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29화 : 황궁 염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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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4권 – 29화 : 황궁 염문 (2)


황궁 염문 (2)

“무슨 그런…….”

설예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딸 을 바라봤다.

“저 때문에 일부러 그곳에 갇혀 계 셨던 거잖아요, 제가 험난한 황궁에 서 무사히 커 갈 수 있도록.”

“그걸 아는 녀석이 제 스스로 멍에 를 뒤집어써?”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쓸 수 있어요. 그리고 뭣보다 그들에게 더는 휘둘리고 싶지 않았어요.”

주소령의 두 눈에 강한 적의가 떠올랐다.

“설마 이 어미 때문이냐?”

“……”

‘이런 바보 같은. 령아를 위하자고 한 행동이 되레 족쇄가 됐을 줄이야……..’

설예군은 주소령의 얘길 듣고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미안하구나. 이 어미가 어리석었 다. 네게 부담될 줄 알았다면 차라 리 이 황궁을 떠나는 게 나았을 것 …….”

“그런 소리 마세요. 자주 보지는 못했어도 황궁이란 한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한텐 큰 위안이 됐어요.”

두 모녀는 그간에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참으로 보기 좋 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를 편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오해가 풀리셨으면 멱살 좀 푸시 죠. 목 언저리가 다 얼얼합니다.” 

설우진이 설예군에게 나지막한 목 소리로 청했다.

그제야 그녀는 꽉 틀어쥐고 있던 멱살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차가웠다.

“이제 어쩔 셈이냐? 소문이 그리 퍼졌으니 앞으로 네 혼처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그건 걱정 마세요. 세상에 반이 남잔데 제 짝 하나 없겠어요? 그리고 저도 어머니처럼 제 짝은 스 스로 찾아낼 거예요, 이 갑갑한궁을 벗어나서!”

“후회하지 않겠느냐?”

“화초로 늙어 죽느니 들꽃이 되어 세상을 노니는 게 나아요.”

“네가 정 그리 원한다면 더는 말리 지 않으마. 대신 세상 밖으로 나아 가기 전에 가문의 무공을 익히도록 해라, 그 사갈 같은 계집들이 황궁 밖에서 널 노릴지 모르니.”

‘이걸로 내 역할은 끝난 것 같군. 나살문에 들러서 배당받고 열린 공방도 본격적으로 문을 열도록 해야 겠어.’

“공주님,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설우진이 주소령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 이곳에서 마무리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사나흘 정 도는 더 머물 생각입니다.”

“그것 잘됐네요. 조만간 궁을 나서 는 대로 한번 찾아갈게요, 이번 일 에 대한 고마움을 표할 겸.”

‘선물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그럼 오성각으로 찾아오십시오.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곳에서 머물 겁니다.”

설우진은 숙소를 알려 준 뒤 그대 로 백화전을 빠져나갔다. 주소령은 그의 모습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의 등판에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설마, 소령이가 진짜 저 불한당 같은 놈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니겠 지?’

설예군이 불안한 눈으로 옅게 홍조 띤 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우당탕!

오성각에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다.

소란의 주인공은 벽라점의 총점주 고성만이었다.

“점주님, 술을 너무 과하게 드신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그만 댁으로 돌아가시죠.”

여느 때처럼 점소이로 분해 있던 유설하가 정중히 돌아갈 것을 청했 다.

하지만 고성만은 막무가내로 버텼 다.

뭐 거기까지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그의 재력이라면 충분히 술 값을 감당해 낼 수 있기에.

그런데 문제는 그가 다른 손님들까지 쫓아낸다는 데에 있었다.

“이것들이 뭘 꼬나봐! 네놈들도 우리가 황궁 경연에서 미끄러졌다고 우습게 보는 거야?”

고성만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에 손님 들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하나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와 시 비가 붙어 좋을 게 없다 판단한 것이다.

“좋게 말로 할 때 그만 가시죠. 이 이상은 저희도 봐 드릴 수 없습니 다.”

