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6권 – 18화 : 사막 신수 (3)
사막 신수 (3)
“이곳에 발자국이 있습니다.”
설우진보다 반 시진 정도 늦게 열 사동에 도착한 뮬란 공주와 아지르 들이 녹주 근처에서 안가로 향하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흠, 말이나 낙타도 타지 않고 우 리보다 앞서서 이곳에 도착했다? 아 슬라 공주님에게 아주 든든한 지원 군이 나타난 모양이군.’
만다르는 입가에 가는 미소를 피어 올렸다.
그는 뮬란 공주와 아슬라 공주 사 이에 벌어진 후계 다툼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선황의 유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개입만 하지 않았을 뿐 그 는 뮬란 공주보다는 아슬라 공주를 마음속으로 더 지지하고 있었다.
아슬라 공주는 왕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데 반해, 뮬 란 공주는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쉽 게 왕의 자리에 오르려 했기 때문이 다.
“만다르, 빨리 안가로 가요, 놈들이 살라만더에게 해를 가하기 전에.”
뮬란 공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아지르들을 재촉했다.
살라만더를 지키는 일은 아지르의 신성한 임무 중 하나였기에 그들은 서둘러 안가로 향했다.
“휴우, 이거 두 번은 못 할 짓이 다.”
치료를 끝마친 후, 설우진은 앓는 소리를 해 댔다. 하지만 그 마음만 큼은 진심이었다.
그는 의원이 아니다. 남다른 손재 주 덕분에 살을 째고 꿰매는 데 성 공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느낀 압박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분명 소득도 있었다. 폭뢰 이후로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신뢰의 경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조금 엿본 것이다.
신뢰의 요체는 마음이 이는 대로 뇌기를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이를 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뇌기는 천 지간에 가장 강한 기운이다. 그것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의미이다.
초원에서 뛰어놀던 야생마를 떠올 려 보라. 억지로 그 야생마의 등에 타려 한다면 어찌 될까? 십중팔구는 발버둥 치다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지 게 될 것이다.
뇌기는 바로 그 야생마와 같았다. 억지로 다룬다고 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한데 살을 꿰매면서 잠깐이나마 뇌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 그는 심법을 운 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인 위적으로 뇌기를 움직인 게 아니라 마음이 이는 대로 뇌기가 따라 움직 였다는 뜻이다.
‘왜 그때 뇌기가 반응했던 걸까? 분명 계기가 있었을 텐데…………. ‘
설우진은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실 마리에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아무 리 머리를 굴려도 그 답은 쉬이 구 해지지 않았다.
하기야 그리 쉽게 구해질 거였으면 벽뢰진천이 절세의 마공으로 불리지 도 않았을 것이다.
쉬쉿.
설우진이 벽뢰진천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살라만더가 갑자기 혀를 날 름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들 려오는 인기척에 반응한 것이다.
‘꼬리에 불붙은 여우가 찾아온 건 가?’
설우진이 뇌기를 단전에 갈무리하 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곧 장 안가의 입구로 발걸음을 향했다. 살라만더는 설우진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그 뒤를 따랐다.
안가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두 명의 공주가 대치하고 있었다. 한배에서 나고 자란 자매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둘 사이엔 찬바람이 쌩쌩 불 었다.
“언니가 여긴 또 웬일이죠, 아지르 들까지 대동하고?”
“금뇌고에 갇혀 있던 투르판이 이 곳으로 탈주했다는 보고가 들어왔 다. 해서 내가 직접 잡으러 온 것이 다.”
“한때는 언니의 스승이셨던 분이에 요.”
“그는 정당하게 왕위를 쟁취한 나 를 거부했다. 이보다 더한 중죄가 어디 있느냐!”
뮬란 공주가 언성을 높였다, 마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투르판 에게 외치듯이.
“태양신께서 들으시면 가슴을 치겠네요. 정말 정당하게 왕위를 차지했 다고 생각해요?”
“그래, 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 다.”
“그럼 그날 아슬라 언니를 쓰러뜨 린 자들은 누구죠?”
“내가 비밀리에 양성해 온 자들이 다.”
