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4)

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4)


밤하늘의 빛깔이 다르고 불어오는 바람의 향기가 다른 땅에 앉아서, 나가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두 적수의 후예라 주장하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사모는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의아하게 여겼다.

“그 거대한 규칙은, 적어도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것은 아닌 것 같군. 하지만 투자된 시간이 논리의 정교함 정도는 담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합성을 담보하지는 못하겠지.”

“사모 페이. 이미 말했듯이 왕이 되면 차차 알게 될 거다. 더 이상 들려줄 말은 없어.”

“내가 끝까지 거절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테지?”

케이건은 아무런 어조나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너를 하텐그라쥬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겠지.”

“뭐?”

“네가 가사 상태로 있을 때, 륜 페이는 여신을 부르는 일을 하는 대신 나에게 너를 하텐그라쥬로 돌려보낼 방법을 찾아내라고 요구했다. 물론 그 일은 결과적으로 수호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결과가 되고 말았지만 그건 륜의 책임은 아니다. 륜은 자신에게 요구된 일을 수행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요구를 수행할 차례지.”

사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방법으로 나를 하텐그라쥬에 돌려보낼 건데?”

“북부의 왕으로 만들어서 군대와 함께 돌려보내겠다.”

사모는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지 우스운 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모는 정신없이 웃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사모는 마루나래의 배에 얼굴을 묻은 채 대호의 털을 꽤 잡아당겼다. 사모가 아픈 배를 움켜쥔 채 케이건을 돌아보았을 때 케이건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모는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배가 너무 아파.”

“그렇게 웃는 나가는 처음 보는군.”

“아아, 그래. 나도 이렇게 웃는 나가는 본 기억이 없어.”

“너 때문에 오레놀이 꽤 놀란 것 같군.”

사모는 마당 저편을 돌아보았다. 그곳에 오레놀 대덕이 서 있었다. 대덕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쾌활한 기분이었던 사모는 그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오레놀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사모와 케이건은 대덕의 손에 들려 있는 단지를 보았다. 하지만 오레놀은 자신이 뭘 들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웃음소리가 정말 아름다우시군요.”

“고마워.”

사모는 몸을 일으켰다. 케이건 또한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오레놀은 잠시 그를 덮쳤던 환상의 여운에 고개를 내저으며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티나한과 케이건, 그리고 비형이 머물고 있는 방이 가장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곳으로 모였다. 사모와 함께 마지막에 방에 들어온 륜은 케이건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사모의 옆에 앉으며 닐렀다.

<왜 그렇게 웃으신 거죠?>

<케이건은 네 요구까지도 내가 왕이 되어야 하는 증거로 만들어 버리더군. 저 인간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정말이지 전 세계가 내가 왕이 되길 바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네?>

<내가 하텐그라쥬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라고 케이건에게 요구했었니?>

<예. 그랬습니다만.>

<왕이 되어서 북부의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라더군.>

륜은 비늘을 부딪치며 케이건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사모는 그런 동생을 보며 부드럽게 닐렀다.

<틀린 말은 아니지. 어떤 무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타개하기 힘들 만큼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확실하니까.>

<틀린 말입니다. 왕이 되면 누님은 죽습니다!>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 오레놀이 기다리고 있으니.>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니름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모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미안해. 모두들.”

오레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제 시작하시겠습니까?”

사모는 다시 깨어난 이래로 오레놀에게 배웠던 사어를 되새기며 대답했다.

“그래. 뱀을 풀어.”

사람들이 벽 쪽으로 물러난 다음 오레놀은 뱀 단지를 쏟았다. 뱀들은 방 가운데로 쏟아져 나와 주위를 경계했고 그중 어떤 것들은 틈새를 찾아 빠르게 기어갔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모는 재빨리 그것을 억압했다. 뱀들은 별 저항 없이 사모의 의지를 받아들여 방 가운데로 모였다.

“예상보다 어렵지 않군.”

“이 뱀들은 정신 억압 당하는 것에 익숙할 테니까요.”

“알았어. 그럼 시작하겠어.”

사모는 머릿속으로 검토해 두었던 사어를 천천히 뱀들에게 쏟아 넣었다. 뱀들은 잠시 전율하다가 곧 의미를 담은 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