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5장 – 셋은 부족하다 (4)
칸비야가 북부군에 체류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륜은 시모그라쥬에 주둔하고 있던 다섯 개 군단과 수호 장군이 모두 하텐그라쥬 방향으로 떠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라수 규리하는 시모그라쥬를 무혈 통과하게 된 것에 대해 즐거워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상대해야 할 수호자들이 더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우울한 낯빛을 띠었다.
그리고 북부군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북부군은 시모그라쥬의 외곽을 통해 도시를 우회했다. 나가의 도시에는 교외의 농장 지대 같은 것이 없기에 그리 먼 길을 돌지는 않았고 우회는 반나절만에 종료되었다. 시모그라쥬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에 도달했을 때 괄하이드 규리하는 북부군에게 야영 준비를 명령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북부군과 동행한 칸비야 고소리 의장에게 다가갔다.
“의장님. 덕분에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장님이 내린 어려운 용단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칸비야 의장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운을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습겠지요. 다만, 다음에는 보다 유쾌한 상황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괄하이드는 또 만날 기회가 올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별 내색없이 감사를 표했다. 그때 륜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대장군님. 제가 고소리 의장님을 시모그라쥬의 저택까지 모셔드리고 와도 되겠습니까.”
라수가 불 맞은 고양이 같은 기세로 고개를 홱 돌렸다. 괄하이드는 난처한 표정으로 칸비야와 륜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칸비야 또한 당혹했다. 륜이 설명했다.
“의장님처럼 지체 높으신 여인이 아무런 호위자도 없이 도시로 들어가는 것은 그 품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남자가 호위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호위해 드리고 오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소? 저 도시에 이제 수호자는 없지만, 당신은 심장을 가지고 있소.”
“저는 예민합니다. 그리고 시모그라쥬의 시민들이 저를 해하여 지척에 있는 북부군을 불러들일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을 겁니다. 위험은 없습니다.”
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없어지면 떠나갔던 수호자들이 혹 되돌아올 경우 그것을 감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머지 않아 밤이 될 텐데, 밤에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시우쇠 님과 아스화리탈이 남게 될 겁니다.”
“아스화리탈을 놔두고 갈 거요?”
“예. 도시에 데리고 가기엔 덩치가 너무 크니까요. 도저히 예의도 아니고.”
괄하이드는 또다시 칸비야 의장과 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좋소. 나는 나가의 예법에 대해서는 무지하오. 그러니 당신에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소. 우리는 내일 아침 일출에 맞춰 출발할 거요. 그때까지 돌아오길 바라오.”
괄하이드는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출발 방향은 반대쪽이 될 거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륜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며, 칸비야 의장에게 불쾌함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륜은 괄하이드와 라수, 그리고 당황을 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장수들에게도 인사를 보낸 다음 칸비야 의장과 함께 왔던 방향으로 출발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빌파 삼부자가 괄하이드에게 달려왔다. 대장군 앞에 도달하자 코네도는 외치다시피 말했다.
“저희들이 공작님을 호위하겠습니다!”
“그대들이?”
“예. 공작님은 저희를 느낄 수 있으시겠지만 다른 나가들은 저희를 못 볼 겁니다. 저희들이 그 분을 따라다니며 호위하겠습니다.”
괄하이드는 그것이 괜찮은 생각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라수가 먼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네?”
“그런 것이 필요했다면 공작께서 먼저 요청하셨을 거다. 혹 들통이라도 나는 경우 오히려 공작님의 처신이 곤란해진다. 첩자를 데려온 거라는 누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어차피 저 도시에서는 전부 니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텐데 누군가가 공작에게 죽이겠다고 외친다 하더라도 그대들이 알아들을 수는 없잖나.”
“누군가가 불손한 마음을 먹고 다가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공작님은 그런 자의 접근을 그대들보다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냥 이곳에 있도록.”
빌파 삼부자는 실망과 불안을 지우지 못한 얼굴로 밀림을 바라보았다. 다른 장수들도 몇 마디 거들었지만 라수는 그 모든 의견을 물리쳤다. 괄하이드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을 때 입을 열었다.
“코네도의 제안도 괜찮은 것 같은데. 라수.”
라수는 야영 준비를 하는 병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괄하이드는 라수가 듣지 못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대답하기 싫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괄하이드가 한 번 더 말하려 했을 때 라수가 말했다.
“코네도 빌파가 따라가면, 륜 페이는 물론 그의 존재를 깨달을 거야. 그리고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우게 되겠지. 나는 이것이 하나의 시험이 되도록 하고 싶군.”
“시험이라니?”
“륜은 그곳에 남을 수 있어. 동족들 곁에. 만약 더 이상 우리와 싸우는 것이 싫다면 말이지.”
라수의 옆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던 괄하이드가 말했다.
“잔인하군. 라수.”
라수는 고개를 돌려 사촌형을 바라보았다.
“잔인하다?”
“라수. 물론 네가 나보다 훨씬 똑똑해. 네가 하면 무엇이든 쉬워보이는 것에 대해 나는 항상 감탄했어. 하지만 전쟁에 대해서라면 내가 좀더 많이 경험했을 거다. 노병의 말을 한 번 들어봐. 너는 적과, 적이 될지도 모르는 자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얼마 전 나는 극연왕이 남긴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베미온 마립간이 육형제 탑에서 읽었던 내용을 중얼거렸거든. 극연왕은 자기가 적에 대해서만 생각한 끝에 오라비를 잃었다고 말씀하셨더군. 나는 그런 증상을 안다. 전쟁터에서는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을 죽이기 위해 살게 되는 병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 그들은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살아남을 방법을 지나치게 골몰한 끝에 그렇게 되어버리지. 그러나 전투도 결국 사는 방식의 하나야. 먹고 자는 것처럼 살기 위해 하는 다른 일들과 똑같아. 하지만 그걸 용맹이라고 부르면서, 병사들은 전투 그 자체를 목적으로 바꿔버리지. 실제로 지휘관들은 그걸 충동질하기도 해. 나도 그렇지. 엔거에서 내가 말했지. 적이 여기 있으니 그들은 너를 따라올 거라고 봐. 라수. 그들은 그렇게 했어.”
라수는 가시 돋힌 말투로 말했다.
“형도 마찬가지 아냐? 형도 이 거창한 장례 행진의 일원이 되어 죽으러 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나는 달라. 나는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이 길로 온 거야. 적을 죽이기 위해 죽이는 것과 내가 살기 위해 죽이는 것은 겉모양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일이야. 이 길의 끝에 죽음이 있겠지만, 그건 내가 사는 방식이야. 왕의 변경백으로서 사는 방식이지. 그 때문에 나는 전쟁에 얽매어 있어도 전쟁에서 자유롭다.”
“전쟁에 얽매어 있어도 전쟁에서 자유롭다고?”
“그래. 나는 자유롭기 때문에 옷에 단추를 주렁주렁 매달지도 않고 부하의 목을 단검으로 찢어버리지도 않아. 그리고 적이 될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으로 동료를 바라보지도 않고.”
라수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