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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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0장 – 출발하는 수탐자들 (5)


뱀 단지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은 주퀘도였다. 주퀘도는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이봐, 세리스마. 저게 움직이는데?”

주퀘도의 이야기를 들은 세리스마는 고개를 돌려 선반 위에 놓인 뱀 단지를 보았다.

“누가 사어를 보내는 모양이군. 갈로텍에게 전면으로 나오라고 전해 주겠나?”

주퀘도는 갈로텍과 자리를 바꿨다. 위로 올라온 갈로텍은 세리스마가 뱀 단지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갈로텍은 탁자를 옆으로 치웠고 세리스마는 뱀들을 바닥에 풀어놓았다. 두 사람은 뱀들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들은 깜짝 놀라 비늘을 곤두세웠다.

<하인샤 대사원이라고!>

오레놀은 뱀들의 움직임을 소리 내어 읽었다.

“거짓니름하지 마라. 너는 누구냐?”

사모는 준비해 두었던 말을 시도했다. 오레놀은 사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충실하게 해석했다.

“저는 륜 페이입니다. 세리스마.”

“륜 페이라고! 무슨 소리냐. 너에게는 정신 억압 능력이 없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기묘한 힘이 생겼습니다.”

륜은 정말 그런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언제든 그 심장을 파괴할 수 있는 사모가 대화를 담당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먼 남쪽에서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기묘한 일이군. 정신 억압 능력이 생기다니.”

“예.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짐작하는 바가 있느냐?”

“있습니다. 당신들은 저로 하여금 여신을 불러내게 한 다음 여신이 이곳에 와 계신 동안 신체를 장악했습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 여신을 감금했으며, 그래서 주인 잃은 그 힘은 주인의 신랑들에게 온 것입니다. 제 추측이 맞습니까?”

“부정하지 않겠다.”

“왜 그런 짓을 하신 겁니까?”

비형은 침을 꼴깍 삼키며 뱀들을 바라보았다. 뱀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 배가 방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전 세계를 나가에게 주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은?”

“말살한다.”

사어를 읽는 오레놀의 목소리가 떨렸다. 비형은 신음을 흘렸고 티나한은 깃털을 곤두세웠다. 륜은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케이건은 무표정하게 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모는 비늘을 부딪치며 뱀들에게 의지를 쏟아 넣었다.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을 왜 말살해야 합니까? 저희들끼리 살게 내버려 두더라도 우리에겐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그 땅도 곧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여신의 힘을 이용해서 말이죠.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에겐 키보렌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고? 마치 네가 얻은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너 스스로 쟁취한 것에 대해서만이 충분하다느니 그렇지 않다느니 하는 니름을 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지금 세계의 반이나마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상들께서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 것이 될 수 있는 땅을 저 나무를 베는 추악한 불신자들에게 맡겨 둬야 하느냐? 그 땅을 여행했으니 알 것이다. 그들이 나무를 경의로써 대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자기들이 그 나무들을 키운 것도 아닌 주제에 제멋대로 나무를 잘라 쓰더군요. 자기들이 어나길 숲의 주인으로 태어났기에 숲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사어를 읽던 오레놀은 사모를 바라보며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모는 나가다운 솔직한 감상을 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약간씩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륜은 비늘이 일어난 얼굴로 뱀들을 바라보았다. 사모는 계속 뱀을 움직였다. 오레놀은 뜻밖의 사이에 놀랐다.

“마치 당신들처럼.”

“뭐라고?”

“당신들은 태어나길 여신의 주인으로 태어났습니까? 여신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고 믿은 겁니까? 당신들이 한 짓이 여신을 경의로 대한 것입니까?”

뱀들이 경련하며 멈췄다. 사모는 그 뱀들을 강제로 움직이게 했다.

“그렇잖으면, 당신들이 여신을 쟁취했기에 여신을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니름 조심해.”

“당신에게는 불신자를 비난할 도덕적 근거가 없습니다. 불신자들이 나무를 벤다고 비난하지만, 당신은 여신을 감금했습니다. 여신을 풀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녀에게 사과하십시오.”

뱀들은 침묵했다. 사모는 머나먼 하텐그라쥬에서 수호자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녀가 다시 뱀을 움직일까 생각했을 때 갑작스럽게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하마.”

오레놀은 해석하면서 깜짝 놀랐다. 사모는 재빨리 뱀을 움직였다.

“그렇게 한다고요?”

