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16화 : 사막 신수 (1)
사막 신수 (1)
설우진은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살라만더를 응시하며 천뢰도를 뽑아 들었다.
한데 그 미세한 소리에 살라만더가 눈을 떴다. 녀석의 눈은 비늘만큼이 나 붉었다.
샤아악.
불청객의 출현에 화가 났는지 살라 만더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반으로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이게 누구한테 눈알을 부라려. 누란 사람들한텐 네놈이 신성한 동물일지 몰라도 나한텐 흔해 빠진 석척 에 불과해!”
설우진이 사납게 기세를 뿜어 댔 다. 그 순간 살라만더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머리 위.’
설우진이 다급히 후보를 밟았다. 간발의 차이로 살라만더의 발톱이 눈앞을 스쳐 갔다.
한데 놀라운 건 녀석의 발톱이 지 나간 자리였다. 어지간한 충격으론 흠집도 나지 않는 대리석이 마치 날 카로운 정으로 긁어 낸 듯 깊게 패 여 있었다.
살라만더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그 힘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바로 살라만더가 가속을 사용 한다는 점이었다.
가속은 이름 그대로 속도를 더하는 기술이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끌어 올릴 수 있기에 대처가 쉽지 않다. 한데 그 가속을 살라만더는 자유자 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 안 수련을 해 온 무인들처럼.
그래서 설우진은 야수안을 극한으 로 펼치고도 살라만더의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다.
‘빌어먹을 석척 놈! 다리도 짧은 게 뭐 이리 움직임이 빠른 거야? 놈의 발을 묶지 못하면 제 풀에 지쳐 쓰러지겠는걸.’
설우진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 하게 상황을 직시했다.
살라만더의 움직임은 자신이 예상 한 것 이상으로 빨랐다. 놈은 움직 일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칼을 휘둘 렀음에도 번번이 간발의 차이로 피 했다.
‘어떻게 해야 저놈의 발을 묶을 수 있을까?’
설우진은 자신을 놀리듯 재빠르게 치고 빠지는 살라만더를 보면서 급 하게 머리를 쥐어 짜냈다.
하지만 쉬이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천장 구석에 자리한 거미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 거미줄에는 나방이 날개가 걸린 채 애처롭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래, 저거야! 놈이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거미줄을 만드는 거야!’
설우진은 두 눈을 빛내며 바지 주 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항 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수실 뭉치를 잡았다.
잠시 후 설우진이 공격을 재개했 다.
그는 칼을 거칠게 휘두르며 살라만 더의 뒤를 쫓았다. 살라만더는 이번 에도 여유롭게 그의 공격을 흘려보 냈다. 그 모습은 마치 술래잡기를 연상시켰다.
한데 그 술래잡기엔 규칙적인 움직 임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을 그리듯 돌고 있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은 시 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줄고 있었다.
“이쯤에서 장난질은 그만두자. 네 놈의 발은 이제 완전히 묶여 버렸거 든.”
술래잡기를 시작한 지 일각여쯤 지 났을까. 설우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 춰 세웠다. 이에 살라만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붉은 눈알을 요리조 리 굴려 댔다.
“크큭,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 지? 하기야, 석척이 아무리 영성을 쌓은들 사람 머리에 비하겠냐! 넌 지금 거미줄에 갇힌 거야, 여간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거미줄 에.”
설우진이 머리 위로 손을 말아 쥐 더니 벽뢰진천의 뇌기를 밖으로 쏟 아 냈다.
그 뇌기는 설우진이 서 있는 자리 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순간, 살라만더의 붉은 눈이 격렬 하게 흔들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 는 강한 기운을 감지한 것이다.
설우진은 아까 살라만더의 뒤를 쫓 으면서 수실을 이용해 은밀히 그물 을 쳤다. 칼에 힘이 떨어져 보였던 것도 신경이 그쪽에 쏠려 있어서였 다.
“얌전히 잡히는 게 좋을 거야. 나 한테는 영물이고 똥개고 다 같은 짐승이거든.”
설우진이 진한 살기를 뿌리며 천뢰 도를 살라만더 쪽으로 향했다.
