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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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14)


사모는 다시 쉬크톨을 힘 있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보이던 두억시니는 그녀의 예상과 달리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두억시니를 자세히 바라본 사모는 그 두억시니의 상하체가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억시니는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흉포하게 으르릉거렸지만, 사모에게 달려들려는 두억시니의 의도는 오히려 두억시니로 하여금 사모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사모는 웃지 않았다.

<너무 비참하군.>

<저도 비참해요.>

카루는 투덜거렸지만 사모는 냉랭한 정신어를 보내었다.

<너나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말해선 안 될 것 같은데. 저렇게까지 삶의 기쁨을 박탈당한 자들 앞에선.>

<저 녀석들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걸 모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비참하다고 느끼고 있다고요. 아니, 위험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사모는 고개를 돌려 카루를 바라보았다. 사모의 눈길을 본 카루는 어깨를 과장되게 늘어뜨려 보였다. 하지만 사모는 조금의 동정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 배낭, 이젠 꽤 가벼울 텐데.>

실제로 카루의 배낭은 조금 전보다 많이 가벼워져 있었다. 하지만 카루의 고민거리는 바로 배낭이 가볍다는 것에 있었다.

카루는 배낭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고, 그의 손바닥엔 돌멩이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보세요. 페이. 이젠 꽤 식었어요.>

<아직은 알아볼 수 있어.>

<예. 하지만 돌아나갈 시간을 생각한다면 아슬아슬하지 않겠어요?>

유적으로 들어선 사모와 카루는 륜의 일행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비형과 티나한의 체온은 포석과 피라미드 위에 뚜렷한 열 자취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에 대한 걱정 때문에 무턱대고 피라미드 안으로 뛰어든 륜 일행과 달리 사모와 카루는 피라미드의 거대한 구조를 확인하자마자 곧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도깨비불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돌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의 차가움은 나가의 눈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들에겐 길을 찾아낼 방법이 없었다.

사모는 별 말씀 없이 피라미드 밖에 주저앉았다. 해가 떠오르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날 때까지 사모는 조용히 피라미드를 바라보기만 했다.

카루가 바닥난 인내심 속에서 안달할 때 사모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카루에게 약간 묘한 명령을 내렸다. 배낭 가득히 돌멩이를 집어넣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카루는 사모가 두억시니들에게 돌이라도 던지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모는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서자 그 돌멩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뜨리도록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햇빛에 달궈진 돌멩이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며 카루는 감탄했다. 나가의 눈에 그것은 횃불만큼이나 선명한 표식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피라미드 내부는 압도적일 정도로 넓었다. 어느새 배낭이 가벼워져 있었지만 그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할지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배낭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카루는 불안을 느꼈고, 그 불안은 배낭 속에 남아 있던 돌의 온기가 눈에 뜨일 정도로 줄어든 것을 보자 더욱 커졌다.

<돌아갈 길이 식어가고 있어요. 자칫하면 어둠 속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모는 카루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사모는 대답하지 않은 채 앞쪽의 어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카루는 결국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페이. 돌이 식기 전에………….>

<이자들이 왜 신을 잃었을까?>

사모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카루는 약간 당황했다.

<예? 자신들의 오만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건 나도 알아. 구체적으로 어떤 오만이라는 거지?>

<글쎄요. 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혹은 자신들이 신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거나.>

사모는 통로의 벽과 천장, 바닥을 죽 둘러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자들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까?>

<무슨 말씀이시죠?>

사모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이상한 말씀했다.

<이웃을 바라볼 창문을 값진 주렴으로 덮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을 잃고 찾아 헤매니, 이를 지혜로움이라 불렀더라. 저 오만한 두억시니.>

<누가 한 말씀이죠?>

<말씀이 아니라 노래야.>

<노래……요?>

<그래, 내가 거론한 건 중간 부분이고, 처음엔 이렇게 시작했어. 남겨진 수명을 헤는 일도 두렵고 썩어들어 가는 수족을 추스리는 짓도 포기한 지 오래. 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목 아래에 걸터앉아……. 응? 왜 그러지?>

카루는 가까스로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썩는다니… 그거, 나가의 이야기가 아니겠군요? 우리들의 수족은 썩지 않으니까요.>

사모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말씀했다.