“그래. 너를 모든 불신자와 함께 죽인 후에 그렇게 하겠다. 너는 나를 여신의 감금자라 비난하겠지만, 그리고 여신은 나를 징벌하겠지만, 후대의 나가들은 나를 칭송할 거다!”

대답하려던 사모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배를 깐 채 움직이던 뱀들이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다. ‘공격적’이라는 단어가 사모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모는 뱀들을 다시 억압하려 했지만 저 남쪽에서의 억압이 월등히 강했다. 뱀들은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사모를 향해 쇄도했다.

“안 돼!”

비형의 비명과 함께 티나한이 앞으로 돌격했다. 티나한은 거대한 손을 힘껏 휘둘러 뱀을 쳐내었다. 그리고 케이건 또한 황급히 바라기로 뱀을 쳐내었다. 그들 모두 비형을 의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피를 뿌리지 않도록 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때 사모가 앞으로 나섰다. 사모는 두 손으로 뱀을 덥석 움켜쥐어 뱀 단지 속에 쑤셔 넣었다. 성난 뱀들이 그녀의 팔을 물었지만 사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지막 뱀까지 뱀 단지 속에 쑤셔 넣은 사모는 그 뚜껑을 밀봉한 후에야 헐떡이며 물러났다. 륜이 황급히 다가섰다.

“누님!”

“나는 괜찮아.”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래. 저자는 네가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뱀의 공격이 치명적일 거라 생각한 모양이군.”

사모가 두 번이나 다짐했지만 륜은 그녀의 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모는 집게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륜의 이마를 밀어 준 다음 오레놀을 바라보았다.

“저거 빨리 치우는 편이 좋겠군.”

오레놀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뱀 단지를 집어 들었다. 사모는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너희들을 말살시키겠다는군.”

비형은 한숨을 내쉬었고 티나한은 깃털을 부풀렸다. 케이건은 사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왕이 필요해.”

“안 돼요!”

륜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외쳤다. 케이건과 사모는 고개를 돌려 륜을 바라보았다. 륜은 사모를 가로막듯이 하며 외쳤다.

“누님은 당신들의 왕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왜 안 된다는 거지?”

“당신은 누님을 왕으로 만든 다음 죽일 작정이잖아요!”

비형과 티나한은 착잡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쳐다보았다. 케이건은 속마음을 알기 힘든 표정으로 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죽이지 않아.”

“죽게 내버려 두겠지요! 같은 이야기에요. 당신이 당신이 그랬어요.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라고.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빨리 죽는다고. 누님이 왕이 된다면, 그럼 가장 빨리 죽어요! 왜 그런지는 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어! 당신들을 위해 누님을 죽이지는 않아요!”

그때 사모가 륜의 어깨를 짚었다.

<륜. 우리 두 사람의 힘만으로 세계의 절반, 그것도 신의 힘을 사용하는 자들과 싸울 수는 없어.>

<누님!>

륜은 비늘을 곤두세운 채 사모를 돌아보았다. 사모는 동생의 눈을 들여다보며 닐렀다.

<조금 전의 대화로 뚜렷해졌어. 이 일을 계획한 자들은 병자야. 그들을 설득할 수는 없어. 아니, 그렇게 하려 해도 먼저 그들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다가가야 해. >

<그래서, 이 자들의 왕이 되시겠다는 겁니까?>

사모는 니름 대신 목소리로 말했다.

“한시적인 조건으로, 그러니까 대확장 전쟁을 저지하고 여신을 구출할 때까지의 조건이라면, 이 자들의 왕이 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비형과 티나한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오레놀은 지금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고승들에게 가져다 줄 대답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륜은 두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절대로 그럴 수 없어요!”

“륜. 이건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야. 다른 나가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다른 나가들은 여신의 힘을 자유로이 쓰는 수호자들을 대적할 수 없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벌써 핍박이 시작되고 있을지도 몰라. 수호자들이 대확장 전쟁을 재개하려면 먼저 다른 나가들을 확실히 통제하고 싶겠지.>

“누가 그들을 구하지? 지금 키보렌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야.”

륜은 격노하여 비늘을 부딪쳤다.

“우리가 그 자들을 왜 신경 써 줘야 하지요? 우리 둘에게 서로를 죽일 것을 강요한 자들이에요!”

“그걸 강요한 것은 그들이 아냐.”

<비아스 마케로우야.>

“그들이 우리를 특별히 증오해서 그런 것이 아냐. 다만 전통을 지켰을 뿐이지.”

