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2화 : 황룡 혈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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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12화 : 황룡 혈우 (2)


황룡 혈우 (2)

‘낭패다. 이자가 올 줄 알았다면 창우대의 전력을 넉넉히 남겨 뒀을 것을…………?

두 사람은 마천 쟁투 당시에 도검 을 맞댄 적이 있었다.

당시 육지환은 잔존 세력을 이끌고 퇴주하고 있었고 사마무기는 그 뒤 를 맹렬히 쫓고 있었다. 처한 상황 만 놓고 본다면 사마무기의 승리가 당연해 보였다.

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마무기는 벼랑 끝에 몰린 육지환의 반격에 가슴이 갈라지는 중상을 입었다. 방 심의 대가치고는 그 타격이 너무도 컸다.

“왜 하필 이곳을 노린 것이냐?” 

“천주님께서 후환이 될 만한 씨앗 은 일찌감치 제거해 버리라 하시더 군.”

“아직 어린 아이들이다.”

“후훗, 본천의 군림에 해가 될 놈 들이기도 하지.”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거 군. 그렇다면 죽을 각오로 막는 수 밖에……………’

육지환에게서 전해져 오는 짙은 살 의 사마무기는 옥쇄를 각오했다.

여력을 남겨 놓고 싸울 수 있는 상 대가 아니었다.

“본관을 노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우우웅.

철환도가 요란하게 울었다. 뒤이어 도신 전체에 짙푸른 빛깔의 도기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사마무기는 도강을 펼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갔고, 그사이 육지환을 따라 왔던 청랑대의 무사들과 황룡 학관 의 학사들도 저마다의 상대를 찾아 도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대체 어디들 있는 거 야?”

설우진은 학관의 담을 넘어서기 무 섭게 철사자회의 식구들을 찾았다. 그들 대부분은 기숙사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숙사가 가까워 오자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관도들은 여기저기 피를 흘리며 쓰 러져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목이 잘려 있었다.

‘이 새끼들, 잔인한 건 그때나 지 금이나 똑같네. 이거 빨리 찾아야 할 텐데………….”

시체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자 그 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바로 그때, 하나의 인영이 건물 밖으로 쫓기듯 달려 나왔다. 그러고 뒤이어 진한 살의를 머금은 청랑대 의 무사 하나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 인영을 쫓았다.

“나불진!”

설우진이 갑자기 이름을 불렀다. 청랑대의 마수를 피해 정신없이 도 망치던 인영이 그 소리에 놀라 설우 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소한 체구에 장난기 가득한 얼 굴. 당세기의 수하였다가 지금은 철 사자회의 전령을 맡고 있는 나불진 이었다.

“회주!”

나불진은 이제야 살았다는 듯 금방 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철사자회 내에서도 무공이 낮 은 쪽에 속했다. 가문의 무공은 경 공에 특화되어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 은 그 경공이 그를 살렸다.

나불진은 청랑대 무사와 맞닥뜨리 자마자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 재빠른 판단 덕분에 그는 지금껏 목 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내공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 기 때문이다.

“받아!”

설우진이 나불진에게 내기무의 한벌을 던졌다. 나불진은 그것이 생명줄임을 알기에 재빨리 입었다.

-이제 싸워!

-노, 농담이지? 내, 내가 무슨 수로?

-내기무의가 있잖아. 네 몸을 미끼 로 놈의 공격을 이끌어 낸 뒤에 결 정타를 먹여.

-그게 말처럼 될 리가…………….

-살려면 되게 해야지. 다른 녀석들 도 구해야 하니까 이제부턴 알아서 살아남아.

설우진은 그 전음을 마지막으로 나 불진의 옆을 지나쳐 그대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불진, 회주 말이 맞아! 언제까지 주변에 기대어 살아갈 순 없어. 한 명의 강호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려 면 여기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 남아야 해!’

나불진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독하 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품에서 세 치 길이의 소도를 끄집어냈다.

날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것이 예사 무기는 아닌 듯 보였다.

“마천의 졸자 새끼, 어디 한번 와 봐. 이 나불진, 약자의 근성을 보여주마.”

나불진이 소도를 앞세워 청랑대 무 사를 도발했다.

도발이 먹혔는지 청랑대 무사가 진 한 살기를 뿌리며 그의 면전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솨아악!