<당연히 아니지. 우리가 무슨 노래를 부르겠어. 이건 아라짓 전사의 노래라는 거야. 인간들의 노래지.>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아시죠?>

<내게 칼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요스비라는 자가 있지. 그 자는 한계선 이북의 괴상한 풍습을 많이 알았어. 좀 지나칠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때문에 그 끝이 좋지 않았지. 그 자에게 들었던 노래야.>

카루는 일어선 비늘을 누이려 애쓰며 긴장을 가라앉혔다. 그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화리트에게 가르쳐주었던 노래를 들었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제기랄. 가능한 일이야. 인간들이 그 노래를 가르쳐줬어. 그러니 요스비라는 작자가 인간들의 관습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 노래를 알 수도 있었겠지.’

다행히 사모는 카루의 이상한 모습이 ‘노래’라는 것에 놀란 탓이라 짐작했다.

<많이 놀란 모양이군. 미안해. 어쨌든 그건 내가 알기로는 두억시니가 신을 잃은 이유에 대한 가장 긴 설명이야. 대개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냐고 물어보면 두억시니가 오만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이.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오만했다는 거지? 그런데 그 노래에선 설명을 하고 있어. 만족하기엔 너무 짧은 설명이지만 말이야.>

<그 노래는, 그러니까 두억시니들이 주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끊고 자기 자신도 잃었다는 뜻입니까?>

<그리고 그 상황을 지성적인 행동으로 여겼다는 거지.>

<그런데요?>

사모는 손을 약간 들어 주위의 벽을 가리켰다.

<그런 자들이 이렇게 훌륭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은 개미들도 만드는 것이잖습니까? 개미탑은 속이 비어 있고 원뿔 모양이지요. 이 피라미드처럼.>

<이웃도 모르고 자신도 잃은 개미는 개미탑을 쌓을 수 없어.>

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카루는 대화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이야기는 밖에 나가서 들으면 안 될까요, 페이? 돌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사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나?>

<네? 느껴지다니요?>

<이 안에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뒤통수가 간지러울 정도인데,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건 그 때문이야.>

티나한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륜을 바라보았다.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냐니, 오만함 때문이잖아?”

“그렇게 말해 줬습니다. 그런데 그 오만이라는 것이 어떤 오만이냐고 묻는군요.”

티나한은 난처한 듯 비형을 돌아보았다. 비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케이건이라면 혹 알지도 모르겠군요. 케이건은 그런 전승 지식이나 고대어 같은 것에 해박하잖습니까?”

다시 한 번 그들은 케이건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손실을 절감했다. 왼손으로 수염볏을 비틀대던 티나한이 맥 풀린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없지. 우리도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말해 줘.”

륜은 다시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육체의 파편들을 돌아보았다.

<우리도 두억시니가 어떤 오만 때문에 신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요.>

유해의 폭포는 잠시 침묵하며 흘러내리다가 다시 질문했다.

<너희들은 신을 잃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너희들의 신과 소통하는가?>

<우리 나가들은 수호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발자국 없는 여신께 제를 올리고 그 뜻을 지상에 실천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여신께서는 그 증거로 저희들에게 당신의 이름을 주십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는 어디에도 없는 신께 제를 올리는 승려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없는 신의 뜻만을 따를 뿐 세속의 연은 끊는다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깎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도깨비는 어르신들, 그러니까 죽은 도깨비들이 주로 자신을 죽이는 신께 제를 올리는 일을 맡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레콘은…….>

륜은 잠시 말을 멈추고 티나한을 돌아보았다. 티나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당신들은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께 어떻게 제를 올리지요?”

“안 올려. 사원도 없는걸.”