유설하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고성만이 기습적으로 그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게 다 네놈들 때문이야, 경연이 열리기 전에 그놈만 제대로 처리했어도 우리 벽라점이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는데.”

“이거 놓으시죠. 저희는 의뢰에 충 실히 임했습니다.”

“과정이 좋으면 뭐해? 결과가 형편 없잖아! 네놈들, 다 깡그리 뇌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 북경 한복판에서 칼 장사 한다고.”

“입조심하시죠. 저희도 참는 데 한 계가 있습니다.”

“네깟 놈들이 안 참으면 어쩔 건 데? 북경 한복판에서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고성만이 머리를 들이댔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객기의 표현이었다. 

‘저 진상을 어떻게 하지? 여기서 처리했다간 뒤탈이 날 게 분명한 데.’

유설하는 난감했다. 맘 같아선 조 용히 데려가 야산에라도 파묻어 버 리고 싶은데, 그를 보는 눈들이 많 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진상을 처리해 줄 반가운 얼굴이 식당 안으로 들어 섰다. 황궁에서 돌아온 설우진이었 다.

-저 물건은 왜 저러고 있어?

설우진이 고성만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경연에서 진 게 우리 탓이라고 원망하고 있어요. 억지로 쫓아낼 수 도 없고, 난감해 죽겠어요.

-저 물건 치워 줄까?

-가능하겠어요?

-술에 취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놈이야. 살짝만 옆에서 건드려 줘도 알아서 달려들걸?

-좋아요. 그럼 제가 안주를 준비하 는 동안에 밖으로 치워 주세요. 그 리만 해 주시면 본각에 열 병밖에 없는 두보주 한 병을 내 드릴게요. 둘의 은밀한 거래가 성사됐다. 설우진은 우연을 가장해 고성만의 어깨에 몸을 부딪쳤다. 고성만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넌 뭐야!”

고성만이 고개를 쳐들고 거칠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교차했다. 취한 와중에도 고성만은 용케 설우진의 얼굴을 알아봤다.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대체 경 연에서 무슨 수작질을 부린 거냐? 대체 그따위 옷이 어떻게 공주의 마 음을 사로잡은 거냐고!”

고성만은 경연 이후 극심한 패배감 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승을 위해 거금을 들여 은퇴한 침선까지 불러들였다. 최고라는 자 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침선은 패했고 벽라점의 명성은 땅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며칠 새 매출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큰손 고객인 황족들이 앞다퉈 주문 을 철회하면서 매출이 크게 준 것이 다.

“이봐, 술 취했으면 곱게 집에 돌 아가서 잠이나 자. 나잇살이나 처먹 고 이 무슨 행패야!”

설우진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일 별하고는 그대로 안쪽으로 들어갔 다.

아들뻘 되는 이에게 모욕당한 고성 만은 심중에서 솟구치는 화를 주체 하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술병 하 나를 집어 들었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무슨 수로.”

식당 안에 남아 있던 손님들이 그의 돌발 행동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고성만이 설우진의 등 뒤로 달려가 뒤통수에 대고 냅다 술병을 내리쳤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술병이 깨져 나갔다.

안에 술도 들어 있었는지 설우진의 머리칼을 흠뻑 적시며 아래로 흘러 내렸다.

‘이걸로 명분은 생겼어.’

설우진이 뒤로 몸을 돌렸다. 그의 두 눈엔 이미 짙은 살의가 들어차 있었다.

그 눈과 마주한 고성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 다.

하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쉬익.

설우진이 술병을 쥐었던 고성만의 오른손을 거칠게 잡아챘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바늘을 쥐었던 손으로 사람을 죽 이려 들다니. 당신은 이 손을 쓸 자 격이 없어.”

고성만이 뭐라 변명을 늘어놓을 새 도 없이 설우진은 손목을 비틀어 꺾 었다.

우드득.

