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3장 – 파국으로의 수령 (6)
하텐그라쥬의 외곽, 마호가니 군단의 군영이 된 곳에서, 쥬어는 의자에 앉은 채 세 가지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세 사건 중 두 가지는 각자 어젯밤과 조금 전에 일어났다. 그리고 하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쥬어에게 다가왔지만, 그것은 명백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쥬어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 번째 사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결정해 두고 싶었다.
어젯밤 비아스 마케로우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를 당혹시켰다. 쥬어는 솔직히 그 점을 인정했다. 그는 정말 놀랐다. 물론 비아스는 충분히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 노력했다. 어쨌든 쥬어 또한 불신자들이 여신을 가두고 있는 거라면 왜 자신들이 그렇게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여신을 풀어주지 않는 거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음모의 규모가 지나치게 거대했기에 쥬어는 받아들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쥬어는 비아스의 요구를 들어주겠노라고 닐렀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요청을 조금 보류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조금 전, 아직 충분히 낯익지 않은 부하 두 명이 쥬어를 찾아왔다. 자신을 스바치와 카루라고 밝힌 두 사람을, 쥬어는 경계심을 가지고 맞이했다. 쥬어는 그 두 명이 보물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하러 온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용건이 수호자들이 꾸민 어떤 음모에 대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쥬어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루와 스바치는 비아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비아스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세부 사항을 두 사람은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쥬어는 잠깐 동안 두 사람이 비아스에게 고용되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떠올렸다. 하지만 스바치와 카루는 비아스에 대한 끔찍한 혐오감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비아스가 수호자 한 명을 살해했다는 니름까지 들려주었다. 쥬어는 비늘이 서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카린돌 마케로우라는 여자가 수호자들에게 억류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발자국 없는 여신은 영이 빠져버린 카린돌 마케로우에게 억류되어 있기 때문에 수호자들은 여신의 힘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는 것이군?”
비밀 유지를 위해 대화는 육성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쥬어. 물론 당신은 수호 장군들 덕분에 북부에서 많은 재산을 모았지요. 하지만 당신이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행운을 찾아내는 당신의 능력입니다. 수호자들에게 고마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신성한 여신을 냉혹한 감방의 수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끔찍한 배신입니다.”
쥬어는 그 주장에 동감했다. 스바치는 열성적으로 말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만약 수호자들의 저 끔찍한 음모를 폭로한다면, 대가문들은 당신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그것은 당신이 대가문의 가주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일 겁니다.”
“글쎄. 스바치.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대가문들은 북부에서 들어오는 부를 사랑해.”
“그 말에는 동감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부가 계속되겠습니까? 그 부는 북부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몇 년 만에 강탈해 왔지요. 이제 북부인들은 그 부를 쌓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여버렸으니까요. 보나마나 북부에서의 수입은 줄어들 겁니다. 당신도 그것을 짐작했기에 하텐그라쥬로 돌아온 것 아닙니까?”
쥬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스바치의 말대로였다. 살육을 목적으로 삼은 군단들과 달리 쥬어의 의용군은 부의 수집을 목적으로 삼고 있었고, 따라서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보나마나 가문들과 군대 사이의 알력이 시작될 겁니다. 지금껏 그들의 재산을 불려주었기에 대가문들은 저 끔찍한 무장 집단을 용인했습니다. 하지만 군단들이 더 이상 재화를 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대가문들은 겁을 낼 겁니다. 지금껏 내전이라는 이야기는 몇 번이나 나왔습니다. 그것이 실제화될 겁니다. 다만 도시와 도시가 아닌, 군단과 가문의 내전이지요.”
“비늘 서는 말이군. 그래서 자네가 제안하는 것은? 수호자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들에 맞서 전쟁을 벌이자는 건가?”
카루가 말했다.
“천만에요. 수호자 집단은 존속되어야 합니다. 다만 그들은 여신의 힘을 휘두르는 초인이 아니라 심장병의 관리자 수준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장탑에 갇혀 있는 카린돌 마케로우를 구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은 여신에게 되돌아갈 테고, 수호자들은 힘을 잃을 겁니다.”
“수호 장군들이 힘을 잃는다면, 전쟁은?”
“전쟁은 끝내는 겁니다.”
“하지만 북부인들은 이 전쟁 때문에 세 가지를 찾아내었어. 시우쇠, 뇌룡공, 그리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그들의 왕. 그 정체 모를 대호왕 말이야. 그 세 가지를 막아내려면 수호자들에게 힘이 있어야 할 텐데.”