귓가에 들려오는 검의 울음소리. 나불진은 두 눈을 부릅뜨고 검이 나아가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전 형적인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그런데 복부를 파고들던 검이 내기 무의에 틀어 막혔다. 그의 검 역시 내기를 머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기 무의를 뚫지 못한 것이다. 

‘지금이야.’

나불진은 검이 묶인 그 잠깐의 틈 을 활용해 손에 쥐고 있던 소도를 청랑대 무사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 다. 내력이 달려서 깊게 박지는 못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크으윽.”

잠시 후, 청랑대 무사의 입에선 게 거품이 흘러나왔다.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독에 중독 된 듯 보였다.

“네놈이 아무리 나보다 강해도 그 독에는 당하지 못할 거야. 왜냐면 내가 당세기 그 새끼 똥구녕을 핥으 면서 겨우 얻은 마독비거든.”

나불진은 괴로워하는 무사를 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마독비는 당가 비 전의 독문 병기였다. 검의 재질은 평범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독은 마혈독이라 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지독한 독성을 자랑했다.

쿵!

마혈독에 괴로워하던 청랑대 무사 는 곧 쓰러졌다.

나불진은 잠시 그를 보고 머뭇거리 다 이내 설우진의 뒤를 쫓아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내 뒤로 붙어! 검기를 뽑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면 놈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야!”

남궁벽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방금 전, 광기 어린 눈빛으로 달려드는 청랑대 무사를 벤 흔적이었다. 싸움은 격렬했다. 처음엔 남궁벽이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한데 피를 보 기 시작하자 청랑대 무사의 움직임 이 완전히 달라졌다. 움직임이 배 이상으로 빨랐고 검을 통해 전해지 는 힘 또한 강해졌다.

할 수 없이 남궁벽은 검에 내기를 둘렀다. 소모되는 내력이 부담스럽 긴 했지만 배로 강해진 청랑대원을 베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뒤로 철사자회의 식 구들이 한데 뭉쳤다.

숫자는 열다섯 남짓. 다들 양손으 로 수련용 검을 쥐고 있었다. 그들 의 두 눈엔 이미 짙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녀석이 올 때까지 나 혼자서 버틸 수 있을까?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다섯 정도가 한계일 것 같은데…’

남궁벽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 다. 눈앞에 해치워야 할 적은 열이 훌쩍 넘어갔지만 지금의 내력으로 벨 수 있는 숫자는 그 절반에도 미 치지 못했다.

이에 남궁벽은 굳은 표정으로 조인 창을 불렀다.

“내가 놈들의 발을 묶는 동안 넌 애들을 데리고 창밖으로 뛰어내려. 그리고 곧장 삼 동으로 달려가. 그 곳까지만 가면 창우대의 비호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너 혼자서 괜찮겠어?”

조인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궁 벽을 쳐다봤다.

“걱정 마. 상황이 불리해지면 요령 껏 빠져나갈 테니까. 놈들이 더 몰 려오기 전에 어서 서둘러!”

“알았어. 그럼 삼 동에서 봐.” 조인창은 철사자회 식구들에게 남 궁벽의 말을 전하며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철사자회의 식구들도 하나둘씩 뒤를 쫓았다.

그 모습을 본 청랑대의 무사들은 살기를 발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몇 걸음 내딛기도 전에 그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야 했다.

남궁벽이 내력을 집중시켜 검강을 발현했기 때문이다.

“네놈들 상대는 나다.”

남궁벽이 살짝 창백해진 얼굴로 소 리쳤다. 그의 내력으로 검강은 아직 무리였다. 목울대를 타고 비릿한 피 가 넘어왔다.

하지만 그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다시 피를 삼켰다.

“덤벼라!”

남궁벽이 창궁무애의 기수식을 취 했다. 결의에 찬 그의 눈빛은 광기 로 얼룩진 청랑대를 압도했다.


“모두 삼 동으로 뛰어!”

남궁벽의 희생 덕분에 도망칠 시간을 번 조인창은 곧장 진무관 삼동 으로 향했다.

진무관은 건물이 나란히 세워져 있 어 삼 동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 삼 동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청랑대가 그들의 꼬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더 최 악인 건 그 안에 마백풍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마백풍은 산보하듯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피를 머금은 것처럼 붉게 어우러진 검기가 철사자회의 뒤를 덮쳤다.

