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6장 – 길을 준비하는 자 (16)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사모는 일출을 맞이했다. 남동쪽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방 창문을 통해 사모는 왼쪽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피로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던 사모는 문득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비가 그쳤어?’
사모는 마루나래의 옆구리에서 내려왔다. 창가로 걸어간 사모는 비가 그쳤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모는 두억시니들이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음도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 쇠뇌와 돌멩이의 교환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치명적인 공격을 준비한 채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두 검객처럼 유료 도로당과 두억시니들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모는 문득 륜을 생각했다.
‘비가 그쳤다면 륜은 이곳을 떠날까? 아직까지 전투 상황이니 륜도 방 안에 갇혀 있는 걸까?’
사모는 선반에 둔 쉬크톨을 끌어내어 뽑아 들었다.
잠시 후 사모는 륜이 요새를 떠나고 있음을 깨닫고 당황했다.
<이런, 망할 놈들이!>
선반에서 옷을 끌어내린 사모는 그것을 황급히 걸쳤다. 손으론 옷을 졸라매며 사모는 동시에 발가락으로 마루나래의 코를 간지럽혔다. 마루나래는 거창한 재채기를 했지만 사모의 바람대로 일어나는 대신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사모는 화를 내며 마루나래의 머릿속에 백 개의 쉬크톨과 백 개의 차돌을 집어넣은 다음 그것을 동시에 부딪쳤다.
“꺄옹!”
마루나래는 기겁하여 일어나서는 사방을 경계했다. 수염을 꼿꼿이 세운 채 주위를 둘러보던 마루나래는 신발을 꿰어 신는 사모를 보며 투덜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문을 부술까?’
사모는 잠시 고민했지만 전투 상황이면 감시자가 배치되어 있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모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잠시 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모는 더 크게 말하라고 외쳤다.
“왜 문을 두드리는 거냐고 했습니다!”
“네 종족으로 이루어진 패거리 떠났나?”
“조금 전에 떠났습니다.”
“나도 가겠어! 문 열어!”
밖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는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사모는 모포를 뒤집어쓰고는 마루나래의 목에 매달리듯 대호를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몸의 온도를 높이려 애쓰며 사모는 문을 응시했다.
사모가 문을 부수려는 유혹을 느끼게 될 무렵 문이 열렸다. 그대로 문으로 걸어가던 사모는 하마터면 안으로 들어오던 자와 부딪힐 뻔했다. 사모는 쉬크톨을 움켜쥐며 뒤로 훌쩍 뛰었다. 들어오던 자는 비무장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듯 재빨리 두 손을 들어 보였다. 보좌관이었다.
사모는 쉬크톨을 놓으며 똑바로 섰다. 보좌관의 뒤쪽엔 몇 명의 당원들이 더 있었다. 보좌관은 두 손을 든 채 방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소?”
사모는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보좌관은 사모의 발을 보며 말했다.
“신발을 벗으셔야겠는데.”
사모는 자신이 신발을 신은 채 돗자리를 밟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벗는 대신 보좌관에게 말했다.
“곧 나갈 거야.”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좀 있소. 그러니 아무래도 신발은 벗으셔야겠소.”
“당신하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
사모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보좌관의 등 뒤에서 문이 다시 닫혔다. 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은 사모는 보좌관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보좌관은 신을 벗은 다음 돗자리 위에 올라와 앉았다. 비무장인 노인이 바닥에 앉기까지 하자 사모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려웠다.
사모는 신을 벗어 노인의 신 옆에 놓고는 바닥에 앉았다. 그녀의 곁에 엎드리는 마루나래를 보던 보좌관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들은 땅의 냉기를 피하기 위해서 침대를 쓴다고 알고 있소. 방바닥에서 자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으셨소?”
사모는 엄지손가락으로 마루나래를 가리켰다. 보좌관은 의아해하다가 곧 탄성을 질렀다.
“대호를 침대로 쓰셨다는 거요?”
“푹신해.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당신을 우리 회의장에 부르고 싶었지만 우리 회의장은 저 대호가 올라오기 힘든 곳이오. 계단이 좀 작아서. 당신이 저 대호를 통제하는 것 같으니 대호와 당신을 떼어 놓을 수도 없었소. 그래서 내가 온 거요.”
“그래서?”
“저 두억시니들에 대해 아는 것을 설명해 주기를 바라오. 우리가 저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 두억시니들을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
보좌관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인간에게 완전히 익숙하다 하기 힘든 사모가 깨닫기 힘든 정도의 작은 변화였다.
“이 도로에서 쫓아내는 것을 최선의 해결책으로 생각하오.”
“최악의 해결책은?”
“전원 사살.”
사모는 언짢은 기색을 띄었다.
“너희들이 날리던 꼬챙이로 두억시니를 전부 사살할 수 있어?”
“방침이 전원 사살로 정해진다면 우리는 그에 적합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오.”
“여기엔 300명의 당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 두억시니는 3,000명이고, 열 배나 되는 인원을 어떻게 사살하겠다는 거지?”
“그건 우리가 염려할 문제고, 우리는 별로 염려하지 않소. 두억시니와 인간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일만 명의 적을 사살한 적도 있소. 그때도 우리 숫자는 삼백여 명이었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군?”
“할 수 있소.”
보좌관은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사모는 보좌관을 바라보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만약 누군가가 그들을 대신하여 통행료를 지불한다면?”
보좌관의 눈에 다시 이채가 번졌다. 그러나 보좌관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뚝뚝했다.
“그렇다면 그들을 통과시키겠소.”
“통과시킨다고?”
“그렇소. 통행료를 받았는데 통과시키지 않을 이유가 없소.”
“두억시니들의 통행료가 얼마지?”
“은편 서른 닢.”
“……뭐라고?”
“두억시니 하나 당 동편 한 닢. 모두 3,000이니 은편 서른 닢이오.”
“두억시니의 통행료는 왜 그렇게 싼 거지?”
“신을 잃었기 때문이오.”
“신을 잃었기 때문에?”
보좌관은 창쪽을 잠시 돌아보며 말했다.
“저 두억시니들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 도로를 걸어가는 자들이니 여행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소. 하지만 가장 귀중한 것을 잃은 자들에게 더 이상의 돈을 지불하라고 요구할 수 없소. 그래서 동편 한 닢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군.”
사모는 침묵했다. 보좌관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사모가 다시 말했다.
“내가 받을 거스름돈이 은편 스물다섯 닢이었지. 그렇다면 내가 은편 다섯 개만 더 주면 그들의 통행료가 되는 건가?”
“더 주실 필요는 없소.”
“왜지?”
“당신들의 금편은 우리 것보다 조금 무겁더군. 계산해 봤더니 당신에게 내어 드릴 거스름돈은 은편 서른 닢이었소.”
사모는 실소하고 말았다. 웃음을 거둔 사모는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물어보지 않는 거야?”
“무엇을 물어봐야 하오?”
“왜 두억시니들의 통행료를 대신 지불하는 건지.”
“내가 알 바 아니오. 사모 페이. 우리는 길을 준비할 뿐이오. 길은 평등하오. 존경받는 성자에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자에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