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4장 – 혈루(血淚) (4)
조금 전 도끼로 밧줄을 후려쳤던 롭스는 도르래에 도끼를 가져다댄 자세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줄이 끊어지지 않은 다른 세 개의 연은 하늘치의 등에서 미끄러졌다. 소임을 다한 연들은 불우한 모습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발굴대는 하늘치만을 바라보았다. 롭스가 끊은 줄은 하늘치의 등에서 길게 늘어진 채 끌려가고 있었다. 그 엄청난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고작 네 사람의 힘이다. 롭스는 눈을 부릅뜬 채 밧줄이 짧아지는 징후를 찾았다.
마침내 밧줄이 서서히 움직였다.
하늘치가 계곡 끝에 도달했을 때 밧줄 끝은 이미 숲의 머리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롭스는 안심하지 않았다. 최소한 밧줄의 절반 이상이 하늘치의 등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밧줄은 언제고 아래로 풀려내릴 수 있다. 롭스는 도끼를 어떻게 하지도 못한채 그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롭스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환호를 올렸다.
밧줄의 절반 이상이 하늘치의 등 위로 올라간 것이다. 이제 네 사람이 밧줄을 놓는다 하더라도 이미 끌어올려진 무게가 밧줄이 풀리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롭스는 고함을 질렀다.
“성공이다!”
다른 자들도 모두 비슷한 말들을 외쳤다. 서로 얼싸안고 팔짝팔짝 뛰는 자들도 있었고 한바탕 춤을 추는 자들도 있었다. 롭스 또한 기쁨에 목이 메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고래고래 외치며 그들 가운데 끼어들었다. 눈 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지만 롭스는 눈을 닦지 않았다.
밧줄의 절반을 끌어올린 시점에서 세 남자는 오레놀에게 쉬라고 권했다. 흥분과 충격, 그리고 격심한 노동의 후유증 때문에 오레놀은 그 권유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오레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 위에 걸터앉았다. 다른 세 사람은 그런 오레놀을 보며 빙긋 웃으며 일을 나누었다. 두 사람이 밧줄을 끌어당겼고 한 사람은 끌어올려진 밧줄을 둥글게 사렸다. 사려진 밧줄 무더기의 크기는 대단했다. 밧줄이 아래로 끌려내려 갈 일은 절대로 없어 보였다. 내려갈 방도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한 오레놀은 체면 불구하고 드러누웠다. 너무나도 가깝게 느껴지는 하늘이 그의 눈을 부시게 했다.
그리고 오레놀은 펄쩍 뛰듯이 일어나 섰다.
그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피곤하다고 그냥 드러누워 씩씩거려도 되는 장소가 아니었다. 오레놀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하늘치 등이야!”
오레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세 남자는 다시 씩 웃었다. 오레놀은 벅찬 감동을 어쩌지 못해 또다시 외쳤다.
“그렇죠? 예? 우리는 하늘치 등에 올라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님. 마침내 올라왔습니다.”
사내들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중 특히 마음이 여려보이는 남자는 밧줄 사리 위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다가 기어코 울음을 터뜨렸다. 오레놀은 떨리는 손을 손목으로 가져가 염주를 꺼내어 들었다.
오레놀은 하늘치의 등 위에 무릎을 꿇고 염주를 헤아렸다. 손이 떨려 자꾸만 염주알이 미끄러졌지만 대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감사의 말들이 흘러나왔다.
비약에 가까운 단순화를 적용시킨다면 하늘치의 등에 오르는 것과 말 등에 오르는 것은 비슷한 일이다. 어쨌든 둘 다 살아 있는 동물의 등에 오르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런 단순화는 오레놀과 다른 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전인미답의 풍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언덕과 구릉. 매우 평범하고 편안한 단어들이지만, 그들 근처에 있는 언덕과 구릉은 모두 살아 있는 생명체의 일부였다. 그래서 그 평범한 단어의 느낌은 매우 기묘한 것으로 바뀌었다. 네 사람 모두 시선을 돌려 아래쪽에 있는 진짜 언덕과 산을 보는 것이 좋은 생각일 거라 여겼지만 그들 중 누구도 가장자리쪽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점점 가팔라지는 하늘치의 허리에서 갑자기 미끄러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천지라고 해야 할 그 풍경 속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그들 자신들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오레놀은 갑자기 동료들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오레놀은 그들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레놀의 질문에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설치느라 통성명도 못 했군요. 스님. 저는 킬소 펜이라고 합니다.”
