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2)
숲 속에서 달려가는 두 개의 체온을 보았을 때 사모는 밤이라는 것, 그리고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렸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기온은 나가가 달리기에 매우 부적절한 온도였다. 사모와 카루는 몇 번이나 그 체온을 놓칠 뻔했다.
한 순간 체온이 사라진 자리로 뛰어들었을 때 그들은 도시를 발견했다.
사모는 당황하여 도시를 둘러보았다. 심장탑이 없는 것을 본 사모는 그것이 나가의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계선 남쪽에 나가가 아닌 다른 자들의 도시가 있을 리가 없다.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본 사모는 그것이 도시가 아닌 폐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문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가들은 폐허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확장 전쟁 당시 한계선 남쪽에 있는 불신자들의 도시는 모두 파괴되었고 도시를 이루던 석재와 예술품들은 모두 나가의 도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포석이나 주춧돌 하나까지 모두 사라진 도시에 나가들은 나무를 심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가 정찰대들의 세심하면서도 꾸준한 손길에 의해 불신자들의 도시는 모두 밀림 아래로 사라졌다. 따라서 눈 앞에 있는 것 같은 폐허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카루가 그녀의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숲 저편으로 보이는 도시를 보며 카루는 긴장한 채 닐렀다.
<이런 맙소사! 그들이 두억시니의 도시로 들어갔군요!>
사모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억시니의 도시? 두억시니 병 환자 말하는 거야?>
<아니요. 진짜 두억시니 이름입니다. 두억시니 병은 사실 두억시니와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모습이 끔찍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 도시에는 진짜 두억시니들이 있습니다. 이 도시가 이렇게 남아 있는 것도 두억시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들의 신을 잃은 교만한 자들 말하는 거야? 신도 없는데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지?>
<신이 정해 주신 모습이나 행동 같은 것을 다 잊어먹은 채로 살고 있습니다. 자기들 중에 어린 것들을 잡아먹고 여성들끼리, 혹은 남성들끼리 배가 맞아서 아이를 낳고…….>
<잠깐. 같은 성끼리 애를 낳는다고?>
<심한 경우 짝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기도 합니다. 그러곤 그 자식을 잡아먹거나 그것과 짝이 맞아 또 아이를 낳지요. 수명도 제멋대로입니다. 어떤 것들은 수백 년 동안 살고, 어떤 것들은 수십 일밖에 못 살기도 하지요.
머리가 엉덩이에 달린 놈, 심장이 다섯 개인 놈,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놈…………… 저 놈들에겐 정해진 형태나 규칙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을 잃어서 그렇지요. 어쨌든, 그런 식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끔찍하군.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곳을 알지?>
<남자니까요. 떠돌다 보면 발을 들이밀지 않아야 하는 곳들은 알아둬야 합니다. 정찰 대원들도 저곳은 잘 알 겁니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그리고 사모는 발걸음을 뗐다. 카루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사모를 바라보다가 조금 후에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잠깐만요!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저 안으로, 그들이 저 안쪽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했잖아?>
<두억시니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놈들은 죽일 수도 없어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야? 조금 전 수명이 어쩌니 했던 것 같은데.>
<제 말씀은, 그러니까 표준 두억시니 처치법 1장 1절 같은 것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놈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죽지만 어떤 놈은 머리를 도려내고 몸을 반으로 찢어놔도 죽지 않는 식입니다. 어떤 놈은 죽었다 살아나기까지 하죠.
우리들도 쉽게 죽지 않지만, 저것들은 아예 어떻게 죽여야 할지 알 수도 없습니다. 전부 제멋대로니까요.>
<상당히 귀찮겠네. 하지만 내겐 할 일이 있어.>
<륜은 죽을 겁니다!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배겨낼 도리가 없…….>
<아니면 그냥 살아서 별일없이 저 도시를 지나갈지도 모르지. 놈들에겐 아무 규칙도 없다면서?>
카루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사모의 지적은 정확했다.
사모는 부드럽게 웃으며 닐렀다.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해. 그리고 그건 내 일이지. 유익한 정보 고마워. 감시자.>
그리고 사모는 그대로 걸어갔다. 카루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사모의 말대로 아무런 규칙이 없는 두억시니들은 륜 일행을 그냥 내버려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카루 또한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사모의 뒤를 따르며 카루가 생각한 것은 좀 다른 것이었다. 카루는 사모의 웃음을 한번 더 보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륜과 비형, 티나한, 그리고 나늬는 카루가 우려하고 있던 상황에 정확하게 봉착해 있었다. 그들의 심정에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확했다.
