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7장 – 여신의 신랑 (8)
비형은 어두운 얼굴로 계속 자신의 왼손을 움직여갔다. 그의 손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안에서 도깨비불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얼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추락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아래로 날아갔지요. 그렇게 빨리 날아본 건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등 뒤로는, 흐으, 오싹오싹할 정도로 질량감이 커지고 있었지요. 머릿속에서 돌풍이 불어닥치는 것 같더군요. 몸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그때 얼핏 두억시니들 사이에서 사모 페이가 보였어요. 그녀가 뭘 하고 있었는지 짐작되세요?”
륜 페이는 긴장하며 비형을 바라보았다. 티나한이 질문했다. “뭘 하고 있었는데?”
“그 두억시니 기억나세요? 시구리아트 유료 도로에서 케이건 앞에 나섰던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 사모 페이는 대호에 탄 채 그 두억시니를 향해 달리고 있었어요. 대호가 휙 난다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이미 땅에 쓰러진 두억시니 위에 올라타 있더군요. 그러고 나서 대호는 두억시니의 다리 하나를 물었어요. 나는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대호가 그대로 두억시니를 끌면서 달리더라고요. 그 두억시니는 버둥거리며 뭐라고 외치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넋을 잃고 있던 두억시니들 중 몇몇이 그쪽을 보더군요. 그러고는 대호와 사모 쪽으로 달려가더라고요. 사모가 두억시니들을 유인하기 위해 그랬던 거라 추측할 수 있겠지요?”
사모 페이는 추측했고, 행동했다.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언제나 앞에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두억시니들과 달리, 단편적이나마 정확한 단어들을 구사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결심을 내렸을 때 사모는 논리보다는 직감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했다.
마루나래가 그 거센 힘으로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를 끌고 달리자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는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몇몇 두억시니들이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파국을 피한 두억시니는 너무도 적었다. 딱정벌레는 땅에 충돌하기 직전 몸이 부서질 정도의 급선회를 감행했다. 그리고 하늘치의 눈이 없는 배 부분을 통해 꼬리 지느러미쪽으로 빠져나갔다. 흡사 천장 바로 아래를 날아가는 파리처럼 보였다. 하늘치는 그 정도의 민첩성을 도저히 발휘할 수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피눈물을 흘리는 거대한 물고기는 온몸으로 두억시니들을 깔아뭉갰다.
폭풍과 굉음이 사모와 두억시니들을 가랑잎처럼 날려버렸다.
“우리는 평야 한 구석의 억새밭에 납작 엎드려 숨어 있었어요. 뭘 봤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못봤어요. 케이건이 내 뒤통수를 누르고 있었거든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제가 알고 있는 건 하나뿐이에요. 그 손은, 그 손은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어요. 나는 그 손이 없어지는 것이 더 두려웠어요. 그리고 그 손에 감사했고. 그런데 도대체 몇 시간이었죠?”
륜이 대답했다.
“한 시간입니다. 땅이 울린 건 한 시간 정도였어요.”
비형은 놀라서 외쳤다.
“정말입니까? 겨우 한 시간이라고요?”
“예. 한 시간 정도 울리다가 진동이 멈췄어요.”
하늘치로부터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모는 자신이 땅에 엎드려 있는 건지 난동을 부리는 동물의 등에 올라타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하늘치의 지느러미가 땅을 때릴 때마다 대지가 수십만 년에 걸쳐 조심스럽게 가꿔온 형상은 간단하게 변경되었다. 광분하여 치솟아오른 대지의 핏물 같은 흙먼지는 그 안에 들어선 생물이 무엇이든 질식사시켜버릴 것 같다. 놀랍게도 하늘치의 몸이 가려질 지경이다. 땅을 향해 분화하는 하늘의 화산, 몸부림 치는 산맥, 노호하여 격투하는 형체 없는 제신, 불가지론에 대한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증언……. 문득 사모는 자신이 무의미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의 지식에는 그런 광경을 묘사할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사모는 그 지형 변경적 폭력과 믿기 어려운 아둔함이 빚어내는 불일치에 분노를 느꼈다.
