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16)

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16)


티나한의 결사적인 반대 때문에 대장장이들은 안장에 딸랑이를 부착하는 것을 포기했다. 티나한은 안장이라는 이름조차 반대했지만 그보다 더 적당한 이름이 없었기에 그냥 그 이름으로 확정되고 말았다. 제작된 ‘안장’은 티나한의 어깨에 걸릴 멜빵과 허리에 묶일 허리띠가 달린 질통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보통의 질통과 달리 바람이 잘 통하도록 뼈대만으로 구성된 점이 달랐지만. 비형은 착용감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한번 메어 보라고 열성적으로 권했지만 티나한은 때가 되면 메겠다고 극구 사양했다. 물론 그때가 반드시 오고야 말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들의 출발을 지체시키고 있는 폭풍이 멈추면 티나한은 안장을 메어야 할 것이다.

그랬기에 비형은 티나한을 자폐 증상으로 몰아가는 것을 그만두고 케이건에게 찾아갔다.

케이건은 두터운 털옷을 입은 채 대장간의 입구에 서서 폭풍의 추이를 관찰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형은 폭풍이 그치더라도 오늘은 출발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케이건의 의견은 달랐다.

“대장장이들의 말을 들어 보니 맑은 기간이 점점 줄어들 거라더군. 그러니 날씨만 좋으면 밤이라도 출발해야 할 것 같소. 티나한이 좋아하겠군. 이곳을 방문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대장장이들이 아기를 참 좋아하는 것 같죠?”

“여기선 어린 아기를 볼 일이 없으니까.”

“그렇겠군요. 아, 그런데 아기와 나눈 이야기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말이 있었습니다. 무기를 준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이름을 준다고도 하셨는데?”

케이건은 잠시 침묵했다. 설명할 말을 찾아내는 것이리라 생각하며 비형은 가만히 기다렸다. 사정없이 질타하는 폭풍이 어두워지는 하늘의 빛깔을 기괴한 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밤의 도움으로 쌓인 거성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비형은 밤이 그토록 다채로운 색깔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케이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우쇠 님의 능력이 보통의 도깨비와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좀 묘한 생각을 하게 되었소.”

“예? 무슨 말씀입니까?”

“도깨비들은 이미 자신을 죽이는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소.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는 신은 도깨비들에게 불을 준 거라 가정할 수 있을 거요. 한편 나가들의 수호자를 생각해 보면 그들 또한 발자국 없는 여신에게 받는 것이 있소. 여신의 신랑이라는 지위요. 그것은 그들이 받는 이름, 즉 신명에 포함되어 있소. 두 신이 각자 자신이 보살피는 선민 종족에게 불과 이름을 주었다면 다른 신들도 뭔가를 주었을 거라는 가정 또한 가능하오.”

비형은 놀란 눈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케이건은 손을 움직여 대장간을 가리키듯하며 말했다.

“이곳 최후의 대장간에서 레콘들은 무기를 받소. 나가들은 쉬크톨이라는 위대한 검을 만들어 내고 도깨비 대장장이들은 다른 종족들이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두려운 방식으로 철을 다룰 수 있소. 하지만 레콘은 최후의 대장간으로 와서 자신의 무기를 받소.”

“그렇다면?”

“무기요. 비형.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 그녀의 아이들, 선민 종족 레콘에게 주는 것은 별빛으로 제련된 철로 만들어진 무기였소. 그것은 불로 만들어졌기에 곧 녹스는 도깨비들의 무기와도 다르고 히참마에 의해 부러지는 쉬크톨과도 다르오. 시험해 볼 수는 없지만, 아마 히참마로도 별철은 파괴할 수 없을 거라 생각되오. 그것은 여신이 그녀의 선민 종족에게 주는 것이니까.”

케이건은 옆의 기둥에 손을 짚었다. 얼음 산에 부딪힌 거센 폭풍이 갈가리 찢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사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이제 알 것 같소. 그분이 자신의 선민 종족에게 무기를 만들어 주시는 곳. 이곳 최후의 대장간이 바로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사원이었소. 그리고 이곳에 있는 대장장이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지만 여신의 사제들이었던 거요.”

비형은 주위를 빙글 둘러보았다. 그리고 경외감에 빠져 외쳤다.

“그렇군요! 그럴듯합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는 여신의 사원에 있는 것이었군요! 이럴 수가. 왜 아무도 깨닫지 못했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 그런데……?”

케이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비형은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허둥거렸다. 케이건이 그를 도와주었다.

