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12)
티나한은 신생아가 있는 집에 부득이하게 외인을 들일 경우 취해야 하는 수단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루는 케이건의 요구대로 숯을 가져왔다. 티나한은 케이건이 시키는 대로 벼슬에 숯을 문질렀다. 그리고 케이건과 비형은 각자 이마에 문질렀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동안 다른 대장장이가 사태를 깨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제기한 ‘소금을 몸에 뿌리지 않고 어떻게 외인이 들어올 수 있느냐’는 주장에 케이건은 묵묵히 소금을 부탁했다. 시루가 황급히 소금을 가지러 달려간 후에 또 다른 대장장이가 나왔다. 무슨 요구를 듣게 될지 두려워하고 있던 비형과 티나한은 곧 질문의 홍수에 빠지고 말았다. ‘근래에 상가에 들른 적이 있느냐,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건넌 적이 있느냐, 뱀 허물을 만진 적이 있느냐, 기타 등등.’ 대장장이는 그 질문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했고, 그래서 티나한과 비형은 성심껏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속으로 도대체 왜 그런 것을 알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소금이 도착했고 수탐자들은 몸에 소금을 뿌렸다. 그러나 대장간 입장은 허락되지 않았는데, 복숭아 나무로 어깨를 몇 번 두드려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루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목재 창고로 달려갔고 티나한과 비형은 슬슬 약이 오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건은 강철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기다렸다. 케이건의 냉엄한 얼굴은 어떤 고집스러운 레콘이 그런 모든 조치를 취하더라도 외인은 출입 금지라고 주장했을 때조차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티나한은 더 참지 못했다.
“제기랄, 정말 같은 레콘으로서 인간 볼 낯이 없군, 그래. 케이건은 하라는 짓 꼬박꼬박 다 했잖소! 그런데 이제 와서 안 된다고? 젠장, 그렇다면 전쟁이다!”
꽤나 험악한 사태가 벌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먼저 여러 가지 처방을 제시했던 자들이 그렇게까지 별짓을 다 시킨 다음에 못 들어온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티나한을 거들고 나서자 고집스러운 레콘도 한 발 물러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간신히 최후의 대장간에 들어섰다.
대장간 내부의 공기는 긴장되어 있었다. 젊은 레콘들은 모두 행동을 조심하고 있었다. 티나한은 저들은 외인이 아니냐고 외칠 뻔했지만 그들이 일정 구역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깨닫고는 항의를 삼켰다. 젊은이들은 모두 숙소 근방에만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수탐자들은 보다 내밀한 곳까지 안내되었다. 주위의 엄숙하기까지 한 분위기에 비형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케이건.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왜 시간이 없다고 하신 겁니까?”
“무슨 말이오?”
“급히 이곳으로 오자고 하셨잖습니까. 하지만 그 아기가 어디로 갈 리도 없잖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요.”
“예?”
“그 아기는 어디로 갈 수가 없소. 방금 태어난 신생아를 그 어미에게서 떼내어 전쟁터로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오. 하필이면 신생아라니, 기박하다고 할밖에.”
듣고 있던 티나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비형 또한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내가 서두른 것은 그 아기보다 다음 신체 때문이오. 그 아기가 북부군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될 가능성이 있는 이상, 빨리 접시를 복구한 다음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 나서야 하오. 그리고 그 수탐이 이루어지는 동안 그 아기가 걸을 수나 있게 되기를 바라야겠지. 레콘은 빨리 크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소.”
“그렇군요. 그런데 어떻게 최후의 대장장이가 임신 중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기가 신체라는 사실을 추리해 내신 겁니까?”
케이건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1년 만에 목욕을 하던 중 인간의 신생아 또한 1년 가까이 모친의 태내에 있다가 나와서 씻겨진다는 사실이 떠올랐소. 그러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거요.”
비형은 탄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을 안내하던 레콘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들이 안내된 곳은 응접실 같은 곳이었다. 수탐자들은 방 안에 앉았고 레콘들은 떠났다. 잠시 후 시루가 그들에게 왔다. 시루는 사금파리들을 담아 둔 상자를 내보였다.
“여기서 기다리게. 최후의 대장장이께서 아기를 데리고 오실 걸세.”
“고맙소. 그런데 다른 것 하나를 더 부탁하고 싶소만.”