<수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도 누구에게 화를 내어야 하는지도 모르느냐!>
하늘치가 하늘로 돌아가고 대지의 흐느낌이 잦아들고도 한참 후에야 사모는 겨우 일어나 설 수 있었다. 그리고 사모는 대지에 남겨진 자취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곳엔 더 이상 구릉이 없었다. 지반이 내려앉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덩이가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사모는 그 구덩이 바닥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증오에 찬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 사모는 하늘치의 등에 남아 있는 유적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충격에도 유적이 건재한 것일까? 마루나래가 낮게 으르릉거렸다.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사모는 마루나래에 몸을 붙이고 있었기에 그 진동을 느꼈다. 사모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조금 전 그녀와 함께 도망쳤던 두억시니들이 사방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사모는 쉬크톨을 뽑아들었다. 그녀가 막 대호에 올라타려 했을 때 앞쪽에서 걸어오던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가 말했다. “칼.”
“아니다.”
사모는 고개를 갸웃한 채 머리 둘 달린 두억시니를 바라보았다. 두억시니는 다시 말했다. “칼.”
“아니다.”
사모는 자신의 쉬크톨을 내려다보고는 다시 두억시니를 바라보았다. 두억시니들은 이제 그녀와 마루나래를 둘러싼 채 정지해있었다. 마루나래는 당장이라도 가까이 있는 두억시니를 가루로 만들겠다는 듯 어깨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마루나래의 갈기를 조금 쓸어만진 다음, 사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칼을 쓸 일이 아니다? 싸우지 말자는 거야?”
“칼.”
“아니다.”
사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가 되는 일을 즐길 필요는 없지만, 그걸 무서워할 필요도 없겠지.”
사모는 쉬크톨을 도로 꽂아넣었다.
사모는 두억시니들이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그녀의 행동이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주위를 돌기 시작하는 두억시니를 보았을 때 사모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다 행동 지향적인 마루나래는 곧바로 두억시니들을 시험했다. 마루나래는 위협적으로 그 원무의 한귀퉁이로 다가갔다. 하지만 두억시니는 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마루나래는 포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억시니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마루나래는 앞발 하나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마루나래가 두억시니의 다리를 걸기 전에 사모는 그 꼬리를 잡아당겼다. 마루나래는 투덜거리며 땅에 앉았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될 때까지 두억시니들은 쉼없이 돌았다. 사모가 이대로 잠들어도 되는 건지, 그렇잖으면 마루나래와 함께 이들을 뿌리치고 오늘 밤을 보내기에 보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볼 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용서하겠다.>
사모는 칼자루를 움켜쥐며 벌떡 일어나 쉬크톨의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마루나래는 그런 사모의 모습에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모는 오른손으로 그대로 칼을 쥔 채 일어나려는 마루나래의 머리를 왼손으로 눌러주며 닐렀다.
<누구지?>
<내겐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군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모의 머릿속으로 어둠에 쌓인 영상이 스며들어 왔다. 깊고 차갑고 어두운 암흑 속에서 사체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모는 놀라며 닐렀다.
<그 피라미드의 괴수로군! 근처에 있나?>
<나의 일부를 통해 니르고 있다.>
사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모는 빙글빙글 도는 두억시니들의 모습이 흘러내렸다가 다시 위로 모여드는 유해의 폭포를 닮았음을 깨달았다.
<대단하군.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여전히 너의 일부라니. 그렇다면 너는 그곳에 있으면서 세상의 곳곳을 보고 들을 수 있겠군.>
<그렇군! 그럴 수도 있겠군!>
<・・・・・・ 처음 해본 거야?>
<그렇다. 흥미로운 개념이다. 당장이라도 시험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하겠군. 나의 일부들 중 많은 수가 줄어들었다.>
<애석하게 생각해. 그런데 용서하겠다는 건 무슨 뜻이지?>
<너는 그 칼로 나를 찔렀다. 나는 그 사실을 용서한다.>
<정말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그리고 네 모습은 도저히 호의적이라고 니르기는 어려웠고. 하지만 대화 없이 공격부터 한 것에 대해서 사과하겠어.>
<나는 이미 용서했다. 그러니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내 감사를 받기 바란다. 너는 오늘 나들을 구해 내었다.>
<나들? 군령자나 할 법한 니름이군. 그거라면 별로 감사 받고 싶지 않아. 전부 다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못했어. 나는 머리 둘 달린 저 친구, 아니, 저 너가 가장 머리가 좋으리라 생각했어.>
<그러하다. 나는 그 나로 하여금 다른 나들을 지휘하게끔 계획했다.>
<그렇군. 그래서 저 너에게 다른 너들을 구해 달라고 외치게끔 하려고 했어.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야.>
<나는 나를 구하려 했던 네 의도에 감사하는 것이다. 물론 네 행동에도 감사한다. 지금 네 주위를 돌고 있는 나들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만든 나들이다. 다른 나들은 그 나들이 만들었다.>
사모는 전부 일인칭으로 통일되어버리는―그것도 ‘우리’가 아닌 ‘나들’이라고 표현하는 두억시니의 니름에 약간 혼란을 느끼며 닐렀다.
