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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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12장 – 땅의 울음 (9)


륜과 시우쇠는 피라미드로 걸어갔다.

륜은 자신이 어떻게 피라미드까지 걸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바늘로 짠 옷을 입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걷는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의 시간들을 살아온 륜 페이에게 주위를 망각한 경험은 낯설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경험들은 한결같이 황당한 것들이었다. 륜은 자신이 진흙탕에서 미끄러질 뻔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물을 감지할 수 없는, 그리고 용인이 아닌 자라도 밟기 힘들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는 진흙탕이었다. 비슷한 경우로 눈 바로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이마를 부딪힌 일도 있었다. 결국 륜은 마치 눈을 감고 밀림을 달린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 되어 피라미드의 도시에 도달했다.

퇴락한 유적을 가로지르고 피라미드를 걸어 올라가는 모든 과정이 꿈속의 일처럼 흐릿했다. 도시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었고 피라미드 내부의 복잡한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멍한 상태에 있는 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미로는 더 이상 미로가 아니었다. 지독한 예민함으로 륜은 모든 통로의 차이를 구별해 버렸다. 화신의 뜨거운 발자국이 돌 위에 남겨질 때마다 륜은 돌의 생김새와 마모된 정도, 그리고 돌들의 배치를 읽었다. 그것은 륜에게는 뚜렷하게 표시된 기호나 다름없었다. 피라미드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처음으로 두억시니가 나타났다. 그것은 평범한 두억시니였다. 그러니까,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는 의미다. 통로 가운데 서 있는 두억시니는 세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고 네 개의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두억시니는 모든 어깨에 팔이 있기를 원하는 듯했고 그것이 두억시니의 문제였다. 두억시니의 첫 번째 팔이 두 번째 팔을 뽑아 비어 있는 네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두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네 번째 팔이 된 두 번째 팔은 세 번째 팔을 뽑아 두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세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두 번째 팔이 된 세 번째 팔은 첫 번째 팔을 뽑아 세 번째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첫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 팔이 된 첫 번째 팔은 네 번째 팔이 된 두 번째 팔을 뽑아 첫 번째 팔의 자리에 붙였다. 그러자 네 번째 팔의 자리가 비게 되었다. 그것이 계속되었다. 륜은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우쇠는 무심히 두억시니의 곁을 지나쳤다. 두억시니는 팔을 붙였다 뗐다 하느라 바빠서 륜과 시우쇠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륜은 시우쇠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자꾸만 두억시니를 돌아보았다.

몇 명의 두억시니가 더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번 륜이 지나갔을 때보다 현격하게 적은 숫자였다. 륜은 유해의 폭포가 자신들의 접근을 알아차리고 다른 두억시니를 비켜나게 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깊은 수직 통로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울한 열에 의지하여 보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륜은 유해의 폭포에 함유되어 있는 습기를 민감하게 느끼며 그 전체적인 모습을 보았다. 놀랍도록 슬픈 모습이었지만 륜은 그것이 흥분하고 있음 또한 예민하게 느꼈다.

<오는 것을 봤다. 륜 페이. 옆에 계신 분이 바로 시우쇠 님이시겠지?>

륜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시우쇠의 앞을 막아섰다. 화염의 화신은 작렬하는 눈으로 내려다봤다.

“정말 태우실 겁니까? 대답을 듣기 위해 천년을 기다려 왔는데? 당신에게 그 시간은 별 것이 아니겠지만 제겐 그렇지 않습니다.”

“대호왕이 위험해져도 괜찮은 건가?”

“그 이유뿐입니까? 다른 이유는 없는 겁니까? 아까 당신은 제게 관련된 이유가 좋겠다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저와는 관련이 없는 이유도 있다는 겁니까?”

“그래.”

“그건 어떤 이유입니까?”

“너와는 관련이 없어.”

“그래도 말씀해 주십시오.”

륜에게 다시 유해의 폭포가 니름을 걸어왔다.

<륜 페이. 방해하는 것이라면 미안한데, 뭐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기다리겠어.>

<잠시만 그래 주십시오.>

“그 이유가 뭡니까?”

“설명하지 않겠다. 비켜.”

“제가 비키면 태울 생각이군요. 그렇지요?”

“그래.”

