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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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3)


밤, 최후의 대장간은 고요했다. 세계에서 몰려온 레콘들이 아무리 많아도 날림으로 무기를 만들지 않는 대장장이들은 일정 시간 이상 작업하지 않는다. 따라서 밤을 불사르는 용광로의 화광이나 망치질 소리는 최후의 대장간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기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젊은 레콘들 또한 성급하게 만든 무기를 받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대장장이들을 재촉하진 않는다. 하지만 밤은 지루했고 레콘을 즐겁게 할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점이 없으니 탁자 다리를 이용한 사교 활동에 매진할 수도 없고 맹수가 없으니 동물 애호의 적성을 드러낼 수도 없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적수가 없으니 존재 증명 또한 힘들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곳에 레콘이 즐겨 심취할 만한 일거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관심을 둘 일은 꼭 필요했다. 빙판에 둘러싸여 있다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엄연히 섬이었고 유쾌한 기분으로 그 사실을 상기할 수 있는 레콘은 드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방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의 회동은 수탐자들이 있는 방에서 이루어졌고 이야깃꾼의 소임을 맡은 자는 그날 낮에 도착한 다스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수탐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전쟁에 관한 것이었고 다스도는 아는 대로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는 두 명의 수탐자들의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비형은 탄복하여 외쳤다.

“용인이 되었다고요? 륜 페이가?”

“그래. 그렇다. 그런데 하텐그라쥬 공작을 잘 아나?”

대답하려는 비형에게 눈짓을 준 다음 티나한은 케이건의 부재를 아쉬워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좀 알아. 우리가 그를………….”

“아, 참. 그렇군요. 당신들이 그 분의 망명을 도왔지요? 이제 기억납니다. 여러분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그 분의 망명을 도왔고, 그리고 왕의 명령에 따라 화신의 수탐이라는 두 번째 임무에 착수하신 것이지요?”

티나한과 비형은 그 말에 동의했다. 그 외엔 할 일도 없었다. 다스도는 수염 볏을 좀 과장된 동작으로 쓰다듬었다. 자신을 무기를 쥘 준비가 된 성인으로 봐 달라는 시늉이 분명했지만 불행하게도 티나한은 그렇게 예민하지 못했다.

“아스화리탈이 포자를 뿌렸단 말이지. 그런데 그 용근이 발화했어?”

다스도는 수염 볏을 쓰다듬는 것을 포기하고 말했다.

“나가들에게 뺏은 소드락을 뿌리며 성장을 촉진했지만 그중 단 하나가 발화했습니다. 하텐그라쥬 공작은 그것을 왕에게 진상했지만 왕은 거절했지요. 그래서 공작이 그것을 먹었답니다.”

비형은 4년 전 륜과 헤어지던 날을 떠올렸다. 비형은 자신이 기억나는 륜과 용인의 관념을 결부시켜 보려 했고, 실패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도깨비의 감상이었다. 티나한 또한 목 깃털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음. 그, 하텐그라쥬 공작이라고? 그 자가 용인이 되었다는 말이지.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초인이 되었다고. 전쟁터에선 쓸만하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티나한.”

“뭐?”

“그렇지 않습니다. 하텐그라쥬 공작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용인이 되었다면서?”

“글쎄요.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하텐그라쥬 공작은 그렇게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 능력이 없어도 전쟁터에서 활약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텐그라쥬 공작은 나가 수호자들의 물 다루는 기술을 용인의 수준에서 사용합니다. 도깨비의 불 다루는 기술은 상대도 안 될 수준인 것 같습니다.”

“허!”

티나한은 그 이상의 감상을 말하기 어려웠다. 비형 또한 눈이 동그래져 다스도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방문한 다른 레콘들 또한 긴장하여 수군거렸다. 다스도는 이야깃꾼의 쾌감을 만끽하며 말했다.

“그리고 공작에겐 아스화리탈도 있잖습니까? 그 뇌룡은 하늘치를 구워 먹습니다.”

