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2권 – 18화 : 협의지행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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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2권 – 18화 : 협의지행 (3)


협의지행 (3)

“보다시피 날 노리는 자들이 많아. 해서 당신들이 내 호위가 돼 줬으면 해.”

“우, 우릴 호위로 쓰겠다고?” 세 사람은 화들짝 놀랐다.

낭인에게 전담 호위를 맡기는 경우 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비용이 부 담되는 건 둘째 치고, 호위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는 무공 수준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 사람도 낭인들 사이에선 상급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실상 그 무공은 일류에도 미치지 못했다.

“왜지? 우리 위약금까지 대신 물어 줄 정도의 재력이면 정통파 무인도 충분히 고용할 수 있을 텐데.”

“후훗, 그냥 취향이라고 생각해. 난 틀에 박힌 사람보다는 낭인들처럼 자유분방한 이들이 좋거든.”

‘그리고 뭣보다 역마삼귀를 곁에 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도 하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은 설우진의 진 실한 속내.

그 안에는 세 사람에 대한 소유욕 이 숨겨져 있었다.

역마삼귀는 설우진이 낭왕 시절에 거두지 못한 몇 안 되는 낭인 부류중 하나였다.

그들은 낭인이면서도 정통 무인 못 지않은 위명을 떨쳤다. 특히 체술과 궁술, 암기 분야에서는 중원 전체를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였 다.

그래서 설우진도 그들을 적극적으 로 낭천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 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 로 끝이 났다. 자신들은 한곳에 머 무르길 원치 않는다는 게 거절의 이 유였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 데, 이쯤에서 내 제안에 대한 답을 주지. 슬슬 학관으로 돌아가 봐야 할 시간이거든.”

설우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매만졌다. 별 것 아닌 행동 같지만 세 사람은 큰 위협을 느꼈 다.

-철형, 어떻게 할 거야? 저 자식, 거절하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센데.

사도치가 설우진의 주먹을 눈짓으 로 가리켰다.

‘그래, 뭐든 죽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고 호위도 학관에 다닐 동안만 하면 될 테니 길어 봐야 삼 년.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 

긴 고민 끝에 철운성은 설우진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은 연중에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그이기에 사도치와 맹기담도 순순히 그 의 결정에 따랐다.

“잘들 생각했어. 의뢰를 쫓아 정처 없이 떠도는 것보단 내 곁에서 일하 는 게 훨씬 편할 거야. 그리고 이건 내 호위무사가 된 기념으로 주는 첫 번째 선물이야.”

설우진이 동전을 튕겼다.

누런 황금빛이 나는 것이 틀림없는 금전이었다.

‘이게 웬 횡재냐.’

물욕 넘치는 사도치가 잽싸게 금전 을 낚아챘다. 철운성이 눈을 부라렸 지만 그는 특유의 뻔뻔한 미소로 일 관했다.

“이 돈은 뭐지?”

철운성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순간적으로 거지 동냥을 받는 느낌 이 든 것이다.

“기분 나빠할 것 없어. 그 돈 너희 들 새 옷 사라고 주는 거야. 지금 입고 있는 옷 꼬락서니들을 봐. 대 체 얼마나 그 한 벌로 버틴 거야? 상급 낭인이면 벌이가 나쁘지도 않 을 텐데.”

설우진이 세 사람의 옷을 가리켰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세 사람. 설우진의 지적대로 그들의 옷 상태 는 엉망이었다. 오래 입어 해진 건 둘째 치고, 제대로 빨지도 않았는지

옷 구석구석에 얼룩이 가득했다.

“흠흠, 이 돈은 고맙게 쓰지.”

철운성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해 대며 사도치의 손에서 금전을 빼앗 았다. 사도치가 빼앗기지 않으려 안 간힘을 썼지만 체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철운성의 악력을 이겨 내지는 못했다.

‘후훗,소문대로 재밌는 놈들이네. 앞으로 지루할 새가 없겠어.’

설우진은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을 보며 입꼬리를 크게 말아 올렸다.


“뭐, 실패했다고?”

“그게, 표적이 삼인방을 돈으로 매수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 쪽에 지불해야 할 위약금까지 놈이 책임지겠다고 했다 고?”

설우진에게 정보를 팔았던 점소이, 냉무룡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는 이번 의뢰가 실패할 리 없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다.

다른 낭인도 아니고 셋이 뭉치면 절정의 고수도 맞상대가 가능하다는 역귀삼인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 역귀삼인방은 자존심이 강해서 돈으 로 매수될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곳이 위험해. 표 적이 날 가만둘 리 없어.’

냉무룡은 다급히 부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부랴부랴 돈과 장부를 챙겼 다.

“표적이 찾아오거든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 떠났다고 해라. 며칠 안 가에서 쉬다가 잠잠해지면 돌아오 마.”

냉무룡이 부하에게 신신당부를 하 며 가게를 나섰다. 그런데 문을 여 는 순간 그의 복부 한복판으로 발이 날아들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퍽.

냉무룡의 신형이 객잔 안으로 튕겨 들어갔다. 잘 정돈되어 있던 탁자들만 애꿎게 주변에 나뒹굴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가게 안으로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냉무룡은 가슴 이 철렁했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표적과 마주한 것이다.

“우린 할 얘기가 참 많은 걸로 아 는데. 그렇게 누워 있지 말고 이쪽 에 앉아. 남자답게 허심탄회하게 얘 길 나눠 보자고.”

