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5권 – 18화 : 불협화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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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5권 – 18화 : 불협화음 (1)



불협화음 (1)

일단의 무리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 혈향을 뒤로한 채 황룡 학관의 문을 나섰다. 그 선두에는 인솔자로 나선 적사호와 설우진이 나란히 서 있었 다.

“제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합니까?”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 이다. 싫으면 이제라도 벽뢰진천을 내놔라.”

“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니까 아무 소리 말고 날 대신해 애들을 이끌어라.”

설우진은 적사호의 얼토당토않은 말에 기가 막혔다. 적사호는 학관을 나서기 전 설우진을 불러 강요에 가 까운 부탁을 했다. 잠시 다녀올 곳 이 있으니 자신을 대신해 아이들을 서협까지 데려가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설우진은 격하게 반발했다. 다 큰 어른들도 아니고 애들이다. 게다가 혈사까지 겪어 제정신도 아 니었다. 한데 서협까지 알아서 데려 가라니, 그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 릇이었다.

“대체 어딜 간다는 겁니까?”

“그건 밝힐 수 없다. 하니 아무 소 리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애들을 잘 관리해 라.”

“차라리 천자 조 선배한테 맡기시지요.”

“저놈들 눈을 봐라. 어디 제 한 몸 이나 건사할 수 있겠냐!”

적사호가 천자 조에 속해 있는 이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들의 눈빛에선 하등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천자 조에 속한 관도들은 대부분 진무관 삼 동에 머무르고 있 어 마천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마천의 실력을 얕봤다. 그들이 강해서 후배들이 당 한 게 아니라 후배들이 약해서 그들에게 당한 거라 여긴 것이다.

관점의 차이 탓에 그들 대부분은 도망치듯 서협으로 떠나는 것에 대 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냈다.

“뒈질 놈들은 뒈져야지, 별수 있습니까!”

“네 말대로 저놈들은 다 뒈져도 상 관없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사정 이 다르지 않느냐? 전장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적군의 칼날이 아니라 지 휘관의 무능함이라 했다! 벽뢰진천 을 훔쳐 간 것에 대해선 더 문제 삼지 않을 터이니 내 말에 따르도록 해라.”

설득이 잘 먹히지 않자 적사호는 은근히 벽뢰진천을 언급하며 설우진을 압박했다.

설우진은 사납게 얼굴을 구겼지만 벽뢰진천 앞에선 그도 떳떳한 입장 이 못 됐기에 괜히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그래. 저 애새끼들 서협까지 데려 가는 걸로 마음의 짐을 시원하게 털 어 내 버리는 거야.’

“좋습니다. 대신 이후로는 절대 이 런 부탁 마십시오. 말 안 듣는 놈들 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만큼 피곤한 일은 없으니까요.”

설우진은 까칠하게 적사호의 청을 수락했고 이후 적사호는 논의한 사 항을 관도들에게 알렸다.

당연히 천자 조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적사호는 성적에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협박 으로 그들의 불만을 무마시켰다.


“빌어먹을, 적 학사.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우리가 버젓이 이렇 게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상가의 아 들놈에게 인솔자의 역할을 맡길 수 가 있어!”

“창우대 조장을 때려눕힌 실력자잖 아.”

“쳇, 그 인간 우리 앞에서 무게만 잡았지 실력은 별거 없었던 거 아 냐? 솔직히 창우대는 가문도 변변찮 은 어중이떠중이들만 들어가는 곳이 잖아.”

“그래도 조장인데………….”

“됐고, 너흰 어떻게 할 거야? 진짜 놈의 말에 순순히 따를 거야?”

“따르지 않으면?”

“제 풀에 지쳐 떨어지게 만들어야지.”

대열의 후미. 천자 조를 대표하는 북리강이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놨 다. 그는 오랫동안 사촌 형인 북리 환의 그늘에 가려 그 존재감이 없다 시피 했었다.

재능은 제법 뛰어난 축에 속했지만 천성적으로 게으른 데다 성격이 너 무 오만했다. 오죽하면 한 핏줄을 타고난 북리환조차 그를 멀리했을 정도였다.

한데 북리환이 졸업하면서 그의 세 상이 열렸다. 호랑이가 떠난 자리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고, 그가 딱 그 짝이었다.

“다들 내 말 잘 들어. 놈이 하는 말은 무조건 무시해.”

“뒷일은 어떡하고?”

“걱정 마. 마천이 출몰한 마당에 학관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어. 그 럼 자연스럽게 성적도 걱정할 필요 가 없지.”

북리강의 눈빛이 흉험하게 빛났다.


황룡 학관을 나선 지 반나절, 적사 호는 산서와 하남, 호북으로 갈라지 는 갈림길에서 이탈했다. 빨리 돌아오겠단 얘기만 있었을 뿐 정확한 날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빠져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설 우진이 인솔자의 위치로 걸음을 옮 겼다.

위기 속에서 설우진의 도움을 받았 던 관도들은 강한 신뢰를 보인 데 반해, 북리강과 그 일당들은 노골적 인 적의를 내비쳤다.

‘새끼들, 눈에 쓸데없이 힘주기는. 그래, 어디 네놈들 멋대로 설쳐 봐 라. 말 안 듣는 놈들은 그냥 버리고 가면 그만이니까.’

설우진은 북리강 일당을 슬쩍 흘겨 본 후 걸음을 재촉했다. 지도상으로 이십리 이상은 더 걸어야 마을이 나오기에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마을까지는 별문제 없이 도 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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