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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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18)


갈로텍은 비아스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비아스 마케로우가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에 들어서자마자 수련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비아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32층을 올라가셔야 됩니다.>
비아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아스는 갈로텍의 나이가 그렇게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이 허물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나가의 외모에서 나이를 추 측할 방법은 드물다. 나이 많은 나가라도 허물을 벗은 지 얼마되지 않으면 그 피부에는 젊음이 넘친다. 나가들은 상대방의 나이 를 가늠할 때 주로 정신의 깊이와 사용하는 니름들의 종류를 이 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럭저럭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정도 의 정확성을 보장한다. 비아스는 갈로텍이 쉰 살은 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쉰 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 수호자가 32층 에 있을 수는 없다.
32층은 비아스의 예상보다도 높았다. 심장탑의 안쪽 벽면을 가 득 채우고 있는 벽감에 있던 심장병이 사라질 정도로, 비아스는 약간 놀라며 안내하던 수련자에게 질문했다.
<병이 벌써 없어졌군. 나는 수십억 개쯤 있을 줄 알았는데?> 수련자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는 심장 보관에 대한 비아스의 무지를 탓하지는 않았다. 여자들은 보통 남자들의 일에 관심이 없으며 그런 무관심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심장의 소유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심장을 보관하지는 않으니까요. 간단한 장례식을 치른 다음 파기합니다.> <어떻게 소유자가 죽은 것을 알지? 소유자가 남자라서 도시에 서 먼 곳에서 죽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심장도 죽습니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지요.>
<아, 그렇겠군.〉 잠시 후 비아스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 비아스는 32층을 걸어올라간 자신이 꽤나 비참한 모습으로 갈로텍 앞에 서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갈로텍이 비록 그녀의 약점을 알고 있긴 하지 만, 비아스는 선처를 바라는 죄인 같은 후줄근한 꼴로 갈로텍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31층에 도달했을 때 비아스는 걸 음을 멈췄다. 비아스는 수련자가 질문할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수련자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비아스는 문득 깨달았다. <빌어먹을! 내가 여기서 쉴거라는 것을 짐작했군. 갈로텍이 가르쳐준 걸까, 아니면 이 꼬마가 스스로 짐작한 걸까?>
비아스는 수련자에게 그것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고맙게도 수 련자가 먼저 닐렀다.
<예의에 밝은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갈로텍 수호자님 께서는 찾아오신 분이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며 항상 죄송스러워 하지요. 그래서 제가 여기쯤에서 내방하신 분께 잠시 쉬실 것을 권하곤 합니다. 그런데 마케로우 님께서는 먼저 걸음을 멈추시는 군요.>
비아스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춘 것은 갈 로텍이 염려할 것을 배려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유 문이다. 비아스는 수련자가 아무렇게나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는 호흡이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느꼈을 때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32층에 도달하자 비슷하게 생긴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수련 자는 그중 왼쪽 문으로 비아스를 안내했다. 비아스는 고개를 갸 웃했다.
<수호자들은 모두 한 층을 다 쓰는 것 아니었나?>
<50층부터 그렇습니다. 마케로우. 거기서부터는 한 층에 한 분 씩 계시지요. 30층부터 49층까지는 한 층에 두 분의 수호자가 계 십니다. 물론 지위나 뭐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 계시면 오르내리기 힘드니 위쪽에 계신 분이 적은 것이지요.>
수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비아스는 그것이 분명히 지위의 표 상일 거라 생각했다. 그토록 높은 곳에 있는 자는 자신이 오르내리지 않을 것이다. 비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올라
오게 할 테니. 비아스는 갈로텍이 어젯밤 이곳을 걸어 올라와야 했을 거라는 사실에 심술궂은 즐거움을 느꼈다.
수련자가 문 건너편을 향해 니르기 전, 비아스는 느닷없이 앞 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두드렸다. 수련자는 놀란 표정으 로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방문 건너편에서는 침착한 니름 이 들렸다.
〈들어와요. 비아스 마케로우.>
비아스는 어쩔 줄 몰라하는 수련자를 내버려둔 채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을 닫은 비아스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방 이었다. 갈로텍은 창문을 면한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갈로텍은 다른 의자를 가리켰고 비아스는 거기에 앉았다. 비아스가 자리에 앉자 갈로텍은 입을 열었다.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케로우. 문을 두드리셨으니 다 음엔 뭔가요? 노래? 박수?”
육성으로 말하는 갈로텍을 보며 비아스는 수호자가 ‘불신자 취 급’을 당한 것에 아랑곳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비아스가 문을 두드린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는 것도, 비아스는 맥이 풀렸다.
<어제 뵈니 소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아, 네.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도 가지고 있지요.”
갈로텍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위에 있는 막대기를 들어올렸다. 꽤 큼직한 막대기였지만 갈로텍이 들어올리는 모습을 본 비아스 는 그것이 가벼울 거라 생각했다. 갈로텍은 그 막대기를 비아스 에게 건네었다. 의아해하면서도 막대기를 받아든 비아스는 그것이 왜 가벼운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대나무였다. 하지만 이상
한 색깔이었기에 비아스는 첫눈에 그것이 대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갈로텍은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라고 생각되십니까?”
비아스는 니름을 고집했다.
<대나무군요. 벌레 먹은 구멍이 있고. 아마 벌레 먹은 대나무 를 불쌍히 여기셔서 손질한 다음 보관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갈로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아스에게서 다시 대나무를 받 아든 갈로텍은 비아스가 벌레 먹은 구멍이라고 닐렀던 구멍들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그리고 제일 위쪽의 구멍에 입을 가져갔 다. 나무를 먹을 생각인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해 보던 비아스 는 대나무에서 소리가 흘러나오자 깜짝 놀랐다.

