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3권 – 22화 : 녹림 혈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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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3권 – 22화 : 녹림 혈사 (1)


녹림 혈사 (1)

“요 며칠 밖이 시끄럽던데. 누구 아는 사람 있냐?”

압도적인 머리의 소유자 대호가 주 변을 빙 둘러보며 물었다. 그는 커 다란 머리를 이용한 철두공에 능했 다. 무쇠로 만들어진 두툼한 칼도 그의 머리 앞에선 반동강이 날 정도 였다.

“큰형님, 그렇지 않아도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거지 놈을 하나 잡아 왔 습니다.”

대호의 오른팔인 광호가 그의 면전에 얼굴이 묵사발이 된 거지를 내밀 었다.

대호는 거지의 뺨을 가볍게 두들기 며 물었다.

“거지 놈들이 여긴 무슨 일로 찾아 온 거야?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그, 근처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무슨 사고?”

“천중 상단이 털렸습니다. 그리고 함께 동행 중이던 소녀 하나가 납치 됐습니다.”

거지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순순히 털어놨다. 뼛속까지 스며든 구타의 공포가 절로 입을 열게 만든 것이 다.

“가만, 가만, 적호! 혹시 박룡채하고 막도채에서 최근에 작업 벌인 적 있냐?”

대호가 붉은 머리를 하고 있는 날 렵한 체구의 사내를 불렀다. 눈매가 날카로운 적발의 사내는 대호채의 눈과 귀 역할을 하고 있는 적호였 다.

그의 물음에 적호는 묵직하게 고개 를 가로저었다.

“그럼 대체 어떤 간 큰 놈들이 우 리 구역에 와서 몰래 작업을 벌였다는 거야?”

대호의 목소리가 커졌다.

산적들은 구역 문제에 민감했다. 구역은 바로 자신들의 밥줄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 밥줄을 자신의 허락도 없이 건드렸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대호는 부랴부랴 부하들을 한자리 에 소집했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 을 알리며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빠 짐없이 찾으라고 명했다.

그런데 부하들이 산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사나운 굉음과 함께 문짝이 안쪽으 로 튕겨져 들어왔다. 놀란 산적들이 황급히 좌우로 흩어졌다.

잠시 후 설우진을 필두로 네 명의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얼음장을 깔아 놓은 듯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이곳 대가리가 누구냐?”

설우진이 초장부터 거칠게 말을 뱉었다.

지금 그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단예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 이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 것이다.

“형님, 저 애새끼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제 가 나가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 다!”

광호가 씩씩대며 앞으로 나섰다.

한데 무슨 일인지 대호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형님!”

“광호, 상대를 보고 덤벼라. 저 뒤에 서 있는 세 사람…….”

대호의 시선이 설우진을 넘어 그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에게 고정됐 다. 그들은 일전에 설우진의 호위로 고용된 역마삼귀였다.

“산적 놈들이 눈썰미가 제법 좋네. 우릴 한눈에 알아보다니. 근데 너희 들 좆 됐어.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 람을 건드렸거든.”

사도치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며 얄밉게 말을 뱉었다.

‘설마 그 작업 때문에?’

대호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자신들의 구역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자신들 은 결백하지만 이를 갈고 온 천중 상단에서 이를 순순히 믿어 줄리 만무했다.

‘아까 그 싸가지없는 말투도 그렇 고. 저 젊은 놈이 천중 상단의 실무 자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역마 삼귀가 움직이기 전에 놈부터 설득 해야 해.’

대호는 떨리는 가슴을 추스르고 조 심스럽게 설우진에게 다가갔다. 그 리고 자신이 대호채의 채주임을 밝 히며 천중 상단은 자신들이 작업한 게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네놈들 짓이 아니다? 그걸 뭘로 증명할 수 있지?”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천중 상단의 상행에는 십수 명의 호병들이 따라붙습니다. 한데 보다시피 저 희 식구들은 밥 짓는 놈들까지 모두 합해도 그 숫자가 오십에도 못 미칩 니다. 작정하고 덤비면 이길 수는 있겠지만 저희 쪽도 과반수 이상 죽 어 나갈 텐데, 그런 미친 짓을 저희 가 왜 하겠습니까?”

“이곳에 너희 말고도 비슷한 규모 의 산채가 둘이나 더 있다고 하던 데?”

