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13)
화리트는 죽이지 않고 떠난 비아스를 저주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화리트가 그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웅덩이 속에 누워 고통 속에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길 원했을 것이다. 지금껏 욕설 삼아 이르곤 했지만, 이제 화리트는 확실히 이를 수 있었다. 비아스는 완전히 미쳤다.
<죽고 싶지 않아…………. 제발, 누가 좀 도와줘!>
고통 때문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화리트는 자신이 심장탑을 울리기는커녕 주위에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이름도 내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를 내어볼까 했지만, 화리트는 그것이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고함을 지를 정도의 힘도 없거니와 나가들은 소리에 무관심하다. 화리트는 정신을 더 집중시키려 애썼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요! 내가 죽어가고 있어. 살려줘요!>
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고 대신 정신을 집중할수록 고통만이 가중될 뿐이었다. 지독한 아픔 때문에 화리트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의 정신이 그에게 다가왔다.
화리트는 앞을 보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화리트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가의 은루는 불신자들의 투명한 눈물과 달리 시야를 거의 가려 버린다. 화리트는 은빛 암흑 속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있어요? 살려줘요. 제발 살려줘요!>
<화리트, 나야. 륜이야.>
<륜? 륜이라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이 화리트의 눈가를 스쳤다. 은빛 암흑이 사라지며 화리트는 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륜은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폐쇄가 너무 길었어. 움직일 수가 없었어. 지금에서야, 지금에서야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막지 못했어. 막을 수 있었는데. 미안해. 얼빠진, 멍청한 짓을 했어. 내가 막지 못했어!>
화리트는 륜이 무슨 이름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지금껏 억압되어 있었던 륜의 정신은 개방되자마자 폭풍 같은 기세로 화리트에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내밀한 부분까지, 의식적으로는 열 수도 없는 부분까지 완전히 열려 버린 륜의 정신을 느끼며 화리트는 숨을 급히 들이켰다.
화리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륜이 왜 도망쳤는지. 그리고 륜이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정신 폐쇄의 후유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 친구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륜의 마음속에는 자괴감이 가득했고, 그것을 본 화리트는 절대로 륜을 탓할 수 없었다. 이름이나 글이 아닌 정신 그 자체를 보았기에 거기엔 완전한 이해만이 있었다.
화리트는 이해했다.
그리고 화리트는 다른 것들도 이해했다. 공포와 혼란에 빠져 있던 륜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할 수 없었지만 화리트는 자신의 누나가 어떻게 살인 계획을 짰는지 알 수 있었다. 화리트는 자신이 본 것처럼 유벡스의 시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비아스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그 순간 화리트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륜의 정신이 완전히 열려 버린 까닭에 화리트는 륜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륜의 시야까지도 공유하고 있었다. 화리트는 륜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화리트는 공황 상태에 빠져드는 대신 오히려 더 침착해졌다. 혼란에 빠진 륜의 정신과 직접 부딪힌 덕분이다. 화리트는 침착하게 륜의 시각을 이용했고 자신이 살아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순간에도 거의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대신 냉정 속에서 화리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했다.
<륜. 내 이름 들어.>
<화리트,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왜 움직일 수 없었는지………….>
<디듀스류노 라르간드 페이!>
륜은 흠칫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륜은 무서운 공포를 느꼈다. 륜은 ‘자신 속에 들어와서 화리트를 보고 있는 화리트’를 느꼈다.
그것은 피아가 혼란되고 안팎이 서로를 부정하며 결과가 원인을 구축하는 순간이었다. 이름을 사용하기에 정신의 작용에 친숙한 나가에게도 그 순간의 혼란스러움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화리트는 륜이 공포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리트는 륜의 정신에 고리를 걸고 륜의 정신 그 자체에 대한 지배권을 난폭하게 시도했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은 마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은 나가였고, 또한 한쪽의 정신이 완벽하게 열려 있었기에 그것은 어느 정도 성립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륜은 공포 대신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꼈다. 륜은 신음을 흘렸다.
<이런 일이……>
<나도 가능할 줄은 몰랐어. 하지만 이 상황에 걸맞는 이론을 구성해 볼 시간은 없어. 잘 들어. 디듀스류노 라르간드 페이.>
화리트는 의식적으로 륜에게 가장 권위 있는 호칭을 사용했다.
<나는 살기 어려워. 그리고 넌 거기에 대해 조금도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어. 반복하겠어.>
그리고 화리트는 놀라운 일을 해내었다. 화리트는 계속해서 륜에게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이름을 수없이 반복하며 동시에 다른 내용을 일렀다. 륜은 넋이 빠진 채 한 사람이 이르는 두 개의 이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