살라만더는 정신없이 눈알을 굴렸 다. 사람처럼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 사이 칼끝이 비늘에 닿았고, 설 우진은 손끝에 힘을 줬다. 칼날이 비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 순간 살라만더가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그대로 배를 까 보였다. 항복의 표시였다.
“진즉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급하 니까 일단 성 밖으로 나가자.”
설우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살라만더의 꼬리를 붙잡았 다.
한데 꼬리를 손에 쥔 순간 그것이 뚝 떨어졌다. 천적에게 붙잡혔을 때 석척들이 자주 사용하는 꼬리 끊기 였다.
몸이 자유로워진 살라만더는 잽싸 게 뒤돌아 설우진의 얼굴 쪽으로 몸 을 날렸다. 그리고 목덜미 쪽으로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댔 다.
하지만 살라만더의 회심의 공격은 딱딱한 칼날에 막혔다.
“혹시나 해서 꼬리를 잡았던 것인 데, 영수라는 놈이 얍삽하기 이를 데 없구나.”
천뢰도 너머에서 설우진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살라만더의 꼬리를 잡은 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살라만더가 배 를 뒤집어 보였을 때 그는 그 진의 를 속으로 의심했었다.
영성을 지니게 된 동물은 인간에게 쉬이 굴복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된 걸 깨달은 살라만더는 급하게 천뢰도를 뱉어내고 재차 배 를 뒤집었다.
하지만 살라만더의 장난질에 두 번 이나 속아 줄 정도로 설우진은 호락 호락하지 않았다.
잠시 후 벽에 천뢰도를 휘두르는 설우진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 손놀림엔 한 점의 망설임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냐? 살라만더가 사 라졌다니!”
열사동으로 가기 위해 꼭대기 층을 찾은 뮬란은 살라만더를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는 카요란에게 언성 을 높였다.
카요란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의 물음에 대꾸했다.
“아무래도 밤새 침입자가 있었던 듯합니다. 바닥에 살라만더가 싸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와 살라만더를 훔쳐 갔단 말이냐?”
“저도 납득하긴 어렵지만 그것 말고는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카요란은 답답했다.
그는 지난밤 살라만더가 잠드는 걸 확인한 후 처소로 돌아왔다. 그의 처소는 꼭대기 층을 잇는 입구에 자 리하고 있어서 문을 통해 외부인이 들어오면 언제든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한데 이번엔 창밖에서 외부인이 들 어왔다. 그로서도 속수무책일 수밖 에 없었다.
‘살라만더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 는 사람은 극소수야. 아슬라 언니와 자스민은 열사동에 있으니 이번 일 과 무관할 테고 외부에 나가 있는 신드라 언니와 자밀라도 마찬가지 야. 그럼 남은 건 금뇌고에 갇혀 있 는 투르판뿐인데……………’
타다닥.
그녀가 투르판을 떠올리고 있을 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잘생긴 청년 이 꼭대기 층으로 올라왔다.
“하산, 무슨 일이냐!”
“지금 막 금뇌옥에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투르판이 옥을 빠져나갔 다고 합니다.”
“……타후란은?”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후란이 탈옥한 것과 살라만더가 납치된 것이 동일 선상에서 일어난 일임을 인지한 것이다.
“지금 당장 아지르 전원을 불러라. 내가 직접 살라만더를 납치해 간범 인을 쫓을 것이다.”
뮬란 공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아지 르를 소환했다.
일각여 뒤, 쉰 명에 달하는 아지르 가 모였다. 전사 중의 전사라는 수 식어에 걸맞은 옷 밖으로 드러난 그 들의 몸은 철탑처럼 단단해 보였다.
“공주 마마,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에 모인 아지르들 중 가장 연장자인 만다르가 정중히 물었다.
공주라는 호칭에 뮬란의 표정이 살 짝 굳어졌다.
만다르를 비롯한 아지르들은 그녀 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흐만의 심장 이 없기 때문이었다.
뮬란 공주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 지만 아쉬운 건 그녀 쪽인지라 감정 을 숨기며 밤새 일어난 변고를 알렸 다.
