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13)
집채만 한 대호에 탄 채 꿈에서도 보기 어려울 괴물들을 인솔하며 대사원의 경내를 치닫는 사모의 모습은 승려들로 하여금 눈을 뜬 채 악몽을 꾸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무도한 해를 끼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대개의 경우 사모는 마루나래를 울부짖게 하여 승려들을 물러나게 하는 것에 만족했다. 공격이 시작된 후 십여 분 동안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따라서 그것은 공격이라 하기도 어려웠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는 자를 찾고 있던 사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을 가로막는 자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자일 테고 그런 자에겐 쓸만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사모는 계획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모는 한 승려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인간을 통째로 삼킬 듯한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다가오는 마루나래 앞에 승려는 기절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승려가 소망을 달성하기 전, 천상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레콘, 나가로 이루어진 무리는 어디에 있나.”
승려는 넋이 빠진 얼굴로 사모를 바라보았다. 사모는 재차 질문했고, 거기에 덧붙여 두억시니들이 무서운 기세로 다가섰다. 승려는 다급하게 말했다.
“철혈암에 있습니다.”
“철혈암은 어디에 있지?”
승려는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사모는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도대체 길을 알아볼 수 없는 숲과 계곡이 보였을 뿐이었다. 사모는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마.”
승려가 되물을 사이도 없었다. 마루나래는 승려를 곧장 물어올렸다. 승려는 죽는 소리를 외쳐대었지만 사모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했다.
“길을 안내해. 다치게 하진 않을 테니.”
승려는 한참 더 비명을 지르다가 겨우 사모의 말을 이해했다. 승려의 안내를 받아가며 사모와 두억시니들은 철혈암을 향해 달려 올라갔다.
철혈암에 도달한 사모는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인간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마루나래는 승려를 놓아주었고, 그러자 승려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케이건이었다. 케이건은 바라기를 두 손으로 쥐고 있었고 그 칼끝은 땅에 닿아 있었다. 두억시니들은 케이건을 보자마자 사납게 돌변했다. 다리가 넷 달린 두억시니는 그 발 모두로 땅을 긁었고 입이 다섯 개나 달린 두억시니는 그 입 전부로 소름 끼치는 포효를 토해 내었다. 우두머리인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의 두 팔에서는 예의 뿔이 한껏 튀어나왔다.
“하늘치 공격했다!”
“우리 공격했다!”
사모는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를 향해 외쳤다.
“내 지휘를 따르겠다고 했지?”
두 개의 머리 중 하나가 사모를 향했다. 나머지 머리는 여전히 케이건을 쏘아보고 있었다. 사모는 한 번 더 외쳤다.
“내 지휘를 따라! 두억시니!”
뿔이 팔 속으로 사라졌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두 개의 얼굴로 억울한 표정과 분노한 표정을 동시에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다른 두억시니를 향해 노성을 질렀다. 두억시니들은 겨우 진정했다. 그동안에도 케이건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사모를 응시했다. 사모는 모든 두억시니가 진정한 것을 확인한 다음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다시 만났군. 케이건.”
“그렇군. 페이.”
사모는 분노를 참지는 않았다.
“하늘치를 다루는 솜씨가 고명하더군.”
“두억시니를 구출한 것은 용감했다.”
“이 자들에게 사과하겠어?”
“사과할 거면 하지도 않았어.”
“도대체 왜 그랬어? 무엇 때문에 그 무수한 생명을 죽이는 선택밖에 없었던 거야?”
“먼저 오해한 것은 그 무수한 생명 쪽이다. 페이. 그들이 우리에게 살신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쫓아왔다.”
사모는 가까스로 그 질문을 상기했다.
“너희들은 정말 그 혐의와는 관련이 없는 건가?”
케이건은 고개를 조금 가로저었다. 사모는 긴장하며 비늘을 곤두세웠다. 케이건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관련이 없지는 않다.”
“없지는 않다고?”