“박룡채와 막도채를 말씀하시는 거 라면 그놈들하곤 최근에 얼굴도 맞 댄 적이 없습니다. 반년 전쯤에 함 께 작업 들어갔다가 크게 피를 본 적이 있어서.”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반년 전에 세 산채가 뭉쳐 서 함께 상단을 턴 적이 있었다. 목 표는 고려에서 넘어온 양질의 인삼 이었다. 비싼 물건이라 그런지 상행 에 참가한 호병들의 숫자는 거의 서 른에 육박했다.

피 튀는 혈전이 벌어졌다.

세 산채에서 각각 서른 명의 인원 을 차출했기에 수적으론 그들이 유 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한데 그들에겐 치명적인 문제가 있 었다.

바로 지휘 체계가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수적 우위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다.

결국 하나 되어 움직이는 호병들의 거센 저항에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세 산채 간의 왕 래는 뚝 끊겼다.

“너희들이 저지른 게 아니면, 대체 누구야?”

“그, 그건 저희도………….”

“모른다고 지껄일 거면 입 걸어 잠 가. 그따위 소리나 들으려고 여기까 지 찾아온 게 아니니까.”

‘그럼 대체 우리보고 어쩌란 거 야?’

대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신들이 한 짓도 아닌데 혼자서 독박을 쓰게 생겼으니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한데 그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설우진이 박룡채와 막도채의 채주도 이곳으로 불러오라 시켰다. 이에 대 호는 적호를 불러 은밀히 귓속말을 전했다.

-놈들한테 이곳의 사정을 전하고 애들 좀 빌려 달라고 해. 그리고 거 부하면 한패로 몰아 버린다고 적당 히 싸질러.

대호의 뜻을 전달받은 적호는 그길 로 곧장 박룡채로 향했다.

한 시진 뒤.

대호채로 일단의 무리가 몰려왔다. 박룡채와 막도채의 식구들이었다.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려는 듯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병장기가 들려 있었다.

‘왔구나. 저 정도 숫자면 아무리 역마삼귀라도 겁을 먹을 테지.’

백대호는 그들을 보고는 입가에 진 한 미소를 그렸다.

한데 그 미소는 오래 가지 못했다. 말을 전하러 갔던 적호가 피투성이 가 된 얼굴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크크큭, 백대호! 네놈이 녹림 망 신은 다 시키는구나. 저깟 낭인 놈 들이 무서워 내게 애들을 빌려 달라 부탁하다니.”

박룡채의 채주 차승후가 적호의 머 리채를 잡아 올리며 백대호와 눈을 맞췄다.

“차승후.”

“아아, 그렇게 죽일 듯이 쳐다보지

마. 네가 바라던 대로 애들 데려왔 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차승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에 도열해 있는 산적들을 눈짓으로 가 리켰다.

그 숫자는 대략 오십에 육박했다.

“언제부터냐?”

“뭐가?”

“네 뒤에 서 있는 놈, 막도채 부두 령 아니냐?”

“호오, 그걸 알아봤어? 역시 우리 대호가 눈치 하나는 정말 빠르다니 까. 그럼 내가 왜 여길 찾아왔는지도 짐작하겠지? 우리 조용히 끝내자.”

차승후의 두 눈에 진한 살의가 번졌다.

그는 오래전부터 차수산을 독차지 할 야심을 품고 있었다. 자신에겐 그만한 능력과 자격이 있다고 여겨 서다.

그는 녹림십팔가가 만들어지기 이 전, 그러니까 녹림십팔채라는 이름 으로 불리던 시기에 녹림왕을 여러 차례 배출했던 흑룡채의 마지막 남 은 후인이었다.

흑룡채의 후예답게 그는 최절정에 근접한 무공 실력을 자랑했다. 하지 만 그는 단 한 번도 대호 채주나 막도 채주 앞에서 그 실력을 내보이지 않았다.

설익은 상태에서 먹기보다는 먹기 좋게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심산이었다.


“공자님, 아무래도 한바탕 붙을 것 같은데요? 여기 있다가 괜히 휘말리 지 마시고, 싸움이 끝난 후에 다시 오시지요.”

사도치가 조심스럽게 물러날 것을 종용했다.

한눈에 차승후가 만만치 않은 실력 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설우 진은 그의 충고를 가볍게 무시했다. 

“네놈이 막룡채의 두목이냐?”

설우진이 차승후의 정면에 서서 물었다.

차승후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머 금으며 대화를 이었다.

“어린놈이 배짱 하나는 두둑하군. 그래 내가 막룡채의 두목 차승후다. 내게 무슨 볼일이지?”

“사흘 전, 내 여동생이 이곳에서 납치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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