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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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6)


물이 요란하게 튀어 오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날아든 물방울은 륜의 볼을 때렸다. 하지만 륜은 강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넋을 잃은 얼굴로 사모 페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모의 니름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쇼자인테쉬크톨?’

멍하니 굳어 있던 륜과 달리 사모는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며 강변을 바라보았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거창한 물보라를 일으킨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놀라움은 인간이 강변 위로 올라왔을 때 경악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지도 않은 채 곧장 등 뒤의 검을 뽑아 들었고, 그 검을 보았을 때 사모는 가문을 방문한 남자들이 들려주던 무시무시한 괴물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가 살육자?>

나가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한계선 근처에 출몰하며 나가를 잡아먹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 괴물은 바라기라 불리는 쌍신검을 휘두르며 추위와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추위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나가를 얼음 깨어 먹듯이 씹어 먹는다고 한다. 지금껏 사모는 그 나가 살육자가 한계선의 추위를 상징하는 상상의 괴물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는 그 이야기 속에서 묘사하는 것과 똑같은 인간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은 채 달려오고 있었고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고 니르기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도전의 포효는 맹렬했고, 그 뒤를 이은 공격은 성난 하늘치 같았다.

사모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쉬크톨을 위로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낭패한 기분을 느끼며 다섯 번 더 방어해야 했다. 쌍신검의 공격은 여섯 번의 공격이 모두 한 번의 공격인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쉬크톨과 바라기가 부딪치며 소름 끼치는 굉음과 빗발 같은 섬광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여섯 번째 공격에서 사모는 겨우 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모는 그 틈으로 세차게 쉬크톨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나가 살육자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쉬크톨의 궤적에서 물러났다. 아니, 예상한 것이 아니라 몸에 익은 동작이었다. 사모는 그 회피에 크게 놀라며 긴장했다.

케이건 역시 놀랐다. 조금 전 그를 향해 날아든 반격 기술은 분명히 요스비의 것이었다. 여자를 다시 관찰한 케이건은 그 손의 위치나 발의 각도 등에서 요스비의 흔적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케이건은 여자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등 뒤를 향해 외쳤다.

“요스비! 이 여자, 네 제자인가?”

뒤쪽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요스비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케이건은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계선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느린 나가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한계선의 나가가 소드락을 복용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요스비의 제자라면 무턱대고 벨 수 없다고 생각하며 케이건은 두 손목을 비틀어 바라기를 반 바퀴 돌려주었다.

사모는 그 움직임에 의아해했다. 그러나 케이건이 공격을 시작한 순간, 사모는 그 무지막지한 공격에 당황했다. 숙련된 무술가답게 사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태를 이해했다.

바라기의 두 검날은 무게가 서로 달랐다.

보통의 검에서도 검날의 무게 중심을 일부러 어긋나게 만드는 경우가 있으며 사이커나 쉬크톨 또한 그런 검에 속한다. 다루기가 쉽지 않지만, 숙련자가 다룰 경우 이런 ‘비틀린 검’은 대단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무게가 서로 다른 바라기의 두 개의 검날 또한 무게 중심이 비틀린 칼처럼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보통의 칼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검날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검법이 두 가지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조금 전의 연속 공격이 민첩했다면 지금의 공격은 실로 육중했다. 단순히 칼날의 무게가 두 배라는 것 이상의 거대한 기백에 사모는 감히 방어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다.

사모가 멀찌감치 떨어지자 케이건은 바라기를 옆으로 약간 눕히며 외쳤다.

“요스비의 제자인가?”

사모는 케이건의 입을 보고서 상대방이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청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말했다.

“뭐라고 했지?”

“요스비의 제자인가?”

사모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넌 누구야?”

“이 근방에서는 나가 살육자로 알려져 있는 것 같더군.”

케이건은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곤 등 뒤를 향해 외쳤다.

“이봐, 저 여자가 왜 널 공격하나?”

저자가 륜까지도 알고 있나? 사모는 계속되는 놀라움 속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나가 살육자. 네가 요스비를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그것은 천천히 말하지. 비켜라.”

“왜?”

“이것은 쇼자인테쉬크톨이다. 알고 있어?”

케이건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범죄자의 추적과 살해를 친족에게 일임하는 이 무서운 관습은 잊기 어려운 것이다. 케이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모는 자신의 검을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이 검은 쉬크톨이며, 한 사람을 죽인 다음 부러져야 되는 칼이야. 그리고 그 한 사람은 네가 아니다. 비켜 줘.”

케이건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여자는 요스비의 혈족이란 말이군.’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 케이건은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가 남자에겐 혈족이 없다.

“출가 외인인 남자에게 쇼자인테쉬크톨이라니?”