“없는 건 아니잖아요.”

“너 그게 어디 있는지 아냐? 아무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륜은 그대로 전해 주었다. 유해의 폭포가 말한 다음 질문은 륜을 당황하게 했다.

“저 폭포가 말하기를, 그럼 레콘들도 신을 잃었냐고 묻는데요?”

티나한 또한 당황했다. 티나한은 평소 행운에 대해 여신께 감사하고 불운에 대해 여신께 불평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상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레콘에겐 보편적인 모습이다. 고민하던 티나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아. 야, 너희들이 보기에 우리가 여신을 잃은 것 같아?”

비형과 륜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륜은 그 생각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아니요. 레콘이 그들의 여신을 잃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해의 폭포는 다시 침묵했다. 조금 후, 다시 시작된 폭포의 말씀에는 노기가 담겨 있었다.

<전부 제멋대로 신과 관계 맺고 심지어 무관심한 자들까지 있구나.>

륜은 그 분노한 어조에 놀라며 유해의 폭포를 바라보았다. 노기와 더불어 폭포의 말씀은 점점 더 세련되어지고 있었다. 륜은 숫제 나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신을 잃지 않았단 말씀이지. 오직 두억시니만이 신을 잃었군. 너무 오래되어서 잊어버렸다는 그 정체 모를 오만함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보아라!>

<네?>

<나를 봐! 네 눈앞에 있는 나를, 그리고 이 피라미드 안을 맴도는 나의 일부를 봐라. 한 종족에게 있어 신을 잃는 것보다 더 큰 사건이 없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없느냐? 이것은 종족의 죽음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잊을 수 있느냐! 이런 꼴이 되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면! 오래되어서 잊어버렸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돼!>

륜은 폭포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다. 왜 그토록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을까? 유해의 폭포는 선고하듯 말했다.

<결론은 한 가지야. 너희들은 나를 속이고 있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당신을 속이겠습니까?>

<거짓 말씀하지 마라! 사실대로 말해라. 두억시니가 왜 신을 잃었느냐!>

<그렇게 말씀하셔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겁니다. 저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들의 오만…………….>

<그만! 그런 기만은 그만둬. 더욱이 네 본심을 짐작하는 자 앞에선!>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억시니는 신을 잃지 않았어. 두억시니의 신은 살해당한다. 너희들이 두억시니의 신을 죽인 거다! 그러고는 두억시니의 오만이 어쩌니 하는 가당찮은 거짓 말씀을 하는 거다!>

륜 페이는 유해의 폭포가 보내오는 거친 말씀에 놀라 뒤로 물러났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그 말씀의 의미에 놀랐다. 비형과 티나한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륜은 먼저 폭포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추측을 한 겁니까. 신을 살해하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허튼 말씀하지 마라! 나는 네 정신을 읽었다. 네 기억 속에는 분명히 다른 신의 살해에 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거에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의미겠지. 너희들이 두억시니의 신을 죽인 거다!>

륜은 유해의 폭포가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살신(殺神) 계획’이라고? 그 비슷한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륜으로서는 유해의 폭포가 하는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문득 륜은 유해의 폭포가 자신을 읽었다면 자신 또한 폭포의 정신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륜은 시도해 보았고 성공했다.

“도망쳐요!”

티나한은 륜의 외침에 벼슬을 꼿꼿이 세우고, 철창을 꽉 움켜쥐고, 눈을 부라리기까지 했지만, 그 외침을 따르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륜?”

륜은 뒷걸음질치며 두서없이 외쳤다.

“저 폭포는 우리들을 자기 일부로 만들 생각이에요! 저 놈은 우리를 삼킬 생각입니다. 저 유해들처럼 될 거란 말입니다!”

티나한은 몸을 잔뜩 부풀리며 폭포를 향해 앞으로 성큼 걸어 나갔다. 하지만 그 위풍당당한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티나한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비형은 보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그런데 어떻게?”

“네?”