“막타드 신뷰레입니다. 슈라도스 출신입니다.”
“주키 네미입니다. 발케네에서 왔지요. 그리고 제 고향 풍습에 따라 하늘치 유적의 유물을 훔쳐볼 작정입니다.”
오레놀은 당황하여 주키 네미를 바라보았고 주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오레놀은 상대가 농담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통성명을 마친 네 남자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별로 나아진 것은 없었다. 풍경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이국적이었다. 결국 킬소 펜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올라오기 전에, 저는 일단 이곳에 발을 디디면 하늘치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보려고 작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래가지고서야………, 땅에 대고 말을 거는 기분일 것 같은데요. 스님. 움직이는 느낌이 있습니까?”
다른 세 사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하늘치는 느리게 움직이고 있을 테지만 그들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킬소는 어깨를 으쓱였다.
“유적 쪽으로 가봐야겠지요?”
“그럽시다. 그런데 어느 쪽이지요?”
그들은 지느러미에 가까운 등쪽에 있었고 그곳의 전망은 그렇게 좋은 것이 되지 못했다. 또한 하늘치의 등 위는 완전한 평면이 아니었다. 생명체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늘치의 등에는 구릉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듯한 요철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유적을 볼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등 위에서 길을 찾아 헤맨다는 사실에 그들은 다시 충격을 받았다. 막타드 신뷰레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흐음.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벼룩은 아마 개털 속에서 어느 쪽이 머리가 있는 쪽인지 가끔 헷갈리겠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저쪽입니다. 저쪽에 지느러미가 있으니. 하지만 저 언덕, 아니, 육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저 위로 올라가 보면 시야가 좀더 확보될 것 같습니다.”
방향이 정해지자 세 사람은 오레놀의 연을 신속하게 해체했다. 오레놀이 보고 있는 가운데 세 사람은 연살을 구성하고 있는 막대기들을 뽑아 밧줄 사리에 끼웠다. 주키와 막타드가 그것을 어깨에 목도처럼 매었다. 그리고 킬소는 연을 구성하고 있던 천을 차곡차곡 접어 봇짐처럼 만들어 어깨에 매었다. 꽤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그들을 보며 오레놀은 그들이 많은 시간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었다. 킬소는 남아 있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운반하기 좋게 묶어 오레놀에게 건넨 다음 일행을 출발시켰다.
하늘치의 몸 위를 걸어가며 오레놀은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을 건네었다.
“그런데, 내려갈 때는 정말 밧줄 하나에 매달려 내려가는 겁니까?”
킬소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스님. 방금 올라왔는데 벌써 내려갈 생각을 하십니까? 내려가는 것은 좀 천천히 해도 될 겁니다. 일단 아래쪽에서 몇 사람이 보급품을 가지고 올라올 겁니다. 우리가 끌어올려야 하지요. 처음에는 한 사람이 또 다른 밧줄을 가지고 올라올 겁니다. 그리고 차차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겁니다.”
“하늘치는 계속 움직이는데요?”
“롭스는 이 하늘치가 어떻게 움직일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지상의 동료들은 열심히 짐 챙겨서 다음 접선 지점으로 움직일 겁니다. 우리는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음. 이런 건 생각 못 해 보셨겠지요? 후발대가 가지고 올라올 것 중엔 분뇨 자루도 있습니다. 우리는, 험, 하늘치 등 위에 변을 남겨두는 문제에 대해 좀 고민했지요. 그러고는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요. 저라도 누가 제 등에 변을 무더기로 싸놓고 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오레놀은 당연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굴대가 많은 준비를 한 것이 분명하기에 오레놀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추측은 잠시 후 주키가 꺼낸 말에 의해 확인되었다. 주키는 발 아래를 보며 말했다.