“뭔가?”
케이건은 필요한 것을 말했다. 시루는 의아해하다가 곧 케이건이 요청한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물이 담긴 작은 주전자였다. 시루가 물러간 다음 케이건은 상자와 주전자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피로를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티나한 또한 어디에도 없는 신의 신체를 찾아 나서기는커녕 그대로 쓰러져 이틀쯤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적으로 덜 피로한 비형만이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그때 몽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티나한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가 누구지?”
케이건은 피로한 눈을 들어 티나한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은 수염 볏을 비틀며 말했다.
“아기가 생기려면 아버지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최후의 대장장이가 결혼했을 리가 없지. 결혼을 했다면 대장장이 일을 할 리가 없으니.”
케이건은 어쩔 수 없이 약간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티나한. 꼭 결혼해야 아기가 생기는 것은 아니오.”
티나한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가 케이건의 부도덕한 말에 대해 준엄한 질책을 하려 마음먹었을 때 문가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수탐자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서는 레콘 여인을 발견했다. 수탐자들은 일어서려 했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고갯짓으로 앉아 있도록 한 다음 자신 또한 방바닥에 앉았다.
비형은 거의 1년 만에 보는 최후의 대장장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산고 때문인지 약간 피로해 보였지만 억센 팔뚝과 강인한 어깨는 여전했다. 다른 모든 대장장이들의 동의를 얻어 최후의 대장장이가 된 그녀의 위대한 경력은 쉬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어머니가 된 여인의 충만한 기쁨이었다. 한편 티나한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최후의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티나한. 무기를 받으러 왔던 어떤 젊은 레콘이 이 애의 아버지야.”
티나한은 수염 볏을 뻣뻣하게 세웠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부리를 딱 부딪쳤다.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었다.”
“아기를 가지고 싶으셨으면 결혼을 하셨으면 될 거 아닙니까.”
“하지만 숙원도 소중했지. 최후의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숙원.”
티나한은 수염 볏을 붉히며 다시 항의하려 했다. 그때 이야기를 늘일 생각이 없었던 케이건이 불쑥 끼어들었다.
“내가 아는 어떤 레콘도 숙원과 결혼을 모두 달성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소.”
티나한은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그 레콘이 누군지 짐작한 최후의 대장장이는 다시 웃으며 티나한을 바라보았고 티나한은 헛기침을 하며 외면했다. 케이건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출산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오, 따님이오?”
“딸이야.”
“이야기는 다 들으셨습니까?”
“들었다.”
“잘됐군. 그럼 시험해 봐도 되겠소?”
최후의 대장장이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강보에 싸인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깃털 대신 솜털로 뒤덮여 있는 그 어린 것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내가 낳은 것이…………, 정말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라는 거냐?”
“당신이 낳은 것은 레콘이오. 먼젓번 신체였던 자가 죽기 직전 그 신체에 깃들어 있던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 따님에게로 전령한 것이오. 물론 이것은 내 추측이 맞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나는 맞을 거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확인해 봅시다.”
“먼저 말해 줘. 만약 이 아기가 신체가 맞다면, 너희들은 이 아기를 화신으로 바꿀 거지?”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소.”
“나는 평범한 도깨비였던 시우쇠가 너희들을 만난 다음 괴물 같은 자가 되었다고 들었다. 미안해, 도깨비. 하지만 시우쇠에 대해 들려오는 것은 모두 험악한 이야기들이었다.”
비형은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케이건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아기도 그렇게 변하는 거냐?”
“변하긴 할 거라 생각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모르오.”
“이 아이가 더 이상 내 아기가 아니게 된다는 것이군?”
케이건은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신체를 찾을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신체의 어머니를 설득할 각오는 해 두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가에게 살해당하고 있는 북부인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대의(大義)와 운명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최후의 대장장이를 지나치게 모욕하는 행위였다.
대신, 케이건은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하오.”
케이건은 자신이 세계를, 신을, 운명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자식과 헤어져야 하는 어머니가 원하기에 잠시 그들을 대신했다. 그녀 또한 케이건이 그들을 대신하여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대역을 용인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일어나라.”