“폭포가 어떻게 우리를 삼킨다는 거죠? 위로 흐르기라도 하나요?”

그 순간 폭포가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경악으로 부릅떠진 일행의 눈앞에서 폭포는 괴기스러운 움직임으로 꿈틀댔다. 폭포의 아랫부분이 위로 치솟아 위에서 쏟아지던 유해들과 부딪쳤고 그 합류 지점에서 유해의 파편들이 앞으로 돌출되기 시작했다.

돌출부는 두 개였고 점차 길어졌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형성하며 돌출된 유해들은 마침내 두 개의 팔이 되었다. 한쪽 팔에는 다섯 손가락, 다른 쪽 팔에는 일곱 개의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손가락의 길이는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인상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손가락의 첫째 마디는 포도 송이처럼 뒤엉킨 수백 개의 안구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늘 소리를 내며 경련하는 륜에게 무시무시한 말씀이 다가왔다.

<나와 같은 자가 또 생기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그 말도 안 되는 살신 계획과 너를 한꺼번에 없애주마. 너를 내 일부로 만들겠다! 내가 되어서 내가 느끼는 고통을 느껴봐라!>

경직되어 있던 일행들 중 티나한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 무시무시한 손은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수백 개의 안구에 비친 수백 명의 자신을 향해 티나한은 계명성을 내질렀다.

수백 명의 티나한이 산산조각 났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고성에 의해 손가락의 첫마디들이 파괴되었다. 안구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가는 역겹기 짝이 없는 광경 속에서 륜과 비형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 순간 폭포에서 생물이 내는 것 같지 않은 기괴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손가락 첫째 마디를 잃은 손들은 분노하듯 거칠게 서로 엉켜들었다. 두 개의 팔이 허공에서 꿈틀거리며 하나로 합쳐지자 거대한 뱀처럼 바뀌었다.

팔과 다리와 몸통과 머리와 내장과 척추가 뒤엉킨, 둘레가 몇 아름이나 될 것 같은 공포스러운 뱀이 허공에 머리를 띄운 채 일행을 향해 포효했다.

“치루루루루!”

뱀의 입 속에서 이빨처럼 자리 잡은 부러진 뼈들이 섬뜩한 빛을 뿜었다. 티나한은 철창을 움켜쥐며 외쳤다.

“썩을, 도망가!”

“안 돼요! 막혔는걸요?”

뒤를 흘깃 돌아본 티나한은 벼슬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그들의 등 뒤로 두억시니들이 잔뜩 몰려들어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티나한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할 때 유해의 뱀이 끔찍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티나한은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퇴로를 뚫어!”

그리고 티나한은 달려드는 유해의 뱀을 향해 철창을 내뻗었다.

비형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앞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뒤쪽에서는 티나한이 달려드는 유해의 뱀을 상대로 격렬한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무게만 해도 무지막지한 철창에 레콘의 힘이 더해지자 유해의 뱀은 다가올 때마다 그 일부가 박살 나며 물러났다. 하지만 폭포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고 유해의 뱀은 계속 자신을 재구성하며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폭포와 싸우는 셈이었다.

비형처럼 앞뒤를 쳐다보던 륜이 조급하게 외쳤다.

“비형! 불을 질러요!”

비형은 정신이 퍼뜩 든 표정으로 륜을 내려다보았다. 륜은 통로를 막고 있는 두억시니를 가리켰다. 하지만 도깨비는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자들에게 불을 지릅니까?”

“저게 살아 있는 겁니까!”

“하지만 죽은 것도 아니잖습니까?”

륜은 비늘을 곤두세우며 비형을 바라보았다. 지난 다섯 시간 동안 그토록 험악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비형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거부하고 있었다. 륜이 도깨비를 설득하려 할 때 두억시니들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 왔다.

“딱딱하게 끊는 망치 바르면!”

“무거운 해 늙어 태어나면 개나리 웃지요!”

