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4권 – 31화 : 황궁 염문 (4)
황궁 염문 (4)
바쁘게 오가는 이들 사이로 면사를 쓴 여인이 오성각 쪽을 바라보고 있 었다.
‘소원대로 궁을 나왔나 보군.’
설우진은 한눈에 그녀가 주소령임 을 알아챘다.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그 탄력적인 몸매만큼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설우진은 조용히 오성각을 빠져나 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와의 간격이 석 장정 도로 좁아지자 사위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전해졌다.
그것은 분명한 살기였다.
‘무시무시한 그림자가 붙었군. 하 기야 황제의 총애가 각별하다고 했 으니 호표기라도 붙여 줬을 테지.’
설우진은 어렵지 않게 살기의 정체 를 알아차렸다. 호표기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들이 은잠술에 능한 호위무사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 었다.
-살기들 좀 거두지. 내가 감각이 예민해서 살기를 느끼면 이 칼이 먼 저 반응해 버리거든.
설우진이 호표기들에게 전음을 통 해 경고했다. 이에 순간적으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호위라는 것들이 이렇게 흥분을 잘해서야 제대로 공주를 지키겠어? 이런 상황에 자객이라도 들이닥치면 공주는 죽은 목숨이라고.
설우진이 신랄하게 호표기를 나무 랐다.
그 말에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살 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든든한 호위들을 보니 폐하께 정 식으로 허락받으신 모양이군요?”
“네. 제 뜻을 존중해 주신다고 했어요.”
“그럼, 천 장군이란 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폐하께서 저 말고 다른 혼처를 찾아 주실 거예요. 그를 탐내는 여인들이 많은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보다 이거…….”
주소령이 품 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들었다.
“이게 뭡니까?”
“그때 얘기했던 선물이에요.”
설우진은 목함을 받아 들고 조심스 럽게 열었다. 안에는 눈부시게 빛나 는 금색 침이 들어 있었다.
“작년에 폐하께서 선물해 주신 거 예요. 이름이 금황침이라고 했는데, 옷이 아닌 다른 곳에 자수를 뜰 때 사용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설마, 이 금황침이 그 금황침은 아니겠지?”
설우진은 눈앞의 금색침을 보고 소 문으로만 들었던 금황침을 떠올렸 다. 그것은 금천신군의 독문병기였 다.
금천신군은 오백여 년 전에 활동한 기인으로 독특하게 침을 독문병기로 사용했다.
이를 두고 당시 강호에서 활동하던 많은 이들을 그를 무시했었는데, 금 천신군은 하남 일대에서 패악을 저 지르던 흉마를 일격에 쓰러뜨림으로 써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한번 사용해 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제 손을 떠난 물건이에요.”
“그럼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설우진은 주소령에게 양해를 구한 후 금황침을 손에 집어 들었다. 손 끝으로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가 전 해졌다.
‘정말 그 금황침이 맞나 보군. 이 한기 만년한철이 아니고선 낼 수 없 는 거잖아.’
그가 알고 있는 금황침은 몸통 전 체가 만년한철로 이뤄져 있었다. 만년한철은 사시사철 눈이 녹지 않 는 설혼의 땅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금속으로, 제련을 하면 할수록 그 강도와 예리함이 더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 예리함이 어느 정도냐면 금강불 괴지신을 이룬 외가기공의 고수를 일격에 베어 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어디 한번 그 위력을 확인해 볼까’
설우진은 금황침을 손에 쥐고 뇌기 를 응축시켰다. 좁은 몸통 안으로 밀려든 뇌기는 사납게 몸부림을 쳤 다.
하지만 금황침은 꿈쩍도 하지 않았 다. 벽뢰진천의 뇌기를 온전히 견뎌 낸 것이다.
“어때요?”
주소령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물 었다. 이에 설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훌륭합니다, 이런 귀한 선물을 받 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지금 황룡학관에 다니고 있다고 했죠?”
“네.”
“언제고 한번 찾아갈게요. 그때 모 른 척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주소령이 환하게 웃으며 농담조로 협박했다. 이에 설우진은 길이 어긋 나지 않도록 서안에 있는 자신의 집 주소를 알려 줬다.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주소령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설 우진은 그녀와의 이별이 못내 아쉬 웠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그녀를 떠 나보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작별 인사를 나 누고 있을 때 복잡하게 오가는 인파 사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구문제독부에서 일하는 위소였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다 이내 구문제독부 쪽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