“그렇소. 그런 사실들을 놓고 본다면, 그것이 궁금해지는 것이 당연하오. 하지만 여신은 내가 알아내어야 한다고 하셨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이 되지 않소.”

비형은 약간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깨비는 깊이 생각했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킴들에게 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티나한의 간절한 희망이 하늘에 닿았는지 폭풍은 새벽쯤에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젊은 레콘들은 위대한 수탐의 길을 떠나는 수탐자들을 전송하는 영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 때문에 티나한은 차마 ‘이 잡것들아, 구경났냐! 잠이나 자라!’고 외칠 수는 없었다.

마침내 시루가 엄숙한 동작으로 안장을 들고 왔다. 티나한은 수염볏을 벌겋게 물들인 채 등을 돌렸고 시루는 그 어깨에 안장을 메도록 도와주었다. 젊은 레콘들 사이로 그다지 예의 바르다고는 보기 힘든 미소들이 번졌다. 그 미소들이 소음을 동반하기 시작할 때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은 최후의 대장장이가 걸어 나왔다. 젊은 레콘들은 침묵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티나한의 안장에 아기를 넣고 고정시켰다. 비형이 앞으로 나서 안장에 도깨비불을 붙였다. 이제 안장은 매서운 추위에서도 아기를 보호할 것이다. 하지만 최후의 대장장이는 안심이 되지 않는 듯 안장을 손으로 쓸어 만졌다.

그때 아기가 말했다.

“고마워요. 어머니.”

티나한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눈이 안장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쾅쾅 울리는 여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안장을 꽉 움켜쥔 채 떨리는 눈으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모두 두렵다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부리가 열렸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여신이여.”

아기는 빙긋 웃었다.

“대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머니의 딸이에요. 물론 지금 이렇게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신의 도움 덕분입니다만.”

다른 대장장이들과 달리 불이 없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최후의 대장장이에겐 풍성한 깃털이 돋아나 있었다. 그 깃털들이 곤두서 최후의 대장장이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정말…… 정말 네가 내 딸이냐?”

“그래요. 어머니.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저는 어머니에게 돌아올 거예요.”

“돌—아—온—다—고—!”

예상치 못한 계명성에 비형은 뒤로 쓰러질 뻔했다. 아기는 다시 웃었다.

“네.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까요? 난감한 일들이 많겠지요. 그래서 이 모든 혼란이 종식되면 여신께서는 제 몸에서 벗어나 다른 레콘에게로 전령하실 생각이십니다. 저는 보통의 레콘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요.”

수탐자들은 왜 아기의 모습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훗날 그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케이건이 질문했다.

“잠깐, 죄송합니다. 그러면 시우쇠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의 몸은 불덩이로 변해서…………….”

질문하던 케이건은 곧 그것이 쓸데없는 질문임을 깨달았다. 시우쇠, 그러니까 도깨비 시우쇠의 육은 불로 변했지만 그 영은 다른 도깨비들과 ‘화신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육의 죽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비형의 얼굴을 본 케이건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홀에 있던 거인들은 반가운 표정으로 최후의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아기가 말했다.

“그때가 되면, 제게 이름을 주세요. 어머니.”

최후의 대장장이는 가슴이 벅차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그녀가 겨우 부리를 열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기가 잠든 후였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솜털로 덮인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강보로 그 머리를 덮었다. 강보를 단단히 여민 최후의 대장장이는 갑자기 번개처럼 몸을 움직였다.

티나한은 갑자기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나타난 최후의 대장장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후의 대장장이는 희열에 찬 표정으로, 그러나 여차하면 티나한의 수염볏이라도 잡아당길 듯한 기세로 말했다.

“잘 들었냐?”

“예?”

“잘 들었냐? 이 아이는 내 딸이다. 네 목숨을 걸고 보호해라! 상처 하나만 냈단 봐라. ‘물’에 빠트려 죽이겠다!”

기절에서 깨어난 다음 티나한은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약속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수탐자들은 각자의 자리에 섰다. 케이건은 개썰매에 올라탔고 비형은 나늬의 등에 앉았다. 하지만 티나한은 떠날 준비를 갖추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최후의 대장간에 있던 대장장이들과 젊은 레콘들이 모두 그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물론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몇 마디를 꺼내어 티나한을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트릴 뻔한 자들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의 레콘들은 그들의 행운을 빌었다. 티나한이 겨우 그들에게서 풀려나자 케이건은 별 말 없이 출발했다. 채찍이 휘둘러지고 라호친가히들이 얼음을 박찼다.

수탐자들은 남쪽을 향해 달려갔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