케이건은 상자와 주전자를 들고 일어섰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수탐자들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그녀는 대장간의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로 수탐자들을 인도했다. 대장장이들이 그들을 보며 놀라거나 혹은 다가서려는 몸짓을 했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그들의 접근을 허락지 않았다. 얼마 후 그들은 대장간의 중심부에 도달했다. 대장장이가 아닌 자들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비형과 티나한은 경외감에 사로잡힌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들어선 곳에만 벽이 있었다. 다른 벽들은 모두 수십 미터에 달하는 얼음이었다. 비형은 그것이 얼음산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천장은 까마득한 데다 투명한 얼음으로 되어 있어 높이를 짐작키 어려웠다. 바닥 또한 매끄러운 얼음이었다.
그 중심부에 별빛 로가 있었다.
얼음으로 만들어진 노였다. 상식을 완전히 깨트리는 그 노의 내부에는 불이 피워지지 않는다. 대신 천장과 얼음벽을 통해 미끄러져 들어온 별빛이 모여든다. 그곳에서 최후의 대장장이는 강철을 제련한다. 그리고 그 강철은 대장장이들의 손을 거쳐 천년이라도 버티는 레콘의 무기가 된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수탐자들을 돌아보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짐작하겠지. 그래. 이곳에서 철은 별철로 바뀐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한 팔로 강보를 받쳐 들며 다른 손으로는 별빛 로를 쓰다듬었다.
“내 딸이 변하는 모습을 보기엔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되는군. 시작해라.”
케이건은 상자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 앉아 주시겠소?”
최후의 대장장이는 그렇게 했다. 케이건은 그녀의 무릎 앞에서 상자를 열고 꾸러미를 펼쳤다. 그러자 사금파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금파리들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였다.
티나한과 비형은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 시우쇠 앞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사금파리들은 서로의 깨진 면을 찾아 움직였다. 하나둘씩 엉겨 큰 조각을 이루던 사금파리는 마침내 접시의 모습을 이루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맞는 거냐?”
“그 아이는 신체요.”
최후의 대장장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건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뭔가가 더 남았느냐?”
케이건은 가져왔던 주전자를 접시 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하나가 된 접시에 조심스럽게 물을 부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약간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케이건은 안심시키듯 말했다.
“시우쇠 앞에서도 이렇게 했소. 그러자 접시에 있던 액체는 다른 액체로 바뀌었소. 도깨비들이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어떤 액체로. 아시겠소?”
최후의 대장장이는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비형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물이 붉은 기를 띠다가 마침내 피로 바뀌었을 때 비형은 질겁하며 도망쳤다. 하지만 그때까지 평범한 도깨비였던 시우쇠는 홀린 표정으로 접시를 내려다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케이건의 요구에 따라 그 피를 마시고 화신으로 바뀌었다.
케이건은 주전자를 내려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물은 그대로였다. 케이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시우쇠 앞에서 도깨비가 싫어하는 어떤 액체로 바뀌었으니,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나타나야 하는 것은 레콘이 싫어하는 액체일 가능성이 있소. 그런데 레콘이 싫어하는 것은 바로 이 액체지.”
최후의 대장장이는 자제력을 잃지 않은 채 질문했다.
“그걸 어쩔 생각이냐?”
“따님에게 마시게 할까 합니다만.”
“알았다.”
티나한은 당황하지 않는 그녀에게 놀랐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티나한에게 웃었다.
“대장장이는 불만 다루는 것이 아니야. 담금질을 하려면 물도 필요하지.”
최후의 대장장이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아기는 칭얼거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손수 접시를 들어 올려 다시 티나한을 놀라게 한 다음 그것을 아기의 부드러운 부리로 가져갔다. 아기는 몇 번 도리질을 쳤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차분하게 아기를 달랬다. 마침내 아기는 접시에 담긴 물을 받아 마셨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빈 접시를 내려놓고는 흥분과 불안에 휩싸인 눈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부리를 몇 번 부딪치던 아기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대장장이는 극도로 불안한 표정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티나한과 비형은 아기의 울음이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소리라도 되는 양 주의 깊게 들었다. 아기는 점점 더 크게 울었다. 불안에 떨리던 대장장이의 눈이 어느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아기의 울음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그것은 곧 계명성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더 견딜 수 없었던 비형과 케이건은 귀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 후에는 티나한마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기의 울음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최후의 대장간이 통째로 진동하는 것 같은 거대한 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