“역시 이 녀석은 간지럼을 안 타. 그렇지?”
킬소와 막타드는 씩 웃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던 오레놀은 질문했고 막타드가 대답했다.
“아, 우리는 이 녀석이 우리 때문에 간지럼을 타서 몸을 뒤척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생각하는 것만으로 오레놀은 소름이 돋았다. 막타드는 그를 안심시켰다.
“물론 이렇게 거대한 녀석이 간지럼을 탈 리도 없거니와 만약 그렇게 예민하다면 새나 구름 따위와 부딪혀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오레놀은 발굴대가 별의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고려했음을 확신하며 안도했다. 그러는 동안 일행은 목표했던 육봉의 꼭대기에 도달했다. 네 사람은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레놀은 자신이 등뼈쯤에 해당하는 부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그의 추측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하늘치의 등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광활했고 주위에는 그들이 올라선 것과 비슷한 언덕이 잔뜩 있었다. 약간의 당황 속에서 오레놀은 자신들이 하늘의 여드름에 해당하는 부위에 올라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그들은 곧 유적을 발견했다. 일행은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갔다. 킬소는 걸어가며 계속 설명했다.
“밧줄은 유적에 묶어야 합니다. 이 친구의 등 위에는 밧줄을 묶을 장소가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의 몸에 못을 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지만 저 유적은 수천 년 동안 이 위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버틴 것이니만큼 충분히 견고할 겁니다.”
“저 유적에 묶고도 밧줄이 아래까지 닿을까요? 저는 한참 동안 걸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충분히 닿습니다. 롭스는 넉넉하게 잘랐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람이 네 명 필요한 겁니다.”
다시 질문하려던 오레놀은 자신이 뒤쳐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 사람은 어느새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레놀이 그들에게 보조를 맞추었을 때 그들은 빠른 걸음과 느린 달리기의 중간쯤 되는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레놀은 그들의 흥분을 이해했다. 그리고 대덕 또한 조금씩 흥분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을 기다려온 유적이 이제 몇 걸음 앞인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이 나타났다.
일행은 급격하게 멈춰섰다. 눈 앞에는 언덕이 있었지만 유적의 높은 부분들은 언덕 너머까지 보였다. 일행은 서로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킬소는 손짓만으로 일행을 다시 전진하게 했다. 네 사람은 두려움마저 느끼며 언덕을 올랐다.
일행이 언덕 위에 올라섰을 때, 유적은 모든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름다웠다.
그것은 폐허였다. 하지만 그 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폐허였다. 그것은 반 정도만 남아 있는 지붕들, 이가 빠지듯 군데군데 부러진 열주들, 기묘한 모습으로 무너진 벽과 담장들로 이루어진 예술이었다. 일행은 감격에 말문이 막혔다. 오레놀은 폐허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에 기이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레놀은 그것이 정말 기이한 폐허임을 깨달았다.
오레놀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당혹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폐허를 마주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오레놀은 왼쪽에 있는 반쯤 무너진 박공 지붕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오레놀이 예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식이었고 따라서 박공 지붕이라는 말은 그저 인상이 그러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 그 박공 지붕은 겨우 세 개의 기둥에 의해 받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들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도저히 지붕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기둥 중 하나가 가운데 부분이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 세 번째 기둥의 윗부분은 천장에 붙어 있었고 아랫부분은 땅을, 아니, 하늘치의 등을 단단히 디디고 있었지만 중간 부분은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 오레놀이 보기에 그 기둥이 세 기둥 중 가장 많은 무게를 받는 기둥이었다.
