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3장 – 눈물처럼 흐르는 죽음 (7)
황급히 피하긴 했지만, 비형은 티나한이 가르쳐 준 위험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늬의 복안은 등 뒤에서 날아드는 위험을 볼 수 있었다. 나늬는 빠른 속도로 상승했고 비형은 하마터면 강물에 떨어질 뻔했다. 순식간에 백여 미터나 솟구친 나늬는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고 비형은 그제야 저 아래에서 날개 치는 왕독수리를 볼 수 있었다.
왕독수리는 나늬가 있던 지점을 빠르게 통과했다. 케이건은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왕독수리의 모습에 눈을 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케이건의 머리 위를 지나친 왕독수리는 그대로 반대쪽 강변으로 날아갔다. 티나한은 벼슬을 곤두세우며 철창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왕독수리는 숲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고도를 높였다. 왕독수리는 강변의 숲머리를 스칠 듯이 날아 선회했고, 날개 바람에 휘말린 나뭇잎들이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마치 키보렌이 왕독수리의 발을 붙잡으려 수천 개의 손을 뻗어 올리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왕독수리는 영광에 찬 날갯짓으로 키보렌의 손길을 뿌리치며 휘돌아 올랐다.
다시 강물 위로 날아들며 사모는 거대한 외침을 토했다.
“강변으로 돌아가라! 그렇잖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
케이건은 분노에 찬 눈으로 사모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왕독수리는 딱정벌레와 달리 악어를 잡아채는 사냥 실력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케이건이 거부한다면 사모는 쉽게 그를 낚아 올릴 것이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 케이건은 동행자의 자격 요건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고? 도대체 대적자여야 할 레콘이 강 저편에 고립되어 있다니.
하지만 티나한은, 그리고 레콘을 동행시킨 하인샤 대사원의 승려들은 케이건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저리 꺼져라, 이 덩치 큰 병아리야!”
우레 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나무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진짜 ‘나무’였다. 뿌리와 줄기, 가지, 그리고 잎사귀들까지 갖춘 버젓하고 보편타당한 나무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나무는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는다. 왕독수리를 다급히 날아오르게 하면서도 사모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통과하는 5년생 고무나무를 공포에 질린 채 내려다보았다.
가공할 속도로 날아온 나무는 수면과 충돌한 후 다시 날아올랐다. 물이 화산처럼 치솟는 가운데 나무는 강변의 숲에 틀어박혔다. 사모는 왕독수리의 등깃털을 잡아 뽑을 듯이 움켜쥔 채 반대쪽 강변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레콘이 또 다른 나무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사모는 그러나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무를 사랑하는 나가였다.
“그 짓 당장 멈춰라! 나무를 내버려 둬!”
티나한은 부리를 부딪치며 나무를 놓았다. 사모는 안도했으나 곧 커다란 실망과 분노, 그리고 황당함을 느꼈다. 티나한은 양손으로 나무 한 그루씩을 붙잡았다. 고무나무와 광대싸리를 한 그루씩 움켜쥔 티나한은 허리를 낮췄다가 일시에 펴며 두 팔을 좌우로 밀었다. 각자 4미터가 넘는 나무들이 부르르 떨리는 모습을 보며 사모는 비명을 질렀다.
“당장 멈춰!”
티나한은 들은 체 만체하며 다시 허리를 낮췄다가 일시에 폈다. 그의 몸이 세 배로 부풀어 오르며 두 그루의 나무는 좌우로 벌어져 뿌리가 드러났다. 티나한은 두 그루의 나무를 투창처럼 차례로 집어던졌다. 사모는 왕독수리를 더 높이 날아오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영웅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실로 초인적인 위업을 펼쳐 보였으면서도 티나한은 도통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
“젠장! 안 맞는군!”
강물 속에서 출렁거리며, 케이건은 구출대의 일원으로 레콘을 배정한 대사원의 승려들도 레콘이 이런 종류의 활약을 펼쳐 주리라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티나한이 수 톤짜리 바위를 집어던졌다 하더라도 이토록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바위가 나무보다 무거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고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바위보다 훨씬 강하다. 오직 하늘치를 상대해 온 티나한만이, 즉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 킬로미터 크기의 물고기를 겨냥하며 살아온 레콘만이 물고기도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나무가 하늘을 날아다녀서 안 될 것이 뭐냐는 식의 상식 파괴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대적자가 맞군.’
케이건은 가볍게 감탄하며 티나한이 있는 강변을 향해 헤엄쳐 갔다. 그의 왼쪽 겨드랑이에 끼여 있는 륜은 이제 뻣뻣하게 변해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케이건이 물에 뜨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허파에 공기가 들어 있는 인간이나 나가는 물에 뜬다. 익사자가 물에 가라앉는 것은 물을 삼켰기 때문이다. 케이건은 륜이 물을 마시지 않도록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채 조심스럽게 륜을 끌고 갔다. 수백 미터나 되는 강폭이지만, 티나한이 계속 엄호해 준다면 케이건은 어떻게 가로지를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강 저편에서 들려온 단말마의 비명은 그런 낙관적인 전망을 싹 날려 버렸다. 고개를 든 케이건은 상류를 보았다.
케이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왕독수리는 발에 거대한 악어를 움켜쥔 채 날아들고 있었다. 생애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폭력으로 얼룩져 있는 케이건이나 티나한 같은 사내들도 이런 종류의 공격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티나한이 기막힌 비명을 지를 때 왕독수리의 발이 악어를 탁 놓았다.
사지를 꿈틀거리며 날아드는 4미터 크기의 악어라는, 유사 이래의 전란사의 한 장을 충분히 장식하고도 남을 위력적인 공대지 공격이 무룬 강 수면 위에 작렬했다.
악어는 티나한의 몇 미터 앞에 떨어졌다. 수 미터 크기의 물보라가 강변을 덮쳤다. 물론 티나한은 왕독수리가 악어를 놓자마자 나무와 수풀을 닥치는 대로 부러뜨리며 뒤로 도망친 후였고, 그래서 물을 뒤집어쓰는 끔찍한 꼴은 당하지 않았다. 삽시간에 강변에서 20미터나 물러난 티나한의 뒤로는 코끼리 떼가 지나간 것 같은 자취가 남았다. 자신이 만든 그 엄청난 자국의 첨단부에 주저앉아서, 티나한은 헐떡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모는 경멸어린 눈으로 레콘을 노려본 다음 다시 수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케이건은 이제야말로 꼼짝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건과 티나한, 그리고 사모 페이는 한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지요?”
그 호탕한 외침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딱정벌레 날개 소리에 묻혔기 때문이다. 문득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사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모는 수십 마리나 되는 딱정벌레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을 보곤 숨이 턱 막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