저택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어두운 건물 안을 헤매다가 그만 저택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피라미드 안쪽에 들어서버린 것이다.
피라미드 안쪽의 공간은 경이적이랄 만큼 넓고 복잡했다. 무수한 계단과 그물 같은 통로들이 얽혀 있는 피라미드 내부 구조는 3차원적인 미로였다. 그 공간을 다섯 시간 가까이 방황한 지금, 세 사람은 자신들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혹은 지표면에서 어느 정도의 높이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혹은 얼마나 낮게 있는지를.
그들은 어렴풋이 땅 위의 피라미드를 그대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공간이 지하에 있음을 깨달았다. 피라미드의 종단면을 그려보면 거대한 마름모꼴이 되며 지표면에 그 중심이 걸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피라미드는 밖에서 본 것의 두 배나 되는 내부 공간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지만, 그 내부가 복잡한 통로와 계단과 방들로 가득 차 있어 통로의 총연장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 거대한 미궁 속에서 두억시니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제기랄! 이 안에 도대체 몇 놈이나 있는 거야!”
으르렁거리는 티나한을 향해 다리가 다섯 달린 두억시니가 달려들었다. 다리로 사용되고 있긴 했지만, 그것들이 모두 다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껏 다리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추격을 저지해 왔던 티나한은 그 해괴한 모습에 전율하기보다는 난감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두억시니는 맹렬한 포효를 토하며 뛰어올랐다.
“흰 하늘 찢고 고름 섞인 개구리 양심!”
“동감이닷!”
되는 대로 대답한 티나한은 다섯 개의 다리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창을 옆으로 뿌리며 온몸으로 부딪쳤다. 공중에 떠 있던 두억시니는 티나한과 충돌하는 순간 팔매줄을 벗어난 돌멩이가 저러하랴 싶을 정도의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통로 저편에 호되게 떨어진 두억시니는 내부가 어떻게 상하기라도 한 것인지 다섯 개의 다리를 모두 내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네 발바닥 즐거운! 푸르다! 손! 밤! 아홉의 오른쪽 물거품!”
소리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륜은 두억시니들이 토해 놓는 괴상한 말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비형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쨌든 세 명의 이야깃꾼은 도깨비를 죽일 수 있는 법이다.
말도 되지 않는 말이니 신경쓰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비형은 두억시니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않나 진땀나게 고민했다. 물론 의미는 없었고 대신 두통만이 있었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의 기승스러운 공격도,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들도 티나한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다. 어두운 통로 속에서 두억시니들은 무한히 쏟아져나왔지만 티나한이 달리는 방향으로는 대로가 생길 지경이었다.
티나한은 어떤 두억시니도 그의 앞에 한 호흡 이상 머무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티나한은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찌르고, 베고, 후려치고, 걷어차고, 쪼고, 짓밟았다.
밀폐된 통로라는 점을 고려해서 계명성만 내지르지 않았을 뿐 모든 종류의 공격을 다 퍼부어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는 열린 광야를 달리는 것처럼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비형과 륜, 그리고 나늬는 그 뒤를 따르는 것만으로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러나 티나한의 철창은 그 주인의 기세를 따르지 못했다. 또 다시 두억시니의 다리를 꿰뚫었을 때 티나한은 상대방의 다리뼈가 세 개 이상이라는 것과―좀 굵다고 생각했지만, 티나한은 하나의 다리 안에 여러 개의 다리뼈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창날이 다리 속에서 얽혀버렸음을 깨달았다. 티나한은 노성을 지르며 창을 잡아당겼고 그러자 창날이 빠지는 대신 두억시니의 다리가 끊어졌다. 비정상적인 다리뼈 때문에 관절이 허약했던 탓이다. 두억시니는 비명을 질렀다.
“심심한 장미를 콧구멍에!”
버둥거리는 두억시니를 걷어찬 다음 티나한은 창날에서 두억시니의 다리를 제거하기 위해 잠시 멈춰야 했다. 뒤를 따르던 비형은 하마터면 티나한에게 부딪힐 뻔했지만 겨우 알맞은 순간에 멈춰설 수 있었다.
티나한과 등을 맞댄 비형은 한참 헐떡거린 다음에 겨우 외쳤다.
