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왕전생 9권 – 11화 : 새로운 날개를 얻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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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왕전생 9권 – 11화 : 새로운 날개를 얻다 (2)


새로운 날개를 얻다 (2)

해질 무렵, 설가장으로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들의 출현에 마을 주민들은 지레 겁을 먹고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 들 어갔다.

거친 수컷의 향기가 물씬 나는 그 들은 낭왕루에 속해 있던 상급 낭인 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삐쩍 마른 체 구의 고광호가 서 있었다. 전에 봤 을 땐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표정이 냉락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후, 낭인들은 설가장의 문을 넘었다.

시체를 치운 넓은 마당에는 설우진 과 팽천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광호와 설우진의 시선이 정면으 로 맞닥뜨렸다.

순간 폭발적인 살기가 일어남과 동 시에 고광호의 오른손이 허리를 훑 었다.

쉭.

서슬 퍼런 파공성과 함께 검광이 번뜩였다.

그 검광은 정면에 마주선 설우진의 얼굴로 빠르게 내리꽂혔다.

한데 그것을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설우진은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짱은 여전하 군. 하긴, 형님도 저 모습에 반해 따라나섰지.”

고광호의 검은 설우진의 미간에 딱 걸쳐 있었다. 조금만 깊이 밀어 넣 었어도 머리가 꿰뚫렸을 아찔한 공 격이었다.

“형님은 어디 계시느냐?”

고광호가 검을 거두며 물었다.

“별채에 따로 모셔 뒀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흥, 형님을 죽음으로 내몬 네놈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더는 네놈과 얼굴을 마주하고 않으니 어서 형님을 내놓도록 싶지 해라!”

고광호가 궁악비의 시체를 요구했다.

낭왕루로 옮겨 수많은 낭인들이 보 는 앞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열 요량 이었다.

한데 설우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에 고광호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대체 무슨 꿍꿍이냐?”

“전 낭왕 어르신의 원수를 갚기 전 까진 장례를 치르지 않을 생각입니 다.”

“설마… 마천하고 전쟁이라도 치 르겠다는 것이냐?”

고광호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 다.

그도 처음 궁악비가 마천의 마두들 에게 살해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 을 때는 막연히 복수를 꿈꾸기도 했 다, 궁악비는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 만 자신에게는 친형제와도 같은 존 재였기에.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자신이 아무리 열을 내고 덤벼들어 도 마천은 티끌만한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거대한 존재다.

그 냉엄한 현실 앞에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전 마천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만들 겁니다.”

“그, 그게 가능하다고 보느냐?”

“가능합니다, 그쪽에서 힘을 보태준다면.”

설우진이 노골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내 낭인들 사이에 큰 술렁임이 일었다. 물론 대부분은 부정적인 반 응을 내비쳤다.

“형님을 핑계로 이번엔 우리까지 사지로 끌어들일 참이냐?”

고광호가 날선 목소리로 외쳤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다시 검이라도 뽑아 들 기세였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칼을 빼 들어 야겠군. 기세에서 눌리면 죽도 밥도 안 되지.’

“그동안 낭왕 어르신을 보면서 무 림에 다시없을 사내들이 낭인이라 생각했는데 순전히 내 착각이었군, 싸워 보지도 않고 지레 겁을 먹는 꼴이라니.”

설우진의 말투가 확 달라졌다. 이에 낭인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 다. 특히 설우진이 낭왕루를 찾았을 때 자리를 비웠던 연호야가 불같이 화를 내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칠 척에 이르는 큰 키에 양 쪽 팔근육이 유달리 발달해 있었다. 그의 특기는 백 근에 달하는 무쇠 창을 활용한 거룡창법이었다.

거룡창법은 무거운 창대를 활용해 서 상대를 찍어 누르는 데 그 역점을 두고 있었다.

부웅.

고광호가 말릴 새도 없이 연호야가 무쇠 창을 한 바퀴 휘돌려 설우진의 정면으로 쏘아 보냈다.

백근이라는 무게가 무색할 정도로 창두는 매섭게 설우진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에 설우진은 창두를 피하는 소극 적인 방법 대신 정면으로 막아서는 쪽을 택했다.

캉.