“그들에게 그렇게 소중한 전통이라면 그들 스스로 지키라고 해요!”

사모는 얼굴을 조금 굳혔다.

“륜. 네 신부를 구하지 않겠다는 거야?”

“그건 제 힘으로 하겠어요! 누님이 저들을 위해 죽을 필요는 없어요!”

“나는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심장파괴는>

“사실입니다!”

“알아. 믿어.”

<하지만 수호자들은 나가가 북부의 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북부를 얻는 것이 더 쉬워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나를 죽여서 인간이나 레콘, 도깨비가 왕위에 오르게 하기보다는>

“일단 나와 협조하고 싶지 않을까?”

륜은 놀랐다.

“그건…… 어, 그건…….”

“생각해 봐. 오히려”

<내가 왕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나를 살려 두고 싶어지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니름과 말을 빠르게 오가며 이루어지는 륜과 사모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을 혼란시켰다. 오레놀 또한 뱀 단지를 손에 든 채 멍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손 안에서 뱀 단지가 요동쳤다. 와장창! 육성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사모와 륜도 단지가 박살 나는 소리를 들었다. 오레놀은 뒤로 물러나며 깨진 단지를 가리켰다.

“저, 저게 갑자기 움직였어요!”

파편 사이로 뱀들이 스르륵 기어 나왔다. 케이건은 잇소리를 내며 바라기를 거머쥐었고 티나한은 격분하여 외쳤다.

“제기랄, 태워 버려! 비형!”

“안 돼! 잠깐!”

사모의 외침에 비형은 움찔했다. 사모는 비형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 채 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뱀을 쳐다보았고, 조금 후 그 뱀들이 일정한 무늬를 그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케이건은 눈을 꿈틀했다.

“사어?”

오레놀이 놀라며 그 사어를 읽었다.

“거기 있는 것이 내 아들이냐?”

륜은 깜짝 놀라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 역시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집중했다. 뱀들이 다시 움직였고, 오레놀은 경악 속에서도 그것을 읽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지커엔 가주님이십니까?”

비형은 륜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커엔 가주가 누굽니까?”

“페이 가문의 가주……. 제 어머님이십니다. 하지만 가주님은 정신 억압자가 아니신데?”

륜이 그렇게 말했을 때 사모 또한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정신 억압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모는 뱀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지커엔 가주님일 리는 없군요. 가주님은 정신 억압을 할 수 없으세요. 당신은 누구죠?”

“너는 륜 페이냐?”

사모는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뱀들은 한동안 움직임 없이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 뱀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모와 오레놀은 깜짝 놀랐다. 더 참을 수 없었던 티나한이 자신의 부리를 두드리자 오레놀은 정신을 차려 그 사어를 해독했다.

“아니.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하지만 느낌은 그럴듯하군. 너는 누구지?”

사모는 당황하여 뱀들을 움직였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입니까? 가주님은 정신 억압을 할 줄 몰라요. 누구이기에 저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나는 요스비다.”

륜은 괴상한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방바닥에 주저앉은 채, 륜은 죽은 사람이 보내어 오는 사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륜의 곁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륜의 귓가로 입을 가져가서는 낮고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스비는 죽었다고 했잖아!”

“죽었어요……. 틀림없이 돌아가셨어요. 제 눈앞에서! 누님?”

사모 페이 또한 경악 때문에 한동안 뱀을 움직이지 못했다. 케이건은 무릎 꿇은 채 주먹으로 방바닥을 쾅 내려쳤다. 소리보다는 울림을 이용하는 것이며, 사모는 그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사모는 뱀을 향해 의식을 불어넣었다. 오레놀이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해석했다.

“요스비는 11년 전에 죽었어. 이게 죽은 자가 보내는 사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텐데. 당신은 누구지?”

“네가 그렇게 믿는 거야 네 자유지만 나는 요스비다.”

“증명해 봐.”

“그 전에 네 정체부터 밝혀 줘. 너는 누구지?”

“아니. 그럴 수 없어. 너부터 밝혀. 너는 누구야? 아아, 그렇군. 너는 수호자야. 나를 당황하게 해서 뱀으로 공격할 틈을 만들려고?”

“그런 계획은 없어. 네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내가 요스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지? 요스비가 죽었다고 니르는 걸로 봐서 너는 나를 아는 것 같은데. 네가 누군지 말해 주면 내가 자신을 증명할 수 있지 않겠나?”