“푸훗, 거짓말을 할 거면 좀 그럴 싸하게 해요! 대전에서 그들은 누란 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공을 사용했 “어요.”
“누란의 무공만 익히라는 법이 있느냐?”
뮬란 공주는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이내 목소리에 힘을 줘 반문했 다.
“맞아요. 꼭 누란의 무공만 익힐 필요는 없죠. 근데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무공의 숙련도예요.”
“……?”
“언니가 언제부터 왕좌를 꿈꿨는지 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 준비를 시작 한 건 불과 십 년도 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 전에는 준비하고 싶어도 왕궁에 발이 묶여 나갈 수조차 없었 으니. 한데 언니가 데려온 자들은 아주 숙련된 무공을 사용했어요. 하 늘이 내린 기재라면 모를까 십 년이 란 짧은 시간에 그 정도의 경지를 이룬다는 건 불가능해요.”
자스민이 외부 세력의 개입을 의심하게 된 건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확인하면서부터였다.
그는 황룡학관에서 설우진과 어울 리며 다양한 부류의 무인들을 겪었 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황룡학관의 관도들은 일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개 한두 가지 미숙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익힌 가전무공임에도 그러했다.
한데 뮬란 공주가 데려온 이들은 턱없이 수련 기간이 부족했음에도 완벽에 가깝게 무공을 전개했다. 자 스민의 입장에선 당연히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그들은 모두 내가 엄선해서 뽑은 인재들이다. 네가 봐 온 평범 한 자들과 비교하지 마라.”
“후훗, 내 주변에는 검귀도 있는데, 그도 평범하다 말할 건가요?”
자스민은 비소를 터뜨리며 뮬란 공 주를 몰아붙였다.
‘여기서 더 휘말려선 곤란해. 아지 르들이 마음을 바꾸면 자칫 이제까 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어.’
“너 하곤 더 이상 할 말 없어. 투 르판을 데려갈 테니 비켜서.”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자스민이 두 팔을 활짝 폈다. 몸으 로라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에 뮬란 공주는 고운 아미를 사 납게 찡그리며 뒤쪽에 도사리고 있 던 아지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서 투르판을 찾아요. 그리고 이를 방해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제압해 요.”
아지르들의 시선이 만다르에게 향했다.
따르기 힘든 명이 내려왔을 때 그 들은 만다르에게 의견을 구하는 경 우가 많았다.
“왕녀의 명이시다. 각자 흩어져 죄인을 찾아라.”
쉬쉬식.
만다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지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안 가로 들어가는 입구는 정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벽을 탈 수 있다면 이 층이나 삼층으로도 충분히 침투 가 가능했다.
그 모습에 힘이 빠진 자스민은 팔 을 내렸다. 뮬란 공주는 비웃듯이 그녀의 얼굴을 일별한 뒤 안으로 거 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마지막에 남은 만다르가 자스민에 게 고개를 숙였다. 자스민은 입술을 깨물며 그에게 물었다.
“왜 언니를 돕는 거죠?
“전 그저 선황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선황께서 외인을 끌어들인 언니를 용납하실 거라 생각하시는 거예요?”
자스민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녀는 만다르가 아슬라 공주에게 힘을 실 어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슬라 공주에게 검술을 전수해 준 이가 바 로 그였기 때문이다.
“선황께서는 왕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자는 태양왕의 뒤를 이을 자 격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이 일련의 상황들이 모두 왕 좌의 무게를 시험하는 무대라도 된 다는 건가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선황께서 정말 뮬란 왕녀가 외인들과 가까이 지내시는 걸 모르셨을까요? 그분에 게는 태양의 그림자 타샨이 있습니 다. 누란 땅에 그 타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타샨은 누란의 살아 있는 신비였 다.
그들은 국란의 위기에만 모습을 드 러낸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 그 모 습을 드러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만다르는 아슬라 언니가 이 위기를 딛고 진정한 왕좌에 올라설 수 있다고 믿어요?”
“네. 저는 그리 믿고 있습니다, 누 가 뭐라 해도 태양신의 가호를 받고 계신 분이니.”
만다르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