륜은 황급히 허리춤을 뒤져 붉은 알약을 꺼내었다. 비형이 눈을 크게 뜬 순간 륜은 소드락을 삼켰다.

“좋습니다. 제가 뚫겠습니다. 따라오세요!”

사이커를 두 손으로 움켜쥔 륜은 질풍처럼 달려갔다. 두억시니들은 모순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륜은 그들을 정면으로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왼쪽 벽으로 뛰어오른 륜은 그대로 벽을 따라 달리다가 몸을 뒤집으며 천장을 걷어찼다. 그리고 두억시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로부터 몇 분 동안, 륜은 바닥에 한 번도 발을 딛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를 아래로 향했던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두억시니의 어깨나 머리, 그 둘이 다 없는 경우엔 다른 것을 밟거나 짚으며 계속 도약하는 륜의 모습은 거꾸로 뜬 채 싸우는 듯했다.

그러나 그 경이적인 분투에도 불구하고 륜은 거의 퇴로를 확장하지 못했다. 계속 재구성되는 유해의 뱀과 마찬가지로 두억시니들 또한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십 분이 지났을 때 륜은 겨우 10미터를 나아갔을 뿐이었다. 소드락의 지속 시간을 절반 이상 써버린 륜은 초조함을 느꼈다.

티나한 역시 난처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비록 상대방이 수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였지만 티나한의 패기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다.

하지만 벽에 난 구멍 속에 서 있던 티나한의 행동 범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우회 공격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오로지 정면으로만 부딪쳐야 했던 것이다.

유해의 뱀은 그런 상황을 십분 활용했다. 비록 다가설 때마다 들소라도 일격에 관통할 듯한 무서운 공격을 받고 물러나야 했지만, 유해의 뱀은 얼마든지 자신을 재구성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씩 더 거대해진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티나한을 쓰러뜨릴 수 있는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계속 시험하는 듯했다.

비형은 앞뒤 어느 쪽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형은 나늬에게 기대어 어깨를 떨었다.

“왜 이래야 되는 거야?”

“제발 불을 질러요! 비형!”

비형은 고개를 들어 륜을 바라보았다. 소드락에 취해 있던 륜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의 몸에는 무수한 상처가 나 있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이 마치 거대한 거미인 양 륜의 등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며 비형은 진저리를 쳤다. 륜은 심장을 가진 나가다. 수족이 잘려도 재생할 수 있는 다른 나가들과는 다르다.

비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에겐 륜 페이를 하인샤 대사원에 데려다주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그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셋이 되지 않는다.

마침내 비형이 저 페시론 섬의 악당들이 마지막에 본, 그리고 아킨스 로우 협곡에 영원한 징벌의 낙인을 찍었던 바로 그것을 만들어 내려고 했을 때였다.

비형은 한 두억시니의 얼굴을 보았다.

지독하게 못생긴 두억시니였다. 오른쪽 눈은 비뚤어진 코에 거의 달라붙어 있었고 왼쪽 눈은 이마에 붙어 있다시피 했다. 윗입술은 거의 없어 고르지 못한 치열을 드러내고 있었고 아랫입술은 두툼했지만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마치 탈수증에 시달리는 듯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두억시니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눈물샘에 어떤 이상이 있는 듯했다. 실제로 그 추악한 얼굴 어디에도 비통해하는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양손을 합쳐 여섯 개밖에 안 되는 손톱을 륜의 몸에 박아 넣으려 안달하는 그 몸짓에는 맹목적인 분노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무의미한 몇 방울의 눈물이 비형의 두 손 위에 영글던 대재앙을 꺼뜨렸다.

비형은 두 손을 떨구었다. 소드락의 약효가 떨어지면 륜은 죽을 것이다. 그리고 티나한 또한. 비형은 자신의 죽음에 슬퍼하지는 않았다.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도깨비는 없으니까. 그 순간 비형은, 극히 차분한 정신으로 케이건 드라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왜 죽이고, 왜 먹어버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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