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6화 : 낭왕, 응징하다 (3)
낭왕, 응징하다 (3)
남은 숫자는 스무 명 남짓인데 그 들만으로 학관을 지켜 내기는 요원 했다.
‘이걸로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 군. 이제 애새끼들 입조심만 좀 시 키면 되겠어.’
맹철기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한데 바로 그때 조인창을 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설우진이 그 광 경을 목도했다.
이에 설우진은 득달같이 몸을 날렸고 맹철기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오른쪽 뺨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찰싹!
차진 소리와 함께 맹철기의 고개는 왼쪽으로 획 돌아갔다. 입술이 터지 고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주변 사람 들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멍하니 두 사람의 얼굴만 바라봤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마무기가 재차 손을 휘두르려는 설우진의 팔 목을 다급히 붙잡았다.
“이거 놓으시죠.”
“그럴 순 없다. 맹 조장은 관도들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한데 이 무슨 무례란 말이냐!”
“최선을 다해요? 관주님은 나이를 똥구멍으로 드신 겁니까? 보세요, 저 인간 뒤에 쫄래쫄래 모여 있는 관도 놈들을!”
설우진이 살기 어린 시선으로 맹철 기의 뒤에 모여 있는 관도들을 바라 봤다. 하나같이 익숙한 얼굴들이었 다.
‘설마……?’
사마무기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 이 떠올랐다.
“저 인간은 애당초 다른 관도들을 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는 관도들을 그리 매정하게 외면하지는 못했을 겁 “니다.”
설우진이 맹철기의 추악한 실체를 낱낱이 고했다.
“과, 관주님, 억울합니다! 전 입구 가 뚫리면 안에 모여 있는 아이들까 지 위험하다는 생각에 그리했을 뿐 입니다.”
“하면 왜 저 아이들이 삼 동에 머 무르고 있었던 겐가? 내가 보고받기 론 연차별로 방을 배정했다고 하던데.”
“그, 그것은……”
맹철기는 말문이 턱 막혔다. 방배 치를 바꾼 건 그의 독단적인 결정이었기 때문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 저 아이 들을 구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 는가?”
사마무기는 진무관 주변에 차가운 시체로 누워 있는 관도들을 가리키 며 물었다. 그들 대부분은 맹철기 때문에 제 방을 빼앗기고 쫓겨난 삼 년 차 관도들이었다.
“관주님, 전 맡은 바 임무에 충실 했습니다!”
“그 임무를 누가 내렸지? 혹, 황보 장로인가?”
“아닙니다.”
맹철기는 강한 어조로 부정했다. 이에 사마무기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 일에 나는 개입하지 않으마. 풀 것이 있으면 마음껏 풀도록 해라.”
“죽여도 됩니까?”
설우진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죽으면 내 선에서 일을 무마하기 가 힘들다. 죽지 않는 선에서 끝내 도록 해라.”
“뭐, 아쉽지만 그 정도에서 만족하 지요.”
설우진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맹 철기 앞으로 갔다. 맹철기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어이없었다. 차기 창 우대주로 거론되고 있는 자신이다.
한데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애송 이가 자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다 니. 속에서 울화가 끓어 올랐다.
“네 녀석이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 잊은 게냐? 마천의 졸 자 놈 하나 잡았다고 기세가 등등한 모양인데, 난 그놈과는 질적으로 다 르다.”
“다르기는 개뿔. 어떤 면에선 그놈 보다 네가 더 나빠. 놈은 솔직하게 드러내고 악당질을 하지만 넌 위선 이라는 가면을 쓰고 악당질을 해대 니까.”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지 껄여 대는구나. 다시는 그 입을 함 부로 놀려 대지 못하도록 단단히 버릇을 고쳐 주마.”
맹철기는 살기를 돋웠다. 입으로는 버릇을 고쳐 준다고 했지만 그는 이 미 머릿속에 설우진이 곤죽이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휘릭.
맹철기가 창을 반대로 뒤집었다. 창두를 뒤로 하고 창대로 설우진을 공격코자 함이었다. 물론 설우진을 위한 배려는 아니었다.
‘창두로 놈을 공격하면 나중에 분 명 구설수에 오를 터. 위력은 조금 반감되겠지만 창대로 놈의 사지를 부러뜨리는 거야. 나이에 비해선 제 법 고강한 무공을 지닌 듯 보이지만 내 상대는 결코 아니지.’