신화보다 더 늙고 산맥보다 더 거대한 야수의 무거운 숨소리-
그는 분명 지혜로운 바보다.
늪지에 뿌려진 별빛을 보며 목마른 짐승은 잠시 갈급함을 잊는다. 바람, 빠르게, 성급하지 않게.
유수에 침식당하는 바위가 내뱉는 한숨, 혹은 가없는 세월 끝에 드디어 유수가 된 바위의 고고성?

한참 후에야 비아스는 그것이 악기라는 사실, 그리고 갈로텍이 지금 연주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로텍은 힘껏 역취 (力)했다. 단단한 대나무와 여린 갈대 속청만이 낼 수 있는 소 리, 그 섬뜩할 정도로 투명한 소리가 고양감을 한껏 만끽하며 치 솟아올랐다.

너무 슬퍼서 슬프지 않은 비명. 꿰뚫는다.
구름을 가르고 달빛을 거슬러 오르는
고요한 천둥과 부드러운 벼락.

연주가 끝났다.
갈로텍은 취구에서 입을 뗀 다음 비아스를 바라보았다. 비아스 는 매료된 기분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닐렀다.
<재미있는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벌레 먹은 대나무는 아 니군요.>
“대금이라고 합니다. 해일을 가르고 폭풍을 잠재우는 악기죠.” 그 대나무가 마법이라도 부린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갈로텍은 다시 크게 웃었다. 웃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는 듯 했다.
“해일을 가르는 힘과 폭풍을 잠재우는 부드러움을 겸비한 악기 라는 뜻입니다. 마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걸로 부릴 수 있는 마법이라면, 제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는 마법 정도입니다. 마음 에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비아스는 그 질문에 대답을 회피했다.
<희귀한 구경거리이긴 하지만 그걸 보여주시려고 저를 만나자 하신 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만. >
“아, 참. 그렇지요. 당신의 동생 살해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요.”
비아스는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갈로텍의 얼굴을 후려갈
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갈로텍은 그 모습에 또 웃으며 대금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책상 서랍에서 밧줄을 꺼내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비아스에게 갈로텍은 밧줄을 건네
었다.
“저를 묶어주세요.”
<도대체 이 무슨 괴상한……………>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저를 의자에 꽁꽁 묶어주세요. 발자국 없는 여신의 이름에 맹세코, 제 제안에 고마워하시게 될 겁니다.”
비아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신의 이름을 건 맹세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비아스는 수호자를 의자에 꽁꽁 묶었다. 당 황과 분노 때문에 비아스는 매듭을 단단히 묶었지만 수호자는 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단단히 묶으라는 수호자의 요구에 비 아스는 비늘이 벗겨질 정도로 세게 묶었다. 다리까지 의자 다리 에 고정된 수호자는 몇 번 몸을 뒤채보고는 만족했다.
“감사합니다. 황당한 제안이었죠?”
<수호자께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자, 이제 뒤로 좀 물러나 주
십시오.”
비아스는 끝을 봐야겠다는 심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거리가 충
분히 떨어지자 갈로텍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갈로텍의 표정이 일순 바뀌었다.
비아스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몇 발자국 더
물러났다. 비아스는 지금껏 그토록 살기어린 표정을 본 적이
었다. 곤두선 비늘들이 서로 부딪혀 흉포한 소리를 일으켰다. 갈
로텍은 의자를 뒤흔들며 닐렀다.

<비아스! 이 저주 받을 살인자야!>
비아스는 그 니름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그것은 화리트 마케로우의 니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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