설우진이 지난번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던 자리로 냉무룡을 불렀다.

‘다시 도망칠까?’

냉무룡은 설우진의 눈치를 살피며 발끝에 은밀히 내력을 모았다. 그가 노리는 건 부엌에 나 있는 쪽문이었 다. 쪽문에는 추적자를 막기 위한 기관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냉무룡은 잠깐의 망설임 끝에 허리에 꽂아뒀던 단도 하나를 조심스럽 게 집어 들었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척하 다가 잽싸게 몸을 돌려 단도를 집어 던졌다.

단도가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설 우진이 앉아 있는 창가 쪽으로 날아 갔다. 내기를 머금고 있어 제법 위 협적으로 느껴졌다.

그사이 냉무룡은 부엌으로 내달렸 다.

쓰러진 지점과 부엌까지의 거리는 대략 삼 장여, 딱 세 걸음만 내디디 면 됐다.

한데 냉무룡은 마지막 세 번째 걸

음을 내딛지 못했다. 발을 뻗으려는 찰나 설우진에게 목덜미를 잡힌 것 이다.

“후훗, 사내답지 못하게 이게 무슨 짓이야? 잘못을 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 그렇게 지레 겁먹고 도망 치면 되겠어?”

설우진이 지그시 손가락에 힘을 줬 다. 가볍게 누른 것 같은데 냉무룡 의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됐다.

“커, 커억. 사, 살려 주십시오. 누, 누가 공자를 해하려 했는지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숨통이 조여 오는 고통에 냉무룡은 다급히 설우진이 원하는 바를 얘기 했다.

“진즉에 그렇게 나왔으면 좋잖아. “누구야?”

“황룡 학관의 양수란 잡니다.” 

“양수?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공자께서 모르신다면 저희도…..”

“모른다는 소린 하지 마. 일이 잘 못됐을 경우를 대비해 너희 쪽에서 도 따로 조사를 해 뒀을 거 아니야?”

설우진은 흑야의 생리를 훤히 꿰고 있었다.

낭인 시절에 지겹도록 이용을 했으 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하하, 역시 날카로우시네요. 사 실 양수는 하수인에 불과하고 실제 의뢰인은 백무영입니다. 저희가 조 사한 바에 따르면 공자께서 영입 제 안을 거절한 뒤로 쭉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냉무룡은 그간에 조사한 내용들을 순순히 털어놨다. 더는 설우진을 속 일 수 없다 판단한 것이다.

“역시 돼지 놈이 문제였네. 언제고 큰 사달을 낼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칠 줄이야. 뭐, 늦게라도 알았으면 됐지. 이제부터 배로 갚아 주면 되니까.”

설우진은 이번 일을 조용히 넘길 생각이 없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의 생활신조였기 때 문이다.

끓어오르는 살기에 손끝에 절로 힘 이 들어갔다.

“커, 커억. 이, 이건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워, 원하는 대로 다 말씀 드렸는데.”

냉무룡이 힘겹게 말을 뱉었다.

이에 설우진은 얄밉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정산!”

“아, 삼인방의 위약금을 대신 내주 신다고 했었지요? 한 명당 금자 서 른 냥, 총 아흔 냥인데 특별히 제 권한으로 열 냥을 깎아 드리겠습니 다. 여든 냥만 주십시오.”

목줄이 잡힌 와중에도 냉무룡은 특유의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그걸 왜 나한테 달라는 건데?”

설우진이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이에 냉무룡은 잔뜩 인상을 쓰며 대화를 이어 갔다.

“공자님께서 삼인방을 고용하지 않 으셨습니까? 그럼 당연히 그들이 내 야 할 위약금도 책임을 지시는 게 맞는 거지요,”

“그럼 내가 입은 신체적, 정신적 피해 보상은? “

“……그건 당사자들끼리 해결을 보 셔야지요. 저희 흑야는 중개인일 뿐 입니다.”

“아, 책임을 회피하시겠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그게 저희 업 계의 오랜 관례인지라.”

“관례 좋지. 근데 그게 목숨보다 소중할까?”

설우진이 가볍게 냉무룡의 목을 감 싸 안았다. 냉무룡은 팔을 떨쳐 내 려 안간힘을 썼지만 무쇠 같은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냉무룡은 돈을 더 깎았다.

금자 아흔 냥의 딱 절반. 마흔닷냥.

“이, 이게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최 선입니다. 그 이상은 곧 죽어도 안 됩니다.”

“그럼 죽어야겠네.”

설우진이 남은 오른손으로 냉무룡의 왼쪽 턱을 억세게 붙잡았다.

‘이, 이 자식,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잖아. 이러다가 진짜 죽겠는 데.’

냉무룡은 진심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

처음엔 단순한 협박인 줄 알았는데 설우진이 구사하는 기술을 보고 있 자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결국 그는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항복했다.

“위약금 다 까 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그깟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이 자식아, 그게 말이 쉽지. 너처럼 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태어난 놈들은 몰라. 이 밑바닥에서 돈 모 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냉무룡은 설우진의 위로 같지 않은 위로에 가슴이 울컥했다. 하지만 끝 내 속의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 다.

“이것도 인연인데 종종 놀러 올 게.”

설우진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뤄 낸 뒤, 유유히 용강객잔을 빠져나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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