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4)
케이건은 절벽 모서리에 걸터앉아 지저분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하늘에 번져가는 묽은 별빛, 그리고 물고기의 배처럼 창백하게 번득이는 달. 사막의 밤하늘은 빛이 얼마나 지저분한가를 고발하고 있는 듯했다. 얼룩진 빛들 아래로 사막은 정순한 암흑 속을 흐르고 있었다.
휘저어놓은 구정물 같은 하늘을 보고 있는 케이건의 눈앞에 큼직한 손이 나타났다.
케이건은 그 손을 응시했다. 큼직한 손바닥 위엔 조그마한 고깃덩이가 놓여 있었다. 손톱이 붙어 있는 고깃덩이였다.
“젠장. 원숭이는 아니더라. 비늘이 있으니까. 나가가 맞는 것 같은데.”
천천히 고개를 돌린 케이건은 아득하게 보이는 티나한의 얼굴과 그 옆, 훨씬 아래쪽에 보이는 비형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앉아줬으면 좋겠소. 너무 높아서.”
두 사람은 케이건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래도 두 사람의 머리는 케이건보다 훨씬 높았다. 티나한은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을 사막으로 집어던졌다.
“큼. 설명 좀 들을까?”
“이 주막으로 오던 도중 만난 나가 정찰 대원들의 사체 조각이오. 놔두면 다시 재생할 것이 분명하기에 토막을 낸 다음 주요 부위 몇 개를 집어왔소. 그중에 손도 하나 섞여 있었던 모양이군.”
케이건의 말투는 침착했다. 티나한은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그렇게 잘 재생하나?”
“단 한 번이지만, 머리를 재생시킨 나가를 본 적이 있소.”
티나한의 벼슬이 곤두섰다.
“머, 머리를?”
“그렇소. 그녀를 쓰러뜨렸을 때 나는 몹시 지쳐 있었고 시간을 더 끌 수도 없는 상황이었소. 그래서 그녀의 머리만 잘라낸 다음 나머지는 밀림 속에 팽개쳐줬지. 그 머리는 가져와서 삶아 먹었소. 2년 후, 그녀를 다시 만났소. 반가워하더군. 2년 만에 머리를 재생시키곤 나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모양이오.”
“이런 젠장맞을……, 어떻게 됐냐?”
케이건은 티나한을 잠시 돌아보았다가 다시 사막의 암흑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오.”
티나한은 그 결과에 대해 더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른 것을 질문했다.
“그러니까, 네가 최소한 2년 이상 이 웃기는 짓을 계속해 왔단 말이군?”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나가를 습격한 다음, 그, 그 시체를 삶아 먹었단 말이야?”
“가끔은 구워 먹기도 했소. 그런데 도대체 뭘 원하는 거요?”
“뭐?”
케이건은 단조롭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명확히 하시오. 비난하려는 거요? 아니면 당신도 나가를 잡아먹고 싶어서 조언을 구하는 거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내 생활에 대해 무의미한 참견을 할 작정이오?”
티나한은 당황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목적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때 지금껏 입을 꽉 다물고 있던 비형이 고함을 질렀다.
“비난하겠습니다! 비난하고 비난하고 또 비난합니다. 알겠습니까?”
케이건은 비형을 돌아보았다. 비형은 꽉 움켜쥔 주먹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외쳤다.
“나가도 당신과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을 수 있습니까? 변명할 수 있습니까?”
“안 하겠소.”
비형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잠시 자신의 손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허둥대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일의 부도덕함을 인정하는 겁니까? 완전히? 분명히? 번복의 여지없이?”
“원한다면 인정하겠소. 사실 나에겐 큰 상관이 없는 문제니까.”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당신이 무슨 말을 하건 내겐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요. 욕을 하고 싶다면 욕을 하고 저주를 하고 싶다면 마음껏 저주를 퍼부으시오.”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만두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았소.”
“그럼 그 일을 뉘우치고 그만두시겠습니까?”
“뉘우치지도, 그만두지도 않겠소.”
비형은 기가 막혔다.
“그럼 저를 납득시킬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보세요! 왜 그런 짓을 하는 겁니까?”
“설명하지 않겠소.”
나무에 대고 고함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형은 그렇게 느꼈다. 무엇보다도 비형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케이건이 도무지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케이건은 미친 듯이 웃지도 않았고 흉흉한 눈빛을 번득이지도 않았다. 그는 건조하지만 무례하지는 않은 말들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비형이 비명이라도 질러볼까 하는 무의미한 충동을 느꼈을 때 케이건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내가 줄 것은 하나밖에 없소. 비형. 당신은 모든 나가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소.”
“권리? 무슨 권리 말입니까?”
“나를 죽이려 시도할 권리.”
비형은 움찔했다. 케이건은 서서히 일어난 다음 비형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잔잔했다.
“당신이 그렇게도 혐오한다는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을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오. 비형. 나를 죽이시오. 다만 그것을 시도할 경우 당신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소.”
“그 말은, 당신을 죽이려 들면 저를 죽이겠다는 겁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면 그럴 거요.”
비형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눈 아래에 있는 케이건을 향해 애원하듯 외쳤다.
“그렇다면 당신도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이잖아요! 나가들도 그럴 겁니다. 죽고 싶지 않을 거라고요. 당신 자신도 원하지 않는 일을 왜 남에게 하는 겁니까?”
“그들도 죽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예?”
케이건은 오른손을 서서히 움직였다. 비형은 그제야 쌍신검을 보았다. 케이건은 지금껏 그것을 쥐고 있었지만 교묘한 몸동작과 그림자,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어 비형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비형은 그토록 거대한 검이 단검이나 되는 양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쌍신검을 서서히 들어올린 케이건은 그것을 어깨 뒤 고리에 걸며 말했다.
“그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에 하는 거요.”
케이건은 주막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