륜은 비늘을 세우며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신을 감금한 수호자들의 행위를 연상케 했다. ‘나가는 이런 종족인 것일까?’

“설명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비켜 드릴 수 없습니다.”

시우쇠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웃었다. 그가 내뿜는 코웃음은 불길이었다.

“나에게 대적하겠다는 거냐?”

“설득하려고 애쓸 겁니다.”

“왜 설득하려는 건지부터 설명해 봐. 페로그라쥬의 파괴자.”

시우쇠가 사용하는 호칭들은 언제나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페로그라쥬의 파괴자’라는 호칭이 의미하는 바는 ‘갇힌 여신의 신랑’보다 훨씬 적대적이었다. 륜은 요란하게 부딪히는 비늘을 눕히려 한참 동안 애써야 했다. 시우쇠는 빙긋 웃으며 그런 륜을 바라보았다.

륜은 시우쇠를, 그리고 통로를 바라보았다. 시우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는 피라미드 내부의 차가운 공기를 격렬히 춤추게 했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지만 륜의 눈에 보이는 시우쇠는 끝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저에겐 아버지가 없습니다.”

륜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15년 전, 아버지는 제 눈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심장 파괴를 당하신 겁니다. 저는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 세상에서 자라났습니다. 가족이 죽을까 봐, 친구가 죽을까 봐, 자신이 죽을까 봐 매 순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자라난 나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도저히 심장을 적출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심장 적출은 불사를 담보받는 것이었지만 제겐 그 반대였습니다. 제게 심장 적출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죽었습니다. 그날 저는 제 세상에서 도망쳤습니다. 비에 나가가 되었습니다.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륜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의 거센 맥박을 느꼈다.

“거룩한 신이여. 당신들이 우리를 ‘먹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군요. 생명은 유지입니다. 지속입니다. 생명의 틀이 깨어지지 않도록 틀 밖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것이 ‘먹는’ 것이군요. 사는 것은 먹는 것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륜은 손을 펴 가슴을 만졌다. 그 느린 동작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무의미한 동작이었다. 륜은 울음을 터뜨렸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왜 당신을 설득하고 싶은 것인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설명할 수 없나?”

시우쇠는 주의 깊은 태도로 질문했다. 그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륜은 그 목소리가 마치 잘 떠올려 보라고 부드럽게 권유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륜은 떠올릴 수 없었다. 은루로 얼굴을 적신 채 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하겠습니다.”

시우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손가락과 턱 사이에서 불꽃이 튕겼다. 그는 결심한 듯 말했다.

“한 가지 정도 네게 줄 것이 있다. 다른 것을 더 원하지는 마. 내가 저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을 태우는 것은 어떤 자를 구출하기 위해서다. 갇혀 있기에 그 힘을 타인에게 빼앗기고 있는 자를.”

륜은 기겁하여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여신과 저 유해의 폭포가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더 원하지 말라고 했다. 륜 페이. 용인인 너는 돌아갈 길을 다 알고 있겠지. 돌아가라.”

륜은 항변하려 했다. 그러나 시우쇠는 신의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라.”

거부가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륜은 고개를 떨구었다. 시우쇠의 옆을 지나친 륜의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졌다. 마침내 륜은 정신없이 달려갔다.

홀로 남겨진 시우쇠는 유해의 폭포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당황하고 있었다. 긴긴 세월의 기다림 끝에 답을 줄 수 있는 자가 도래했지만, 그의 말을 전해 줄 통역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언젠가처럼 그 폭포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유해의 뱀으로 바뀐 폭포는 시우쇠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이 담긴 여러 동작들을 취해 보였다. 허리에 손을 얹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우쇠가 갑자기 표현했다. 유해의 뱀은 깜짝 놀랐다.

<니르실 수 있군요!>

시우쇠는 표현했다. 유해의 뱀은 온몸을 진동시키며 격렬하게 닐렀다.

<아니라고요? 아니, 상관없습니다.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 대답해 주십시오, 대답해 주십시오. 대답해 주십시오!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습니까?>

<네? 잃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연결을 끊으라고요?>

유해의 뱀은 대호왕의 곁에 있는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들과의 연결을 끊었다. 다음 순간 유해의 뱀은 다시 연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우쇠는 표현했다.

<묶였다고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연결을 끊었으니, 가르쳐 주십시오. 잃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시우쇠는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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