진무관에서 설우진의 활약을 지켜 봤으면서도 맹철기는 그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 그놈의 쓸데없는 자존 심이 문제였다. 이는 곧 끔찍한 불 행으로 돌아왔다.
설우진은 맹철기가 공격할 틈도 주 지 않고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러고는 주먹을 움켜쥐며 양손에 뇌 기를 응축시켰다.
“날 상대로 적수공권을 쓰다니. 그 어리석은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주마.”
맹철기는 정면에서 짓쳐 드는 설우 진을 향해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간격을 넓게 쓸 수 있다는 이점을 살린 정형화된 공격법이었다.
그 정형화된 공격에 설우진은 파격 으로 맞섰다. 그는 정면에서 짓쳐 드는 창대를 그대로 어깨로 막아 옆 으로 흘려보냈다.
충격이 적지 않을 텐데도 그의 표 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이에 당 황한 건 맹철기였다.
‘이놈 뭐야? 어떻게 내 창을 맨몸 으로 받아 낼 수 있는 거지?’ 맹
철기는 지금의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손 속에 사정을 둔 것도 아 니고 창대에는 내기에서 비롯된 묵 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이 정도 힘 이라면 바위도 손쉽게 부숴 버릴 수 있었다.
한데 창대를 흘려보내는 설우진의 팔은 말짱했다. 대단한 외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창대에 전 해지는 반탄력은 상당했다.
어느새 둘 사이의 간격은 삼 장 이내로 좁아졌고 맹철기는 보법을 밟으며 거리를 벌려 보려 노력했지 만 앞으로 치고 나오는 설우진의 기 세가 너무 거셌다.
이에 맹철기는 기습적으로 창두를 앞으로 돌려세웠다. 구설수고 뭐고 일단은 눈앞의 설우진을 꺾는 게 우 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날을 바짝 세운 창두가 설우진의 어깨를 훑었다. 밋밋한 창대와는 확 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한데 결과는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우진의 어깨는 이번에도 창 두를 가볍게 흘려보냈다. 역시나 팔 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 저 소매가 조금 찢긴 게 전부였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이냐?”
“수작은 무슨, 이게 바로 네놈과 나의 실력 차이야.”
설우진이 신형을 박찼다. 발끝에 힘을 집중해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 어 올린 것이다. 눈앞에는 맹철기의 창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 곳하지 않았다.
쉭쉭쉭.
창날은 그의 몸을 거칠게 훑고 지 나갔다. 보통의 경우라면 살가죽이 찢기고 피가 튀었어야 했다. 한데 설우진의 몸에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튀지 않았다. 창날이 옷조차 베 지 못한 것이다.
사실 설우진이 지금 입고 있는 옷 은 초창기에 만든 내기무의였다. 견 본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여러 차례 내기를 덧 씌운 터라 그 강도는 이제까지 만든 내기무의 중 최고였다.
내기무의 덕분에 맹철기의 창은 무 력화됐다.
설우진은 당황하는 그의 면전으로 치고 들어가 턱을 향해 우권을 강하 게 날렸다. 맹철기는 다급히 고개를 젖혀 보려 했지만 그보다 설우진의 주먹이 반 박자 더 빨랐다.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맹철기의 얼굴이 뒤로 시원하게 젖혀졌다. 승부는 사실상 그것으로 끝이 났다.
턱뼈가 으스러진 맹철기는 몸을 크 게 휘청거리다 이내 바닥에 주저앉 았다. 창을 지지대 삼아 다시 몸을 일으켜 보려 애를 썼지만 머리까지 충격이 가해진 탓에 자꾸만 앞으로 몸이 쏠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설우진이 그에게 손을 뻗었다.
도와주겠다는 의미일까? 맹철기는 정신없는 와중에 설우진의 손을 잡 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몸이 위 로 확 딸려 왔다.
교차하는 두 사람의 시선. 설우진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위험해’
맹철기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 했다. 이에 설우진의 손을 떨쳐 내 려 안간힘을 썼다. 한데 그가 손에 힘을 준 순간 이를 기다렸다는 듯 설우진이 맹철기의 손목을 안쪽으로 꺾었다. 그러고도 그것으론 만족하 지 못하겠는지 옆으로 한 번 더 비 틀어 꺾었다.