그 뒤편에 있는 탑 또한 매한가지였다. 아름답다는 점에서도, 당혹스러운 형태라는 점에서도. 그 탑은 진작에 무너졌어야 마땅한 탑이었다. 기단에 해당하는 부분이 9할 이상 파괴되었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탑은 약간의 기울어짐조차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본 네 사람은 곧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치에 맞지 않는 장면들을 꽤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주키는 그 장면을 꽤 재치 있게 표현해 내었다.
“무너진 폐허가 아니라 군데군데 지워져…………… 뒷배경이 보이는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데. 물론 진짜 풍경화는 지워진다고 해서 뒷배경이 보이지는 않지만.”
세 사람은 주키의 말에 동감했다. 그런 모습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두 가지뿐이었다. 건물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강인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거나, 혹은 무게가 거의 없는 소재로 이루어졌다는 것. 두 가지 이론 모두 상식을 상당히 괴롭히는 이론이었다. 고심하던 킬소가 말했다.
“저기 광장에 늘어서 있는 기둥들, 저게 상당히 튼튼해 보이는 군요. 저기에 밧줄을 묶으면 될 테니 짐은 모두 저곳에 내려놓고 좀 가볍게 돌아다녀보지요.”
킬소는 기둥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열주처럼 늘어서 있지만 그것은 원래 건물의 일부를 받치거나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광장 가운데를 가로질러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다. 발굴대는 왜 건물을 받치지도 않는 기둥들을 야외에 죽 늘어세웠는가에 대해 의아해했지만 오레놀은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념비였다.
“고대풍이군요. 저 기둥들에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이, 아마 그림이나 글로 새겨져 있을 겁니다. 판사이의 육 형제 탑과 비슷한 겁니다. 물론 그 탑들은 건물 안쪽 벽면에 부조가 있고 저건 바깥쪽에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만.”
“그런가요. 안쪽에 있는 것이 비바람 따위에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지요. 그래서 그런 형태일 경우에는 좀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선택되지요. 판사이의 육형제 탑에 있는 내용은 아무나 볼 수 없었잖습니까. 지금은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쨌든 저 기둥들은 공개되어 있는 것이니, 이 유적의 건설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레놀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 유적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대덕은 기둥에 그림이 아닌 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둥에 새긴 그림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글 쪽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레놀은 기둥에 뭔가 글자처럼 보이는 것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후 오레놀은 큰 실망을 느꼈다. 롭스가 자격 요건을 말해 주었기 때문에 오레놀은 다른 세 사람도 실망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기둥들에는 정교한 솜씨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읽을 수 없는 글자였다.
네 사람은 막막한 심정으로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오레놀은 이제 차라리 그림이었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이라면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으며, 따라서 이토록 막대한 정보를 눈 앞에 둔 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장할 꼴은 겪지 않아도 되니까. 주키는 마치 계속 노려보면 글자들 속에서 문법의 신비가 떠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기둥들을 노려보았고 킬소는 머리를 계속 움직이며 입 안으로 뭔가를 웅얼거리는 모습이 글자 수를 세는 것 같았다. 모두들 읽을 수 없는 글 앞에서 당혹한 것이다. 하지만 막타드는 빨리 체념한 듯 들고 온 사리에서 밧줄 끝을 찾아내어 풀어내고 있었다. 오레놀은 그에게 다가갔고 킬소 또한 포기한 듯 걸어왔다. 밧줄 끝을 붙잡고 기둥 쪽으로 다가갔을 때 그들은 주키가 기둥에 얼굴이 닿을 듯한 모습으로 글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킬소가 말했다.
“가까이서 보면 모르던 글 알게 되냐?”
주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묘했다. 세 사람이 들고 오는 밧줄을 본 주키는 웃음, 혹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밧줄 여기에 묶으려고?”
“그래.”
“정말 그럴 거야?”
“당연하잖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생각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세 사람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주키를 바라보았다. 주키가 혹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오레놀이 말했다.
“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설명해 주겠습니까?”
주키는 오레놀의 요구를 따랐다.
뒤이어 터져나온 오레놀의 비명은 하늘치의 머리 끝에서 꼬리 끝까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