증거물이라며 대호 장포를 가져가는 바람에 허수아비는 맨몸을 드 러낼 수밖에 없었다.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허수아비를 보는 순간, 설우진은 문득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대호 장포를 팔라고 가 게를 찾아왔던 제갈윤이었다.

‘그자라면 분명 아버지를 구명할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대호 장포 스무 벌을 내주는 한이 있 더라도 반드시 그의 도움을 얻고야 말겠어.’

설우진은 발걸음을 돌려 곧장 제갈세가로 향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벽뢰진천의 뇌기를 한껏 끌어올려 두 다리에 집중했다.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발바닥.

사나운 뇌기를 발산하며 그의 신형이 밤하늘을 꿰뚫고 사라졌다.

“둘째 공자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서재 밖.

강직한 인상의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용무를 전했다.

‘이 늦은 밤에 누구지?”

책상 앞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던 제 갈윤이 책장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재 에서 나온 그는 수문위사인 제갈위강을 따라 정문으로 향했다.

제갈세가는 그 명성에 어울리게 곳곳에 절진 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 는 무영진이었다. 이를 보여 주듯 평범한 길을 걷는 건데도 앞서가는 제갈위강의 이마에는 땀 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에 반해 뒤를 따르는 제갈윤의 신색은 평온 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 정도 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반각여쯤 지났을까.

큼지막한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갈세가의 기개를 상징하는 의천문이었다.

의천문을 지나니 뜻밖의 손님이 얼굴을 보였다.

순간, 제갈윤의 두 눈에 진한 이채가 떠올랐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밖에서 초조하게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설우진이 다짜고짜 그의 손을 붙잡고 애 원했다.

“도와줄 테니 진정하고 차분히 얘기해 봐.”

“시, 실은 아버지께서 오늘 포쾌들에게 잡혀 가셨어요.”

“어쩌다가?”

제갈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심각한 사안임을 인지한 것이다. 설우진은 그간에 있 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풀어 설명했다. 물론 풍 야패와 자신이 얽혀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음, 골치 아픈 곳과 엮여 버렸구나. 대원 포 목점 하나만 상대하는 일이라면 문제될 게 없 는데,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세력이 문제다.” 

“그게 무슨?”

“대원 포목점은 천중 상단의 지원을 받는 사 업체 중 하나다. 그 말은 곧 천중 상단이 대원 포목점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뜻이지.”

천중 상단.

단순한 상단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름이 지닌 무게가 상당했다. 천중 상단은 천하십대상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을 정도로 그 규모가 대 단했다. 특히, 무한을 기점으로 촘촘히 구축된 상권은 이 일대에서 그 상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탄탄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 니. 왜 여기서 수전노 강 영감하고 얽히느냐고.’ 설우진은 천중 상단이란 이름을 듣고 순간 눈 앞이 캄캄해졌다. 그와 천중 상단은 전생에 적 잖은 인연을 맺은 바 있었다. 그의 입장에선 악 연에 가까웠다.

상단과 낭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론, 상단이 절대 갑이고 낭인은 절대 을이다.

그 불공평한 관계 속에서 설우진은 여러 번 천중 상단의 일을 수행했다.

천하에 이름난 상단답게 보수는 꽤 센 편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약속된 보수를 제대로 받 은 적이 없었다. 단주라는 인간이 별 거지 같은 이유를 들어 매번 차감을 한 때문이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설우진이 애타게 제갈윤을 바라봤다.

지금으로선 그 말고 다른 희망이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뒷짐만 지고 서 있던 제갈윤이 어렵게 입을 뗐다.

“지금으로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설우진이 귀를 쫑긋 세웠다.

역시 그는 회귀 전 쌍룡맹에서 최연소로 군사 직에 오른 이답게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묘 책이 있었다.

“그건 바로 대원 포목점의 자리를 설가 포목 점이 차지하는 것이다. 천중 상단은 철저히 이 익에 따라 움직이는 집단이다. 만약 설가 포목 점이 대원 포목점보다 더 돈이 된다고 판단한 다면 그들은 주저 없이 설가 포목점을 택할 것 이다.”

“그게 가능한 얘긴가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설가 포 목점에는 대원 포목점에 없는 뚜렷한 강점이있다. 그것은 바로 너와 자당의 자수 실력이지.”

‘분명 일리 있는 얘기야. 은전 열 냥짜리 비단도 우리 모자의 자수가 들어가면 최소 세 배에 서 많게는 열 배까지 값이 뛰어. 돈에 환장한 그 영감이라면 우리 모자의 값어치를 충분히 꿰뚫 어 볼 거야.’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머릿속이 한순간에 확 틔었다.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하나 보다.

설우진은 급하게 천중 상단에 다리를 놔 달라 청했다. 제갈윤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무한 중심부에 자리 잡은 천중 상단의 총단. 세간에 알려진 명성을 떠올린다면 웅장한 건 물들이 즐비해 있을 것 같지만, 실상 총단 자리 에는 다 낡아 빠진 삼층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만약, 입구에 천중 상단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버려진 건물이라 착각 했을 정도였다.

잠시 후, 총단 건물 앞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섰던 설우진과 제갈윤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거라. 총관과 연이 있으니 곧 단주님과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 게다.”

제갈윤이 한발 앞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막는 이 하나 없었다.

설우진은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밖을 배회 했다.

바로 그때, 누렁이 한 마리가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왔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인상이었다.

개가 달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한 노인이 오른 손에 몽둥이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설우진의 얼굴을 발견하더니 냅다 소리쳤다.

“그 개놈 새끼, 잡아!”

노인답지 않게 목청이 우렁찼다.

설우진은 누렁이와 노인을 번갈아 쳐다보다 이내 누렁이 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으르렁.

뿔난 누렁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그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설우진은 가볍게 몸을 옆으로 젖혀 누렁이의 이빨을 피함과 동시에 가볍게 오른 발끝을 차 올렸다.

깨갱.

누렁이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설우진의 발아래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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