“우리에 대해 많이 알고 있군.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알려 줄 생각은 없어. 당장 비켜!”

케이건은 비키는 대신 젖은 머리카락을 세게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은 기이하게 꿈틀거리다가 어깨와 얼굴에 달라붙었다. 두억시니 같은 모습이 된 케이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어주지.”

케이건은 검을 뒤로 바싹 당기며 검의 무게와 균형을 맞추듯 허리를 앞으로 약간 굽혔다. 사모는 그 황당하기까지 한 자세에 놀랐다. 어떤 검법에서도 준비 자세에서 상체를 앞으로 숙이지는 않는다. 뒤로 간다면 모를까,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방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모 페이는 바라기가 신경 쓰였다. ‘저런 이상한 칼에는, 이상한 자세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이 묘한 자세에 적응하기 위해 사모는 쉬크톨을 비스듬히 내민 채 잠시 기다렸다.

케이건이 원한 것이 그것이었다.

케이건은 뒤로 홱 돌아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 그 도주에 사모는 잠시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륜은 케이건이 자신의 허리를 껴안으며 물에 뛰어들 때까지도 반항하지 못했다.

케이건과 륜은 요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물에 빠졌다.

륜은 공포에 찬 니름을 닐렀다. 하지만 상대방이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륜은 육성으로 외쳤다.

“나는 나가라고!”

덕분에 륜은 꽤 많은 물을 삼키게 되었다. 물속에서 고함을 지르면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입속으로 왈칵 쏟아져 들어오는 물 때문에 륜은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헤엄친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륜은 본능적으로 거칠게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물의 차가움 때문에 몸은 빠르게 식어 갔고 륜은 다리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깨닫고는 공포에 질려 버렸다.

륜의 몸이 굳어지자 케이건은 좀 더 쉽게 륜을 다룰 수 있었다. 한쪽 팔로 바라기와 륜의 허리를 껴안고 다른 손으로 힘껏 물을 저으며 케이건은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물보다 무거운 몸을 가진 사람은 레콘뿐이다. 차가움 때문에 물에 들어가지 않지만, 나가도 인간이나 도깨비처럼 물과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또한 몸부림을 치거나 하지 않는 륜은 케이건을 편하게 해 주었다. 케이건은 곧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 케이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곧 케이건은 쉬크톨을 움켜쥔 채 무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는 사모를 발견했다. 하지만 사모는 물에 뛰어들지는 못했다. 케이건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누운 자세로 헤엄을 치며 비형을 찾았다.

비형은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케이건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 다음 아래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륜이 아무리 다루기 쉽다 해도 그를 껴안은 채 넓은 무룬 강을 가로질러 갈 수는 없었다. 비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 명을 태우고 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태울 작정입니까?’

비형의 얼굴을 읽은 케이건은 손짓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내려와서 이 나가만 데려가시오. 그 딱정벌레는 발로 나가를 끌어올릴 수 있잖소. 나는 혼자서 헤엄쳐 건널 거요.’

케이건은 의미가 분명한 손짓을 해 보였고 비형은 곧 이해했다. 위험한 일이었기에 비형은 조심스럽게 아래쪽으로 딱정벌레를 몰아갔다.

딱정벌레가 수면 가까이로 내려오자 거센 바람이 케이건의 얼굴을 때렸다. 강물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옆으로 번져 갔고 그 때문에 케이건과 륜은 위아래로 거칠게 출렁거렸다. 파도와 물방울이 튀어 오르자 겁을 먹은 딱정벌레 나늬는 더듬이를 움직여 더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말했다. 비형은 나늬의 등을 쓸어 만지며 달래었다. 비형의 격려에 나늬는 다시 아래로 조금씩 내려갔다. 케이건은 위아래로 출렁거리면서도 내려오는 딱정벌레의 발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모두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기에 다가오는 위험을 깨달은 것은 강 건너편에서 보고 있던 티나한이었다. 티나한은 가슴을 거대하게 부풀린 다음 벽력처럼 외쳤다.

“비─형―! 조심해—!”

가까운 곳에 서 있으면 그 소리에 밀려 쓰러진다는 레콘의 계명성(鷄鳴聲)이 터지자 숲에서 새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그 거대한 소리는 딱정벌레의 광포한 날개 소리를 뚫고 비형의 귀에 전달되었다. 비형은 깜짝 놀라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고, 그때 티나한이 다시 계명성을 질렀다.

“날아올라!”

비형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위로 날아올랐다. 케이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딱정벌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던 딱정벌레가 사라지자 케이건 또한 다가오는 위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케이건은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정신 억압자라니!”

한 손으론 왕독수리의 목깃털을, 다른 손으론 쉬크톨을 움켜쥔 채 사모 페이가 폭풍 같은 기세로 날아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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