묵직한 충돌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흥, 감히 힘으로 내게 도전하다니. 네놈의 어깨뼈를 산산이 부숴 주마.”

연호야가 창두로 원을 그리듯 흔들었다.

파룡환인의 장벽을 부수는 거룡 창법의 삼초식이었다.

회전을 머금은 무쇠 창은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한 마리의 용처럼 천 뢰도를 집어삼켰다.

“역시, 연 형이야.”

“저 재수 없는 놈의 면상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으면 좋겠어.”

“그래도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여 기가 귀주도 아니고. 자칫 놈이 죽 기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텐데.”

낭인들은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 며 다채로운 반응을 보였다. 물론 대부분은 연호야의 행동에 암묵적으 로 동의하고 있었다.

‘저놈은 일부러 싸움을 유도했어. 대체 무슨 속셈이지?’

그러나 고광호는 설우진이 의도를 갖고 도발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쉬이 짐작해 낼 수가 없었다.

그사이 두 사람의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겉보기에는 연호야가 압도적인 우 세를 점한 것처럼 보였지만 눈에 보 이는 것과 달리 연호야의 얼굴은 눈 에 띄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뭔 놈의 수비가 이렇게 탄탄한 거야? 죽을힘을 다해 창을 휘젓는데 도통 뚫릴 기미가 보이질 않잖아.’

연호야는 마치 철벽에 대고 창을 휘두르는 기분이었다.

한차례 벽을 넘고 난 이후로 처음 느껴 보는 무력감이었다.

“기세 좋게 나선 것치고는 실력이 형편없군. 하기야, 말보다 행동이 앞 서는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는 법이지.”

“다, 닥쳐라!”

“왜?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억울하면 당장 이 가슴에 창두를 찔 러 넣어.”

설우진이 가슴을 열어 보이며 스스 로 빈틈을 드러냈다. 이에 흥분한 상태의 연호야는 빈틈이 보이는 대로 정직하게 공격을 이어 갔다.

쉭.

창두는 매서운 파공음을 내며 설우진의 왼쪽 가슴팍으로 날아갔다.

‘통했다.’

연호야는 승리를 직감했다.

설우진이 창두를 피하기는 늦었다 고 판단한 것이다.

한데 그건 착각이었다. 창두는 간 발의 차이로 설우진의 왼팔 겨드랑 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 순간 설우진은 왼팔을 가슴 쪽 에 바짝 붙여 창두를 붙들었다. 연 호야가 빼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창 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는 못 놀아 주겠네.”

설우진이 창대를 왼손으로 잡고는 기습적으로 끌어당기자 연호야의 커 다란 덩치가 속절없이 앞쪽으로 끌 려갔다.

좁혀지는 둘 사이의 거리.

설우진은 가볍게 몸을 휘돌리며 오 른쪽 팔꿈치로 연호야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크억.”

연호야의 입에서 앓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기습적으로 가해진 힘에 갈 빗대가 부러진 것이다.

싸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연호야는 손에서 창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쉬기도 힘든 지경인지라 싸움을 이어 갈 여력이 없었 다.

“나이는 우리보다 한참이나 어린놈 이 어떻게 저리 강할 수 있는 거지?”

“우리하곤 출발선부터가 다르잖아.”

“이대로 놈에게 굴복해야 하는 거 야?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낭인들의 시선이 설우진에게 한데 쏠렸다.

그 시선에는 동경과 분노, 질시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렇게 뒤에서 계집들처럼 조잘대 지 말고 덤벼, 하나든 열이든 얼마 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설우진은 활활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에 낭인들은 일제히 고광호에게 허락을 구했고 고광호는 잠시 고심 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 다.

이에 두 명의 낭인이 합공에 나섰 다.

잘 벼린 두 자루의 검을 연상케 하는 그들은 한 배에서 나온 친형제 다. 그래서인지 둘은 눈빛만 보고서 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어 냈다. 두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설우진 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그들이 사용하는 병기는 낭창거리 는 연검이었다. 연검은 검신이 자유자재로 휘어지기에 난전 중 상대의 빈틈을 베는 데 무척이나 유용했다. 차르릉.

두 마리의 독사가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들 듯 설우진의 좌우에서 연검 이 쇄도해 들어왔다.