“아니오. 북부는 우리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수호자들에게 힘이 없을 때도 그들은 감히 키보렌에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약해졌을 때는 절대로 덤빌 수 없습니다. 그들이 비록 당신이 말한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북부가 황폐해진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살길을 찾는 것도 벅찰 겁니다. 우리는 그저 물러나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쥬어는 북부군이 이미 하텐그라쥬로 진격 중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정보를 내놓는다고 해서 자신 또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럴듯한 말이군. 수호자들이 힘을 잃어도 문제 될 것은 수호자 자신들 뿐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대가문들의 호의를 받겠지요.”
“그렇다면 너희들은 무엇을 얻는 거지?”
스바치와 카루는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스바치가 말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수호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자들입니다. 비록 악당에게 속아 그의 수족으로 활동했지만, 우리들의 맹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분이 풀려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쥬어는 감동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그의 마음 어디에서도 감동 비슷한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쥬어는 아무런 감동 없이 두 사람의 뜻을 받아들이겠노라고 맹세할 수도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두 사람은 만족하며 떠났다. 그리고 쥬어는 홀로 앉아서 다가올 세 번째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고민거리는 비아스의 요청과 카루와 스바치의 요청이 서로 상치된다는 점이었다. 카루와 스바치의 요청은 대가문들에게 수호자들의 음모를 폭로하고 그들과 협력하여 심장탑에 감금된 여신을 구출하자는 것이었다. 비아스의 요청도 두 사람의 요청과 비슷했지만, 작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는 다가올 세 번째 사건에 대한 쥬어의 대응을 완전히 다른 두 가지로 나눠 놓았다. 쥬어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마침내 그가 결정을 내린 것은 세 번째 사건이 천막 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쥬어는 예의 바르게 방문자를 받아들였고 겸손하게 닐렀다.
<수호자 보트린. 저같이 천한 자를 친히 찾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전선을 질타하며 병사들을 부려 본 경험이 없는, 그리고 냉동 장치 근처를 떠나 본 적도 별로 없는 보트린은 수호자들의 위세가 얼마나 높아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우쭐해졌다. 보트린은 권위 있는 단어를 떠올리려 애쓰며 닐렀다.
<쥬어. 근래 자네의 이름은 심장탑에 고독하게 앉아 세상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나에게까지 들려오더군. 여신에 대한 경애의 마음으로 자네는 몸소 의용군을 조직하여 북부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고 하더군. 참으로 고맙고 기쁜 일이야.>
쥬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겸손을 떨었다. 보트린은 만족한 표정으로 닐렀다.
<자네가 이룩한 업적들에 대해서 나와 모든 수호자들은 진심으로 감사하네. 그런데 근래 나에겐 북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해졌네. 물론 나는 자네 이상 가는 적임자가 없다는 것을 당장 깨달을 수 있었지. 자네는 한 번 더 여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어려운 일에 나서주겠나?>
<그것은 어떤 일입니까? 아니 잠시만요. 주위에 누가 있는지 좀 봐야겠습니다.>
보트린은 쥬어가 주의 깊은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쥬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입구로 향했다. 몸을 내밀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쥬어는 천막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러는 도중 쥬어는 보트린의 뒤쪽을 지나가게 되었다.
수호자의 뒤를 지나치는 대신, 쥬어는 비아스에 대해 생각했다. 수호자를 죽일 정도의 여자라면 이런 일을 요청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이 완료되었을 때 그의 손에 쥐어진 쇠망치는 이미 보트린의 뒤통수에 도달해 있었다.
누군가가 보트린을 불렀다.
<스보트리넌 레졸디 이세리도.〉
<내 이름이야. 내 신명은 레졸디. 레졸디는 나의 여신. 나의 신부.>
<스보트리넌.>
<차가운 그곳에 갇혀계신…… 오오, 신부여, 내가 어떻게 당신을 그곳에 내버려둘 수 있을까. 당신의 신랑인 내가.>
<보트린.>
<나를 용서하지 말아요. 나는 용서받을 수 없어.>
<보트린!>
완전히 추상적인 세계에서 보트린은 갑자기 구상적인 세계로 떨어졌다솟아올랐다 나왔다―들어갔다. 보트린은 눈을 떴다. 무서운 통증이 뒤통수에서 전해져 왔고 보트린은 비늘을 부딪치며 머리를 감싸 쥐려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한 보트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조금 전과 같은 장소에 있었다. 하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는데, 튼튼해 보이는 밧줄이 그의 몸을 의자에 단단히 묶어두고 있었다. 보트린은 경악하여 고개를 들었다. 장군의 옷을 입은 여인이 손에 사이커를 든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아. 육성으로 말하겠어.>
“대답해, 보트린, 육성으로.”