커어억.
맹철기는 손목을 부여잡고 발버둥 을 쳤다.
“엄살 그만 피우지. 당신 부하들이 눈앞에서 보고 있잖아. 조장으로서 체통을 지켜.”
설우진의 눈빛에선 일말의 동정심 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부 숴 버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 워하는 것 같았다.
“크윽,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냐고? 걱정 마. 네놈 이 믿고 있는 뒷배보다 내가 밀고 있는 뒷배가 더 세거든.”
설우진이 은연중에 황유하의 존재 를 내비쳤다. 물론 맹철기는 그 뒷 배가 황유하일 거라고는 꿈에도 짐 작지 못했다.
맹철기가 조원들에 의해 의원으로 실려 나가고 황룡 학관은 평온을 되찾았다.
하지만 마천이 휩쓸고 간 상흔은 너무도 짙었다.
학관 곳곳에는 피의 흔적들이 흥건 하게 남아 있었다. 시체들은 모두 치웠지만 바닥에 스며든 핏기는 온 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사태 수습이 이뤄지자 사마무기는 학사들과 일부 관도들을 회의장으로 불렀다. 향후 대처 방안 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설우진도 회의자 명단에 등록됐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사마무기가 눈 앞에서 실력을 확인한 터라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길, 설우진의 옆으로 자연스럽게 적사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청랑대의 돌격대장이 그쪽으로 갔 다고 하던데, 신색을 보아하니 어렵 지 않게 막아 낸 모양이구나?”
“그러는 학사님이야말로 대어를 낚 지 않으셨습니까?”
“대어는 무슨, 청랑대는 마천의 다 섯 전위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곳이다. 대외 적으로 활동을 많이 해서 우리에겐 공포의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마천 안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지.”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철저히 힘의 논리를 숭상하는 마천에서는 청랑대 외에 네 개의 무력대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적랑대, 흑랑대, 백랑대, 마랑대.
이 다섯 개의 조직들은 저마다 뚜 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청랑대는 척후의 임무를 맡아 외부에서 주로 활동했고 적랑대는 돌격, 흑랑대는 암습, 백랑대는 전면 전, 마랑대는 반전의 용도로 쓰였다. 지난 마천 쟁투 당시, 다섯 조직 중 유일하게 마랑대만 활동이 없었 다. 마랑대가 투입되기도 전에 승부 가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슬슬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너 때문에 일이 그르친 걸 마 천 쪽에서 알게 된다면 그 즉시 네 이름은 살생부에 오르게 될 게다.”
“그건 학사님도 마찬가지 아닙니 까?”
“난 진즉부터 살생부에 이름이 올 라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살 떨릴 내용을 아 무렇지도 않게 얘기하시네요.”
설우진은 그 배포에 내심 놀랐다. 마천의 살생부는 지난 마천 쟁투 당 시에 호사가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살생부에 오른 인물들 중 태반이 마천 쟁투 와중에 처참한 죽 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겁이 없는 법이다.”
순간 적사호의 눈빛에 아련한 그리 움의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윽고 두 사람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자리는 따로 구별이 되어 있지 않아 두 사람은 좌측에 나란히 앉았다.
다들 표정이 심각했다. 학사들 대 부분이 마천 쟁투를 겪은 세대이기 에 그 두려움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 다.
잠시 후 회의를 청한 관주 사마무 기가 회의청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마천의 칼부림에 죽어 간 학사들과 관도들의 명복부터 빌었다.
“다들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마 천이 이곳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정상적으로 수업을 이어 가 기는 힘들 듯한데.”
“일단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 전쟁 터로 변할지 모르는 곳입니다. 마천 의 무사 하나도 감당해 낼 수 없는 아이들을 이곳에 남겨 둘 수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마천의 칼날에 맞서는 건 저희로 충분합니다. 후일을 위해 서라도 아이들은 한시바삐 이곳에서 내보내야 합니다.”
학사들의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업을 진행 하는 건 무리였다.
“흐음, 그럼 아이들을 어떻게 보내 는 게 좋겠는가?”을 전한 뒤 서협의 용인문으로 보내 시지요. 용인문은 강북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니 각 가문의 사람들 이 아이들을 찾아가기에 용이할 것 입니다.”
“일단 아이들의 집에 이곳의 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