“크악!”

가장 후미에 쳐져 있던 백수호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마백풍의 검기에 발목이 잘려 나간 것이다. 일순간 모두의 얼굴이 공포로 얼룩 졌다. 그것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조인창도 마찬가지였다.

‘조인창, 정신 차려! 네가 여기서 흔들리면 모든 게 끝장이야!’ 

“내가 뒤를 맡을 테니 먼저들 가!” 

조인창은 이를 악물고 대열의 후미 로 빠졌다. 남궁벽이 홀로 남아 청 랑대의 발을 묶었던 것처럼 그도 마 백풍의 발을 묶고자 한 것이다. 

“이야, 용기가 가상하네. 근데 왜 그렇게 떠는 거야? 그래서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어.”

마백풍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조 인창의 검 끝을 가리켰다.

그의 검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 다. 각오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근원 적인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한 것이 다.

“야, 얕보지 마라!”

조인창이 이를 악물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

“후훗, 재밌는 녀석이네. 우리 술래 잡기나 할까?”

“……?”

“말 그대로 술래잡기야. 넌 도망치 고, 난 쫓고, 대신 여기서 열을 셀 거야. 그동안 넌 최대한 멀리 도망치면 돼.”

마백풍은 뜬금없이 술래잡기를 제 안했다. 조인창은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자, 하나!”

마백풍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고 조 인창은 이내 전력을 다해 삼 동으로 달렸다. 그곳에 있을 창우대에 마지 막 희망을 건 것이다.

“크크큭, 버러지들이 헛된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는 건 언제 봐도 재 미있단 말이야. 과연 네 녀석을 기 다리는 건 절망일까, 희망일까?”

마백풍은 멀어져 가는 조인창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저게 뭐야?”

삼동을 향해 내달리던 조인창의 발걸음이 부지불식간에 멈췄다.

삼동의 입구, 그러니까 정문 앞에 는 관도들이 모여 있었다. 한데 무 슨 일인지 소리를 지르며 문을 세차 게 두들기고 있었다.

“문 열어! 문 열란 말이야!”

“나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살려 줘!”

관도들의 얼굴은 분노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조 인창이 철사자회 식구들을 찾았다.

“인창아, 우리 어떡해? 문이 잠겼 어. 아무리 소리치고 애원해도 열리 질 않아.”

“설마, 안에서 걸어 잠근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게다가 안쪽에 무거운 물건들을 잔뜩 갖다 놨는지 걸쇠를 부쉈는데도 꿈적도 안 해.”

“대체 왜……?”

“그야 뻔한 거 아니겠어. 제 식구 들만 챙기겠다는 거지. 생각해 봐. 지난번에 진무관 방 배정할 때 쌍룡 맹에 적을 두고 있는 유력 가문의 자식들만 죄다 삼 동으로 갔잖아.” 

다소 냉소적인 성격의 송문기가 분 노에 찬 시선으로 삼 동을 올려다봤 다.

이 층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자세 히 보니 그 안으로 창우대 십 조장인 맹철기와 그 수하들의 모습이 언 뜻 비쳤다.

‘이럴 순 없어. 벽이가 무엇 때문 에 그곳에 혼자 남았는데………’

조인창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 다. 마지막 희망이 적도 아니고 아 군에 의해서 무너졌다는 사실에 극 심한 무력감이 몰려온 것이다.

“쯧쯧, 불쌍해서 도저히 못 봐 주 겠네. 같은 편에게 버림받은 어린양들이라………….”

언제 도착했는지 마백풍이 조인창 과 철사자회 식구들을 보며 동정에 찬 눈빛을 보냈다. 전 같았으면 뭐 라 대꾸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다들 몸만 부르르 떨 뿐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버림받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 이다.

“자, 그럼 본격적인 술래잡기를 시 작해 볼까? 술래한테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잘 알 테니 따로 설명 은 않겠어.”

마백풍이 검 한 자루를 빼 들었다. 요요한 붉은빛이 인상적인 적혈검이 었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세 자루의 검 중 가장 요기가 짙은 녀석으로 미세 한 크기로 날이 패여 있어 조금만 살갗을 베도 엄청난 출혈을 일으켰 다.

피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그에게 딱 어울리는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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