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7)
사모 페이는 무릎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의 망토를 우쭐거리게 하던 밤바람이 무례하게 그녀의 턱과 코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장난스러운 바람에는, 그러나 피비린내가 가득 끼어 있었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면 피가 묻어날 것 같은 바람이었다. 사모는 언짢은 듯 머리를 내젓고는 주위의 두억시니들을 바라보았다.
두억시니들은 몇 시간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녀와 마루나래를 중심에 둔 채 스물두 명의 두억시니는 거의 완전한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치 원무(圓舞)를 추는 것 같았다. 그런 춤판 가운데 앉아 있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사모는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보낸 몸짓이 정중한 요청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두억시니들은 정중했다.
사모가 시험 삼아 몇 발자국 옆으로 걸어갔을 때 두억시니들은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따라 움직이며 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간절한 동작으로 그녀에게 앉아 있을 것을 요구했다. 거기엔 분명 적대감은 없었다. 그래서 사모는 그들이 주위를 돌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녀의 눈앞을 지나가던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고개를 든 사모를 발견하고는 손짓을 보내었다. 사모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자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안도하며 다시 원무에 열중했다.
두억시니들의 속도는 일정했다. 그 모습을 보며 사모는 몇 시간 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도 사모는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는 두억시니들 사이에서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마루나래는 결국 두억시니들 사이에서 달리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두억시니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두억시니들은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에서 그들을 추적했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게다가 공평하게도 두억시니들은 사모가 그들에게 다리를 만들어 준 일 또한 잊어버린 듯했다. 사모는 그들의 목적이 단 한 가지일 거라 추측했다. 나가, 도깨비, 레콘, 딱정벌레로 이루어진 무리를 추적하는 것. 두억시니들은 그 외의 다른 모든 일들에 대해 기본적인 관심조차 가질 수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두억시니들의 움직임이 불규칙하게 바뀌었다.
마루나래의 갈기를 움켜쥔 채 사모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억시니들 또한 당황한 듯 단어들을 쏟아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문득 사모의 눈에 위를 쳐다보고 있는 두억시니가 들어왔다. 사모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장 거대한 구름보다 더 큰 하늘치가 그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잠시 압도되었던 사모는 그것이 시구리아트 산맥에서부터 그들을 따라온 하늘치임을 깨달았다. 보다 낮은 지대로 내려왔으니 하늘치와의 거리는 더 멀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하늘치는 산맥에서 볼 때보다 더욱 커 보였다.
시구리아트 산맥에서부터 하늘치를 보았던 두억시니들이 구태여 지금에 와서 당황한다는 것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사모는 다시 하늘치를 관찰했다. 그때 사모는 하늘치의 거대한 체구 때문에 마치 모기처럼 보이는 것이 하늘치 머리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깨달았다. 사모는 두 손으로 눈 주위를 감싸며 더욱 주의 깊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때 하늘치의 눈 주위에서 뜨거운 열이 번득이는 것이 사모의 눈에 들어왔다. 사모는 어리둥절하여 그것을 바라보았다. 열은 조금 후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액체가 주위에 있는 두억시니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것은 피였다.
“처음 몇 대는 맞고 튕겨 나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만두자고 외치고 싶었어요. 그토록 고상하고 위대한 생물의 눈을 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케이건은 도저히 말릴 수 없는 기세로 화살을 쏘아대더군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기어코 몇 대 제대로 맞았나 봐요. 케이건이 재빨리 제 턱을 붙잡아 옆으로 밀어붙였습니다. 하늘치 반대 방향이었지요. 예. 저는 넋을 잃은 채 그걸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보석 같은 눈이 박살 나며 뭔가가 쏟아져 나오는……………,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요. 그리고 다시 돌아보고 싶지도 않았어요. 어떻게 그런 걸 보겠어요?”
티나한은 나라면 봤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동이에 사발을 담갔다. 륜은 비늘이 곤두선 팔을 쓸어 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죠?”
비형은 입을 다물었다. 조금 후 비형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세요. 보통 하늘을 날 때 주위는 완전히 비어 있습니다. 허공이라고요. 하지만 하늘치 근처를 날면, 오오, 파리들은 정말 대단해요. 당장이라도 부딪혀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장애물이 있는 겁니다. 그것도 절벽처럼 고정된 것도 아니에요. 움직이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물체지요. 상상이 되세요?”
솔직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륜은 그저 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형은 넌더리를 내며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그의 손에서 모기만 한 도깨비불이 뛰쳐나왔다. 티나한과 륜, 그리고 오레놀은 그것이 딱정벌레 모양을 하고 있음을 간신히 알아보았다. 도깨비불 딱정벌레는 비형의 몸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것을 바라보던 비형이 갑자기 왼손을 높이 들었다. 도깨비의 큼직한 손가락은 쫙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 응축된 힘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비형의 입에서 기괴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오오오오오!”
비형은 왼손을 서서히 움직여 도깨비불을 향해 움직여 갔다. 도깨비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턱없이 거대한 비형의 왼손이 그 위를 덮자 짙은 그림자가 도깨비불을 감쌌다. 그들은 숨조차 죽인 채 그 손을 바라보았다.
하늘치가 움직임을 바꿨을 때 사모는 호흡을 멈췄다.
하늘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짙어지는 그림자. 거대한 크기 때문에 하늘치의 움직임은 놀랄 정도로 완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하늘치의 앞쪽에서 도망치고 있는 딱정벌레는 무서운 속도로 날고 있었다. 사모는 딱정벌레의 날개 뿌리 근처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딱정벌레의 날개에 마찰된 공기가 광포한 열류의 소용돌이를 만들며 무한히 퍼져가는 것도. 딱정벌레는 이제 불타오르는 유성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유성을 추적하는 불가해한 괴수가 암반을 쪼갤 것 같은 가슴 지느러미를 펼친 채 쇄도하고 있었다. 하늘치의 가슴 지느러미 앞에서 구름들이 발기발기 찢어졌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밤 같은 낮 속의, 작렬하는 별을 향해 입을 벌리는 초월적인 야수. 공기가 무겁게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바람은 없었다. 정지된 두억시니들. 흙과 초목은 정신 착란을 일으켰다. 새벽의 빛과 황혼의 빛깔, 청명한 날의 색깔과 비 오는 날의 색조가 뒤범벅되어 맥동했다.
마루나래가 구슬프게 울었다. 대지가 감내해야 할 고통을 직감하듯 대호는 목을 놓아 울부짖었다.
사모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격렬한 기침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비늘을 세차게 부딪치며 사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억시니들은 조각처럼 멈춰 있었다.
“도망쳐!”
사모는 마루나래의 갈기를 움켜쥐며 외쳤다. 그러나 두억시니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사모는 대호의 등에서 뛰어내려 가까이 있는 두억시니를 붙잡고 흔들었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잃어버린, 줄무늬 의표…… 다움이 너무 많은, 모레.”
사모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며 두억시니는 중얼거렸다. 사모의 의도가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모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하늘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모든 곳이 하늘치의 모습에 뒤덮여 있었다. 하늘치의 눈들 사이에서 사모는 피의 흐름을 발견했다. 수없이 많은 눈들 가운데 몇 개였지만 그것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 또렷이 보였다. 그 외의 다른 눈들은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사모는 마루나래에 뛰어올랐다.
도망치려던 마루나래는 사모가 보내어 오는 개념에 당황했다. 사모는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를 향해 달릴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