사모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자신이 암살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밝혀도 되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때 케이건이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일 잘 부르는 노래가 뭔지 물어봐.”

사모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케이건을 돌아보았다.

“노래라니? 우리는 나가야. 케이건.”

“물어봐.”

사모는 어이없는 기분을 느끼며 뱀들에게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뱀들이 대답했다. 오레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거기 케이건 드라카도 있나?”

비형은 “마법입니까!” 하고 외쳤고 티나한은 벼슬을 빳빳하게 곤두세워 천장을 찔렀다. 케이건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뱀들의 움직임을 노려보았다. 오레놀이 더듬거리며 그것을 해석했다.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은 케이건밖에 없지. 케이건.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부를 줄 아는 노래라곤 한 가지밖에 없지. 사어로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렇게 시작하던가? 남겨진 수명을 헤는 일도 두렵고 썩어 들어가는 수족을 추스리는 짓도 포기한 지 오래.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목 아래에 걸터앉아 빛나던 이들을 생각한다.”

케이건은 떨리는 손을 신경질적으로 입가로 가져가서는 그것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주먹을 깨문 다음에야 케이건은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요스비가 맞아. 죽지 않은 건가?”

사모 페이는 고개를 심하게 가로저었다. 그리고 뱀들을 움직였다.

“나는 사모 페이다.”

“아아. 제 따님이군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군요. 당신은 정신 억압자였지요.”

“만일 네가 요스비라면, 너는 내게 검술을 가르쳤어. 내 칼 쓰는 버릇을 닐러 봐.”

“없습니다.”

사어를 해석하던 오레놀은 당황하여 사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모와 케이건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더욱 놀랐다. 사모는 뱀들을 움직였다.

“그래. 요스비는 절대로 버릇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지. 상대에게 간파당하게 되는 규칙성은 최악이라고 했어. 하지만 그걸로는 아직 증명된 것이 아냐. 요스비가 없애려고 노력했던 내 버릇이 뭔지 닐러 봐.”

“사모 페이. 저는 하단 방어 후 항상 왼쪽으로 도는 당신의 버릇을 이용해서 당신을 골탕 먹인 적이 많습니다. 몇 번인가 자기 다리에 걸려 볼썽 사납게 넘어지게 만들어 줬더니 결국 그 버릇을 없애더군요. 물론 그 다음에는 한동안 오른쪽으로 돌아서 저를 즐겁게 해줬지만.”

사모는 비늘을 곤두세웠다.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상에………진짜 요스비야!”

“누님! 어떻게 살아 계신 건지 물어봐요!”

륜의 고함에 사모는 퍼뜩 정신을 차려 뱀들을 움직였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너는 11년 전에 분명히 죽었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제 신분을 증명하느라 제게 허용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했군요. 거기에 케이건이 있다면 이야기를 빨리 끝낼 수 있겠군요. 케이건에게 물어보십시오. 지금 나가들이 벌이고 있는 일을 알고 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할 작정이냐고.”

케이건의 얼굴은 당황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빠르고 정확했다.

“사모 페이를 북부의 왕으로 삼아 북부 전체를 대통합한 다음 나가의 침략에 맞선다. 그리고 여신을 구출한다. 그대로 전해.”

륜은 깜짝 놀라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사모는 벌써 뱀을 움직였다. 뱀들은 곧 대답의 사어를 만들어 내었다.

“사모 페이를? 정말 케이건이 생각해 낼 법한 재미있는 생각이군요. 페이. 그것을 수락하십시오.”

“아버지!”

륜의 완전히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륜 자신도 뱀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뱀들은 계속 움직였다.

“단, 케이건에게 용의 수호를 하겠다는 맹세를 시킨 다음에.”

“요스비!”

케이건의 고함에 비형과 티나한, 오레놀, 심지어 륜마저도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케이건은 얼굴을 조금도 붉히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감동시켰다. 뱀들은 계속 움직였고 그래서 오레놀은 허둥지둥 그것을 해석했다.

“그 맹세를 받은 다음 왕위를 받으십시오. 페이. 하지만 케이건에겐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아아, 이런 시간이 더 없군요. 이걸 기억하라고 전하십시오! 셋만이 하나를 상대한다! 셋만 01…….”

뱀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사모는 황급히 뱀들을 움직였지만 뱀들은 그녀의 의지에만 반응할 뿐 대답이라 할 만한 사어를 이루지 않았다. 그래서 사모는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고, 그들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 또한 저렇게 황당한 표정일까 의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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