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17장 – 독수(毒水) (20)
티나한은 눈을 끔뻑거렸다. 하지만 그 동작을 통해 그가 원했 던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티나한은 여전히 조금 전과 똑같은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티나한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는 그 들 또한 그 만큼 놀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코네도 빌파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로 간 거야?”
시우쇠 또한 격노한 목소리로 비슷한 내용을 외쳤다. 티나한은 고개를 홰홰 내저었고 그러자 수염볏이 출렁거렸다. 티나한은 보 고 싶지 않다는 시선으로 냉동 장치를 바라보았다.
냉동 장치는 조금 전과 그대로였다. 그 앞에는 물과 함께 한 명의 나가 여인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안고 있던 케이건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심장탑 51층의 바닥을 둘러보았지만 그곳에는 어차피 사람이 숨을 만한 장소도 없었다. 사모가 힘겹 게 말했다.
”갈바마리. 다시 해 봐. 저 여인에게로 가 보자.”
갈바마리는 다시 사람들을 양쪽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케이건이 만들어놓은 맴돌이 지대를 빠져나왔다. 시우쇠가 고함을 버럭 질렀고 그래서 사모는 갈바마리에게 상세한 지시를 내린 다음 시 우쇠에게 걸어가게끔 했다. 갈바마리가 시우쇠에게로 걸어가는 동안 사람들은 당혹한 표정으로 카린돌 마케로우를 내려다보았 다. 하지만 티나한은 그들에게서 조금 떨어진 뒤편에 서 있었다. 카린돌 마케로우 주변의 바닥은 온통 물바다였다. 티나한은 그쪽 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티나한은 비형을 가장 먼저 발견했다.
”비형!”
사람들은 레콘이 내지르는 비명에 깜짝 놀랐다. 믿고 싶지 않 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포에 질린 비명이었다. 사람들은 무엇이 레콘을 겁나게 한 것인지 알기 위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다음 순 간 그곳에 있는 각 종족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경악을 표시했다. 전대미문의 광경이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딱정벌레 나늬가 비틀거리며 힘겹게 날아오고 있었다. 딱정벌 레는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려 했고 그때마다 안간힘을 다해 자신 의 고도를 회복했다. 나늬가 그토록 힘겨워 하는 것은 당연했는 데, 지금 그 등에는 일반적인 탑승 인원을 초과한 인원이 타고 있었다. 그들 중 두 명은 조금 전 아래로 떨어졌던 스바치와 보 트린이었다. 카루는 그들의 모습에 환호를 올리지도 못했다. 그 들의 앞쪽에는 피에 흠뻑 젖은 비형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 의 눈에도 비형의 모습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비형은 온몸 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그 눈은 서서히 뒤집히고 있었다.
갈바마리의 인도를 받아 그들에게 걸어오던 시우쇠가 난폭하 게 외쳤다.
”빌어먹을! 하텐그라쥬가 박살나게 생겼군.”
티나한의 등에 업혀 있던 아기는 시우쇠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 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우쇠가 느끼고 있는 우려를 정확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비형이 자기 통제를 잃고 아킨스로우 협곡에서 벌어진 일을 하텐그라쥬에서 재현한다면, 시우쇠는 견 딜 수 있겠지만 아기가 깃들고 있는 육이나 발자국 없는 여신이 깃들고 있는 신체는 그 불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까 스로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세 명의 화신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 케이건이 사라진 마당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들의 계 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다. 시우쇠는 당장 결심했다. 그의 손 에서 불길이 일렁거렸다. 티나한이 야수적인 감각으로 위험을 깨 닫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몸을 부풀리며 외쳤다.
”뭐 하는 겁니까!”
”저대로 태워야 해! 너무 위험해! 저 녀석이 미쳐버리면 너희 들은 물론이거니와 신체들도 다 죽는다. 가까스로 한 자리에 모 인 신들이 다시 흩어지게 돼!”