“그래.”
“그렇다면 정말 신을 죽일 작정인가?”
“그 반대다.”
“반대라니?”
“네 동생, 륜 페이는 살신을 저지르려는 자를 막기 위해 이곳에 왔다.”
“뭐라고?”
“살신을 저지한다고 했어. 저 두억시니는 ‘신을 죽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라는 기억에서 뒷부분은 읽지 못하고 ‘신을 죽인다’ 는 부분만 읽은 모양이야. 그래서 오해했지.”
“도대체 무슨 소리냐! 륜은 너희들이 나가의 적과 싸우려 한다고 닐렀어! 그 적이 심장탑에 있다느니 하는 가당찮은 니름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네가 하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사모는 충격 속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말에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건은 그런 사모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사모는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을 억지로 꺼냈다.
“그렇다면, 심장탑의 수호자들이 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냐?”
“그래.”
“도대체 왜!”
“그걸 말해 줘도 되는지 모르겠군.”
“모르다니?”
“나는 네 동생을 이곳까지 데려오는 임무를 맡은 자일 뿐이다.”
사모는 답답함을 느꼈다. 문득 사모는 케이건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분노와 미소가 동시에 떠올랐다.
“케이건. 너 지금 시간을 끌고 있군. 내가 질문을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만 감질날 정도로 조금씩 하면서 말이야.”
케이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하지만 내 말은 사실이다.”
“그만둬! 더 이상 그런 장난에는 속지 않겠다. 심장탑의 수호자들이 왜 신을 죽인단 말인가! 그건 절대로 말이 되지 않는…………….”
“그렇잖다면 네 동생이 여신을 만나기 위해서 심장탑이 아닌 다른 사원을 찾아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 거라 생각하나.”
“여신을 만난다고?”
“정리해 주지. 페이. 심장탑의 수호자들이 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신을 죽일 작정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신명을 가진 자는 신에게 그것을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장탑에서는 신을 부를 수 없다. 수호자들이 있으니까. 따라서 다른 사원이어야 한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사원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즈믄누리의 마지막 방은 성주와 어르신만이 찾아갈 수 있다. 따라서 남는 것은 이곳뿐이다. 그래서 신명을 가진 수련자 화리트가 이곳으로 올 계획이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네 동생 륜 페이가 오게 된 것이다. 네 동생 륜 페이는 비록 수련자가 아니지만 신명을 가지고 있으니 자격은 충분한 셈이다. 페이. 이 이야기가 급히 지어낸 거라 의심할 수 있는지 묻고 싶군.”
그렇게 의심하기 어려웠다. 사모는 경악을 감추기 위해 애썼지만 그녀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그녀의 비늘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두억시니들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케이건이 들려준 이야기는 사모가 지금껏 단편적으로 들었던 이야기들에 모두 부합하고 있었다. 카루는 ‘륜이 하려 하는 그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중요’ 하다고 닐렀다. 륜은 ‘인간들과 힘을 합쳐 나가의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닐렀다. 그리고 륜은 ‘나가의 적이 수호자’라고도 닐렀다. 두억시니 또한 ‘신을 죽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수호자들이……………, 수호자들이 여신을 죽인단 말이냐? 그들의 신부를? 그래서 모든 나가를 두억시니 꼴로 만든다는 말이냐?”
사모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비록 륜이 수호자들 가운데 ‘나가들을 증오하고 불만과 증오로 자신을 괴롭히는 자들 또한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모는 종족적 자살을 선택할 만큼 분노에 찬 수호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걱정은 잘못 겨냥된 것이었다. 케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은 한 분이 아니다. 페이.”
“뭐라고? 발자국 없는 여신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느 신을?”
“아무도 그 사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여신. 그래서 제를 올리는 이조차 하나 없는 여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
사모의 외침이 아니었다. 케이건이 지금껏 시간을 끌며 기다려 온 티나한이 마침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리며 내지른 고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