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5장 – 철혈(鐵血) (22)
키타타 자보로는 케이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왕보다는 마립간이 훨씬 좋다. 신하는 왕을 칼집으로 두들겨 팰 수 없지만 백부는 조카인 마립간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칼집으로 두들겨 맞으며 지그림은 “무엄한 반란이다!”라고 선언했고 자보로 씨족의 원로들은 “조카를 매섭게 훈도하는 모습을 보니 키타타의 근력이 아직 괜찮다.”고 흡족해했다. 그리고 언제나 자보로 씨족의 결정을 존중해 왔던 자보로 사람들은 씨족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건 집안일이야.” 그것이 왕과 마립간의 차이였다. 마립간의 경우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그 씨족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같은 씨족들끼리 서로를 두들겨 패든 어쨌든 인도주의적인 참견 이상은 하지 않는다.
결국 지그림 자보로는 한 달쯤은 몸조리를 해야 할 모습이 되어 성루 위에 길게 누웠다. 자보로 씨족의 젊은이들이 지그림을 수습해 가는 모습을 보며 키타타 자보로는 하늘을 우러르며 한탄했다.
“망할 녀석! 조실부모한 놈 가엾어서 지금껏 보살펴 줬더니 아직까지 사람 구실을 못 하는구나! 내 아들이었다면 벌써 버르장머릴 고쳐줬을 것을, 지금까지 놔두었더니 결국 손을 대게 만들다니!”
자보로 씨족의 원로들은 동생의 아들을 그만큼 키웠으니 죽은 동생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며, 오히려 왜 이제야 손을 댄 거냐고 힐난할지도 모른다고 키타타 자보로를 위로했다. 키타타는 고개를 내저으며 씨족의 원로들에게 말했다.
“성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합시다.”
사람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성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키타타 자보로는 그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여보시오! 성문을 열어드리겠소!”
성루 아래쪽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키타타에게 대답했다.
“그러고 싶지 않군. 그런데, 조금 전 내게 대호를 내놓으라고 외치던 그 인간은 어떻게 되었지? 그 자가 너희들의 왕인 것 같던데.”
키타타는 얼굴을 확 붉히며 이를 갈았다. 용을 뺏으려다가 무지한 욕을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지그림 자보로는 성문 앞에 나타난 대호를 보자 다시 그것을 탐내었다. 결국 지그림은 백부의 인내심을 바닥내고 말았고 그 대가는 조금 전 온몸으로 치렀다.
“그 자는 내 미욱한 조카입니다. 그리고 왕이 아닙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소리를 못 할 겁니다. 조카의 실언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사모는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내 용건은 아까 말한 그대로야. 아마도 책임자가 너로 바뀐 듯하니 한 번 더 말하지. 믿기 어렵겠지만 너희들의 도시를 향해 수천의 두억시니들이 달려오고 있어. 늦어도 오늘 밤 안에는 도달할 것 같더군.”
두 번째 듣는 말이었지만 키타타와 다른 이들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수천의 두억시니라고?’ 하지만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인지라 오히려 믿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모는 진지하게 말을 맺었다.
“그 불행한 자들이 이 도시를 공격할지 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거야.”
“정말 믿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솔직히 당신 모습보다는 믿기 쉽군요. 대호를 탄 나가라니.”
사모는 싱긋 웃었다. 키타타는 갑자기 주저하며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쫓던 나가는…….”
“알고 있어. 이미 이곳을 떠났지?”
사모는 쉬크톨의 감각으로 륜이 이미 자보로를 떠난 것을 알고 있었다. 키타타 자보로는 놀랐다.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 그냥 우리에게 경고해 주기 위해 온 겁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참견이었나?”
“아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어. 조심하길 바라. 두억시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으며 무엇에도 놀랄 필요가 없어.”
그리고 사모는 키타타가 뭐라 감사의 말을 하기도 전에 마루나래에게 개념과 의지를 보내었다. 마루나래는 자보로의 성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감탄하며 성벽 위로 따라 달렸지만 도저히 대호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었다. 바람처럼 자보로 성벽을 우회한 마루나래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