<내게 고마워하고 있다면 질문 하나쯤에는 대답해 줄 수 있겠군. 왜 이곳까지…….>
사모는 륜 페이와 불신자들에 대한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그들을 추적해 온 거지?>
<그들이 또 신을 죽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다!>
<도대체 그 신을 죽인다는 것이 무슨 니름이지? 신을 죽일 수는 없어.>
‘잃을 수는 있는데 죽일 수는 없다고 할 텐가?’
<・・・・・・ 기분 나쁘게도 네 니름에 약간의 공감이 느껴지는군. 어째서 그런 혐의를 느끼게 되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겠어?>
<나는 그때 나가의 기억을 읽었다. 그중 어떤 기억에서 나는 신을 죽이는 내용을 읽어내었다.>
<어떻게 죽이지?>
<그런 내용은 없었다. 단지 ‘신을 죽인다’는 것뿐이었다. 그 기억을 통해 나는 신을 죽일 수 있음을 깨닫고 두억시니의 신 또한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 폭력의 피해자로서 나는 나에게 일어난 것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그래서 특별한 두억시니를 만든 다음 피라미드 밖으로 내보낸 것이군. ‘신을 죽인다’는, 단지 두 개의 단어만으로 너무 큰 추론의 도약을 한 것 아닐까? 그건 어쩌면 불신자들이 륜에게 들려준 농담의 일종이었는지도 몰라. 내가 만났을 때 그 불신자들은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의심에 대해 어이없어 하더군.>
<어이없어 했다고?>
<그래. 거의 나만큼 당황하는 것 같던데. 너는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니를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아.>
<어제까지라면 나는 그들의 잔인성을 내 추론의 증거로 제시할 수는 없었을 거야.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있을 것 같군. 아무리 신을 잃은 자라지만, 그래서 동정을 받을 가치도 없다지만, 벌레가 가진 것만큼의 고귀함도 가지지 못한 나지만! 저 하늘을 떠도는 공포를 끌어내려 그토록 무참하게 나를 짓밟았어야 했나?>
사모는 정신을 닫았다. 그녀 또한 케이건이 구사한 폭력에 상당한 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구리아트 관문 요새에서 짧게 마주쳤던 케이건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에 케이건은 흉포한 살육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모는 케이건이 나가 살육자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딱정벌레를 조종했던 것은 도깨비였겠지만 활을 쏜 건 틀림없이 인간이겠지. 레콘은 같이 타기엔 너무 무겁고 륜은 활을 쏠 줄 모르니. 그 인간은 자기가 나가 살육자라고 인정했어. 그래. 네 니름처럼 그 인간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대단히 잔인해질 수 있는 자일 거야.>
빌어먹을, 그런 인간이 륜의 곁에 있다니! 사모는 분노했지만 곧 분노보다 더 큰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륜이 나가 살육자와 자신을 죽이려드는 누나 중에서 누구를 더 혐오하고 증오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인간은 나가 살육자며 하늘치마저도 거리낌없이 공격할 수 있는 자였으며 3,000명의 두억시니를 학살한 자이지만………, 그래도 신을 죽인다는 것은 문제가 달라. 그건 잔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야. 그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까?>
<그가 아니라면 다른 자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 네 명이 함께 있을 때 그런 능력이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러고 보니 그들에겐 모든 종족이 다 포함되어 있군.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런 독특한 집단을 이룬 거지?>
<그들은 나가의 적과 싸우려고 륜을 데리고 가는 거라더군.>
<나가의 적이 신인가?>
<천만에. 니름도 안 돼. 나가는 다른 종족들보다 오히려 신과의 관계가 밀접해.>
어이없어 하며 니르던 사모의 뇌리 속으로 문득 기묘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그 생각에 겁을 집어먹었지만 생각 자체를 멈출 수는 없었다.
륜은 심장탑에 있는 나가의 적과 싸우겠다고 했다. 심장탑에 있는 것은 수호자다. 여신의 신랑들. 사모는 여신의 신랑들과 싸우겠다는 말이 여신을 죽이겠다는 말과 비슷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두려웠다.