보통의 경우라면 넓게 병기를 휘둘 러 연검을 쳐 낼 것이다.

한데 설우진은 의외의 방식으로 왕 씨 형제의 공격에 대처했다.

그의 몸이 버들가지처럼 좌우로 흔 들렸다.

왕씨 형제의 검이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설우진의 옷깃을 스치 고 지나갔다.

‘연검을 사용하는 이는 상대가 휘두르는 병기를 휘감아 인위적으로 빈틈을 만들지. 해서 연검을 상대하 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딪쳐 주지 않는 거야.’

설우진의 움직임은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그는 전생에 적잖은 숫자의 연검 고수들과 칼을 맞댄 경험이 있었다. 그들 대다수가 여인들이었는데 여 인이라고 얕봤다가 몸에 생채기가 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경험들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쉬익.

조바심이 났는지 왕씨 형제의 움직 임이 전보다 커졌다. 반드시 베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번엔 절대 못 피한다.’

왕씨 실었다.

형제는 검 끝에 잔뜩 힘을 내기를 머금어서인지 연검의 날이 꼿꼿하게 섰다.

바로 그 순간, 설우진의 눈빛은 먹 잇감을 발견한 매의 그것이 되어 반 짝였다.

그리고 동시에 장식처럼 쥐고 있던 천뢰도가 벼락같은 움직임을 보였 다.

캉.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전을 뒤흔들 었다.

천뢰도가 두 자루의 연검을 강하게 후려치며 낸 소리였다.

연검이 위로 떠올랐다. 힘이 많이 들어간 상태라 검날이 휘지 못하고 보통의 검처럼 튕겨져 버린 것이다. 장점을 잃어버린 연검은 더 이상 왕씨 형제의 무기가 되어 주지 못했 다.

퍼퍽.

설우진은 기세가 꺾인 왕씨 형제에 게 발길질을 선물했다.

가슴을 두들겨 맞은 두 사람은 뒤 쪽으로 멀찍이 날아갔다. 공교롭게 도 그들이 떨어진 곳은 고광호의 바 로 앞자리였다.

낭인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왕씨 형제는 상급 낭인들 중에서도 최상위 서열에 속하는 강자다. 한데 그들이 제대로 된 공격 한번 해보 지 못하고 당했으니 그보다 서열이 낮은 자들은 자연스럽게 기가 눌릴 수밖에 없었다.

설우진은 팔짱을 낀 채 고광호를 쳐다봤다.

그리고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고 집은 그만 부리고 자신의 뜻에 따르 라고.

둘 사이에는 한참 동안 긴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뗀 건 고광호 쪽이었다. 

“정말 마천과 싸울 참이냐?”

“왜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지? 그쪽이 따르든 따르지 않든 난 마천과 끝까지 싸울 거야. 그게 내가 낭 왕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니까.” 

설우진이 궁악비에 대한 진심을 드 러내는 순간 고광호는 낯이 뜨거워 졌다.

그는 처음 궁악비가 죽었다는 소식 을 접했을 때만 해도 당장에 복수를 해야 한다며 날뛰었다.

한데 그 흉수가 마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복수라는 단어는 머릿속 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천이 지닌 이름값에 싸워 보기도 전에 지레 겁 을 먹은 것이다.

‘허어, 이거 쪽이 팔려서 나중에 형님을 어찌 봬야 할지 모르겠군. 저 어린놈도 형님을 위해 마천과 싸우겠다는데 형제라는 놈이 도망부터 치려하다니.’

고광호는 마음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두려움이란 감정을 떨쳐 냈다. 더 이상 궁악비에게 부끄러운 모습 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었다.

“우리가 손을 보태면 마천을 꺾을 확률이 얼마나 올라가겠느냐?” 

“음, 못해도 일 할은 올라갈 테지.” 

설우진은 솔직하게 답했다.

보태지도 덜어 내지도 않았다.

“훗, 그 정도면 충분히 힘을 보탤 가치가 있겠군. 임시 낭왕의 신분으 로 네 의뢰를 수락하겠다.”

“형님!”

뒤쪽에 서 있던 낭인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고광호를 불렀다. 이에 고광호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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