다음 순간 시우쇠는 그곳에 행동파가 자신만이 있는 것은 아니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티나한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렸다. 조금이라 도 생각을 했다면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 점에서 티나한을 인도한 것은 레콘의 오만함뿐이었다. 레콘은 자 신이 하려는 일에 대한 방해를 용서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 신이라도.
그래서 티나한은 나늬의 등 위까지 뛰어올랐다.
그룸 빌파와 토카리 빌파가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티나한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딱정벌레의 가공할 날개를 피하 면서도 정확한 순간에 비형의 몸에 손을 뻗었다. 실로 묘기라 할 만한 광경이었다. 비형의 몸은 티나한의 품에 안겼다. 시우쇠는 두 손으로 일으키고 있던 불을 황급히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는 분노에 찬 포효를 내뿜었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우 쇠는 티나한의 등 뒤에 아기가 업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기를 불태울 수 없었다.
나늬는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상 승했다. 티나한은 다리를 구부려 간신히 나늬의 날개를 피하며 다시 51층의 바닥에 내려섰다.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착지한 티나한은 오로지 시우쇠를 한 번 노려보기 위해 지체했다.
”누가 그러게 내버려둔대! 가만히 있어. 움직이면 철의 대화 다!”
시우쇠는 이 무례에 기가 막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티나한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갑자기 사람들을 헤치며 달려 갔다. 그의 품 속에서 비형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도 깨비의 입에서 말도 아니고 신음도 아닌 기괴한 말들이 흘러나왔 다. 티나한은 비형의 몸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열기는 지나칠 정도였다. 티나한은 깃털이 타는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레콘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 앞에서 또다시 전대미문의 광경이 펼쳐졌다. 티나한은 냉동 장치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비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미 뜨거워진 비형의 몸이 물웅덩이에 닿자 수증기 가 거세게 피어올랐다. 그 수증기는 그대로 티나한의 얼굴을 뒤 덮었지만, 티나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 손으로 물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물로 비형의 몸에 묻은 피를 정신없이 닦아내었다.
사람들, 그리고 신들과 두억시니와 대호는 충격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찰박거리는 물 소리뿐이었다. 티나한은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비형의 몸을 닦았 다. 그런 동작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티나한은 비형의 눈이 자 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까지 몸의 떨림이 멋지 않았지만, 비형은 웃고 있었다.
”비형.”
”티나한. 우리는 케이건과 너무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것 같죠?”
”제기랄,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케이건은 어디에 있지요?”
티나한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모호하게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눈이 한쪽 방향에 고정되었다. 비형은 그 눈길을 따라갔고 다른 사람들 또한 그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있지 않았던 사람이 서 있었다.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든 레콘이 온몸을 부풀린 모습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빌파 삼부자와 사모 페이는 그가 레콘 즈라더 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즈라더는 격심한 혼란을 뚜렷이 드러내는 얼굴로 티나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심정도 이해할 만하다. 물로 누군가의 몸을 씻어주는 레콘이라니, 도깨비 선짓국 만든다 는 이야기만큼이나 황당한 장면이었다. 즈라더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혐오해야 하나? 그 렇지 않으면?
즈라더는 경의 어린 동작으로 목례했다.
”수탐자 티나한. 나는 즈라더요. 그리고 내 아내는 당신의 아 내요.”
그것은 레콘이 다른 레콘에게 바칠 수 있는 최대의 경의였다. 그것은 물론 말 그대로 아내를 내어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혹 티나한이 신부 탐색 도중 그의 아내를 뺏기 위해 싸움을 건다면 즈라더는 그의 창에 찔려죽을지언정 공격하지는 않는다는 의미 다. 티나한은 해야 할 대답을 알고 있었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조금 늦게 말하고 말았다.
”즈라더. 내 철은 절대로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요.”
티나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즈라더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대답 을 훌륭하게 해내었다. 즈라더와 티나한 모두 자신들이 평생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말을 꺼낸 직후라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 다. 조금 후에야 즈라더가 약간 갈라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티나한. 당신의 평생 숙원이 이루어졌다는 말을 전하는 사람 이 나인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하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시 오.”
티나한은 그렇게 했다. 그러고는 환희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