만다르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공주님께서는 그 일들이 아슬라 공주님에 의해서 행해졌다 여기시는 겁니까?”
“언니 말고는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 때 잔당들을 다쳐 내 버렸어야 했는데…….”
“아직 속단하긴 이릅니다. 일단 저 희와 함께 열사동으로 가시지요. 사 막의 지름길을 통하면 그들보다 앞 서 당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다르는 태양의 길잡이였다. 그는 남들이 모르는 사막의 숨은 길들을 수없이 알고 있었다.
누구한테 배워서 익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막과 싸워 쟁취해 낸 지식 이었다.
잠시 후, 성문이 열리고 낙타 한 무리가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들과 때를 같이해 검은 그림자가 모래 위로 하나둘씩 모습 을 드러냈다.
뮬란 공주를 지근거리에서 감시하 고 있던 마천의 흑랑사자들이었다.
“저 계집이 지금 어딜 가는 거지?”
일전에 뮬란 공주와 독대를 나눴던 고자성이 수하들에게 물었다.
그는 군자금을 마련해 오라는 사마 중달의 명으로 반 년 전부터 누란국 에 잠입해 있었다.
“속하가 은밀히 숨어서 들은 바로 는 열사동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곳은 왜?”
“지난밤에 뇌옥에 수감 중이던 중 죄인이 탈주했습니다. 아마도 그를 찾아 나선 듯합니다.”
‘아지르들을 잔뜩 대동하고 움직인 다는 건 그놈이 그만한 값어치가 있 다는 것을 의미하지. 어쩌면 놈이 군자금 마련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 도 몰라.’
고자성의 두 눈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어떻게 할까요?”
수하가 물었다.
“이대로 뒤를 쫓는다. 최대한 은밀 히 따라붙도록.”
고자성은 꼬리잡기를 명했다. 이에 흑랑사자들은 거친 모래바람 속으로 몸을 숨겼다.
드넓게 펼쳐진 금빛 모래 위로 붉은 태양이 제 몸을 불사르며 그 자 태를 한껏 뽐냈다.
그리고 그 아래 낯익은 두 얼굴이 보였다.
지난밤에 은밀히 누란성을 빠져 나 왔던 설우진과 투르판이었다.
“살라만더는 누란의 상징입니다. 한데 어찌 길가의 똥개처럼 그리 험 하게 다룬단 말입니까?”
“네놈들한텐 귀한 영물일지 몰라도 나한텐 똥개보다 못한 놈이야. 똥개 는 최소한 제 주인은 알아보고 꼬리 를 흔드는데 이놈은 틈만 나면 개기 거든, 지금처럼.”
설우진이 거칠게 목줄을 잡아챘다. 하지만 살라만더의 저항은 꽤나 격렬했다. 튼튼한 뒷발을 모래 속에 박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힘껏 쑤셔 틀었다.
목줄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 하게 당겨졌다. 결국 설우진은 오른 발을 들어 살라만더의 머리를 거칠 게 찍어 눌렀다.
살라만더는 속절없이 모래 속에 처 박혔다.
그 모습에 투르판은 안전부절못했 다. 괜히 설우진에게 살라만더에 대 한 얘기를 꺼낸 게 아닌가 하는 뒤 늦은 후회가 들 정도였다.
“그, 그러다 죽겠습니다!”
보다 못한 투르판이 설우진의 어깨를 붙잡고 다급히 소리쳤다.
“저놈 눈 부릅뜬 거 안 보여? 이 정도로는 절대 죽을 일 없으니까 조 용히 입 다물고 있어, 귀찮게 하면 네놈 입부터 틀어막아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설우진은 투르판을 거칠게 대했다. 그 안에는 내심 자스민을 지키지 못 했다는 원망 섞인 감정이 들어가 있 었다. 이에 투르판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살라만더의 정신 교육은 일각여 동 안 진행됐다.
시간이 갈수록 살라만더의 움직임 은 둔해졌다. 진짜 죽일 기세로 목 을 눌러 대니 살라만더로서도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