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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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6)


그날 오후, 하인샤 대사원 경내의 모든 승려들은 강력한 지진에 경악했다.

높은 곳에 있던 물건들과 벽에 걸려 있던 물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서까래들이 지붕 속에서 몸을 뒤틀며 신음했고 그릇들이 춤을 추었다. 파름 산의 나무들이 기울었고 비탈에서 굴러떨어진 돌이 지붕을 박살 내며 방 안으로 뛰어들어 승려들을 기겁하게 했다. 경내 일부에서는 쓰러진 촛대 때문에 화재가 일어나기까지 했다.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페라 대선임은 분명했지만, 기뻐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쥬타기 대선사는 두억시니들에 대한 처치 명령을 내린 후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암자로 돌아가 버렸기에 철혈암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티나한과 륜, 그리고 그들의 수발을 들기 위해 남은 오레놀이었다. 그들은 질린 표정으로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륜이 짓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케이건이 일으킨 일일까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케이건이 날아간 후 지진이 일어났으니 그 추리는 합리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독하게 비합리적이기도 했다. 티나한이 침통하게 말했다.

“나는 케이건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겠어. 제발 그 자신은 그걸 좀 잘 알고 있으면 좋겠군.”

대지의 경련은 끝없이 계속되는 듯했다. 륜은 그것이 아무래도 지진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진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연속적이었다. 하지만 지진이 아닌 무엇인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다만 륜은 아스화리탈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스화리탈은 나무 위로 날아올라서는 가지에 앉은 채 계속 남쪽 하늘을 응시했다. 용은 지진이 끝난 후에도 내려오지 않았다.

땅거미가 으슥하게 내릴 무렵 비형과 케이건은 대사원으로 돌아왔다.

철혈암에서 기다리던 자들은 비형이 사색이 된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늬에서 내려올 때까지 그럭저럭 번듯한 모습이던 비형은 마당에 서자마자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며 풀썩 쓰러져 졸도했다. 티나한이 황급히 그를 들어 올려 마루에 눕혔다.

케이건은 그를 향해 쏟아지는 묻는 시선들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마루로 걸어갔다. 활을 다시 부려 놓은 케이건은 그것을 오레놀에게 건네었다.

“페라 대선에게 돌려주시오. 미안하지만 화살은 다 썼소. 그리고 경내의 승려들에게 전할 말이 있소. 당분간 어린 행자들이나 심약한 승려분들은 파름 평원 쪽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오레놀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동시에 대답을 듣는 것도 두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레놀은 활과 현, 깍지 등을 받아 들고는 황망하게 사라졌다. 티나한이 어두운 낯빛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었지?”

“이곳은 안전하오.”

“…… 더 할 말은 없어?”

“두억시니들이 다 죽지는 않았소.”

“다 죽지 않았다고?”

“그렇소. 일부는 살아났지.”

그리고 케이건은 륜을 돌아보았다.

“사모 페이가 그곳에 있었다.”

륜은 경악하며 외쳤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누님이 어떻게 된 건…….”

“그녀가 두억시니들을 일부 구해 내었다.”

“네?”

“한 스무 마리 정도 구한 것 같다. 현명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판국이었으니. 어쨌든 그녀는 그 두억시니들과 함께 달아났다. 아마 돌아오겠지만 당장은 아니겠지. 그러니 좀 쉬어야겠다. 피곤하다. 네 누나를 사로잡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후에 이야기하자.”

그리고 케이건은 마루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닫히는 것을 본 티나한과 륜은 마루에 누워 있는 비형을 쳐다보았다. 문득 티나한은 자신의 손이 젖은 것을 깨닫고는 질겁했다. 손바닥이 까져라 마룻바닥에 손을 문지르며 티나한은 걱정스럽게 비형을 내려다보았다.

비형의 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숨 죽인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들이 이야기의 전달을 맡았고 무궁한 상상력은 윤색을 담당했을 것이다. 최초의 시작이 그저 짧게 스쳐 지나가는 무의미한 탄성에 불과했더라도, 어떤 단계가 지나면 이야기는 생명력을 얻고 스스로를 증거하기 시작한다. 페라 대선에게 활을 돌려주러 갔던 오레놀이 발견한 것은 이미 힘차게 맥동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오레놀은 그것을 철혈암으로 가지고 돌아왔고 그것은 티나한을 흥분하게 했다.

“그게 정말이야?”

“글쎄요.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깨어난 비형은 넋 나간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보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곧 사람들은 그것이 정상적인 웃음이 아님을 깨달았다. 숨이 끊어지도록 웃던 비형은 결국 탈진하여 다시 쓰러졌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 때 밤은 이미 산사의 지붕들을 뒤덮고 있었고 낮 동안의 흥분과 공포마저도 그 넓은 자락으로 감싸 안고 있었다. 암자를 밝히고 있는 외로운 등불은 명주실 같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비형은 한결 안정된 모습으로 깨어났다. 오레놀이 식사를 권했지만 비형은 거절했다. 그리고 티나한은 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봐, 비형. 지금 이 절 안에 이상한 이야기가 오가는데.”

“아마 머리를 깎고 싶은 것 아닐까요? 그 ‘이상한 이야기’라는 분. 사원 안에서 할 일 없이 오가고 있다면 그런 이유 외엔 떠오르지 않는데요?”

“…… 하늘치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비형은 입을 다물었다. 티나한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가 두서가 없어. 하지만 항상 똑같은 이름이 반복되는데, 하늘치야.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말 좀 해봐.”

“번개가 창백해진 까닭은 진실이 날아가는 속도를 보고 질려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진실이 너무 빨라서 모든 사람들의 눈에 흐릿하게 보인다는 점 아닐까요?”

“그러니 흐릿한 거 말고 또렷한 거 좀 내놔 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요?”

“젠장. 그럼 이것만 확인해 줘. 정말 케이건이 마법으로 하늘치를 불러낸 거야?”

어이없다는 눈으로 티나한을 바라보던 비형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 같은 건 없소. 티나한.”

그리고 비형은 폭소를 터뜨렸다.

“제 흉내 비슷해요?”

다른 경우라면 티나한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비형의 의사를 존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치라는 단어는 집념에 찬 하늘치 유적 발굴자의 정신을 완전히 지배해 버렸다. 륜은 비형이 쉴 수 있게 해주라고 권했지만 티나한은 냉혹하게 말했다.

“오레놀, 곡차 한 동이만 가져다줘.”

비형은 기겁했다.

“오, 이토록 감미로운 고문이라니?”

그러나 비형은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오레놀이 동이를 가지고 돌아오자 비형은 허겁지겁 사발을 동이에 담갔다. 급하게 마신 술은 비형을 대취하게 만들었다. 비형의 얼굴이 시뻘개진 것을 확인한 티나한은 은근하게 질문했다.

“정말 하늘치였어?”

비형은 빈 사발을 휘두르며 기세 좋게 외쳤다.

“물론이죠! 하늘치 아니면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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