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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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10)


호위자들과 헤어져 심장탑 안으로 들어왔을 때, 륜 페이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달아나겠어.’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는데, 륜이 그런 결심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륜 페이는 열한 살 때 그 결심을 했다.

따라서 심장탑에 들어서는 순간 륜의 생애 중 11년은 소나기를 맞은 흙덩이처럼 힘없이 녹아 사라져갔다. 결과적으로 륜은 그 순간 열한 살 소년으로 돌아가 버렸다. 물론 륜 자신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그래서 륜은 자신이 스물두 살 청년의 이성과 판단력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심장탑 1층의 홀에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기 싫다는 듯한 얼굴로 서 있다가 느닷없이 복도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 과연 성인의 행동인지는 의심스럽다. 어쨌든 륜이 달려갈 때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나가가 최소한 일곱 명은 넘었다.

언제 수호자들이 와서 그들을 데려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절대로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하지만 놀란 나가들이 륜을 부르기도 전에 륜은 이미 복도 저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가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들 역시 자리를 비울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적출 공포증이라는 이름이 잠깐 오갔을 뿐 잔뜩 흥분한 그들은 곧 륜에 대해 잊어 버렸다.

륜은 복도를 달리면서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다른 출입구를 찾아야 해.’ 정문으로는 나갈 수 없다. 심장을 가진 상태로 나가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을 정문으로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호위자들도 더 이상 없었다. 심장탑에서 나올 처녀들에게 관심이 없는 륜의 호위자들은 모두 페이 저택으로 돌아갔을 테고, 설령 그들이 남아 있었다 하더라도 심장을 가진 륜을 보호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심장에 생각이 미친 륜은 기겁하며 멈춰 섰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만져 보았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깨닫고는 공포에 빠져 버렸다. 물론 심장탑의 수호자들은 심장을 가진 륜을 보더라도 놀라거나 하지는 않고 대신 길을 잃었겠거니 생각해 줄 것이다. 하지만 수호자들에게 발각될 경우 륜은 꼼짝없이 끌려가 적출을 당할 것이며, 그것은 륜으로서는 절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귀결이었다.

다행히 륜은 심장탑의 내부 구조를 알고 있었다.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던 륜은 자신이 동쪽 계단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쪽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전시실과 창고, 특수 도서실 등이 나타난다는 것을 떠올린 륜은 그 시설들이 모두 적출식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심장탑의 모든 수호자들은 적출식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결정을 내린 륜은 재빨리 동쪽 계단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2층의 전시실과 창고에 다다른 륜은 낭패감을 느껴야 했다. 적출식 행사에 바쁜 수호자들은 그 시설들을 모두 잠가 두었다. 당연한 조처였지만 륜은 자신이 숨어들 것을 간파하고 미리 잠가 둔 것은 아닌가 하는 비이성적인 공포까지 느꼈다. 어쩔 수 없이 3층으로 올라가면서도 륜은 불안한 심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3층에 있는 특수 도서실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지만 거기엔 사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3층에 도착한 륜은 사서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발견했다. 륜은 잠시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황급히 도서실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연 다음에야 륜은 사서가 혹 도서실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얼어붙고 말았다. 하지만 도서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륜은 재빨리 도서실 안으로 뛰어든 다음 문을 도로 닫았다. 그 순간에는 륜 또한 소리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나가였다. 문은 부서질 듯한 엄청난 소리를 내며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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