<당신은…… 비아스 마케로우?>
비아스는 주저없이 사이커를 내찔렀다. 허벅지를 찔린 보트린은 정신적 비명을 내질렀다. 비아스는 다시 말했다.
“육성으로. 그러지 않으면 뽑지 않겠다.”
보트린은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비아스는 사이커를 뽑았다. 보트린은 그것이 대단한 포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상처는 여전히 까무러칠 만큼 아팠다. 하지만 비아스의 냉혹한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여신의 힘을 사용할 생각은 하지 마라. 약간만 의심스러워도 나는 신호를 보낼 테고, 그러면 네 뒤에 있는 자가 쇠망치로 너를 잠재울 거다. 그리고 다시 깨운 다음,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거야. 별로 내키지 않지? 나도 그래. 그러니 유벡스를 기억하고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허벅지의 통증 때문에 보트린은 비아스의 말을 집중해서 듣기 어려웠다. 그는 계속 허벅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비아스는 사이커를 뻗어 보트린의 턱을 받쳐 올렸다. 보트린은 비늘을 부딪치며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자, 보트린. 밤은 짧고 할 이야기는 많아. 그러니 빨리 끝내자구. 누가 신체를 찾아낸 거지?”
“무슨 말입니까?”
“누군가가 내 여동생이 신체라는 것을 깨달았잖아.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지는 마. 너희들은 최소한 15년 전부터 그걸 알았어.”
보트린은 통증을 잊었다. 그는 경악하여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말이 목구멍으로 뛰쳐나오기 전, 보트린은 간신히 그 말을 바꿨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비아스는 격노하며 사이커를 쳐들었다. 보트린은 엉겁결에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비아스는 사이커를 휘두르지 않았다. 무서운 눈초리로 보트린을 쏘아보던 비아스는 천천히 사이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까이 있던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그 위에 앉았다. 무릎을 꼰 비아스는 그 위에 사이커를 쥔 팔을 올려놓은 자세로 말했다.
“좋아. 그럼 15년 전에 죽은 요스비라는 이름의 남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보트린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비아스는 그런 보트린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15년 전, 하텐그라쥬에서 이상한 죽음이 발생했어. 페이 가문을 방문하고 있던 요스비라는 남자가 갑자기 온몸의 피를 뿜으며 죽었지. 당시 가주였던 지커엔 페이는 남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어. 그녀는 그것이 혹 전염병이 아닐까 의심했지. 그런데 다른 가문의 가주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 그들은 지커엔 페이 가주가 예의 없는 남자를 제거한 거라 생각했어. 그 남자는 특이하게도 자신이 지커엔 페이의 아들딸의 아버지라고 주장했거든. 미친놈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 미친놈 하나 없어져봐야 아무런 문제될 것은 없었기에 가주들은 지커엔 페이의 니름을 믿는 척하며 그 남자를 불태웠지. 여기까지는, 약간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지.”
보트린은 애써 비늘을 억누르며 비아스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비아스는 보트린이 그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사이커가 다가와 보트린의 얼굴을 비아스를 향해 고정시켜 놓았다. 보트린은 체념하며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겐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목격자가 남긴 증언이 있지. 내 여동생, 카린돌 마케로우가 그 자리에 있었어. 그리고 또 한 명, 당시 수련자였던 륜 페이가 그곳에 있었어. 요스비는 륜 페이의 어머니의 짝이었지. 아버지 말이야. 그리고 순진했던 륜 페이는 아버지라는 웃기는 니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였어. 그런데 그 꼬마의 눈 앞에서 아버지가 괴상한 모습으로 죽은 거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 줄 알아? 륜 페이의 정신이 열려버렸지. 마침 그곳에 있던 카린돌은 륜 페이의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어. 그리고 그것이 심장 파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저, 정신이 열렸다고?”
“그래. 내 여동생에 대해 특별히 호감은 없고, 지금 그 멍청한 년의 처지에 대해서도 한 점 애석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카린돌의 용기에 대해선 보증할 수 있어. 카린돌은 심장 파괴라는 것의 존재를 알면서도 몇 년 후에 심장 적출에 응했지. 대단하지?”
보트린은 냉동 장치 안에 갇혀 있는 카린돌을 떠올렸다. 그녀는 보트린의 여신 레졸디였다. 비아스는 계속 말했다.
“자. 이제 요스비의 살해자가 누군지 밝혀졌어. 정체 모를 전염병도 아니고 가문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가주도 아냐. 요스비를 죽인 것은 너희 수호자들이지. 자, 그런데 왜 너희들이 한 남자를 죽여야 했던 걸까? 그것도 그렇게 이상한 방법으로?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어.”
