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2장 – 은루(銀淚) (7)
티나한은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했다. 티나한은 대사원과 자신 이 맺은 계약에 대해 말했고 케이건의 괴벽은 임무 수행에 장애 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 설명에는 레콘다운 명쾌함이 었다.
“내가 그 친구와 함께 일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것은 한 가지 사실뿐이야. 그 녀석이 도움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그런데 케이건은 나가와 키보렌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지. 쳇. 나가를 잡아먹고 사니 오죽 잘 알겠냐. 그러니 동행하겠어.”
“티나한. 그런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나와 상관 없다면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에 일일이 끼어드는 것도 못된 참견꾼 버릇이야. 그런데 내가 보기 에 나가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어. 아, 솔직히, 세계의 절반을 독차지하고서 저희들끼리 살겠다는 놈들을 배려해 줄 이유는 없 잖아. 그러니 나는 케이건이 나가를 삶아먹든 튀겨먹든 신경쓰지 않겠어.”
모든 개인주의자는 레콘이라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겠지만 그 역은 그럭저럭 효용성을 가진다. 비형은 괴롭게 말했다.
“나가도 사람입니다. 그렇잖습니까?”
“너 두억시니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냐?”
비형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티나한은 부리 끝을 만지작거렸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사람이냐? 사람같이 굴어야 사람이지. 나 가는 사람같이 굴지 않아. 그러니 난 그 지랄 같은 놈들에게 신 경쓰지 않겠어. 그리고, 아, 젠장. 케이건의 태도는 공평하잖아. 케이건은 머리 나쁜 비겁자처럼 말하진 않았어.”
“머리 나쁜 비겁자?”
“머리 나쁜 비겁자들은 ‘나는 너를 욕하고 괴롭히고 때리고 죽 여도 되지만 너는 내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건 상상도 안 된 다.’는 식으로 말하지. 하지만 케이건은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모든 나가에게 자기를 죽이려 시도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지. 당 연한 말이지만, 그거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긴 어려운 거라고.”
“그거 얼핏 듣기에 멋지지만 결국 우리 함께 서로를 표적 삼아 근사한 살육광이 되자는 말일 뿐이잖아요. 안 그래요?”
“살육은 상대가 사람일 때 쓰는 말이야.”
결국 그것이 문제였다. 비형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가를 사람 으로 볼 수 있는가. 그 시점에서 비형은 이 여행에 동참해야 할 개인적인 이유를 발견해 냈다. 케이건 드라카의 기괴한 행동을 평가하기 위해 그는 나가에 대해 더 알아야 했다.
비형과 티나한이 동행을 수락한다고 말했을 때 케이건은 가볍 게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케이건은 실제적인 사항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티나한과 비형은 다시 자신들이 얼빠진 바보처럼 느껴지는, 그다지 달갑다고 하긴 어려운 감정을 곱씹어야 했다. 케이건이 그들을 풋내기 취급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케이건의 태도는 친절함 쪽에 가까웠다. 아 니, 분명히 친절한 태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케이건의 친절이 필요한 만큼 정확한 분량만 계량되어 사용되곤 한다는 기분을 받 았다.
예를 들어, 케이건은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지시를 말했 다. 더워질수록 두꺼운 옷을 입어라. 주위에 나가가 있는 것 같 으면 최대한 소란을 떨어라. 추적을 당하게 되면 최대한 천천히 도망쳐라. 그래도 발각될 것 같으면 사방이 노출된 바위 위로 올 라가라. 티나한과 비형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케이건은 그 지시들에 대해 설명했다. 더워질수록 나가들 을 만날 확률이 높으니 체온을 감추는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한다. 나가들이 소리를 듣고 쫓아올 리는 없으니 주위에 나가가 있는 것 같으면 최대한 시끄럽게 굴어서 키보렌의 야생 동물들을 사방으로 도망치게 만들어 열을 보는 나가의 눈을 속여야 한다. 쓸데 없이 빨리 움직임으로써 체온을 상승시켜 나가들에게 좋은 표적 이 되어줄 이유는 없으니 추적을 당하게 되면 오히려 천천히 움 직여야 한다. 한낮의 열대에서 노출된 바위는 대단히 뜨거우므로 그 위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나가는 뜨거운 사람과 뜨거운 바위 를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비형과 티나한은 감탄하며 웃을 준비를 했다. 만약 케이건이 말 끝에 ‘참 신기하죠? 등으로 말하며 가볍게 미소를 짓기만 했 다면 두 사람은 동의의 웃음을 보내며 그 사실들에 대해 한동안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이건은 농담도, 미소 도 없이 다음 지시 사항을 말하기 시작함으로써 웃을 준비를 갖 추고 있던 두 사람을 당혹케 했다.
케이건의 친절은 그런 식이었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케이건 은 설명을 듣는 쪽이 몸 둘 바를 모르게 될 정도로 끈기 있게 설 명했다. 하지만 그 설명의 어떤 대목에서도 웃거나 미소 짓거나 가벼운 농담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두어 시간 후 케이건이 “이야 기한 사항들을 모두 숙지하셨소?”라고 말했을 때, 숙지하기는커 녕 벌써 가물가물, 그토록 귀한 지식들이 마구 헷갈리고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숙지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