레콘들은 더 큰 감탄과 관심을 보였지만 티나한과 비형은 그러지 않았다. 풍문의 숙명인 과장이 섞인 이야기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아스화리탈에게 혹 그럴 능력이 생겼다 하더라도, 두 사람은 식물에 속한 용이 동물의 고기를 먹는 모습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티나한과 비형이 기억하고 있는 아스화리탈에겐 입도 없었다. 하지만 티나한과 비형은 륜이 용인이 되었다는 이야기에는 진실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깊은 우려를 티나한의 경우엔 분노를 느꼈다. 나가들의 골통을 부수어 주는 것에서 생의 의미를 찾겠다고 서원하고 무기를 얻게 되자마자 전쟁터로 달려 나가겠다는 청년 다스도는 신이 나서 말했다.

“우리는 이길 겁니다. 모든 것이 기막힐 정도입니다. 나가들이 한계선을 넘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왕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하텐그라쥬 공작은 이미 사라졌다고 믿은 용과 함께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다음은 바로 이곳에 계신 수탐자들의 차례겠지요.”

비형과 티나한은 놀란 표정으로 다스도를 바라보았다. 다스도는 환하게 웃었다.

“이 분들은 이미 시우쇠 님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미 나가들은 시우쇠 님의 이름에 오줌을 지릴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들은 곧 다른 두 화신도 찾아내시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겁니다!”

두 사람은 약간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위대한 승리의 열쇠가 된다는 식의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최후의 대장간에서 보낸 지난 1년은 슬픔보다는 짜증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그때 무리 중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신은 무보수 만능 하인은 아니지.”

단도장(短刀匠) 시루였다. 최후의 대장간에서는 가장 한가한 장인이기도 하다. 기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시루는 의심할 필요 없이 우수한 단도를 만들어 내지만, 단지 부리로 쪼는 것으로도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평생의 동반자로 단도를 선택하는 레콘은 별로 없다. 일거리가 별로 없었기에 단도장은 최후의 대장간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을 상대하는 일에 쓸 시간이 충분했다. 또한 낮의 피로가 없었기에 밤의 담소에 참가할 여유도 있었다. 단도장 시루는 자신을 바라보는 무리를 못 본 척하며 말했다.

“무보수 용병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군.”

다스도는 부리를 조금 벌린 채 멍하니 시루를 바라보았다. 그때 이 거인들의 세계에서 꽤나 조그맣게 보이는 비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우쇠 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지 않으십니까?”

보다 공적인 자리에라면 무시했을 테지만 시루 또한 이런 사적인 소모임에서는 비형의 질문에 선선히 대답했다.

“아니. 너희가 아닌 북부군을 위해 싸우지. 재미있지 않나?”

“재미있다니요?”

시루는 비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우쇠 님은 너희 도깨비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란 거야.”

“도깨비도 북부군에 속해 있는데요? 무기를 제작하고 군량을 대고 포로를 수용하고………….”

“싸우지는 않지. 도깨비에겐 어울리는 일도 아니야. 하지만 시우쇠 님은 싸우고 있지. 그 분을 용병이라고 말한다면 도깨비의 용병이 아닌 북부군의 용병이겠지.”

비형은 시루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시루는 그것을 명확하게 말했다.

“자신을 죽이는 신께서 도깨비들을 가호한다면, 내 생각에 그 분의 화신인 시우쇠 님의 행동은 싸움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에 집중되어야 할 것 같군. 싸움을 원하지 않는 너희 도깨비들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쪽이 더 어울릴 것 같아. 하지만 그 분은 활발하게 싸우고 있지.”

비형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단도장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신을 죽이는 신께서 도깨비를 가호하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글쎄. 비형. 나는 그렇게, 혹은 그 반대로 말하지는 않겠어. 나는 다만 자네들이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화신을 찾아내었을 때 그 분의 모습이 어떠할지 몹시 궁금하군. 우리 레콘들은 싸움으로 해결해. 나는 그것이 옳다거나 그르다고도 말하지 않겠어. 그저 우리가 그런 종족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런데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화신께서도 그러실까? 다스도. 나는 자네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두 분의 화신이 무조건 북부군의 주력 병력이 되어 주실 거라고 믿는 것은 그야말로 레콘다운 생각이라고 말해 주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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