냉동 장치 안에 있는 용감한 카린돌을 떠올린 보트린은 스스로도 용기를 끌어모았다.
“물론 당신이라면 많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겠지요.”
비아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기세가 마음에 드는군. 그럼 계속해 볼까. 세월이 흐르고 요스비의 죽음이 잊혀질 무렵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4년 전, 우리들의 세계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지. 여신이 사라진 거야. 그건 물론 너희들이 신체인 카린돌을 감금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부정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런데요?”
“그런데 왜 4년 전이고 왜 카린돌일까?”
“무슨 말입니까?”
“4년 전은 륜 페이가 심장을 적출하는 해였지. 물론 륜은 그것을 거부했지만. 자, 생각해 봐. 4년 전이라는 시간에서 우리는 륜 페이를 떠올릴 수 있어. 그리고 신체는 카린돌이었어. 그런데 륜 페이와 카린돌에겐 공통점이 있지. 그들은 하나의 사건을 같은 장소에서 함께 목격한 사람들이라고.”
보트린은 입을 벌렸다. 비아스는 그 표정에 기뻐했다.
“마음에 드는 표정이군. 그 표정 되도록 유지해 주면 좋겠어. 자, 그들은 요스비의 죽음을 함께 목격했던 사람들이야. 그들 중 하나가 심장을 적출할 나이가 되었을 때 또 한 명이 너희들에게 감금되었지. 그런데 그 일은 원래 한 명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이야. 뜻하지 않은 사건에 의해 두 사람에게 각자 따로따로 일어난 거지. 너희들의 그 냉동 장치에 처넣어져도 살아 있으려면, 그건 심장을 적출한 나가여야 해. 그렇지 않은 나가를 냉동시키면 죽어버리겠지.”
보트린의 등 뒤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아스의 경고대로 누군가가 쇠망치를 든 채 뒤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보트린은 그것이 쥬어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비아스의 말에 집중했다.
“너희들은 륜 페이를 냉동시키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륜 페이가 적출할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지. 그 말은, 너희들이 륜 페이가 신체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 어떻게 해서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걸까? 그건, 너희들이 륜 페이를 신체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야. 여신을 륜 페이에게 전령시키려 했던 거지. 륜은 여러 가지로 편리하지. 우선 남자야. 카린돌에게 했던 것처럼 복잡한 납치극 따위 벌이지 않아도 돼. 게다가 수련자였지. 그러니 륜은 너희들의 통제 아래에 있는 셈이지. 그래서 너희들은 륜을 신체로 만들려고 했어. 어떻게? 신체를 륜 앞에서 죽여서 여신이 륜에게 깃들게 하려 했던 거야. 여신이 천천히 전령을 준비할 수 없도록 급격하게. 그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전령할 수밖에 없도록. 요스비. 그가 바로 먼젓번 신체였던 거지!”
보트린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보트린의 상태를 눈치 챈 비아스는 빠르게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몇 가지 생겼지. 우선, 그 사건에 충격을 받은 륜이 수련자를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혔어. 그래서 너희들은 륜과 접촉할 수 없었어.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 하지만 별 의심 없이 기다렸겠지. 그런데 어쩌다 알게 된 거야. 륜이 신체가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이 그걸 어떻게 해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너희들은 황급히 여신이 누구에게 전령했는지 조사했지. 그 결과 요스비가 죽었던 장소에 륜 이외에 다른 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사람이 바로 카린돌 마케로우야. 요스비가 죽게 되자 여신은 카린돌에게 깃든 거지.”
비아스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은 카린돌을 죽여서 또 만만한 수련자 한 명에게 전령시키고 싶었을 거야. 그러려고 하면 방법은 있지. 우리 가문에는 화리트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남자를 죽이는 것과 여자를 죽이는 것은 다르지. 카린돌이 갑자기 죽게 되면 사건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야. 너희들은 카린돌이 자연사해서 다른 자에게 전령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어. 심장 적출을 한 카린돌이 죽으려면 몇십 년이나 기다려야 할 테니까. 그래서 너희들은 어쩔 수 없이 카린돌을 냉동시키기로 결심했어.”
비아스는 고개를 돌려 심장탑이 있는 방향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매에 차가운 미소가 흘렀다. 비아스는 다시 보트린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자, 이 모든 가설이 성립되려면 어떤 한 사람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너도 짐작하겠지? 그는 바로 누가 신체인지 알 수 있는 자야. 너희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어. 누가 신체인지 감지할 수 있는 자 말이야. 그런 사람이 없다면 이 계획은 처음부터 성립이 불가능하지. 그러니, 보트린. 이제 말해 보겠어? 누가 그 예민한 녀석이지?”
보트린의 어지러움이 더욱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