식당 안에 뼈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그러고 그 뒤로 고성만의 찢어지는 비명이 이 어졌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고성만은 뒤틀린 손목을 부여잡고 원독에 가득 찬 눈으로 설우진을 노 려봤다.

하지만 그 정도에 위축될 설우진이 아니었다.

“이거, 이거 방귀 뀐 놈이 성낸다 고. 먼저 시비를 건 건 그쪽이야. 여기 피 보이지? 당신이 후려갈긴 술병 탓에 내 머리가 찢어졌다고.” 설우진은 고성만의 눈앞에 피로 얼룩진 손바닥을 들이밀었다.

“아유, 저 피 좀 봐. 의원을 불러야 되는 거 아니야?”

“고 점주가 너무했네. 사람을 저리 만들어 놓고 사과는 못 할지언정 되 레 협박을 해 대다니.”

“이래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니 까. 인의를 겸비한 상인이라고 알려 진고 점주가 저리 뻔뻔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남아 있던 손님들이 고성만을 두고 입방아를 찧어 댔다. 대부분 부정적 인 이야기였다.

바로 그때 설우진이 고성만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일 더 키우지 말고 조용히 가지. 여기서 소란이 더 일어 봐야 그쪽이나 나나 좋을 게 없잖아.”

“…….”

“뭐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 오른손, 지금 바로 의원 에게 보이지 않으면 평생 못 쓰게 될걸.”

설우진은 고성만의 손목을 가볍게 눌렀다. 살짝 힘을 가했을 뿐인데도 고성만은 손을 부르르 떨며 격한 신 음을 토해 냈다.

결국 고성만은 제 발로 오성각을 걸어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벽라점의 총점주라 는 신분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해 보 였다.

고성만이 떠난 뒤 오성각은 남은 문을 손님들을 모두 내보내고 일찍 닫았다. 설우진의 지시였다.

나살문의 제자들이 철통같이 주변 을 감시하는 가운데 설우진과 유설 하가 마주 앉았다. 두 사람 앞에는 푸짐한 안주와 두보주가 올라와 있 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유설하가 두보로 잔을 채웠다. 두보주는 이백의 절친한 벗으로 잘 알려진 시성 두보가 즐겨 마셨다고 알려진 술로 맛이 담백하면서도 향 이 그윽해 시인 묵객들 사이에서 인 기가 높았다.

설우진은 두보주를 한 번에 털어 넣은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얼마나 벌었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오 할 정도 더 들어왔어요. 마지막에 소문을 듣 고 벽라점과 태희점에서 거금을 건 것이 크게 작용했어요.”

“후훗, 과욕은 사람의 눈을 흐리게 만드는 법이지. 그래서 내 몫은 얼 마나 되지?”

“여기 중원전장의 전표로 금자 오 백 냥이에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우리몫에서 좀 더 챙겨 넣었어요.”

순간 설우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는 나살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 았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살수 지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지? 아무 이유 없이 그런 호의 를 베풀지는 않았을 텐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공자님과의 인 연을 계속 이어 가고 싶어서예요.” 

“나와의 인연을 이어 간다? 설마 그게 남녀 간의 그런 얘기는 아닐 테지?”

설우진이 노골적으로 그녀의 가슴 쪽을 바라봤다. 무명천으로 꽉 조였 다곤 하지만 도드라진 가슴은 은연 중에 그 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 짓궂으시네요.”

유설하의 얼굴에 짙은 홍조가 드리 웠다.

설우진을 만난 뒤로 그녀에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여성성이 살아나기 시 작한 것이다.

“저희 나살문은 고민 끝에 양지로 나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어둠 속에 서 살아가는 살수지문이 아니라 당 당한 무림의 문파로 거듭나기로 한거죠.”

“어려운 결정을 했군.”

“네. 고민 많이 했어요.”

“한데 문파로 거듭나기로 했으면 나 같은 상가의 아들보다는 무가의 아들과 연을 맺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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