“불을 끄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들은 몸에 도깨비불을 붙이고 있었다. 아무런 빛도 없는 캄캄한 미궁 속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비형은 일행들의 몸에 열이 없는 불을 붙여두었다.
하지만 그 빛은 시야를 확보해 줌과 동시에 두억시니를 끌어모으는 탐탁잖은 효과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티나한은 쇄도해 들어오는 두억시니들을 보며 다급히 말했다.
“제길, 알았다. 빨리해!”
그들의 몸에서 빛이 사라졌다. 망막에 남아 있던 두억시니의 잔영을 보며 티나한은 긴장 때문에 수염볏이 뻣뻣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적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그 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전사 티나한을 지극히 불안하게 만들었다.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손가락이 저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비형은 이번에도 티나한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통로 저편, 그들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 레콘과 도깨비, 나가 그리고 딱정벌레를 닮은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비형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도깨비불들은 통로 저편을 향해 달려갔다. 두억시니들은 괴성을 지르며 도깨비불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빛이 사라지고 완벽한 어둠과 함께 고요가 찾아들었자, 티나한은 통로 벽에 몸을 기대며 한숨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도깨비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닌 걸까요?”
“소리를 낮춰. 아까 얼핏 귀가 네 개 달린 놈을 봤어.”
“저도 봤어요.”
비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모두 오른쪽에 달려 있더군요. 그래가지고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겠어요?”
티나한은 짧게 실소한 다음 창날을 더듬었다. 창날에 걸려 있는 두억시니의 다리는 젖어 있었다. 티나한은 창날에서 다리를 제거한 다음 손을 통로 벽에 문지르며 말했다.
“젠장. 아무래도 이 썩을 미로 안을 뱅뱅 돌고 있는 것 같은데.”
“두억시니들 때문에 방향이 계속 틀어지니까요. 어쨌든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해졌잖아요?”
“무슨 사실 말이야?”
“케이건이 이 안에 없다는 것. 아무래도 우리가 봤던 건 두억시니였던 것 같죠?”
티나한은 거창한 신음으로 비형의 질문에 대답했다. 비형은 륜을 돌아보았다. 그래 봐야 보이지도 않았지만 비형은 륜이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을 보이는 편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륜. 괜찮아요?”
하지만 사실 그의 얼굴은 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이커를 쥔 채 일행의 배후를 맡고 있던 륜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티나한의 철창에 감겨 있던 덩굴은 이제 걸레쪽처럼 바뀌어 있었다. 티나한은 그것을 뜯어내어 팽개쳤다.
“이봐, 륜. 이건 내가 살던 동네와는 풍경이 좀 다른데. 이렇게 많은 두억시니가 있는 이유가 뭐야?”
“저는 한 달 전에 살던 집을 떠나왔습니다. 아무리 키보렌이 제 고향이라도 제가 속속들이 알 수는 없습니다.”
티나한은 투덜거렸다. 상황은 고약했다. 불빛이 없는 이상 이 거대한 미로에서 길을 찾아낼 방도는 없다. 하지만 불빛은 두억시니들을 끌어들인다.
비형은 한 가지 수단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죽으면 되지 않을까요?”
“뭐라고!”
“저는 죽으면 벽이든 뭐든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두억시니들도 저를 건드리지 못할 테고요. 그러면 밖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내기가 훨씬 쉽지 않겠습니까?”
기겁했던 티나한은 가까스로 도깨비의 영육이 따로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티나한은 언짢은 어투로 말했다.
“젠장. 근시안적인 방법이야. 비형.”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야. 우연히 밖으로 나가게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만약 네 계획대로 해서 성공적으로 이 피라미드를 빠져나갔다고 치자.
너는 곧장 즈믄누리로 돌아가야 하지? 그러면 셋 중 하나가 없어지는 거다. 대사원의 중들은 구출대가 세 종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세 종족입니다. 륜을 잊었어요?”
“륜은 구출대가 아니라 구출 대상이다. 그리고, 얼어죽을.”
티나한은 기어코 언성을 높였다.
“뒈지느니 어쩌니 하지 마란 말이다! 너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해도 나는 그렇지 않아! 사람 바보 되는 것 같잖아.”
“바보라니요?”
“나 지금 살기 위해 이 지랄을 하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내 옆의 누군가가 그렇게 쉽게 죽는다느니 어쩌느니 하면 짜증나겠냐, 안 나겠냐? 엉? 생각을 해보라고!”
비형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륜이 입을 열었다.
“누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